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국제 사회는 전례 없는 규범적 분열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과거 80년간 세계를 지탱해온 보편적 다자주의 규범 체계가 급격히 해체되고, 그 자리를 기술 패권을 둘러싼 새로운 규범들이 채우고 있습니다. 이러한 격변 속에서 한국을 비롯한 중견국들은 치명적인 선택의 기로에 직면해 있습니다. 우리는 이 실존적 딜레마를 '규범적 멜로스(Normative Melos)'라는 개념으로 명명하고, 2026년 국제 트렌드의 핵심 패턴으로 분석합니다.
기원전 416년, 펠로폰네소스 전쟁 중이었던 아테네는 중립을 지키려던 작은 섬나라 멜로스에 선택을 강요했습니다. "강자는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약자는 겪어야 할 것을 겪는다." 아테네의 이 냉혹한 논리 앞에서 멜로스는 두 가지 선택지만을 제시받았습니다. 굴복하거나, 파멸당하거나.
2,400년이 지난 2026년, 국제 사회에서 이 고대의 비극이 다시 재현되고 있습니다. 다만 이번에는 군사력이 아닌 기술 패권을 둘러싼 규범의 충돌로 말입니다. 전통적인 다자주의 규범 체계가 붕괴하고, 미국 중심의 기술안보적 패권 규범(T-EN)과 중국 중심의 경제적 실리 규범으로 양분되는 지정경제적 분열 시대에, 중견국이 '규범적 중립'을 유지하려 할 때 필연적으로 맞닥뜨리는 실존적 외교-경제적 딜레마. 이것이 바로 규범적 멜로스입니다.
2025년 국제 규범을 둘러싼 담론을 분석한 결과, 국제 사회의 논의는 지정경제적 패권 경쟁 축과 기술-디지털 규범 재편 축으로 명확히 양분되고 있습니다. 이는 지난 80년간 세계 경제를 지탱해온 글로벌 통상 규범인 WTO 체제가 중대한 위기에 직면했음을 의미합니다.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와 관세 전쟁의 일상화는 자유무역이라는 보편적 합의를 정면으로 위반했습니다. 더 심각한 것은 이러한 위반이 일시적 일탈이 아니라, 새로운 규범 질서의 신호탄이라는 점입니다. 보편적 합의를 추구했던 기존의 다자주의는 이제 '가치 동맹'을 중심으로 하는 소다자주의(Mini-lateralism) 또는 유사입장국 연대(Like-minded Coalition) 형태로 재편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규범적 블록화는 중견국이 기댈 수 있었던 '보편적 규범 준수의 의무'라는 방파제를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모든 국가가 동일한 국제 규범을 따르면 어느 정도의 안전과 예측 가능성이 보장되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어느 규범 블록에 속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규칙이 적용되는 '규범적 중립 지대의 소멸'이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규범적 멜로스를 촉발하는 가장 강력한 동력은 '기술 주권(Technology Sovereignty)'을 둘러싼 미중의 '차가운 평화(Cold Peace)' 시대입니다. 우리는 이 새로운 규범적 압력을 테크노-실존 규범(Techno-Existential Norms, T-EN)으로 정의합니다.
T-EN은 인공지능(AI), 반도체, 바이오 등 첨단 기술 분야에서 국가의 생존(Existential)과 직결된 안보 및 주권 문제를 다루는 규범적 틀입니다. 기존 규범이 '어떻게 협력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췄다면, T-EN은 '어떻게 기술 패권 경쟁에서 살아남고, 기술을 통한 국가적 재앙을 막을 것인가'라는 실존적 질문에 대한 답을 강요합니다.
최근 미국 정부의 2026년도 국가연구개발 투자방향을 보면, 기술패권 경쟁으로 첨단기술이 경제, 군사·안보, 국가 간 동맹관계까지 영향을 미치며 국제정치의 핵심 변인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명확히 하고 있습니다. 산업정책, 외교·안보 기조와 결합한 기술·안보 블록화가 강화되면서, 독자 역량만으로는 기술경쟁력 확보가 어려워지고 있는 것입니다.
T-EN의 가장 큰 특징은 보편적 합의보다는 가치 동맹국 간의 폐쇄적인 기술 블록 형성을 통해 빠르게 구체화된다는 점입니다. 협력 규범보다는 '봉쇄 및 차단' 규범의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습니다. 2021년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발표한 '2021년 전략 경쟁법안'은 차세대 통신, AI, 양자컴퓨터, 반도체 제조 및 생명공학에서 미국이 주도가 되어야 함을 명확히 하고 있습니다.
이 T-EN 규범이 강요될 때, 중견국은 자국의 기술 생존을 위해 미국 중심의 규범 블록에의 편입 압력을 느끼게 되며, 이는 중국과의 경제적 실리를 포기해야 하는 멜로스적 선택을 강요받는 구조를 만듭니다.
2025년 뉴스 빅데이터의 감성 분석 결과는 규범적 멜로스 시대에 나타나는 중견국 사회의 양극화된 인식을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한편으로는 '안정(Stability)', '혁신(Innovation)', '안전(Safety)', '협력(Cooperation)' 등의 긍정 정서가 높은 빈도로 관찰됩니다. 이는 정책 당국과 사회가 국제 규범 재편을 통해 경제적 안정성을 확보하고 기술 혁신을 보호하려는 이상적인 목표를 반영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갈등(Conflict)', '위기(Crisis)', '불안(Anxiety)', '피해(Damage)', '비판(Criticism)' 등의 부정어가 상위권을 차지합니다. 이는 규범 재편 과정에서 발생하는 현실적인 마찰과 불확실성에 대한 사회 전반의 우려를 나타냅니다.
인사이트: 규범적 멜로스 시대의 담론은 '안정'이라는 정책적 목표와 '불안'이라는 사회적 현실이 대립하는 구조입니다. 중견국은 국제 규범이 '불안정한 세계 질서 속에서 어떻게 안보와 경제적 이익을 확보하고 혁신을 지킬 것인가'에 대한 긴장감 넘치는 이중적 담론 속에서 헤매고 있습니다.
규범적 멜로스는 국가들이 생존을 위해 취하는 외교·통상 전략인 '전략적 규범 선별주의(Strategic Norm Selectivism, SNR)'를 통해 현실화됩니다.
SNR는 국가, 특히 중견국이나 주요 행위자들이 자국의 국가 이익 극대화를 위해 필요한 규범만을 선택적으로 수용, 거부 또는 재정의하는 외교·통상 전략입니다. 이 전략의 핵심은 규범을 다음 두 가지 상충되는 잣대로 동시에 평가하는 데 있습니다.
첫째, 안보적 동맹 가치(Security Alliance Value): 미국 중심의 T-EN(기술안보 규범) 블록에 참여함으로써 얻는 '안전 프리미엄'입니다. 이는 첨단 기술에 대한 접근권, 기술 동맹국으로서의 지위, 미래 안보 위협으로부터의 보호를 의미합니다.
둘째, 경제적 실리(Economic Practicality): 중국 중심의 경제 규범을 수용함으로써 얻는 '단기적 경제 이익'입니다. 이는 거대한 중국 시장에 대한 접근성, 공급망의 효율성, 즉각적인 무역 이익을 포함합니다.
이러한 선별적 접근은 국제 규범을 '준수해야 할 질서'가 아닌, 국익을 위한 '이용해야 할 전략적 도구'로 격하시킵니다. 그 결과, 중견국들은 마치 저글링을 하듯 두 개의 상반된 규범 체계를 오가며 '이중적 적응(Dual Adaptation)'을 시도하게 됩니다.
2025년 트럼프 행정부의 '계산의 시간(Time to Calculate)' 요구는 이러한 멜로스적 압박의 전형적인 예시입니다. 이는 한국과 같은 중견국에 대해 비용 청구 및 외교적 요구에 대한 전략적 대응 방안 마련을 압박하며, 국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다자·양자 전략의 병행이라는 실용주의적 선택지를 강요했습니다.
그러나 전략적 규범 선별주의가 국제적으로 확산될수록, '규범적 중립'을 유지할 수 있는 공간은 구조적으로 사라지게 됩니다. 중견국은 기술 동맹을 통한 '멜로스의 비극' 회피를 강조받게 되며, 이는 자율적인 외교 전략 수립에 구조적인 어려움을 초래합니다.
이러한 상황은 국내 사회에서도 '친(親) 동맹 규범' 대 '친(親) 실리 규범' 간의 정책적 갈등과 사회적 비판으로 표출되며, 규범적 피로감을 가중시키는 요인이 됩니다.
규범적 멜로스 패턴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중견국이 직면한 규범적 멜로스 위험을 정량화하는 경제학적 모델을 제시합니다. 이 모델은 중견국이 '전략적 규범 선별주의'를 수행할 때 발생하는 순이익(Net Benefit)과 위험을 분석하며, '경제 안보의 기업 경영 핵심화'라는 시대적 변화를 반영합니다.
중견국의 순 규범 효용(Net Normative Utility)은 다음과 같이 표현할 수 있습니다:
순 규범 효용 = (미국-T-EN 이익 - 비용) + (중국-레알경제 이익 - 비용) - 규범적 멜로스 위험(NMD)
여기서 각 변수는 다음을 의미합니다:
미국-T-EN 블록 준수의 이익: 안전 프리미엄 및 기술 주권 확보 효과. 미국 중심의 기술 동맹에 참여함으로써 얻는 첨단 기술 접근권, 반도체 공급망 내 안정적 지위, 미래 기술 표준 설정 참여 기회 등이 포함됩니다.
미국-T-EN 블록 준수의 비용: 공급망 이중화 및 재편 비용, 대중국 시장 접근성 상실 비용. 실제로 한국 반도체 기업들이 미국의 대중 수출 규제를 따르면서 발생하는 매출 감소와 공급망 재편 투자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중국-레알 경제 규범 수용의 이익: 중국 시장 유지 및 단기적 무역 이익. 중국은 한국의 최대 무역 상대국으로, 이 시장에 대한 접근성 유지는 즉각적인 경제적 이익을 가져옵니다.
중국-레알 경제 규범 수용의 비용: 미국 T-EN 블록으로부터의 제재 위험 및 기술 이전 제한 리스크. 미국의 '봉쇄전(Containment War)' 논리에 따라, 중국과의 과도한 기술 협력은 미국으로부터의 제재 위험을 높입니다.
규범적 멜로스 위험 지수(NMD)는 다음과 같이 계산됩니다:
NMD = k × (G2 규범 격차 / 기술안보적 탄력성) × 중립 추구 강도
시스템 불확실성 상수(k): 트럼프 재집권 가능성 및 글로벌 관세 전쟁 예고 등 국제 질서의 변동성을 나타냅니다. 세계화의 종언과 지경학적 분절화는 이 불확실성을 극대화하고 있습니다.
G2 규범 격차: 미국 T-EN 규범과 중국 레알-경제 규범 간의 상충 정도입니다. 예를 들어, 미국의 기술 수출 통제 요구와 중국의 상호 호혜 무역 요구는 근본적으로 양립할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기술안보적 탄력성: 핵심 기술의 '기술 주권' 확보 정도와 국내 리스크 거버넌스 수준입니다. 이 변수가 분모에 위치하여, 탄력성이 높을수록 위험이 감소합니다. 한국의 반도체 기술력이나 배터리 기술 같은 독자적 강점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중립 추구 강도: 규범적 중립 지대가 소멸함에도 불구하고 중립을 고집하는 정도입니다. 역설적으로, 중립을 강하게 추구할수록 위험이 증가합니다.
이 공식은 중견국이 G2 규범 격차가 크고 시스템 불확실성이 높은 시대에, 자국의 기술안보적 탄력성이 낮으면서도 규범적 중립을 고집할수록 멜로스 위험이 기하급수적으로 커짐을 보여줍니다.
이는 비용을 통제할 수 없는 외부 요인(k, G2 규범 격차)에 의해 결정되는 '운명론적 압박'으로 작용합니다. 결국 중견국은 순 규범 효용을 최대화하기 위해 비용이 높은 '기술 동맹'을 울며 겨자 먹기로 선택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실제로 미중 기술패권 경쟁 연구에 따르면, 중견국들이 '양자택일의 압력'에 직면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중일관계가 보여주듯, 상대국이 필요로 하는 것을 갖고 있다면 국익 실현을 위한 자율적 공간 확보가 가능합니다. 여기서 '상대국이 필요로 하는 것'이란 바로 '기술력'을 말합니다.
2026년에는 T-EN 블록의 완성이 더욱 가속화될 것입니다. 미국, EU, 일본 등 우방국들은 AI 거버넌스, 핵심 기술 공급망 등에서 테크노-실존 규범(T-EN)을 사실상의 국제 표준으로 완성해 나갈 것이며, 이는 기술 분야의 '동맹 내 규범'과 '비동맹 간 규범'이 명확히 분리되는 규범적 이중 구조를 확립할 것입니다.
한국 사회는 이러한 압박을 '규범적 피로감 속에서의 적응'으로 수용하게 될 것입니다. 미국의 T-EN은 생존을 위한 필수 규범으로 인식하고 수용하는 한편, 중국과의 경제 관계는 '상호 이익'을 확보하기 위한 선별적 통상 규범을 적용하는 이중적 적응(Dual Adaptation)을 일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일 것입니다.
또한 전통적 군사 안보를 넘어 경제 안보, 기술 안보, 사이버 안보가 모두 국가 안보의 핵심 영역으로 자리 잡으면서, 정부, 기업, 개인 모두 '안보 비용'을 필수적으로 지출해야 하는 사회적 변화를 요구받을 것입니다.
규범적 멜로스의 운명에서 벗어나기 위한 유일한 길은 규범을 수동적으로 수용하는 국가(Norm Taker)가 아닌, 규범을 주도하는 국가(Norm Setter)로의 변신입니다. 전통적 규범의 붕괴를 '규범적 공백'이 아닌 '규범 재창조의 기회'로 인식해야 합니다.
다자 규범의 '틈새 주도': UN, WTO 같은 전통적 다자 기구의 개혁 가능성이 낮음을 인정하고, 대신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나 AI 거버넌스와 같은 새로운 소다자주의적 규범 설정의 초기 단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규범적 이니셔티브'를 확보해야 합니다.
중견국 간의 규범적 연대(Normative Solidarity): 디지털 통상 및 데이터 주권 영역에서 중견국 간의 연대를 주도함으로써, '전략적 규범 선별주의'의 부정적 영향을 완충하고 '규범 개선' 외교의 지평을 확대해야 합니다. 이는 규범적 압력에 대한 협상력(Bargaining Power)* 높이는 유일한 현실적 대안입니다.
중견국 외교 연구에 따르면, 미중 기술패권 경쟁 시대 한국의 전략은 다양한 정책들을 유기적으로 또 중첩적으로 연계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네트워크 세계정치 이론의 관점에서 볼 때, 중견국은 구조적 공백을 활용하여 위치권력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규범적 멜로스 위험 지수(NMD)를 낮추기 위한 가장 중요한 변수는 분모에 위치한 '기술안보적 탄력성(T-EN Resilience)'입니다. 이는 외부의 압력을 흡수하고 완충할 수 있는 국가의 내적 역량입니다.
기술 주권의 제도적 보장: 국가 AI 전략을 군사·안보를 포함한 모든 영역에서 AI G3 국가 도약을 실현하는 방향으로 전면 재설계하고, 핵심 기술의 '기술 주권'을 제도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전담 조직 및 법적 체계를 혁신적으로 마련해야 합니다.
리스크 거버넌스 구축: AI의 오남용(딥페이크, 자율살상무기)과 같은 기술 리스크에 대비하여, 윤리적 규범과 법적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는 선제적인 국내 규범을 마련해야 합니다. 이는 국제 규범을 수동적으로 따르는 것을 넘어, 국제 사회에 모범적인 모델을 제시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실제로 미중 기술패권 경쟁과 한국 반도체 산업 동학 연구는, 한국이 기술혁신 역량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유지해야만 타국으로부터 존중받을 수 있고 타국과의 협력 기회도 존재하는 시대를 맞이했음을 지적합니다.
규범적 멜로스는 국가 수준뿐만 아니라 사회 내부에도 '솔로베이션 격차'를 심화시킬 수 있습니다. 자본력, 학습 능력, 디지털 리터러시가 높은 개인과 기업은 규범적 변화에 빠르게 적응하여 '안전한 적응'을 달성하는 반면, 그렇지 못한 취약 계층은 '적응 위험' 속에 방치되어 사회적 격차가 정서적, 생존적 격차로까지 비대칭적으로 확대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정부는 규범 변화에 따른 산업 재편 과정에서 취약 계층과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고, 디지털 교육과 기술 전환 프로그램을 통해 모든 경제 주체가 새로운 규범 질서에 적응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규범적 멜로스는 2026년 국제 질서의 가장 냉혹한 패턴입니다. 이는 중견국에게 안보적 가치와 경제적 이익 중 하나를 선택하거나, 혹은 둘 다를 잃을 위험을 강요하는 실존적 딜레마입니다. 전통적 다자주의의 방패가 사라진 지금, 규범적 멜로스의 위험 지수(NMD)를 낮추고 순 규범 효용을 극대화하는 길은 명확합니다.
첫째, 기술안보적 탄력성(T-EN Resilience) 강화: 외부 압력에 휘둘리지 않을 만큼의 '기술 주권'을 내재화해야 합니다. 이는 단순히 기술 개발에 투자하는 것을 넘어, 핵심 기술에 대한 독자적 확보와 제도적 보장을 의미합니다.
둘째, 능동적 규범 주도국(Proactive Norm-Setting State) 전환: 규범적 중립이라는 환상을 버리고, 소다자적 규범 설정에 참여하여 규범적 이니셔티브를 확보해야 합니다. 기술과 국제정치 연구가 지적하듯, 미중 기술 패권 경쟁으로 인한 불확실성에 대비하는 한국 대응 전략의 핵심은 다양한 정책들을 유기적으로 연계하는 것입니다.
셋째, 중견국 연대 강화: 유사한 처지의 중견국들과 규범적 연대를 형성하여 협상력을 높여야 합니다. 메콩 지역, 아세안, 중남미 등 다양한 중견국들과의 협력을 통해 미중 양국에 대한 대응력을 높일 수 있습니다.
기원전 416년, 멜로스는 중립을 고집했고 결국 파멸했습니다. 하지만 2026년의 중견국은 멜로스와 다릅니다. 우리에게는 기술력이라는 무기가 있고, 연대라는 전략이 있으며, 능동적 규범 주도라는 새로운 길이 있습니다.
정부, 기업, 시민 사회 모두가 '안보=생존'이라는 실존적 명제를 내재화하고, 기술 안보적 탄력성을 확보하기 위한 전방위적 노력을 경주할 때, 대한민국은 불확실한 2026년 국제 질서의 파고를 넘어설 수 있는 국가적 생존 전략을 완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규범적 멜로스는 단순히 외교적 딜레마가 아니라,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국제 사회를 어떻게 재구성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우리에게 던지고 있습니다. 이 트렌드를 이해하지 않고서는 2026년의 국제정치, 안보, 산업 동향을 제대로 예측할 수 없으며, 더 나아가 우리 사회의 미래를 설계할 수 없습니다.
각자의 국익을 추구하며 규범의 갈림길에 선 국가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더 강한 힘만이 아니라, 때로는 함께 규범을 만들 수 있는 동료, 그리고 위기에 처했을 때 의지할 수 있는 연대입니다. 규범적 멜로스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이 균형을 찾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핵심 용어 정리
규범적 멜로스(Normative Melos): 전통적 다자주의 규범 체계가 붕괴하고 기술안보적 패권 규범(T-EN)과 레알-경제적 실리 규범으로 양분되는 지정경제적 분열 시대에, 중견국이 '규범적 중립'을 유지하려 할 때 필연적으로 맞닥뜨리는 실존적 외교-경제적 딜레마
테크노-실존 규범(T-EN, Techno-Existential Norms): 인공지능, 반도체, 바이오 등 첨단 기술 분야에서 국가의 생존과 직결된 안보 및 주권 문제를 다루는 규범적 틀
전략적 규범 선별주의(SNR, Strategic Norm Selectivism): 국가가 자국의 국가 이익 극대화를 위해 필요한 규범만을 선택적으로 수용, 거부 또는 재정의하는 외교·통상 전략
규범적 멜로스 위험 지수(NMD, Normative Melos Disaster Index): 규범적 중립 지대의 소멸로 인해 발생하는 자율 외교 전략 수립의 구조적 어려움과 예측 불가능한 규제 리스크의 총합을 정량화한 지수
기술안보적 탄력성(T-EN Resilience): 핵심 기술의 '기술 주권' 확보 정도와 국내 리스크 거버넌스 수준. 외부 압력을 흡수하고 완충할 수 있는 국가의 내적 역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