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마을 Open Air Ethnographic Museum
카잔루크를 떠나 불가리아 북동쪽에 있는 도시 '벨리코 터르노보(Veliko Tarnovo)'를 향해 가는 길이다.
가는 길에 우리는 가브로보(Gabrovo)에서 약 8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18~19세기의 불가리아 전통 마을 'Etar'를 방문하기로 했다.
이곳은 1750년에서 1900년 사이의 불가리아, 특히 가브로보(Gabrovo) 지역의 삶과 문화, 그들의 생활 방식이 가장 잘 보존되고 있는 마을이며 주된 목적은 삶의 방식을 그대로 재현하고 보여주는 것이었다.
'Ethno Village Etar', 'Open Air Ethnographic Museum, Etar'이라고도 불리기도 하는 이곳은 2015년에 이곳의 복합단지를 'Open Air Ethnographic Museum(야외 민속 박물관 "Etar")'로 전환했다고 한다. village Etar
이 박물관의 초대 관장이었던 라자르 돈코브(Lazar Donkov)는 '고향을 떠나지 말고 옛것을 낮춰보지 말아라'라는 말을 강조하며 이 박물관을 건립했는데 얀트라(Yantra) 강 지류를 따라 karadzheyka 원시 물 방앗간, valyavitsa 방앗간 및 tepavitsa(풀링 방앗간)를 복원하면서 시작했다.
민속마을에 도착하기까지 강을 따라 한참 우리는 숲 속 길로 들어가야 했다.
박물관의 위치는 물살이 센 얀트라 강이 흐르고 울창한 나무들로 뒤덮인 거대한 산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말 그대로 깊은 계곡 속 마을이다.
주변 자연과 환경, 그리고 박물관의 외부도 모두 현재의 우리와는 동떨어진 삶을 살고 있는 장소였다.
주차장에 들어서자 의미심장한 그림이 보이는 높은 벽화가 눈앞에 서있다.
마치 '당신들은 민속 박물관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지금과는 낯선 세계, 즉 Bulgarian National Revival(불가리아 문예부흥기) 시대를 낱낱이 경험하게 될 것'이라는 박물관의 분위기를 암시하고 있었다.
박물관 입구부터 심상치 않다.
검게 그을린 오래된 나무 대문에 검은 돌이 얇게 쌓여 지붕을 이루고 있는 조그마한 입구...
거센 바람이 많이 불어 돌지붕을 쌓았을까? 가옥의 벽 역시 돌로 쌓아 다행이다.
그들의 지혜로 완성한 겹겹이 쌓인 지붕 위의 돌 무게가 더 견고해 보인다.
거친 자연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강한 재료를 사용해 만든 주택들이 어떤 위험한 상황에서도 굳건히 버텨낼 것은 분명해 보인다.
마침내 입구를 통해 안으로 들어오니 세차게 흐르는 얀트라 강이 박물관을 관통하고 있다.
내가 마치 19세기 그 당시 마을주민이 되어 거리를 걷고 있는 듯 한 느낌이다.
전통문화와 과거의 삶을 재현하는 이 장소는 과거에 살았던 불가리아인(가브로보)들의 지혜와 생활 모습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곳임을 확신했다.
박물관 전체적인 분위기와 환경이 매우 매력적이고 고혹적이다.
맨 처음 들른 가옥은 낙농업을 했던 곳이다.
우유를 신선하게 보관하고 치즈 만드는 작업을 하면서 사용했던 저장용기와 도구등이 그대로 보존, 전시되고 있었다.
신선한 우유로 치즈를 만들어 주식으로 사용했던 흔적을 볼 수 있었다.
오래전 베스트셀러였던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를 읽은 적이 있다.
내 기억이 맞는다면 책 구절 중 ‘치즈는 부지런한 자에게 주는 선물’이란 문구가 나온다.
당연히 이 책에서 말하는 '치즈'는 우리가 먹는 치즈를 언급한 건 아니었지만 단어 그대로 적용해도 무리가 없는 해석이라는 생각이다.
어느 시대이건 시간과 노력 그리고 정성을 들여야 소량의 치즈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을 돌이켜 보면, 그들에게 있어서 치즈는 ‘보물처럼 소중한 식품’이었음이 분명하다.
불가리아인들의 역사와 함께 한 치즈의 현장에 오니 새삼 더 느껴진다.
우리는 몇 년 전 한국에서 최초로 치즈를 만들었다는 곳, 전라북도 임실을 방문한 적이 있다.
유럽의 많은 나라처럼 한국은 치즈가 식생활의 주 메뉴는 아니지만 다양한 종류의 치즈와 만드는 과정, 그리고 치즈를 이용해 만든 음식 등 많은 걸 보고 배울 수 있었다.
치즈의 탄생은 정성스러운 과정과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걸 다시 한번 느꼈다.
이곳은 높은 곳에서 물이 내려와 낙차를 이용한 그 당시의 천연 세탁기, 무동력 세탁기이다.
소용돌이치는 물살이 무척 세고 양도 많으니 모든 빨래가 손쉽게 해결될 것 같다.
우리 집 자동 세탁기 못지않은 훌륭한 작품이다.
혹시 가전제품 회사 '월풀(whirlpool)'의 세탁 아이디어도 이곳에서 얻은 걸까?ㅎㅎㅎ
집집마다 계곡에서 흐르는 물을 이용해서 상수도 문제를 해결한 그들의 지혜가 놀랍고 보면 볼수록 신기하다.
'Etar'라는 마을 이름은 사실 Gabrovo 시를 가로질러 흐르는 강인 얀트라(Yantra)의 옛 이름이라고 한다. 이 이름은 박물관의 이름을 짓기 위해 선택되었는데 결국 물과 이 지역의 생활 사이의 연관성이 매우 중요함을 의미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 박물관내의 무동력 세탁기(천연)의 생생한 소리는 글 맨 하단의 동영상을 열어보세요 ^*^
조용하고 한적한 주변을 걸어 다니니 18~19세기의 진한 향기에 취해 마치 내가 그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 같은 느낌을 받는다.
돌바닥과 돌집, 돌기둥, 돌지붕...
반들반들 윤기가 나는 차가운 돌이지만 주변의 많은 고목들과 나무다리가 어울려 분위기는 포근하고 정겹다.
걷는 내내 박물관 주변을 흐르는 강물소리가 계속 우리와 함께하니 계곡을 걷고 있는 느낌도 든다.
바로 맞은편에는 예스런 종탑(시계탑)이 우뚝 있다.
15분마다 울리는지 지금이 오후 1시 15분인데도 종이 울린다.
은은하게 울리는 종소리가 이 마을을 꽤 운치 있게 만든다.
마을의 상징이었을 종탑을 주인공으로 한 폭의 풍경화를 완성하고 싶은데 나의 그림 솜씨로는 불가능하다.~~ㅠㅠ
사진으로나마 남길 수밖에...
2개의 아치(The two-vaulted bridge)가 있는 독특한 다리를 건너자 눈에 보이는 멋진 건물이 있다.
건물 이름은 'Sakov House'이다.
불가리아 국가 부흥 시대의 건물이 매우 독특한데 특히 2층에 많은 창문이 인상적이다.
그러고 보니 며칠 전 머물렀던 플로브디프의 올드타운에서도 상층이 넓고 창이 많은 주택들이 그 당시의 특징이라고 했었는데... 이곳도 그렇게 지었다.
다시 한번 이곳에서 불가리아의 18~19세기의 독특한 건축을 만났다.
사코프 하우스 안으로 들어가 보니 기념품을 비롯해 아기자기한 소품을 팔고 있다.
도자기, 손뜨개 가방, 모자 그리고 구리로 만든 주전자...
이 안에 있는 모든 것 대부분들을 직접 손으로 공들여 만들었다 하니 정성과 노력으로 따지면 그 값어치는 몇 곱절이겠다 싶다.
돌아다니다 보니 여기저기 물레방아가 보인다.
얀트라 강이 세차게 흐르는 마을이라 물레방아를 이용해서 생활을 할 수 있었나 보다.
물이 떨어지는 힘으로 바퀴가 돌아가는 물레방아는 물이 부족한 곳에는 설치하기가 어려웠을 텐데 다행히 물이 풍족했다는 증명이 되고 있다.
물레방아 돌아가는 장면을 보면 곡식을 찧는 실용성에 의미를 두어야 하는데 난 왠지 낭만적인 분위기가 더 풍기면서 나도향의 소설 '물레방아'에서 물레방앗간 옆에서 사랑을 속삭이던 두 남녀가 떠오른다.
결국은 소설의 결말은 파탄과 비극으로 끝을 맺지만 물레방아의 역사는 우리나라의 문학에서 이렇게 탄생하게 된다.
시작도 끝도 없이 돌고 도는 물레방아, 올라갔다 내려오길 반복하는 물레방아.
그래서 물레방아를 인생으로 표현하기도 했나 보다.
오랜만에 물레방아를 보고 있으려니 여러 생각이 떠오른다.
호두 기름을 짜내는 기구들과 이를 보관하는 용기들이 보관된 곳으로 들어갔다.
처음 보는 낯선 기구들은 호두를 압착시켜 기름을 뽑아내는 기계인 듯 보인다.
어린아이가 기다란 막대에 매달려 누르는 재밌는 그림이 벽에 걸려있다.
호두기름이 요즘엔 10대 슈퍼푸드로 선정될 만큼 건강에도 좋아 으뜸으로 꼽히는 기름인데 이들은 벌써 이 사실을 알고 있었나 보다.
고풍스러운 목조건물들이 모여있는 좁은 골목길이 나온다. '장인 거리(Craftsman Street)'라고 되어 있는데 입구가 아름답다.
마치 이곳은 불가리아 부흥시대 건축가들의 재능을 뽐내고 있는 장소인 듯하다.
많은 창들이 있는 집들과, 내부의 넓은 공간, 그리고 균형감 있게 지어진 가옥들...
이 가옥들 안에서 과거의 장인 솜씨를 전수해 능력을 발휘하는 장인들이 작업을 하고 있을 것이다.
한집 한집 모두 들어가기 살펴보기엔 너무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아 걸어가면서 창문으로 보고 가려는데 아름다운 작품들이 벽에 잔뜩 걸려있고 두 남성이 허리를 숙이고 열심히 작업하는 곳이 흥미로워 보여 안으로 들어갔다.
섬세하고 정교한 솜씨로 아름다운 나무 액자를 만들고 있었다.
직접 나무를 선택해서 칼로 하나씩 도려내고 있는 그들의 능숙한 솜씨에 놀랄 수밖에 없다.
방문객인 우리가 가까이에서 그들의 작업 활동을 지켜보고 있는 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일에 몰두하고 있는 그들의 작업정신에 감탄이 나온다.
장인의 값진 기술을 보고 즐길 수 있는 시간이었다.
방문객들이 지켜보는 작업장에서 장인들은 옛 방법으로 물건을 만들고 판매하며, 우리는 그 당시 도구를 실제로 보고 장인의 기술을 즐기며 그들이 직접 만든 물건을 집으로 가져갈 수 있는 셈이다.
서로 win-win이다.
더구나 방문객들은 미리 예약을 한다면 장인들의 전통 공예를 전수받는데 참여할 수도 있다니 정말 흥미로운 경험일 될 것이다. 불가리아의 전통문화에 대해 구체적으로 배울 수 있는 매우 적극적인 방법이라고 생각된다.
박물관을 좀 더 안쪽으로 들어오니 다리 주변에 앉아 그림을 그리는 학생들이 여기저기 보인다.
모두들 진지하지만 자유롭고 즐거워 보인다.
이곳 멀리까지 현장학습을 왔나 보다.
그림을 그릴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아름다운 곳이다.
몇 시간 동안을 걸어 돌아다니니 시간이 꽤 흘러 배가 고프다.
민속 박물관을 방문해서 그들의 삶과 생활을 자세히 들여다보았으니 이제 그들이 먹었던 전통음식을 먹어봐야 할 것 같았다.
불가리아에는 소고기, 돼지고기, 양고기와 함께 다양한 야채와 허브를 이용하고 적합한 기후 조건과 지리적 요인과 방법에 따른 많은 전통 음식이 있는데 벌써부터 입에 침이 고인다.
박물관 출구 주변에 옛 가옥의 근사한 레스토랑이 있었는데 그곳으로 발걸음이 빨라졌다.
양고기와 돼지고기 요리를 주문했는데 맛이 아주 만족스럽다.
음료 아이란은 커다란 주전자에 담겨 나왔는데 그 양이 많이 남겨야 했을 정도다.
저렴한 가격에 맛나고 건강한 음식을 맛보니 기분이 좋다.
오늘 오후 박물관을 둘러보는 내내 불가리아 마을 '에타르(Etar)'에서 그들의 과거 속살을 접하면서 나도 19세기에 살고 있는 독특한 느낌과 좋은 인상을 받았다.
고풍스럽고 아름다운 독특한 배경 때문에 순간순간 영화 세트장에 와있는 느낌도 들었다.
불가리아의 정신이 숨 쉬고 삶의 진정성과 아름다움이 조화되어 있는 곳 그리고 그들의 장인 정신을 보여주는 곳이 바로 이곳이었다.
우리가 다녀본 유럽의 모든 야외 박물관 중에서도 전시품이 풍부할 뿐 아니라 예술품이 잘 보존되어 전시되어 있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쉽게 오가기 힘든 장소에 있는 외딴곳이지만 불가리아의 역사와 그들의 생활을 진정으로 느끼고 싶다면 반드시 방문해야 할 곳이다.
이곳이 바로 진정한 불가리아 여행의 종착지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