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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소 Dec 29. 2022

역사의 목격자, 벨리코 터르노보

중세의 부활  벨리코 터르노보

에타르 마을에서 불가리아인들의 19세기 속살을 경험하고 느껴보니 그들이 시간적, 공간적으로 남기고 간 흔적을 아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는 이제 가브로보 마을의 에타르 민속박물관을 떠나 '불가리아 제2의 도시'라고 불리는 '벨리코 터르노보(Veliko Tarnovo)'로 향한다.

도시의 인구는 약 7만 명이 안되며 규모 역시 크지 않지만 기원전 3000년부터 사람이 살았던 곳으로 불가리아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도시 중 한 곳이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과거의 화려한 문화를 활짝 피우고 의미 있는 역사의 기운을 지금도 내뿜고 있는 도시 벨리코 터르노보에서 불가리아인들의 생활과 문화를 실제 접해보고 그들의 축제도 함께 즐기고자 한다.



이 도시의 처음 이름은  ‘터르노보그라드(Tarnovograd)’였다.

그 의미는 ‘가시의 도시'라는 뜻이었는데 도시의 역사적 가치를 기념하기 위해 ‘위대한’이라는 '벨리코(Veliko)' 단어가 추가되고 '땅'이라는 뜻의 '그라드(grad)'가 생략되면서 '벨리코 터르노보(Veliko Tarnovo)'로 개명되었다고 한다.

특히 이 도시는 오스만 튀르크에게 점령당하기 전 14세기까지 화려한 문화를 꽃피우던 도시였으며 제2차 불가리아 제국(1185~1393)수도였던 곳이기 때문에 풍부한 역사 및 문화, 관광 자원이 어느 도시보다 풍부하다.

이 도시가 '제3의 로마' , '불가리아의 아테네'라는 별명이 있었을 정도이니 말이다.

이렇게 장구한 역사를 품고 있는 도시를 방문하려니 벌써부터 마음이 풍요로워짐을 느낀다.

왠지 이 도시는 우리를 반갑게 환영해 주고 푸근하게 받아줄 것만 같다.


벨리코 터르노보 중심거리



드디어 벨리코 터르노보에 도착했다.

구도심 거리가 몹시 분주하다. 내일 있을 불가리아 독립 기념일 축제 준비로 바쁜 것 같다.

사실 우리는 불가리아 여행을 준비하면서 벨리코 터르노보 축제날에 맞춰 이 도시를 방문하기로 계획했다.

불가리아인 외에도 세계의 많은 관광객들이 축제를 즐기기 위해 이 도시로 모여 축제 기간에는 호텔에 묵을 숙소가 남질 않는다고 한다.

숙소가 보이는 풍경과 골목


우리는 호텔이 아닌 불가리아 전통양식을 유지하고 있는 고풍스러운 숙소를 예약했고 구시가지 끝지점에 위치한 곳이었다.

차를 빌려 여행을 하다 보니 우리 부부는 도심 호텔의 숙소가 아닌 주로 외곽 지역의 현지인이 운영하는 주택을 선호하게 되는데 가격도 저렴하고 그 지역에 좀 더 친밀하게 다가갈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조금은 삭막하고 일률적이며 절제된 호텔 생활을 하기보다는 낯설지만 친절한 사람들과 새로운 분위기 그리고 자유롭고 신선한 경험도 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다.

더욱이 우리는 이 숙소에서 불가리아 전통식사를 할 수 있었다.

친절한 주인은 벨리코 터르노보 관광에 대해 자세한 안내를 해준 후 집을 소개해 준다며 우리를 데리고 다니는데 특히 발코니에 대해 자랑을 한다.

밤에 이 발코니에 앉아서 요새를 보면 멋지다고 말이다.

밤의 풍경이 기대된다.



짐을 풀고 잠시 숙소 발코니에 앉아 밖을 보니 낮에도 보는 바깥 풍경이 한 폭의 그림이다.

벨리코 터르노보의 이 아름다움을 영원히 소유하는 방법이 있을까?

누구는 그림으로, 어떤 이는 사진으로 그리고 각자의 마음에 간직하고 살아가겠지만 가장 확실한 방법은 이 도시를 떠나지 않고 매일 이 풍경과 분위기에서 사는 것일 게다.

큰일이다. 바로 이 순간 이 도시를 영원히 떠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생겨버렸다.


 Vladishki Bridge
숙소에서 본 풍경


구구한 역사와 애통한 한(恨)을 품은 채 견고히 버티고 있는 차레베츠 요새(Tsarevets Fortress)가 저 멀리 보인다.

얀트라(yantra) 강에 의해 나뉜 마을을 연결하는 예스러운 나무다리(Vladishki Bridge)와 차가 통행할 수 있는 아치 다리(Tsar boris 3세 다리)가 비교되어 역사를 실감 나게 한다.

이렇게 멀리서 눈으로만 보아도 역사의 흔적들이 여기저기 숨어 우리를 기다릴 것만 같은데 실제로 도시 구석구석을 다니며 만난다면 얼마나 흥분이 될까 하는 기대감에 숙소를 빨리 나가야겠다는 생각뿐이다.




조금은 늦은 오후,

구도심 중심가에서 벗어난 숙소 근처는 사람이 다니질 않는 조용한 골목인데도 많은 유적지와 문화유산이 있는 곳이었다.

골목을 조금 걸어 들어가자 돌벽으로 쌓은 교회가 보인다.

이 도시는 어딜 가나 중세의 흔적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성 베드로와 바울 교회(Church of Saints Peter and Paul)이다.

이반 아센 2세(1218~1241) 당시 그의 아내 안나의 명령에 따라 지어진 것으로 오스만 통치 기간 동안 왕립 도서관의 수백 권의 원고가 이곳에 배치되었지만 많은 수가 1842년 그리스에 의해 파괴되었다고 한다.

교회의 안뜰로 들어가 보니 손질이 잘 되어 있어 매우 정돈된 느낌이고 특히 교회 건물과 분위기가  이곳의 풍경과 조화를 잘 이루고 있다.

교회 내부에는 프레스코화가 있다는데 우린 시간이 늦어 들어갈 수 없었다.


Church of Saints Peter and Paul


나무다리(Vladishki Bridge)를 건넌다.

이곳에도 사랑의 열쇠가 달려있는 걸 보니 낭만적인 다리 위에는 어느 곳에서나 사랑의 약속들을 하나보다.

그런데 사랑을 가두어둔다고 영원히 머물 수 있을까 싶다.

엘튼 존(EltonJohn)의 노래 'Love song'에 나오는 가사 Love is the key we return.... Love is the opening door...처럼 

자유로운 사랑, 그것이 진실된 사랑 아닌가?

사랑, 참 어렵다.



다리를 건너 마을 안쪽으로 더 들어가니 The Church of Saint Demetrius of Thessaloniki가 있다

이 도시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로 1185년에 세워졌는데 비잔틴에 대항하는 봉기가 선포된 장소였다고 한다. 이 반란으로 불가리아 제국이 재건되고 타르노보가 수도로 선포되었으니 현지인들에게는 이 교회가 의미 있는 장소일 것이다.

안타깝게도 두 번의 큰 지진으로 파괴되었다가 재건되는 바람에 소중한 프레스코화들은 많이 소실되었다고 한다.

안으로 들어가는 문이 굳게 잠겨 있어 밖에서는 교회 일부만 보이는데 십자가와 십자가 탑이 뚜렷이 보여 인상적이다.

중세 시대의 전형적인 특징을 살려 지은 교회라고 하던데 역시 중세 분위기를 자아내는 마치 아름다운 건축물처럼 보인다.

교회를 둘러싸고 있는 돌담이 교회의 고풍스러움을 더해주니 오히려 돌담이 교회보다 더 역사가 깊어 보인다.

The Church of Saint Demetrius of Thessaloniki

Tsarevets FortressTsarevets Fortress

구도심에서 가장 활기를 띠는 거리 “crafts street(공예거리)”로 갔다.

거리에 들어서자 벨리코 터르노보의 활발한 중세거리를 들여다보는 것만 같다.

벨리코 터르노보의 의미처럼 '위대한'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장소가 이 골목이 아닌가 싶다.

“crafts street”거리는 한마디로 아티스트의 골목이다.

crafts street


길지 않은 좁은 골목에 성화와 성상을 파는 가게를 비롯해 공방, 갤러리, 주얼리 숍, 레스토랑 등이 마주 보고 자리하면서 그 시대의 수려한 문화 예술을 떠올리게 하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판매를 하고 있는 가게라고 하지만 장사꾼들의 서두름이나 재촉함이 없다.

늦은 오후의 이 거리엔 조급함이 보이지 않는다.

그저 과거 번영했던 옛 영화 추억을 간간히 우리에게 선보이고 있을 뿐이었다.

역시 그 도시의 문화와 예술을 이해하려면 공예품 거리와 시장을 방문하라는 이야기가 맞는 말이다.


거리를 돌아다녀보니 집에서 직접 구운 비스킷, 목공예품, 뜨게 소품, 꿀, 그림, 전통 의복, 머리핀과 머리끈 등... 다양한 종류들의 가게들이 늘어서 있어 구경하며 다니는 재미도 쏠쏠하다.

골목을 조금 벗어난 널따란 광장에는 음식 부스(Food Booth) 몇 개가 오픈을 해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스테이크를 구워파는 곳도 있고 과일을 직접 갈아 주스를 만들어 주는 곳도 있고 프랑스의 크레페(crepe)와 똑같은 방법과 모양으로 만들어 파는 곳도 있다.

저녁 식사 시간이 가까워오니 배가 조금은 출출한 것 같아 크레페(?)를 먹어보기로 했다. 가게 주인에게 이름을 물어보니 ‘카마타’라고 한다.


토핑으로 Nutella를 넣어 달라고 부탁을 해서 먹어보는데 달콤하고 부드럽고 아주 맛나다.

부스 한 곳에서는 가정에서 직접 만들어가지고 나온 먹음직 스런 예쁜 케이크를 만들어 팔고 있다. 달콤하고 시원한 케이크를 먹으니 몸이 충전됨을 느낀다.

역시 나는 동네 산책은 꼭 먹거리와 함께 해야 하나 보다.ㅎㅎㅎ




이제 저녁식사를 하러 가기로 했다.

경관이 멋진 장소를 찾다가 유명한 레스토랑을 방문했다.

멋진 경관을 보며 맛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곳이라고 알려진 레스토랑이라 주저 없이 들어갔다.

전망이 좋은 테이블을 안내해 달라고 하자 우리를 데리고 간 곳은 넓은 홀을 지나 안 쪽에 있는 야외테라스였다.

사방이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진 자리였다.

굽이쳐 흐르는 얀트라 강 줄기와 강 위에 나무가 병풍을 이루고 있고 붉은 지붕의 집들이 층층이 올려진 절경이었다.

탁 트인 멋진 전망을 보며 맛있는 식사를 하는 이 시간이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다.





근사한 저녁 식사를 하고 서서히 어둠이 내리는 거리를 걸어본다.

도시의 화려하지 않은 수수한 건물, 낡고 허름한 건물조차 고즈넉한 이 도시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왠지 내 마음도 차분해진다.

화려한 축제장으로 변하게 될 내일, 조용하고 아늑한 이 거리가 어떻게 변하게 될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서서히 어둠이 내리는 벨리코 터르노보 거리


걷고 있는데 갑자기 비가 내린다.

불가리아를 방문한 후 처음 맞아보는 비...

지금 내리는 비가 내일 열릴 독립기념일 축제를 미리 축하라도 하려는 걸까?

하지만 우리는 비 때문에 보고 싶은 야경을 못 보게 된 아쉬운 마음으로 숙소를 향해 서둘러 걸어야 했다.




지금은 4시가 조금 넘은 새벽이다.

내리던 비는 그치고 하늘엔 새벽달이 떠 있다.

우리는 숙소의 발코니에 앉아 멀리 고고한 빛으로 우아한 맵시를 뽐내고 있는 '차레베츠 요새(Tsarevets Fortress)'를 보고 있다.

요새 너머 불빛이 도달하지 않는 칠흑처럼 어두운 요새 안에서는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지...

왠지 모를 공포감도 밀려온다.

요새 정상에 위치한 '승천 대성당(Ascension Cathedral Church)'이 함께 빛을 내고 있다.

깜깜한 하늘에 홀로 존재하는 신성한 자태, 그 자체다.

동이 틀 때까지 이 도시를 지키겠다는 굳은 의지라도 있는 걸까?


밝게 비추던 도시의 불빛들도 서서히 자취를 감췄다.

도시가 어둠에 파묻힌다.  아니 새벽이 오니 도시의 실루엣이 슬금슬금 드러나고 있다. 


나는 지금 중세의 신비롭고 아름다운 환생을 보고 있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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