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hloe J Nov 29. 2024

앵두나무집 초록문

"시온슈퍼에서 네번째 앵두나무집 초록문이요!"


반대하는 결혼을 하느라 여자의 자취방에 숟가락 한벌만 얹어서 신혼살림이 시작되었다. 그들은 젊었고 희망이 가득했다. 부모의 도움은 없었지만 둘은 부부교사였고 사랑했고 젊음이 있었다. 아이는 집을 산 후에나 가지기로 했다. 그때는 새마을운동이 한창이던 대한민국 급성장기였다. 따박따박 들어오는 월급을 모아 저금만해서도 집을 살수 있었다. 여자와 남자는 국수를 박스채 사서 식비를 아끼고 허리띠를 졸라맸다. 아무것도 가진것 없던 결혼 3년을 버텨 국민학교 선생님 월급으로 경상도 중소도시에 집을 샀다. 젊은 부부는 손을 꼭 잡았고 울면서 웃었다. 곁에 있는 그 남자만 있다면 세상에 무서울게 없다고 여자는 생각했다.  


젊은 부부는 처음 가져보는 단독주택을 그들만의 것으로 가꾸며 더 행복한 날들을 꿈꿨다. 길게 늘어진 좁은 화단에 하나씩 돌을 주워와 화단따라 막음돌을 세우고 가장자리를 따라 낮은 해바라기를 심었다. 그리고 가장 먼저 현관에서 화단이 시작되는 가장자리에 앵두나무를 심었다. 그나무는 첫째 아이를 위한 것이었다. 그들은 아이를 갖기로했다. 첫째는 딸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들하나, 딸하나를 꿈꿨다. 그들 앞에 불행은 드라마에서나 나오는 일이었다. 이미 힘든 가난을 딛고 일어섰으니 소설 속 행복만 남은듯 보였다.

여자가 임신을 했다. 매일 편도 1시간 넘게 비포장 버스를 타고 출근했던 여자는 첫 아이를 유산했다. 자궁이 약하다는 소리를 들었고 또 임신을 했다. 아이를 위해 2달간 휴직을 한 끝에 임신을 끝까지 유지할 수 있었다. 그들이 원하던 딸이었다. 기대와 사랑을 한몸에 받은 앵두나무의 주인이었다. 그사이 앵두나무는 해가 갈수록 몰라보게 풍성해졌다. 높지 않았던 담을 살짝 넘겨 옆집에까지 그늘을 드리웠다. 아이는 태어났고 입술이 앵두를 닮았던 첫딸은 다정하고 든든한 부모아래 바닥에 발한번 닿게할 새 없이 사랑과 관심을 받으며 잘 자랐다.


2살이되고 딸은 선천질환 선고를 받았다. 선천성 고관절 탈구로 바로 수술하고 치료를 시작하더라도 완치확률이 50%였다. 남자는 술을 마셨다. 여자는 딸을 안고 울었다. 남자는 녹음기를 켰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가진것을 다 팔고 외국에서 가서라도 꼭 딸의 다리를 고쳐주겠다고 다짐하는 녹음을 했다. 다음날에는 또 술을 마시며 딸에게 편지를 썼다. 편지에는 술인지, 눈물인지 모를 액체로 일그러졌고, 그의 필체는 취기인지 슬픔의 흔들림인지 갈길을 잃었다. 각오와 다짐, 미안함과 처절함 그리고 넘치는 사랑을 담으려고 했다.


딸은 2년동안 전신 깁스를 하면서 성장했다. 부부의 마음을 뜯어먹고 삶을 갉아먹으며 자랐다. 그 동네에 에어컨에 처음 생긴것도 부부네 집이었다. 당연히 깁스한 딸을 위해서였다. 봄 가을이면 앵두나무 그늘에서 엄마의 삶은 죄책감으로 딸 곁에 묶여 있었다.


다행히도 해피엔딩이다. 딸은 50퍼센트의 확률을 잡고 보통사람처럼 걸을 수 있게 되었다. 자기 나무의 열매를 따먹고 동네 친구과 해마다 수확하는 기쁨을 함께하기도 했다. 그사이 여동생도 태어났다. 앵두나무가 내어주는 그늘에서 여동생과 앵두 나뭇잎을 찧고 앵두 열매를 따서 소꿉놀이를 했다. 동생이 유치원에서 이가 옮아왔을때 언니 동생은 앵두나무 그늘에서 머리카락을 산발하고 엄마에게 머리를 맡겼다.


앵두나무는 어느새 그집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었다. 알이 얼마나 굵은지 다른집 앵두의 1.5배는 되었다. 첫째딸은 자기나무가 자랑스럽고 사랑스러웠다. 그때부터 그 집은 앵두나무있는 초록대문이 되었다. 아주가까끔 중국집 배달을 시켜먹을 때도 "시온슈퍼에서 4번째 앵두나무 초록대문"이라고 하면 못찾아오는 사람이 없었다.   

벌써 30년도 더 오래된 이야기다. 이제 그 앵두나무, 내 나무는 없다. 11살이되며 우리 가족은 아파트로 이사를 왔다. 서른이되어서야 다시 찾은 옛집에 앵두나무는 없었다. 내 사진첩에 이삿날 마지막으로 꺾어온 앵두나무 가지 5센티, 말라비틀어진 가지만 어설프게 추억을 붙들고 있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아픔과 행복을 함께 지켜봐주고,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내줬던 앵두나무. 원가족과의 가장 아름다웠던 추억은 모두 그곳에 있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