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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지현 Nov 24. 2022

사람도 풍경도 아름다운 마을, 파자르드직!

불가리아, 파자르드직(Pazardzik) 마을에서의 아침 산책

아침 일찍 눈이 떠졌다.

비록 내 침실의 포근한 침대는 아니지만 모처럼 단잠을 자고 일어난 기분이다.

어제는 밤늦게까지 세찬 비가 내렸는데 오늘은 해가 환하게 떠있는 깨끗하고 맑은 날씨가 우리를 반긴다.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사실 여행을 할 때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날씨이다.

날씨의 변화를 우리가 좌지우지 못하는 이상 순순히 받아들여야 하지만 그래도 비가 오는 날 보다는 비가 오지 않는 날이 여행을 하는 우리 부부에게는 훨씬 도움이 된다.

그래서 그런지 이른 아침부터 마음이 가벼워진다.



아침이 되어서야 우리가 묵었던 숙소를 천천히 둘러본다.

깔끔하게 잘 정돈된 아늑한 거실, 작지만 부족함 없이 모든 시설이 갖추어진 편리한 주방, 청결하고 따뜻한 욕실...

전체적인 분위기가 포근하고 아담한 살림집이다. 

에어비앤비를 통해 예약한 이 숙소는 다른 숙소에 비해 자세한 사진도, 설명도 없었고 단지 전에 머물렀던 사람들의 평이 좋아 믿고 선택했는데 최고의 선택이었다.


거실엔 아름다운 천이 깔린 테이블 위에 이름 모를 꽃을 꽂아둔 꽃병과 함께 꿀과 라키아가 놓여 있고 주방에 들어가 보니 냉장고 안에는 포도와 사과가 가득 그리고 커피머신과 원두 캡슐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심지어는 반짇고리는 물론 여성을 위한 용품까지 준비해 놓은 주인의 꼼꼼함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숙박객을 배려하는 주인의 진심이 느껴져 기분이 좋아진다.

며칠이라도 오래 머물고 싶은 숙소다.

숙소의 주방 모습

달콤 새콤한 포도와 사과를 먹고 커피를 내려 마시려다 대신 일찍 숙소를 나서기로 했다.

햇살 좋은 아름다운 마을 거리를 산책하며 청명한 아침 공기를 직접 느껴보고 커피 냄새 풍기는 카페에 들어가 향 진한 커피를 마시고 싶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머물고 있는 마을의 이름은 ‘파자르드직(pazardzhik)’이다.

원래 'pazar'에서 유래했다고 하는데 bazar라는 시장의 의미를 지니고도 있는 이 도시의 옛 이름은 1485년 타타르족이 시장을 건설하면서 만들어진 이름으로  '작은 타타르 시장'으로 불린 마을이었다고 한다.


읽기도 쓰기도 어려운 마을이지만 아름답고 조용한 곳이다.

인구가 8만 명이 채 되지 않은 조그마한 마을로 깨끗한 거리와 고풍스런 집들이 강한 인상을 준다.

이른 아침에 나온 거리는 매우 조용하다.

마을 거리에 오래된 나무가 많아 마치 도시가 숲 안에 있는 느낌이 들 정도다.



기분 좋은 거리를 약 3~4분 걸었을까 확 트인 광장이 나온다.

통일 광장이라는 이름이 붙은 넓은 광장이다.

광장 중앙엔 분수가 솟구쳐 오르고 주변에는 나무들과 알록달록한 색들의 꽃들도 눈에 띈다.

이곳에는 다양한 문화 공간들이 들어서 있고 주변엔 나무와 꽃들과 함께 조각상들도 많이 보여 마치 공원에 놀러 온 기분도 느낀다.

이른 시간인데 광장에는 청소를 하고 계신 분들이 계신다.


둘러보는데 알록달록한 색으로 외관을 덮고 있는 건물이 가장 눈에 먼저 들어온다.

'청소년 센터'라고 하는 건물이다.

분홍과 파랑, 노란색들로 예쁘게 칠을 한 걸 보니 어린 학생들과 청소년들이 모여 다양한 활동을 하는 곳처럼 보인다.

청소년 센터


광장 정면에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모은 기금으로 지어진 극장이라고 하는 '드라마 및 인형극장(Konstantin Velichkov)'이 있다.

드라마 및 인형극장(Konstantin Velichkov)

문은 굳게 닫혀있지만 벽과 창문에 붙어 있는 다양한 포스터들로 이 극장에서 다양한 연극 공연과 음악회가 이루어지고 있는 걸 알 수 있었다.

포스터를 훑어보니 '로미오와 줄리엣'도 공연 예정이 되어 있나 보다.


더욱 내 눈길을 끄는 건 군데군데 설치되어 있는 조각상들이다.

독특한 형상들로 만들어진 동상들은 광장들을 산책하며 흥미를 가질 중요한 소재 중 하나임에 틀림없다.

조그마한 마을이지만 훌륭한 시설이 완비된 공연장은 물론 다양한 공연들이 가능하도록 준비되어 있는 걸 보니 마을 사람들의 예술과 문화에 대한 애착심을 느낄 수 었어 마음이 좋다.

마을의 수준이 업그레이드되는 듯...ㅎㅎ



광장 한편에 아름답고 고풍스러운 시계탑 건물이 보인다.

소박한 건물이지만 마을과 잘 어울리는 아름다운 건물이다.

이곳은 과거에 우체국이었는데 지금은 운영되지 않고 대신 자그마한 카페가 들어서 있다.

당연히 들어가 봐야지...

그윽한(?) 커피 냄새가 풍기는 자그마한 카페가 운영 중이었다.

아름다운 두 여성이 어서 오라고 웃는 얼굴로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니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다.

카페 내부에 특별한 인테리어를 해 놓은 것은 아니지만 깨끗하고 아늑한 분위기의 카페다. 


근데 테이블에 있는 메뉴를 보니 영어는 없고 모두 불가리아어로 쓰여있다. 

이럴 땐 우리에게 있는 비장의 무기...

'구글 렌즈(Google lens)'가 있다.

언어의 종류에 상관없이 렌즈만 가져다 대면 저절로 해석이 되고 읽어주는 아주 편리한 도우미가 우리에게 있다. 불가리아어를 읽는 것 까지는 공부를 했지만 단어의 뜻을 아는 건 무리였던 우리에게 구글 렌즈는 우리 여행에 필수품이었다.

따뜻한 라테와 Tea를 주문해 마시니 쌀쌀한 아침 날씨에 움츠려져 있던 내 몸이 서서히 펴진다.

기분이 좋은 또 하나의 사실은 커피와 tea값이 아주 저렴하다는 것이다.



시간이 어느 정도 흘렀을까? 

광장에는 마을 주민들이 야외에 차려진 테이블에 앉아 아침식사(?)를 한다.

마을 사람들끼리 만나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식사를 하고 커피도 마시는 아침 풍경이 여유롭다.

우리 부부도 그쪽으로 갈까 했지만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실제로 불가리아에서는 길을 다니며, 그리고 공공장소 어느 곳에서나 담배를 피우는 사람을 쉽게 볼 수 있다.

불가리아에 처음 도착해서 우리나라와는 매우 다른 상황에 많이 당황스러웠고 특히 담배연기와 냄새 때문에 무척 애를 먹었다.

하지만 이 또한 이 나라 사람들의 문화이고 생활이니 여행객이 순응해야 할 일이다.


길가에 있는 베이커리 가게에는 주민들이 빵을 사기 위해 줄을 서있다. 아마도 맛있기로 이름난 빵집인가 보다.

근처를 지나니 고소한 빵 냄새가 코를 찌른다. 나도 줄을 서서 빵을 사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광장 주변에는 불가리아에서 가장 오래된 박물관 중 하나인 '역사박물관'이 들어서 있었다.

수천 개의 다큐멘터리와 역사 기념물, 그리고 많은 그림들이 소장되어 있는 이 박물관의 건물이 의외로 현대적이다.

선사시대, 고대, 중세에 대한 수집품들과 많은 그림들은 물론 19-20세기 중반의 지역 생활에 관한 모습도 볼 수 있는 곳인데 하필 일요일에는 10시에 오픈을 한다고 하니 그 시간까지 기다릴 수 없어 외부만 둘러보고 지나야 했다.


역사박물관 입구

우리는 다시 중심가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일요일 이른 아침인 탓에 가게들이 대부분 문을 닫은 상태이다.

가게 문에 적혀있는 안내문을 읽어보니 대부분 가게를 여는 시간은 일요일 오후로 되어있다.

가뜩이나 사람도 없는 거리에 가게 문도 닫혀있다 보니 거리가 매우 썰렁하다.


재래시장에 도착했다.

이곳도 역시 집에서 가져오신 물건을 꺼내 펼쳐놓고 팔기 시작하려는 참이다.

대부분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께서 직접 키워 재배한 꿀, 과일, 채소 등을 가지고 나와서 팔고 있는데  local market과 비슷한 곳이다.

처음 보는 이름 모를 과일과 채소도 많다.

특히 꿀을 여기저기서 많이 팔고 있는 걸 볼 수 있었는데 불가리아가 유럽에서 꿀 생산량이 제일 많은 곳이라는 말이 맞나 보다.

또한 양봉 역시 그들의 삶에서 얻은 지식과 경험을 토대로 양질의 꿀을 생산하는 방식도 최고라고 들었다.

불가리아는 요구르트만 유명한 게 아니라 꿀도 최고인가 보다.ㅎㅎ

꿀 가격도 저렴해 사고 싶었지만 지금은 여행을 막 시작한 때라 가지고 다니기 어려워 꿀을 구입하는 건 포기를 해야 했다.


우리가 매장 내에 들어서자 상인들은 낯선 동양인들이 지나가는 모습에 조금은 어색해하면서도 밝게 웃으시는 얼굴로 얼마든지 사진을 찍으라는 듯 우리의 마음을 편하게 해 준다.

처음 보는 채소들과 과일들이 신기해 사진기를 가까이 가져다 대자 선뜻 사진 찍을 자세도 취해주신다.




친절한 사람들을 만나니 나니 따뜻하고 즐겁고 유쾌한 시간이 흘렀다.

어제 오후 이 마을에 도착해 숙소를 찾고 있는데 우리가 오는 걸 어떻게 알고 계셨는지 여쭤보지도 않았는데 2층으로 올라가라며 친절히 안내해주시던 마을 할머니분들

그리고 투숙객을 배려하는 꼼꼼하고 세심한 숙소 주인의 마음...

우리가 짧은 시간에 만난 모든 분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갖게 된다.


파자르드직(Pazardzhik)!

순박하고 친절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

조용하고 목가적인 마을 풍경,

그래서 편안하고 따뜻한 마을 정취.

잠시 머물다 가는 자그마한 시골이었지만 사람도 마을도 오래 기억될 아름다운 여행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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