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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지현 Nov 16. 2022

릴라(Rila) 산이 우리에게 남긴 것.

릴라 산의 세븐 릴라 레이크를 방문하다

어제는 릴라산에 있는 릴라 수도원을 방문했고 오늘은 릴라산에 있는 '세븐 레이크(Seven Lakes)'를 보러 릴라 산에 올라가는 날이다.

사실 불가리아를 여행지로 선택한 중요한 이유들 중 하나가 오늘 방문하는 릴라산의 세븐 레이크를 직접 보러 가는 것이었는데 높은 산 정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호수들이 한 곳에 모여있을 수 있을까 싶어 언젠가 방문하기를 희망했던 그림과 같은 멋진 장소였다.

세븐 레이크를 볼 수 있는 날은 1년 중 아주 짧은 기간이다.

11월부터 5월까지는 눈이 덮여 등산이 힘들고 한 여름엔 그늘 없는 뙤약볕 때문에 어려워 9~10월에 등반하는 걸 추천하고 있어 때맞춰 방문하기로 한 것이다.

릴라의 호수들은 해발 2,100미터에서 2,500미터 사이에 위치해 있는데 7개의 호수들이 이름을 갖고 있는데 

The Tear(눈물), The Eye(눈), The Kidney(콩팥) 등 독특한 이름들을 지닌 이 호수를 꼭 보고야 말겠다는 마음으로 우리는 불가리아를 방문했고 오늘 릴라 산으로 향했다.


하지만 별이 총총하던 어젯밤 날씨와는 달리 하늘에 구름이 많다.

숙소 주인 Peter는 점심으로 샌드위치를 싸주며 릴라 산의 날씨는 매우 변덕스럽고 위험하니까 부디 조심하라는 말을 몇 번이나 한다. 걱정해 주는 말에 진심이 느껴져 고맙다.

아쉬운 작별을 하며 우리는 마치 막중한 일을 위해 출발하듯 마음을 다부지게 먹고 출발했다.




릴라산으로 향하는 도로는 한가롭고 옹기종기 붉은 지붕이 모여 이루는 작은 마을은 한 폭의 그림을 선사했다. 

말이 끄는 수레를 타고 유유히 도로를 달리는(?) 할아버지의 모습도 참 평화롭다.



하지만 막상 릴라산 가까이 오니 넓고 평평했던 길이 몹시 구불거리고 좁은 길로 변해버렸다.

구불구불 높은 곳까지 오르니 아찔한 절벽에 안전시설도 없어 운전하기가 아주 위험하다. 하지만 절경이다. 그렇게 이십여분을 운전했을까.



드디어 릴라산 입구에 도착했다.

일반적으로 트랙킹을 하는 대다수의 등산객들은 릴라산 입구에 도착한 후 리프트를 타고 약 15분 정도 올라간 후  다시 약 5시간 정도를 걸어야 일곱 개의 호수를 모두 볼 수 있다.


하지만 이게 웬일인가?

리프트가 멈춰있고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맑고 쾌청한 날에 왜??

이유를 물어보니 정상에는 바람이 불고 있기 때문에 리프트 운행을 할 수가 없다고 한다.

바람이 잔잔해져 리프트가 운행될 때까지 마냥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다.

맙소사....



이윽고 기약 없는 기다림에 지쳤는지 몇몇 사람들이 리프트를 타는 대신 걸어 오르기 시작한다.

하지만 베이스캠프까지 오르려면 약 2시간 정도를 걸어 올라가야 한다.

리프트가 움직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열심히 쳐다보며 삼십여분을 기다려보지만 리프트는 움직일 기미가 없다.

기다려야 하나? 아니면 걸어 올라가야 하나?

우리도 선택을 해야 했다.

결국 우리는 기다림 대신 걸어 오르는 방법을 선택했다.

과연 이 선택이 잘 된 것이었을까?




베이스캠프까지 걸어 오르는 동안 다리는 무거워지고 햇빛은 따갑고 걷기가 힘들다. 그러다 보니 자꾸 묻게 된다. 베이스캠프까지 얼마나 더 가야 하는지...

사람마다 대답이 다 다르다.

거의 다 왔다고 하는 사람, 조금만 더 가면 된다고 하는 사람, 한참 더 가야 한다는 사람...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이렇게 힘을 들여 올라간 후에도 다시 또 네댓 시간을 트랙킹 해야 하는데 과연 우리의 체력이 호수를 볼 수 있을 정도로 단련이 되었을지 큰 걱정이 앞서기 시작했다.

우리 부부는 걷는 걸 좋아하지만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산을 걸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미 시작한 여정이니 다시 돌아갈 수 없어 계속 오르기로 했다.

고생 끝에 만나는 호수들은 더 아름답게 느껴질 거라며 스스로 긍정적인 생각으로 합리화를 해보지만 마음 한 구석에선 왜 릴라 산은 우리에게 시련을 주고 있나 하는 섭섭함(?)도 솟아오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문제는 이제부터였다.

점점 베이스캠프에 다가와가는데 맑고 화창하던 날씨가 높은 곳에 도착하니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오더니 바람이 불고 거센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지금까지 따가운 햇빛을 가리기 위해 모자를 썼는데 갑자기 이렇게 날씨가 변하다니...

이제는 비옷을 꺼내 입어야 할 형편이다.

당황스러워진다.

결국 설마 하며 가져간 우비를 꺼내 입고 걸어야 했다.

마침내 우리는 베이스캠프에 도착했지만 검은 구름이 온통 하늘을 뒤덮어 주변은 어두워지고 게다가 바람과 비는 왜 이리 점점 거세지는 건지 세차게 내 얼굴을 때리는 비와 바람이 참 밉기도 했다.


릴라 산 입구에서부터 걸어오르자는 우리의 선택은 더 신중했어야 했다.

바람이 불어 리프트가 움직이지 않을 날씨가 될 상황이면 높은 곳의 날씨를 주의 깊게 생각하고 살폈어야 했던 것이다.

하지만 어쩌랴.... ㅠㅠ


베이스캠프의 좁은 공간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모여 날씨가 개길 기다리는지 아니면 내려가는 리프트가 움직이는 걸 기다리는지 밖으로 나갈 생각 없이 웅성거리고 있다.  

하긴 이런 날씨에 어디로 간단 말인가!

모두들 당황한 기색들이 역력하다.

좁고 습한 데다가 점점 사람들이 많아져 더 이상 실내에서 기다리기 힘들어 우리는 밖으로 나와야 했지만 마땅히 비를 피할 곳도 없다.

그렇다고 이런 상황에 호수를 보러 먼 길을 걸어가는 건 더 위험한 일이었다. 막상 간다고 해도 산 중턱까지 구름이 내려와 있는 이 날씨에 호수를 제대로 볼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하늘을 올려다보지만 원망스럽게도 전혀 갤 날씨가 아니다.

이런 날씨엔 리프트도 움직일 리 없다.


날씨가 좋아지길 기다려야 하나? 타고 내려갈 리프트가 움직일 때까지 기다릴까? 아니면 걸어 올라온 길을 다시 걸어 내려갈까?

결국 여기에서도 마냥 기다릴 수 없어 우리는 다시 선택해야 했다.

자꾸 원치 않는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이 연달아 발생한 탓에 머리가 아프고 몸까지 욱신거리는 것 같다.

결국 우리는 비를 멈추기 기다리는 것보다 다시 걸어내려가는 걸 선택했다. 이것 또한 최선의 선택이었을까?


끝까지 릴라는 호수를 감추고 우리에게 그 자태를 내어 보여주지 않았다.

 너무 속상했다

베이스캠프에 설치된 호수 사진


날씨가 우리의 계획을 방해할 줄은 전혀 예상을 못했다.

릴라의 날씨는 무척 변덕스러우니 조심하라고 했던 Peter말이 무슨 뜻인지 이제야 이해가 갔다.

좀 더 새겨들을걸....

바람과 비를 온몸으로 맞아가며 약 20여분을 걸어 내려왔을까?

릴라 산의 베이스 캠프

허걱!

이게 웬일인가?

꼼짝 않고 멈춰있던 리프트가 사람을 태우고 내려오는 것이다. 이럴 수가....

우리가 했던 모든 선택들이 오늘처럼 한마디로 '꽝'이 된 적이 있었던가!

릴라는 끝까지 우리 편이 아니었다.

원망스럽기조차 하다.


다시 올라가 리프트를 타고 내려와야 할까? 아니면 계속 비와 함께 걸어 내려가야 할까?

아~~!  또 선택을 해야 했다.

이미 내 신발에는 물이 들어와 발이 불었고 옷은 비에 젖어 내 몸을 더 차갑게 만들고 육체는 너덜거리고 정신은 혼이 나갈 즈음 거센 비쯤이야 방해가 안된다는 듯 비를 맞으며 아래에서 걸어 올라오는 등산객들이 보인다.

그들은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우비만 걸친 채 이 험한 산길을 심지어 맨발로 걷고 있었다.

그렇게 씩씩하게 걸어 올라오는 그들을 보니 투덜거렸던 내 마음과 표정이 부끄러워졌다.

이미 많이 내려왔으니 그냥 계속 걸어 내려가자는 남편의 말을 따라 결국 터덜터덜 빗속, 진흙탕 속을 헤치며 걸어 내려와야 했다.


많은 여행을 하면서 이제는 적응이 될 때도 되었건만 예기치 못한 상황에 맞닥뜨리고 기대와 계획이 어긋나는 순간 나의 얄팍한 감성들이 지나치게 분출할 때가 있다.

더구나 인간의 능력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자연의 변화에 순응해야 했는데 잠시 때때로 이성이 마비되는 순간들이 있다.

오늘도 그랬나 보다.  반성한다.




약 네 시간 동안을 변화무쌍한 자연의 솜씨에 휘둘리며 내려오니 마음도 몸도 다 기진맥진이다.

머리도 무겁고 만신창이가 되어 지친 몸을 따뜻한 곳에서 쉬게 하고 싶은 마음만 간절하다.

우리는 숙소로 향하는 길에 있는 온천 마을(사파레바반야 Sapareva Banya)에 들러 온천욕을 하기로 했다.

마을 여기저기에 온천 수영장이 많이 보였는데 우리는 제일 큰 곳으로 향했다.

가족들이 함께 와서 온천 수영을 즐기고 있는데 딸에게 수영을 가르치고 있는 아빠도 있다. 

날이 흐리고 보슬비가 오니 실외 수영장을 이용하는 사람은 없는 듯하다. 

조용하고 적막한 수영장에 오니 오히려 마음이 편안하다.

뜨끈한 물에 몸을 담그고 나니 이제야 살 것 같다.

왠지 머리는 개운치 않다.

따뜻한 물에 몸을 의지한 채 조용히 생각에 잠겨본다.

우리가 불가리아에 온 큰 목적 중 하나가 릴라 산의 일곱 개의 호수를 보는 것이었는데 이제 그 계획이 불가능하게 되어 무척 마음이 아프고 복잡하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내가 보겠다고 해서 반드시 볼 수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고 계획을 세웠다고 해서 그 계획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는 건 더욱 아니다.

계획은 변경될 수 있기 때문에 계획이다.

왜 내가 세운 계획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고만 생각했을까?

더구나 한낱 인간이 거대한 자연을 대상으로 세운 계획을 말이다.

지나친 욕심이었다.


우리는 자연의 힘을 그리고 릴라를 너무 가볍게 생각했다.


오늘도 또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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