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무작정 나눠주기 금지

by 이재이



물건을 정리하면 항상 연락하는 사람이 있다. 가까운 곳에 살고 있는 엄마다. 정리할 물건들을 줄지어 놓고 사진 찍어서 엄마가 필요하면 주겠다는 연락을 한다. 예전에는 내가 비운 물건의 거의 대부분을 엄마가 고스란히 가지고 갔다. 엄마는 멀쩡한 물건들을 버린다는 것을 아까워했다.




그러다가 엄마도 미니멀라이프를 알게 되었다. 내가 읽는 책을 따라 읽고 정리를 시작한 뒤로는 내가 준다는 물건을 무작정 다 받지 않는다. 쓰지 않는 물건은 미리 걸러내고 꼭 사용할 것 같은 물건을 골라서 받는다.




내가 필요 없는 물건이지만 상태가 좋은 물건을 버리기는 아깝다. 중고거래를 해서 팔거나 아름다운 가게를 통해 기부를 해 보기도 했다. 최근에는 엘리베이터 나눔을 통해 이웃들에게 나눔을 한 것도 있다. 가족이나 지인에게 나눠주거나 나눔을 해서 쓰레기가 되는 것을 막는 일이 먼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눔의 행동이 비움의 면죄부가 되는 것은 잘못된 것 같다. 왜냐하면 내가 은근히 “나눠줬으니 괜찮다”는 생각을 하면서 물건을 쉽게 비우게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물건을 비우고자 마음먹으면 눈앞에서 빨리 치우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래서 쉽게 버리고 싶은 충동이 들었던 적도 있다.





20250217_213905.jpg





하지만 요즘 물건을 버린다는 것에 죄책감이 든다는 내용의 글을 여러 번 썼다. 우리 모두 이제는 알고 있다. 재활용이라는 것이 잘 되지 않는다. 내 눈에서, 내가 있는 공간에서 사라졌다고 해서 그 물건이 지구에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신중해야 한다.




나에게 필요 없는 물건이 다른 사람에게 가서 잘 쓰일 확률도 높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도 예전에 집안 어른에게 무언가를 받은 경험이 있다. 본인은 쓰지 않지만 좋은 거라면서 이것저것 챙겨주는 걸 거절하지 못하고 받아왔지만 나에게는 전혀 필요가 없는 물건들이었다. 내가 엄마에게 주는 것들도 그렇지 않을까 짐작한다.




내가 사고자 하는 마음이 생겨서 찾아보고 갖고 싶어 하고 사게 된 물건과 누군가에게 갑작스럽게 받게 되는 물건은 전혀 다르다. 사람들은 제각기 취향도 다르고 가치관도 다르기에 각자 소유하고 있는 물건들이 다르다. 내 취향의 물건을 샀다가 필요가 없어져서 누군가에게 주려고 해도 그 물건이 상대방의 취향과 같지는 않을 가능성이 높다.




내가 많이 샀거나, 필요 없는데 산 물건을 나눠주면서 인심 쓰는 척하는 것도 상대방에게 부담이 될 수 있다. 내가 경험한 것처럼 상대방이 거절하지 못해서 억지로 물건을 받을 수도 있고, 막상 받았는데 쓸 일이 없으면 곤란하기 때문이다.




20250217_213841.jpg




애초에 물건을 사지 않아야 한다. 산다고 하면 주의를 기울여 꼭 내가 필요한 물건만 사고 남들이 필요할지를 생각하는 단계까지 갈 필요가 없다. 과하게 구입하여 누군가에게 나누어 줄 일을 만들지 않는 것이 절약이다. 그렇게 하면 돈, 시간, 에너지를 모두 아낄 수 있다.




무작정 나누어 주면서 물건을 함부로 버렸다는 죄책감에서 조금 벗어났다는 착각을 하지 말자고 스스로 다짐해 본다. 남에게 떠넘기지 말고 가지고 있는 물건을 끝까지 잘 사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만약 누군가가 내가 가지고 있는 물건에 대해 궁금해한다면 그 물건에 대해 자세히 알려줄 수는 있다. 물건을 살지 말지는 당사자가 할 일이다. 내 물건은 웬만하면 내가 사용하도록 해야겠다.



keyword
이전 15화피할 수 있다면 피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