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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의 생활

에필로그

by 이재이



예전에 KBS 3부작 다큐멘터리 <세상 끝의 집- 카르투시오 봉쇄수도원>을 시청한 적이 있다. 나는 종교가 없지만 수도승들의 삶에서 경이로움을 느꼈다. 그들은 좁은 공간에서 고독과 침묵으로 살아가며 정말로 최소한의 물건을 가지고 생활하고 있었다. 식사는 하루에 한 번 제공되며 매주 금요일에는 맨밥과 물만 먹는다. 수도승들의 양말, 고무장갑은 모두 구멍 난 것들이었다. 구두를 35년 신었다고 했다. 가난을 통해서 자유를 얻었다는 것. 참으로 대단한 깨달음이다.




수도승들의 눈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눈은 너무 맑았고 얼굴은 너무 평온해 보였다. 모든 것을 내려놓은 사람들. 욕망에 사로잡힌 삶이 아닌 진정한 삶의 의미를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나는 자본주의의 마케팅에 조종당하면서 살아왔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항상 욕망이 생겼다. 부끄러운 줄 모르고 사고 버리는 것을 반복했다. 가난이 싫었지만 스스로가 더욱 가난해지는 삶을 살고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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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나도 최소한의 생활을 경험한 적이 있다. 가족이 입원을 하여 병원에서 병간호를 했던 시기가 있었다. 약 두 달간의 기간 동안 트렁크 하나 정도의 짐을 가지고 살았다. 강제적인 병원 생활이었기에 심신이 힘들었다. 6인실이라서 사용공간이 매우 좁았다.




몇 번은 다른 사람들이 가져다주는 짐이 보태졌지만 그렇게 대충의 짐으로 생활했다. 일상도 매우 단조로웠다. 병원에 세탁실도 있었지만 세탁기를 돌리고 건조하는 시간을 맞추는 것도 일이었기에 편안한 옷을 대충 입으며 빨래거리를 최소한으로 줄였다. 화장은 가져온 샘플 스킨을 바르는 것이 전부였던 것 같다. 그래도 별다른 변화는 없었다.




금욕적인 생활을 하는 것과 비슷했다. 전자책을 읽고 병원을 걸어 다니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 생활해 보니 많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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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집이 너무 좋았다. 평소에 적은 평수에 위치도 별로라고 생각했지만 역시 우리 집이 최고라는 생각이 들었다. 침대에 눕는 순간 너무 편안해서 눈물이 나왔다. 그리고 집안에 가지고 있는 물건이 너무 많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극한의 상황을 겪었으니 비교가 될 만했다. 한동안 집안을 많이 정리했다. 새로운 물건을 들이는 것에 더욱 신중하게 되었다.




트렁크 하나 정도의 짐만으로도 생활이 된다는 것을 겪고 보니 최소한의 물건을 가지고도 큰 문제없이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무작정 매일 소비하면서 지내지 않아도 된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미 너무 많은 물건들을 가지고 살고 있을 것이다. 냉장고 속의 음식들을 다 먹는데 한 달이 걸릴지도 모른다.




의도치 않았던 병원 생활이었지만 소량의 물건을 가지고 생활했던 경험은 내가 가진 것들에 대한 소중함을 일깨워주었다. 오히려 짐이 많을수록 거추장스러운 생활이었다. 최소한으로 줄이고 매일 무언가 사야 한다는 생각도 하지 않고 살아도 문제가 없었다. 병원비를 제외하고는 돈을 거의 쓰지 않았다.




특수한 경우가 아니어도 최소한의 생활을 하는 것은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고 소유물들을 관리하느라 드는 에너지와 시간도 다른 곳에 쓸 수 있다. 꼭 돈을 쓰지 않아도 가지고 있는 물건들로 충분히 생활이 가능하다. 줄이는 삶을 통해 많은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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