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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사막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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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 얼굴 학생 Dec 28. 2024

지푸라기

 버스가 출발한다. 그는 어머니와 함께 대학 병원을 가는 중이다. 초등학생 때부터 주기적으로 들락거렸던 대학 병원. 큰 대학 병원에 가면, 아토피를 사라지게 하는 마법 같은 치료법이나 약이 있지 않을까. 그런 것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기적으로 찾아간다. 갈 때마다 똑같다. 지금은 상태가 어떻다느니. 좀 심해졌다느니, 좀 나아졌다느니. 너무 기름진 것은 먹으면 안 된다느니. 스트레스가 제일 주요하다느니. 


 오늘의 대학 병원 일정은 조금 특별하다. 원래는 진료만 받고 끝나지만, 이 날은 일정이 더 있다. 어머니가 그를 위해서, '스트레스를 완화시키기 위한 명상 호흡' 수업을 예약했다.(정확한 명칭은 기억나지 않는다)



 진료 이후, 병원동과 떨어진 건물로 향한다. 이곳에서 '명상 치료 수업'이 진행될 예정이라 한다. 철없는 그는 몸을 벅벅 긁어대며, 신경질 섞인 목소리로 불평하며 어머니를 따라간다. 도착하니, 명상 치료 수업을 수강하는 이들이 몇몇 더 있다. 그와 어머니를 포함하여, 총 세 그룹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1) 그와 어머니

  2) 아토피를 앓고 있는 듯한 여자 청소년, 그리고 어머니로 추정

  3) 아토피를 앓고 있는 듯한 여자 성인


 다들 눈만 동그랗게 뜬 상태로, 어색하고 어정쩡하게 모여 있다. 철딱서니 없는 그는, 자신이 이 그룹의 일원이라는 사실 자체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상처 입고 겁에 질린 자들의 모임 같은 것인가. 외국 드라마에 나오는, 알코올 중독자 치료 모임 같은 느낌이다. 



 조금 있으니, 안내자가 건물 안에서 나온다.

  - 안녕하세요!

  - 아, 안녕하세요.

  - 네, 오늘 '명상 치료' 신청하신 분들이시죠?

  - 네 맞아요.

  - 먼 길 오시느라 고생하셨어요! 다들 이쪽으로 와주시겠어요?


 안내자가 안내를 한다. 상처입은 무리들을, 아니, 있는지조차 모를 한줄기 희망이라도 붙잡고 싶은 무리들을. 


  - (강당 같은 곳에 안내하고는) 여기서 오늘 명상 치료 수업을 진행할 거에요.

  - 아, 네

  - 명상 치료 수업이라, 불을 끄고 안내 방송 따라서 진행될 거에요. 다들 괜찮으시죠?

  - (머뭇머뭇) 네~

  - 네 그러면, 이제 시작할게요. 안내 방송 잘 따라주시면 돼요~



불이 꺼지고, 방송이 시작된다. 강당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자연의 소리가 울려퍼지기 시작한다. 짹짹거리는 새소리, 시냇물이 졸졸 흘러가는 소리 따위다.


  스피커 :  (짹짹, 졸졸졸~) 눈을 감고, 귀를 기울이세요~

  스피커 : 자연의 모습을 상상하며, 숨을 깊게 들이마시세요~ 스읍~

  치료받는 이들 : 스읍~

  스피커 : 그리고 이제, 숨을 후~ 내쉽니다~

  치료받는 이들 : 후~

  

  스피커 : 자리에서 일어나서, 두 팔을 뻗어보세요~

  치료받는 이들 : (두리번거리며 일어난다)

  스피커 : 스트레칭하듯 팔을 쭈욱~ 숨을 깊게 들이마십니다~ 스읍~

  치료받는 이들 : 스읍~

  스피커 : 이제 몸을 앞으로 숙이며, 숨을 내쉬세요. 후~

  치료받는 이들 : 후~



이때 그의 나이가 17~18세. 반항심이 극에 달했을 시기다. 눈은 어느새 어둠에 적응하여, 주변 사물을 식별할 수 있다. 그는 지금 이게 도대체 무슨 Show를 하는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주위를 둘러본다. 하나같이 다들 열심이다. 그를 제외하고는 모두 여자여서, 고분고분 잘 따르는 것인가? 아니면 그의 타고난 심성이 원체 삐딱하여 그 혼자서만 유난을 떠는 것인가.


 그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묵묵히 열심이다. 다들 눈을 감고, 자연을 상상하며 스트레칭과 호흡에 전념하고 있다. 특히나, 아토피를 앓지 않는 것으로 보이는 보호자들도 아주 열성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눈을 감고 안간힘을 써가며. 그렇게까지 해서라도 자식들의 아토피가 낫기를 바라는 것이겠거니. 이를 보고 있는 그의 심사는 계속해서 뒤틀린다.


  스피커 : 두 손을 모아 배 위에 올려놓고, 나를 괴롭게 하는 것들을 떠올리세요~

  스피커 : 숨을 들이마시세요~ 스읍~

  스피커 : 나를 괴롭게 하는 모든 것들을, 숨을 내쉬며 함께 내보내세요~

  치료받는 이들 : 후~


 짹짹 졸졸거리는 배경음악과 함께, 스피커의 치료는 대략 50분 가까이 지속됐다. 치료가 끝나고 불이 켜진다. 그를 제외한 치료받는 이들은, 상당히 개운한 표정이다. 너무 열심히 몰입하여, 온몸에 땀을 흘리는 듯 보이는 사람도 있다. 그는 어머니를 잡아끌다시피 하며, 도망치듯 장소를 벗어난다.




 이후에도 그와 어머니는 여러 가지 시도를 했다. 아토피 관련하여서는, 온갖 민간요법과 풍문이 난무했던 시기다. 대표적으로 기억나는 것만 추리자면


1. 알X에

  식물로부터 추출한 약품이 아토피에 좋다는 풍문이 있어, 동안 몸에 달고 살았다. 매일 차례씩 몸에 펴발랐으나, 별 효과는 없었다.


2. 연수기

  그가 생전 처음 들어본 이 단어는, 기계의 이름이다. 연수, 말 그대로 연한 물이다. 일반 수돗물에는 어떤어떤 성분들이 포함되어 있는데, 아토피 환자에게는 이 수돗물 자체가 너무 자극적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 수돗물에서 일정 성분들을 제거하여 물을 '연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 연수기의 물로 샤워를 할 경우, 비누 거품을 씻어내도 몸에 미끈한 무언가가 계속해서 남아 있었다. 물의 세척 작용을 연하게 만들어버린 것인가. 그는 피부가 미끈한 것을 참지 못한다. 결국 연수기 비용만 날리고, 실제로 사용하지는 않았다.


3. 해양심X수

 바다 저 깊은 곳에서 떠온, '플랑크톤 등 좋은 영양이 풍부한' 물을 마시는 방법이다. 비용 때문에 그는 실제로 시행하지는 못했다. 바다 저 깊은 곳에서 떠오는 물이라, 단가가 높은 모양이다. 그의 지인 중 누군가가 과감히 돈을 써가며 해양심X수만 마셔보았다고 한다. 실제로 성과가 어땠는지는 답변을 듣지 못했다.



 그는 아직까지도 알지 못한다. 이때의 수많은 노력들이 그의 아토피 증상을 호전시키는데 기여를 했는가. 그가 앓았던 아토피의 궁극적인 원인이 도대체 무엇인가. 옛 원시인들이 비가 내릴 때까지 기우제를 지냈다는 이야기처럼. 아토피가 나아질 때까지 무엇이 됐든 닥치는대로 해볼 따름이다. 그렇게 하다보면 뭐라도 하나 얻어걸리지 않겠는가. 그렇게라도 해봐야하지 않겠는가.


 결국 그도, 그의 어머니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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