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가가멜과 스머프

[소설] 6월의 애벌레 – 제35화

by rainon 김승진

“저기... 죄송한데. 담배 하나만 얻을 수 있을까요?” 검은 상복을 입은 젊은 여자가 담배를 달라고 하자, 머리가 희끗한 중년 남자는 슬쩍 당황한 것 같았지만, 이내 잠자코 담배 한 개비를 갑에서 뽑아 이지에게 건넸다. 이지가 담배를 물자 남자는 조심스레 불을 붙여 주고 흡연구역을 떠났다.


후... 한 모금 내뿜자 그게 신호이기라도 한 듯, 투두둑... 빗방울이 담배연기를 적시기 시작했다. 흡연구역 벤치 파고라 옆 편의점 문은 열려 있었다. 그 밖으로 노래가 흘러나왔다. 산울림이었다.


그대

떠나는 날에

비가

오는가

하늘도

이별을 우는데

눈물이
흐르지 않네


마크 트웨인이 그랬다던가? 그치지 않는 비는 없다고... 그리고 꺼지지 않는 담뱃불도 없는 것. 필터 끝이 타들어갈 무렵, 이지는 담배를 비벼 끄고 장례식장 건물로 들어섰다. 그런데 빈소 입구에 낯익은 얼굴. 뿔테 안경을 쓴 가가멜이 부의함에 봉투를 넣고 방명록 서명을 하고 있었다. 우리신문 정재호 국장. 고개를 돌려 이지를 본 그가 그녀에게 다가왔다.


“황망하시겠습니다. 먼저... 고 안명훈 선생님의 명복을 두 손 모아 빕니다. 경황이 없으시겠지만, 잠깐 시간 좀 내주실 수...”


장례식장 1층 복도 끝, 구석 자판기 앞 벤치. 자판기 커피 치고는 맛이 상당히 괜찮았다. 가가멜도 같은 생각을 한 건지, 한 모금 삼키고는 잠깐 그 맛을 음미하는 표정이었다. 1분 정도의 침묵을 깨고 가가멜이 입을 열었다.


“이런 말씀드리게 되어 죄송하지만... 경찰 수사도 별 진전이 없다고 하네요. 워낙 외진 곳이라 그 근처에는 CCTV도 없고... 날도 더운데 장갑은 물론이고 온몸 전체를 꽁꽁 싸맨 건지, 폭행범들의 지문은커녕 머리카락 한 올도 찾지 못했다는군요. 범행 직후 도주에 이용하고 버린 차량도 가짜 번호판이었고... 치밀한 놈들이더군요.” 대답 없이 이지는 듣고만 있었다.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저는 안명훈 씨에게 린치를 가한 놈들의 배후가 박봉술이라는 데 전 재산을 걸 자신이 있습니다.”


“풉!” “??? 왜... 웃으시죠?” “기자님 전 재산이 얼마나 되는데요?” “네?” “아뇨. 죄송해요. 그냥 말씀하시는 게... 표현이 좀 웃겨서요. 박봉술이랑 사이가 참 나쁘시긴 한가 봐요? 아무튼... 그래서 저를 보자고 하신 이유가 뭐죠?”


뭐 이런 여자가 다 있냐는 듯한 황당한 표정으로 이지를 물끄러미 곁눈질하며 정재호 국장은 말을 이어갔다. “혹시라도... 돌아가시기 전에, 병원에서 아버지가 안이지 씨에게 뭔가 단서가 될 말씀이라도 하셨었나 해서요. 뇌를 다치셔서 언어장애가 왔다지만... 그래도 뭐 혹시 필담이나 손짓으로라도...” “그런 거 전혀 없었어요. 눈만 껌뻑거리면서 누워 있기만 하셨는데요. 뭘...”


“흠... 그렇군요... 아무튼... 안명훈 씨를 돌아가시게 한 그 범인들과 배후는 꼭 잡아야죠. 아직 오리무중이지만... 그래도 어딘가 언젠가... 뭐가 나오기를 바랍니다.”


장례식장 건물을 나서다 말고 가가멜이 이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제 명함... 갖고 계시죠? 언제든 연락 주세요. 꼭이요.”


만화에서 가가멜은 스머프를 잡아먹으려 기를 쓰던데... 박봉술이 스머프인가 보구나. 피식 웃으며 다시 빈소로 들어서려는데... 바로 그 스머프가 빈소 입구 전광판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스머프는 파란색이 아니었다. 검은 양복을 입은 한산타임즈 편집국장 박봉술이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그대 떠나는 날에 비가 오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