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 창으로 본 불가리아 조금 후면 도착한다는 기장의 안내와 함께 눈앞에 펼쳐지는 전경...
붉은색 지붕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동화 같은 마을,
빽빽한 나무들과 푸른 녹지가 펼쳐져 있는 전원풍경.
비행기 창을 통해 보고 있는 하늘 아래 풍경은 우리가 불가리아(Bulgaria)에 도착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신호이기도 하다.
설렘과 흥분 그리고 약간의 긴장과 두려움..
여행을 시작할 때마다 항상 느끼는 감정들이다.
잠시 눈을 감고 약 27일간의 여행을 시작하는 나의 마음을 다시 그리고 굳건히 다져본다.
사실 불가리아는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는 여행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에서 시판되고 있는 유산균 음료 중 이 나라의 이름과 비슷한 음료가 있어 불가리아라는 나라의 이름에 익숙할 뿐, 널리 알려진 도시도 특별히 인기가 있는 그 무엇도 나에겐 아직 잘 알려진 게 없는 나라이다. 그저 동유럽 발칸에 위치한 나라로 알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불가리아는 언제부터인가 나에게는 꼭 한번 가보고 싶은 나라 중 하나가 되고 있었다.
내가 고등학교 수업 시간에 불가리아의 수도가 소피아(Sofia)라는 걸 알게 되면서 도시의 이름이 무척 아름답고 낭만적이라고 생각했었고 우습지만 나는 그 이유만으로 불가리아는 분명히 신비스럽고 아름다운 나라일 거라고 마음속에 계속 심어 두고 있었다.
그러다가 몇 년 전 조지아(Georgia, 그루지아)를 여행하면서 조지아의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문화에 매료되었고 흑해를 두고 마주 보고 있는 불가리아도 우리를 이끄는 매력이 있을 거라 기대하며 언젠가 꼭 방문하리라 다짐했던 게 이번 여행의 방문지로 선택 되었던 것 같다.
특히 불가리아의 수도 소피아는 지난 10여 년 동안 지하철 건설로 인해 철거작업이 시작되었는데 고대 로마의 주요 도시였던 세르디카 (Serdica)의 약 2000여 년 전의 거리와 목욕탕, 교회 등 많은 건물들이 계속 발굴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불가리아에 대한 호기심과 기대를 더 강하게 만들었다.
고대의 유적들을 포함해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독특한 문화등 많은 매력을 품고 있는 나라 불가리아는 우리의 여행지가 되기에 충분했다.
아침 여덟 시, 불가리아 소피아 공항(Sofia Airport)에 도착했다.
자! 지금부터 시작이야!
한 나라 수도의 공항인데 작고 아담하며 조용하다.
공항 내 오가는 사람도 많지 않다.
한국의 들뜬 공항 분위기가 아닌 차분한 시골 버스 터미널과 같은 분위기에 정감이 간다.
밖으로 나오니 아침인데도 날이 몹시 따뜻하고 화창하다.
날씨 때문인지 기분이 좋아 덩달아 마음도 조금은 가벼워진다.
우리는 공항 앞에서 전철을 타고 세르디카(Serdica) 광장에 내려 숙소를 찾았다.
전철 내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다들 조용하다. 그런데 둘러보니 마스크를 쓰고 있는 사람이 우리 부부뿐이다. 특히 사람이 많은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에는 마스크를 벗으면 안 될 듯싶어 마스크를 계속 쓰고 있었는데 마스크를 쓰고 있는 우리가 혹여라도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이라도 된 듯 전철 내에서 우리를 쳐다보는 눈길이 괜스레 불편했다.
세르디카 역에서 내려 약 5분 정도 걷자 숙소는 바로 눈에 띄었고 다행히 구도심의 중심에 있어 구도심을 둘러보기에 좋은 위치였다.
주인아주머니는 우리를 반갑게 맞으며 왜 불가리아를 여행지로 선택했는지 묻는다.
아름다운 자연과 많은 유적이 있어서 선택했다고 하자 뜻모를 미소를 짓는다.
나는 그녀의 미소가 무슨 의미였는지 몰랐지만 나중에서야 그 미소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우리는 숙소에 캐리어만 들여놓고 바로 세르디카(Serdica)역 근처 법원광장으로 향했다. 이 장소에서 첫 번째 Free tour를 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늠름한 사자상이 떡하고 버티고 있는 법원 앞에 도착하니 법원 건물이 더욱 경건하고 무게있어 보인다.
사자 모양의 불가리아 지도와 불가리아의 상징이라고 알려진 사자상 그런데 생각보다 사람들이 꽤 많다.
조용한 도시일 거라 생각했는데 내 생각이 틀렸다.
가이드가 설명하길 오늘이 여름방학이 끝나고 새 학기가 시작되는 개학일이라고 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학교가 오전에 일찍 문을 닫았고 학생들은 그동안 못했던 얘기들을 나누기 위해 거리로 나와 친구들과 어울려 즐기는 중이라고 한다.
아! 그래서 이렇게 거리가 활기차구나....ㅎㅎㅎ
한국에서는 개학날 즈음되면 없던 병도 생기는 학생들이 있다고 들은 적이 있다. 대부분 아이들은 학기를 시작할 마음으로 얼굴이 굳어지고 마음도 몸도 무거워하는 아이들이 대부분인데...
한국에서도 기쁘게 친구를 만나 편한 마음으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개학날 분위기는 언제쯤 될 수 있을까?
마침내 약 두 시간동안 우리를 소피아의 명소들을 데리고 다니며 안내와 설명을 해주는 무료 투어가 시작되었다.
우리는 첫 방문지인 이곳 Sofia를 현지인의 친절한 오리엔테이션으로 시작하기로 했다.
여러 나라에서 온 관광객들이 모이다 보니 약 20명 정도의 그룹이 되었다.
자신을 ‘디노(Dino)’라고 소개한 젊은 안내자는 열심히 그리고 자세히 불가리아 소피아의 역사와 많은 유적지들 그리고 구도시 이곳저곳을 데리고 다니며 설명을 했다.
불가리아는 로마 제국 시절부터 있었던 유서가 깊은 도시라고 한다. 이 지방에 살던 켈트-트라키아계 부족 세르디족의 이름을 따서 세르디카(Serdica)라는 이름을 붙였고, 플로프디프(Plovdiv)와 더불어 주요 도시 중 하나였다.
아! 그래서 우리가 내렸던 역의 이름도 ‘세르디카’였구나.
하지만 불가리아는 1382년 오스만에 의해 점령되어 500년 가까이 오스만 제국 치하에 있었다. 따라서 소피아에서 크고 유서가 깊은 불가리아 정교회 성당들은 대부분 모스크로 개조가 되었지만 다행히 시골의 작은 성당들은 살아남았고, 이를 토대로 불가리아인들의 정체성이 계속 유지될 수 있었다.
이후 1877년 러시아와 오스만과의 전쟁에서 러시아가 승리하는 덕에 소피아(sofia)는 오스만 제국의 지배에서 벗어나게 되어 독립된 불가리아의 수도로 지정되면서 불가리아 근현대사의 중심지로 자리하게 되었다.
‘소피아(sofia)’라는 이름은 도시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인 성 소피아 성당의 이름을 따서 불린다고도 하는데 성 소피아 성당은 로마 황제 유스티니아누스 1세의 딸 소피아가 봉헌한 성당이라고 한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에 검은 드레스를 입고 팔 벌려 서있는 소피아 상, 이름의 유래야 무엇이든 나에게 ‘소피아’라는 이름은 여전히 아름답고 신비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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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어를 시작하자마자 우리가 처음 만난 교회는 옥색 지붕이 두드러진 도심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는 성당, '하기아 네델야 교회(Hagia Nedelya Church)'였다.
10세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며 석조로 기반을 다졌고 목조 구조로도 되어 있다고 한다. ‘The Holy King’이라는 별칭이 있는데 Milutin 왕의 유물이 교회에 전시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오래전 지진과 오스만의 공격 등으로 인해 무너지고 1867년에 다시 지어졌지만 1925년 불가리아 대통령 보리스 3세를 죽이려는 공산주의자들의 테러가 이 교회에서 일어났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이 죽이려고 했던 대통령은 이 장소에 몇 분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목숨을 건질 수 있게 되었고 그로 인해 오히려 무고한 150명가량의 시민이 희생되고 파괴되었던 교회이다.
이후 1933년 다시 완성되어 현재의 모습으로 남아있다고 한다.
읽어보니 참 사연도 많은 교회이다. 사연을 많이 품어 저렇게 성숙한 자태로 보이는 걸까?
뭔가 할 말이 많은 성당으로 다가온다.
안타깝게도 시간상 교회 내부에는 들어갈 수 없어 우리는 투어가 끝난 후 다시 와보기로 했다.
구시가지를 걸으며 여기저기에 자리하고 있는 건물들에 대해 설명을 한다.
대통령 궁, 의회, 법원 등의 건물들이 참 멋지게 지어졌다.
로마네스크 양식도 보이고 바로크 양식도 포함된 것 같기도 하다.
아니면 건축가들이 정성과 시간을 들여 다양한 유럽의 건축 양식들을 혼합해 공들여 지은 건축물일지도 모르겠다.
건물 보다는 '건축'이라는 단어가 더 어울릴 이 자랑거리들이 도시에서 뿜어내는 매력과 운치가 주변과 매우 잘 어울린다고 생각된다.
한마디로 ‘멋’을 아는 나라로 생각된다.
하긴, ‘멋’이라는 건 지극히 주관적이기 때문에 내가 생각하는 멋과 타인이 생각하는 멋이 매우 다르다.
30년을 함께 사는 남편과도 ‘멋’의 기준이 나와 다르니 말이다.
매력적인 대통령 궁 입구에 도착했는데 미동 없는 근위병들이 멋진 모습으로 지키고 있다.
사람들이 다가가 사진을 찍어도 눈썹 하나 꿈적 않는다.
미인이 다가가도 그럴 수 있을까?ㅎㅎ
아이러니하게도 불가리아에선 대통령의 권력과 힘이 그다지 강하지 않고 대신 총리의 권한이 막강하며 실질적인 정부수반이라고 한다.
대통령이 거주하는 궁에 카지노가 있다니~.
오늘 밤 소피아의 카지노에서 내 솜씨를 발휘해볼까? ㅎㅎㅎ
대통령 궁 앞의 근위병 도시 지하로 내려가니 로마 시대의 유적들이 여기저기서 발굴되어 역사의 흔적들이 관광객들에게 전시되고 있다. 소피아 구도심 지역은 어딜 가도 로마 시대의 유적지가 발굴되어 있다.
모자이크가 깔린 바닥들과 목욕탕, 수도시설 등 그들의 생활 모습을 그대로 보는 것 같아 경이롭기까지 했다. 심지어는 우리나라의 온돌과 같은 시설이 되어 있어 추운 겨울에 사용을 했다고 하니 몇 천 년 전의 사람들의 아이디어가 놀랍다.
좀더 깊이 들어가니 그 시대의 생활 모습과 문화들이 고스란히 전달되어 나에게 더 큰 상상과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지하로 내려갔다가 올라와 다른 지하로 내려가도 여전히 로마 유적이 발굴되어 있었다.
생각했던 것 그 이상으로 어마어마하다.
계속 발굴하다 보면 소피아 도시 전체가 고대 로마 도시 2층에 세워진 도시가 될 것 같다.
소피아인들은 지하철을 타는 역 내에도 길거리에도 어디서나 쉽게 항상 로마 시대의 삶과 함께 살고 있었다.
이어서 만난 성 페트카 지하교회(St. Petka church)는 아주 독특했다.
오스만 치하 당시, 종교적인 차별을 두지 않겠다고 약속 하고서는 실제로는 교회를 이용하는 자들을 막으며 감시하기 위해 문도 좁게 만들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또 우습게도 말을 탄 군인 이상의 높이로는 짓지 말라고 한 탓에 이렇게 반 지하로 만들어진 교회가 성 페트카 지하교회이다.
전체 높이의 반 만 지상에 나와있는 교회의 모습에 기분이 묘했다.
걷다 보니 소피아에는 오래된 나무들이 많아 도시 전체가 숲으로 쌓여 있는 것 같다.
공원과 거리에도 크고 울창한 나무들이 많아 그늘이 많고 도시의 풍경도 매우 낭만적이다.
초가을 살랑거리며 부는 바람도 기분을 좋게 만든다.
아름다운 분수가 물을 뿜어대고 색깔과 종류도 다양한 꽃들이 공원을 메우고 있다.
공원 벤치와 잔디밭엔 대화를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이 평화롭고 여유있어보인다.
평일 오후인데도 많은 사람들이 공원에서 한가롭게 시간을 즐기고 있는 이 분위기가 바로 내가 만난 소피아였다.
재밌는 나무를 발견했다.
나무가지에 천을 매달아 놓은 나무가 있는데 불가리아에서는 소원을 빌며 나무줄기 끝에 천을 매달아 놓는 풍습이 있다고 한다.
어딜 가나 소원을 비는 간절한 마음은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것 같다.
도시 한가운데 따뜻한 물이 나오는 반야공원(Banya Park)에 도착했다.
공원 한쪽에선 꿀을 팔고 있는데 가정에서 양봉을 많이 하는지 직접 가져온 꿀들로 가격도 저렴하다.
특히 불가리아는 지리적인 이유로 나라 이곳저곳에 온천 도시가 많다.
소피아에도 무료로 온천수를 받아가는 곳이 있고 온천수 때문에 많은 관광객이 불가리아를 찾는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물통을 가져와 받아가는 사람도 직접 먹는 사람도 많이 볼 수 있다.
길에 온천 수도시설을 설치해 둔 덕에 따뜻한 물이 펑펑 나온다. 나도 마셔보니 물이 따뜻하다.
따뜻한 이 물을 추운 겨울에 마셔보았더라면 훨씬 더 좋았을 것 같다.
내가 느끼기엔 특별히 느껴지는 물맛이 없는데 어떤 사람은 인상을 찡그리기도 하니 물의 독특한 맛을 느끼나 보다.
안내판을 보니 목욕, 빨래, 설거지 금지라고 쓰여있어서 보여 한참 웃었다. 도대체 누가 이런 곳에서 목욕과 빨래를 한단 말인지....
몸에 좋은 온천수를 마시고 다시 기운을 얻는다.
이어서 유명한 알렉산드르 네프스키 대성당에 도착했다.
5천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이 성당은 불가리아인들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성당이라고 하는데 그 이유는 러시아 군인들이 오스만을 상대로 싸우다가 많은 군인들이 희생을 했고 그 결과 불가리아는 오스만에서 벗어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가리아인들이 희생된 그들을 기리는 의미로 교회를 세운 것인데 성당의 명칭은 러시아의 국민적 영웅인 '알렉산드르 네프스키'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위엄 있는 네프스키 장군의 동상이 도시를 내려다보고 있다.
교회의 모습도 웅장하고 아름답기까지 한데 가을 햇살에 비치는 황금색 지붕이 더욱더 찬란하다.
도심 한가운데 넓은 면적을 차지한 교회는 무척 다부져 보이고 인상적이다.
내부가 무척 어둡다. 제단 주변 천장에 매달린 화려한 샹들리에만이 교회 내부를 밝히고 있어 샹들리에에 더 눈길이 간다.
의자가 없는 넓은 공간엔 왕이나 대주교가 앉는 의자들만 있고 양 옆엔 사자가 빈 자리를 지키고 있는 모습이다.
왠지 외로워 보인다.
아쉽게도 소피아에서는 대부분 교회 내부 촬영이 금지되어 있어 찍지 못해 못내 아쉬웠다.
두 시간 동안 소피아의 많은 곳들을 다니며 가이드의 자세한 설명과 안내 덕에 소피아의 낯선 분위기에 서서히 적응이 되어간다.
투어를 마치고 두 번째 투어까지 약 한 시간의 여유가 있어 우리는 구시가지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기로 했다.
그러던 중 크리스탈 공원(Crystal park)에서 상의를 벗은 채 두 젊은이가 엉겨 있는 모습을 보았다.
처음에는 싸움을 하나 했는데 그들의 표정과 동작이 전혀 그렇지 않다.
운동을 하나? 서로 몸을 부대끼며 장난을 하나?
둘이서 뭐 하고 있는지 물어보기라도 할걸 그랬나 보다...ㅎㅎ
오후 두 시엔 ‘발칸 바이츠(Balkan Bites)’라고 불리는 푸드 투어(Food tour)를 했다.
불가리아의 ‘발칸 바이츠(Balkan Bites)’는 세계에서 첫 번째로 선보인 무료 'food tour'라고 한다.
불가리아 음식은 과거 로마, 오스만, 러시아의 영향을 받아 다양한 음식의 종류와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이러한 음식들을 소개해주기 위해 점심식사 시간이 지난 한가한 시간에 직접 찾아가서 음식을 조금씩 맛보는 투어이다.
발칸 바이츠 투어 시작 전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있는 우리 오늘 투어에서는 다섯 개의 식당에서 일곱 가지의 음식을 먹어볼 계획이라고 했다.
10명 정도 모여 함께 투어를 시작했다.
처음 맛보는 새로운 음식을 찾아다니는 투어라 그랬을까? 왠지 제일 기대되고 흥분되는 투어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점심을 먹은 지 오래라 배가 촐촐하기도 했다. ㅎㅎ
아침 식사에 먹는 불가리아인들의 아침 수프로 알려진 타라토르로 시작해 바니차, 도넛, 와인, 그리고 불가리아의 독한 술 라끼야까지 약 2시간에 걸쳐 이루어질 음식 투어는 내 발걸음도 가볍게 했다.
제일 먼저 ‘SUPA STAR’라는 가게에 들러 아침에 먹는 전통 수프 ‘타라토르(Tarator)’를 먹어보았다.
가게에 손님이 많은지 우리는 가게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식당 입구에서 서서 먹었다.
가이드가 식당에서 가지고 나와 우리에게 한 컵씩 나누어 준다.
가이드의 설명에 따르면 타라토르는 주로 여름에 먹는 음식인데 채소(오이)와 향을 내는 로즈메리 그리고 요구르트를 혼합한 음식이라고 한다.
간단히 말해 오이에 요구르트를 넣은 차가운 요구르트 수프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다소 묽지만 맛은 진하며 시큼하고 새콤한 맛이 온몸을 전율시킨다.
수프의 건더기 오이가 씹혀 입안을 더 상큼하게 만든다.
수프의 이런 맛은 없던 밥맛도 생길 것 같다.
이어서 ‘Garafa’라는 wine shop을 방문했다.
불가리아는 와인이 유명하다고 한다.
다양하고 질 높은 와인이 많다며 설명을 해주는데 와인에 대해 많은 지식이 없는 나는 혼란스럽기만 하다.
우리에게 두 잔씩 나눠준 와인은 정말 맛있다.
샤도네이 그리고 브라찬스키 지역에서 제조된 와인을 두 잔을 마셨더니 벌써 취기가 온다. ㅎㅎ
그런데 가게를 둘러보다 한쪽에 놓여있는 이상한 기구를 발견했다.
와인 가게에 왜 이런 기구가?
마치 생맥주를 따라 마시는 수도꼭지처럼 보이는 디스펜서가 있는 것이다. 설명을 들어 보니 고객이 직접 가져온 병이나 가게에 있는 빈 병에 좋아하는 와인을 담아가는 데 사용하는 것이라고 했다.
새롭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곳이 있던가?
가이드는 이어서 ‘Zoya’라는 가게로 우리를 데려갔다. 그곳은 베지테리언(Vegetarian)을 위한 가게였는데 우리 중에 베지테리언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곳에서 우리는 바니차(Banitsa) 빵, 딸기와 코코넛을 섞은 셰이크를 먹어보았다.
바니차는 불가리안들이 주로 아침에 먹는 페이스트리의 일종이다. 빵 안에 치즈를 넣어 만드는 게 일반적이고 때로는 채소, 고기 등을 넣기도 한다고 한다.
빵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어떤 종류의 빵이던간에 맛이 있지만 이 바니차야 말로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을 내 입맛에 딱 맞는 맛이다.
한국에서 이 바니차를 만들어 본다면 치즈와 함께 약간의 김치를 넣어 만들어 보면 어떨까 싶다.
약 5분 정도 걸어 도넛 가게에 도착했다.
불가리아 전통 도넛을 만드는 가게였는데 이름은 ‘Mekitsa and coffee’ 이다.
메키차로 불리는 전통 도넛 위에 포도당 파우더를 뿌려 한 개씩 나누어 주었는데 한국에서 파는 꽈배기 도넛과 맛도 질감도 비슷했다. 설탕 대신 포도당 파우더를 뿌려주는 것 외엔 말이다.
한입 베어 물으니 방금 튀긴 도넛이라 따끈하고 너~무 부드럽다.
나는 충분히 몇 개 더 먹을 수 있었지만 상황이 그럴 수 없어 나중에 꼭 다시 들르리라 다짐하며 자리를 떴다.
결국엔 다시 이 가게를 방문하지 못했다.ㅠㅠ
발칸 바이트의 마지막 장소는 중세 분위기가 풍기는 ‘Hadjidragana Tavern’ 레스토랑을 방문했다.
식당 내부가 돌벽과 나무로 이루어진 중세 분위기의 불가리아 전통식당인데 독특한 전통 장식들로 실내를 채우고 있다.
우리는 타파스처럼 생긴 불가리아 전통음식을 세 가지를 맛볼 수 있었다.
Sharena raziadka라고 하는 애피타이저의 일종인데 빵 위에 토핑을 얹은 음식이었다. 내 입에 맞는 맛은 아니었지만 독특한 향과 매콤한 맛이 입안을 자극한다.
함께 나온 40도가 되는 전통 과일주 ‘라키야(rakija)’를 곁들이니 이 애피타이저와 안성맞춤이다.
사실 라키야는 유럽의 많은 나라에서 자기 나라가 원조라고 주장하고 있는 술이다. 그런데 불가리아에서 11세기경에 라키야를 만들기 위한 증류기의 일부가 발굴되고, 14세기경에 불가리아에서 쓰인 오래된 시에서 이미 '라키야'라는 단어가 나오는 것으로 보아, 일부 학자들은 불가리아 지역에서 탄생한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고 있다.
마침내 오후 두 시에 시작한 투어 ‘발칸 바이츠’는 오후 네 시가 되어 끝이 났다.
가게에 손님이 뜸한 한가한 시간을 이용해 전통음식을 제공할 뿐 아니라 불가리아의 역사와 음식에 대한 유래를 함께 설명해주면서 자신의 나라에 대해 홍보를 하니 관광객들은 쉽게 이해하고 음식의 맛과 독특함도 더 오래 기억할 수 있게 했던 윈윈(wim-win) 투어였다는 생각이다.
아니, 전통음식도 먹어보며 불가리아의 역사도 알고 음식도 이해할 수 있는 1석 3조의 효과가 있었던 만족스러운 투어였다.
자신의 나라 전통음식에 자신감과 자부심이 있으니 세계인들을 대상으로 음식을 대접하는 거겠지 라는 생각에 불가리아가 대단한 나라라는 생각도 든다.
우리에게 오후의 두 시간은 뿌듯함과 신선함을 얻은 행복한 시간이었다.
이제 오늘 마지막 투어는 오후 여섯 시에 시작되는 Graffiti tour였다.
소피아는 창의적인 벽화와 기발한 아이디어의 예술 작품들, 그리고 세련된 그라피티의 고향이라고 알려진 도시이다.
그라피티 투어를 통해 그 도시의 예술을 가장 가까이 직접 만나 볼 수 있는 기회라고 여겨 미리 신청을 하고 왔는데 그 시간이 기다려진다.
여섯 시가 되기까지 두 시간 정도 여유가 있어 오전에 구경을 못한 모스크와 성당, 공원들을 돌아보기도 했다.
여유 있게 돌아보니 소피아 구시가지가 눈에 제대로 들어오는 듯하다.
지하철 역 앞에서 바냐 바시 모스크(Banya Bashi Mosque)를 만났다.
소피아에서 유일한 모스크라고 가이드가 말해주었던 게 기억이 난다.
이 모스크는 터키의 유명한 건축가 시난(Koca Mimar Sinan)에 의해 설계되어 1576년에 완공되었다고 되어있다. 불가리아에서 가장 큰 이슬람 사원으로 건물은 무척 위엄 있게 보인다.
‘Banya’의 의미는 목욕탕인데 그러고 보니 이 사원이 실제로 온천 위에 지어졌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높이 솟은 첨탑이 파란 하늘과 잘 어울린다는 생각에 갑자기 오늘 돌아본 도시 소피아가 어딘지 여성스러운 도시라는 생각도 든다.
넓고 광대한 도시가 아닌 아기자기하고 오밀조밀하지만 도시 안에 나무들과 공원, 그리고 화려한 꽃들이 많아 훨씬 아름답고 아늑함이 느껴진다.
하지만 아무리 새롭고 흥미로운 장소라도 계속 돌아다니니 몸이 지친다.
예전엔 이렇지 않았었는데 나이탓인가 보다.
공원에 잠시 앉아 쉬면서 ‘지금 내가 어디에 있는지.. 왜 이곳에 머물고 있는지... 그리고 행복한가?'
아주 기본적인 생각들을 되뇌어보고 물어보게된다. 답은 항상 비슷하다.
반복되는 일상에서 벗어나 먼 나라에 머물며 새로운 환경과 상황에 몰입하고 행복해지기 위해서다.
초록에 파묻힌 교회가 유독 아름답다.
갑자기 불어오는 바람에 정신이 번쩍 들어 바로 일어나 마지막 투어에 가기위해 서둘렀다.
오후 여섯 시, 늦지 않게 소피아 동상이 있는 광장에 도착했다.
레닌 상이 철거되고 대신 세워진 소피아 동상은 불가리아의 수호성이라고도 한다.
오른손에는 승리를 상징하는 월계관을, 왼손에는 지혜를 상징하는 부엉이를 들고 있는 소피아 동상은 높이가 24m라고 했다.
그런데 너무 기대를 했을까?
도시 소피아의 상징이라고 하는 ‘소피아 동상’을 가까이에서 직접 마주하고 보니 생각하고 기대했던 만큼은 아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소피아'에 대한 막연한 환상을 가지고 지금까지 왔는데 막상 소피아상을 접하고 보니 계속 낭만을 품고 지내기엔 조금은 무리일지도 모르겠다.
기대를 하면 깨지는 게 대부분이다. 인생이란 게 뭐 그럴 수도 있는 거지....
비둘기만이 날아들어 무언가를 쪼아 먹고 있는 모습을 보니 왠지 관리가 잘 안 된 채 방치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우리 외엔 아무도 없는 쓸쓸한 광장이라 그런지 저녁 노을빛에 비친 소피아 동상은 조금 전 낮에 보았던 소피아 동상보다 더 외로워 보인다.
사람이라도 북적거리는 번화가에 서 있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라는 생각이 든다.
약속시간 여섯 시가 넘었는데도 사람이 오질 않는다. 웬일일까? 취소가 된 걸까?
비수기라서 투어에 참여한 사람이 적어 취소가 되었나 보다.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이리저리 다녀보았지만 가이드를 찾을 수 없어 하는 수 없이 우리끼리 다녀보기로 했다.
서서히 어두워지는 소피아 거리에는 곳곳에 그라피티(graffiti)가 많다.
고대 동굴의 벽화나 이집트 유적의 그림들이 그라피티(graffiti)의 원조라고 할 수 있을까?
기발한 상상이 표출된 화려한 색상의 그림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소피아의 그라피티에서 어둠과 무거움 같은 그 무언가가 느껴진다.
그럴듯한 대로나 번화가가 아닌 그리고 조금은 깔끔하지 못한 골목과 차가운 콘크리트 벽에 그려진 그림이라서 그런 걸까?
하긴, 그라피티의 출발이 사회에 반항적인 사람들과 흑인들, 그리고 소수민족들에 의해 시작되었으니 그들의 표현을 드러낼 수 있는 곳도 아니었을 테고 또한 그림 내용이 밝기만 할 수는 없겠다 싶다.
도시의 겉모습이 아닌 소피아의 속 모습을 들여다보고 있는 느낌도 든다.
가이드가 있어 설명을 덧붙여 주었더라면 그라피티는 물론 이 도시의 예술 문화를 쉽게 이해할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어 취소된 투어에 더 큰 아쉬움을 느꼈다.
저녁 식사 후 구도시 밤 산책을 나섰는데 살갗에 닿는 청량한 밤바람에 기분이 더 좋다.
거리엔 여전히 젊은이들과 관광객들로 북적거린다.
낮에 본 알렉산드르 네프스키 대성당을 다시 가보기로 했다.
오후 햇빛을 받아 찬란하게 빛이 났던 성당의 황금 돔이 밤에는 어떻게 변해 우리를 매혹시킬지 궁금해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기대가 너무 컸던 것일까?
굉음과 소음으로 가득 찬 성당 주변이 나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성당 광장엔 오토바이와 자동차를 모는 젊은이들로 가득하다. 그들이 큰소리로 떠드는 소리와 자동차들의 경적 그리고 오토바이의 굉음들로 인해 성당의 모습도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다.
왜 하필 성당 광장에서 이런 모임을 할까?
경건하게 보여야 할 성당이 오히려 어두컴컴한 구석에 방치된 건물에 불과했다.
남편이 말하길 오늘이 학교 개학이라 오랜만에 보는 반가운 친구들끼리의 모임인 것 같다고 한다.
우리는 학기가 시작되면 어렵고 힘든 학교생활의 시작에 마음이 무거울 텐데 이곳의 학생들은 친구들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무척 마음이 밝은가 보다.
행복한가? 그렇다면 다행이다 싶다.
알렉산드르 네프스키 성당을 떠나 걷던 중 하기아 소피아 성당을 마주했다.
붉은 벽돌로 된 건물이 무척 단단하고 견고해 보이는 성당이다. 내부를 보고 싶었으나 밤이라 그런지 문이 닫혀있다.
성당 뒤편에는 무명용사의 비석에 꽃들이 놓여있고 횃불이 타오르고 있다. 아마도 꺼지지 않을 불이다.
수호 성자도 늠름히 서서 이들을 보호라도 해주는 듯한데...
나도 마음으로나마 잠시 그들의 명복을 빌어본다
왠지 내 마음도 발걸음도 무겁다.
지금도 바로 가까운 나라에선 전쟁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이 있으니 말이다.
인간의 역사에는 전쟁이 빠지지 않는다.
어떤 학자가 말하길 전쟁은 자민족 중심주의가 인간의 폭력성 및 야만성과 결합될 때 나타난다고 했다.
특히 어리석은 지도자의 잘못된 선택과 욕망으로 무고한 생명들이 희생되어야 한다는 게 바로 전쟁이고 전쟁의 가장 잔혹한 면이다.
어떤 이는 전쟁이 인류 문명 발전에 긍정적 영향을 끼친 점이 있다며 옹호를 하기도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절대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지금 머무는 나라 불가리아도 수많은 전쟁을 겪고 오늘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오늘 우린 고대 로마의 유적을 쉽게 만났지만 지금의 불가리아가 이르기까지 험난한 과정이 있었음은 분명하다.
그 세월의 우여곡절을 쉽게 생각하거나 잊으면 결코 안 될 것이다.
고풍스러움과 모던함이 오밀조밀 어우러진 도시 소피아!
분위기 좋은 카페의 야외 테이블에 앉아 불가리아 와인을 마시며 어둠속으로 사라지는 소피아를 오래도록 감상해야겠다.
소피아는 로마의 추억과 함께 고혹적인 불빛과 밤안갯 속으로 점점 젖어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