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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 얼굴 학생 Aug 18. 2024

동병상련

악바리 힘, 코끼리 피부, 듬성듬성

 그가 아토피를 앓던 때는, 유난히도 아토피가 기승이었다. TV에서도 '아토피' 관련 집중취재 보도를 내보내기도 하고, 각종 건강 관련 다큐에서도 자주 다룰 정도였다. 아토피 인구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의 경우에도, 학교를 돌아다니다 보면 딱 봐도 아토피성 피부염을 가졌을 것으로 생각되는 아이들이 심심치 않게 눈에 띄었다. 그는 속으로, 자신보다 상태가 더 심한지 괜히 우열을 가려보기도 하고, 동병상련을 느끼기도 한다.



 중학교 시절, 그는 같은 학급에서 아토피 동료 'ㄷㄷ'을 만나게 된다. ㄷㄷ도 아토피가 꽤 심한 편이었다. 그와 ㄷㄷ은 친한 친구가 되어, 상대방이 긁으려고 할 때마다 서로의 팔을 붙잡고 긁지 못하도록 막으며 놀곤 한다.


 그와 ㄷㄷ 사이에는 공통점이 꽤 많다.



1. 힘

 그는 운동을 하나도 하지 않았지만, 체구가 크다. 핵심은 체구가 아니라, 갖고 있는 힘이다. 그는 동일 체구 아이들에 비해서도 힘이 셌던 것으로 기억한다. ㄷㄷ은 그보다도 체구가 더 크고, 힘은 더더욱 세다. ㄷㄷ은 미칠 듯한 가려움을 참으려 침대 다리를 주먹으로 때리다가 다리를 완전히 부숴버린 전적의 소유자다. 아토피를 앓고 있는 아이들은 힘이 센 편인가? (ㄷㄷ이 그의 두 팔을 붙잡고 있으면, 그는 긁을 수가 없어 미칠 지경이었다)

 그의 해석은 이렇다. 민감한 피부 상태로 인해, 깨어있는 내내 이를 악물고 온몸에 힘을 주고 있는 버릇이 모종의 '근력 수련' 처럼 작용한 것은 아닐런지. 그야말로 악바리 힘이다.



2. 코끼리 피부

 그와 ㄷㄷ 모두, 목을 비롯하여 피부 여기저기가 꺼칠꺼칠하다. 말 그대로 '코끼리 피부'다. 신나게 긁어대고, 간신히 회복하고, 그 위를 또 긁고, 회복이 미처 되기 전에 또 긁어대기도 한다. 이런 선순환을 반복하면, 보드랍고 연약한 애기 피부를 탈피하여 두꺼운 코끼리 피부를 획득할 수 있다.



3. 잠

 그는 쉬는 시간에 항상 엎어져 잤고, 수업 시간에도 꾸벅꾸벅 조는 일이 많았다. 가끔 깨어나 ㄷㄷ을 보면, ㄷㄷ도 엎어져 자다가 일어나 몽롱한 눈빛으로 있곤 했다. 아토피의 가려움 증상은, 몸의 면역 체계가 너무 과도하게 반응하여 나타나는 것이다. 일반인이라면 아무렇지도 않을 먼지, 진드기, 옷의 섬유, 땀 등에도 과도하게 면역 반응을 일으켜 가려운 것이다. 이러한 면역 반응은 에너지를 소모한다. 아토피를 앓는 이들은 불필요하게 에너지를 계속해서 소모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이론을 알게 된 시점부터, 그는 이를 핑계 삼아 학교에서 더욱 열심히 잤다.



4. 듬성듬성

 식물은 비옥한 토양에서 잘 자란다. 토양이 비옥하지 않거나, 주기적으로 계속해서 뽑아대면 잡초조차도 살기 힘들다. 그와 ㄷㄷ의 피부는 악조건을 모두 갖췄다. 건조해서 쩍쩍 갈라지는데, 그 위를 시도 때도 없이 긁어대서 피와 진물이 계속해서 들어찬다. 썩 비옥한 환경은 아니다. 풀(털)이 자랄 토양의 상태가 엉망인데, 손톱이라는 갈퀴로 계속해서 긁어댄다. 긁다 보면, 당연히 털도 빠지게 마련이다.


 그의 경우는 다리다. 하체는 상체에 비해 감각이 둔하기 때문에, 그는 마음 놓고 다리를 긁었다. 열심히 긁다 보니, 그의 정강이 부위 털이 듬성듬성해졌다. 그는 원래 다리털이 많지 않은 편인데, 이마저도 긁으면서 뽑혀나간다. 그가 자세히 들여다보면 정강이 부위 털이 불규칙적으로 산재해 있다. 이전의 손톱자국들을 돌이켜보자면, 듬성듬성 이만큼이라도 남아있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ㄷㄷ의 경우에는, 얼굴이었다. ㄷㄷ은 자리에 엎어져 자다가 일어날 때마다, 양손으로 세수하듯이 얼굴을 위아래로 비비곤 했다. 그는 물도 없이 뭐하는 것인가 의아했는데, 나중에 들어보니 이 행동은 얼굴이 가려워서 하는 행동이었다. 맨손 세수로 얼굴을 문지르다 보니, ㄷ의 얼굴 털도 영향을 받는다. 바로 눈썹이다.


 그가 ㄷㄷ을 볼 때마다 인상이 조금 특이하다는 느낌을 받았었는데, 눈썹이 다른 이들보다 흐릿했던 영향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몇몇 아이들은 별명을 붙여 '오크 ㄷㄷ'이라고 불렀다. ㄷㄷ의 덩치가 커서 붙인 별명일 수도 있겠지만, 그는 그렇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하필 오크는 눈썹이 없게 묘사되는 편이다) 그는 저런 말을 함부로 하는 것이 맞는가 의문이 들었다. 동갑이지만 ㄷㄷ은 그보다 훨씬 성숙하다. 사람 좋은 웃음으로 웃어넘기고, 언제나 쾌활하다.


 순수함과 솔직함은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며, 무지나 무례함과 한 끝 차이일 수 있다. 이때가 바로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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