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ech마을과 주변 관광지를 방문하다.
아침에 눈을 떠 창밖을 보니 어젯밤 비가 내린 탓에 더 깨끗해진 풍경이다
요새의 뒷 산에서 해가 떠오르려 하는지 하늘이 붉다.
하지만 구름도 질세라 떠오르는 해를 감추려고 무던히 노력하고 있다.
아~~ 붉은 해는 구름을 이기고 잠시 떠오르는가 싶더니 금세 구름에 떠밀린다.
짧은 순간 빛을 받아 구름 틈새로 황금빛 자태를 보이는 차레베츠 요새(Tsarevets Fortress)...
매일 아침 이런 바깥 풍경을 보며 눈을 뜰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싶다.
하지만 오래된 역사를 디딤돌로 멋지게 성장한 도시 벨리코 터르노보의 멋지고 즐거웠던 순간들과 아름답고 황홀한 풍경들을 뒤로하고 우리는 이곳을 떠나 불가리아의 마지막 여정지로 향해야 했다.
언젠가는 꼭 한번 다시와 보고 싶은 도시로 마음에 저장해야겠다.
우리는 소피아(Sofia)로 가는 길에 약 두 시간가량 떨어진 로베치(Lovech) 마을과 데 베타슈카 동굴(Devetashka Cave) 그리고 크루슈나 폭포 Krushuna Waterfalls(krushuna National Park)를 방문하기로 했다.
로베치 마을을 방문하는 이유는 불가리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중 하나로 알려져 있는데 그 증거들이 동굴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로베치 마을은 역사가 깊은 마을인 만큼 마을 중심에 있는 아름다운 다리(covered bridege)와 멋진 요새( Lovech Fortress, Hisarya Hill)가 자리하고 있는데 이 모두를 눈에 담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다행히도 로베치 마을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고대부터 인간이 살았다는 흔적들이 남아있는 동굴(Devetashka Cave)이 있어 이곳도 직접 방문해 보기로 했다.
두 시간가량을 운전해 가는 길은 아름다운 숲길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오래된 나무가 많은 길이었다.
길 양쪽에 서있는 오래된 나무들이 키가 크게 자라 맞은편 나무에까지 닿아 자연 터널을 만들고 있는 곳이 한두 곳이 아니다.
오가는 차도 없는 한적한 이 아름다운 시골길을 두 시간 넘게 운전하지만 전혀 피곤함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다.
그리고 이렇게 멋진 길 끝에는 분명히 아름다운 마을이 있을 거라는 확신도 든다.
로베치(Lovech)는 약 30,000명이 채 안 되는 인구가 살고 있는 조용하고 깨끗한 마을이다.
선사시대부터 사람들이 살기 시작했던 역사 오래된 마을로 로마의 도시였다가 나중에는 터키의 큰 중심지 도시로 역할을 했다고 한다.
12세기에는 Lovech가 훌륭한 무역 중심지이자 불가리아에서 가장 유명한 도시 중 하나였으며 17세기에는 불가리아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였다고 알려져 있다.
아마도 로베치 마을이 자리하고 있는 위치가 산과 평지 사이의 평평한 곳에 있으며 강(Ossăm)이 흐르는 곳이라는 이유에서 사람들이 이곳에서 오래전부터 거주했던 것 같다.
하지만 1877년에 있었던 러시아-투르크 전쟁 당시 로베치에서 '로브차 전투'가 벌어졌는데 이때 전쟁과 역병으로 많은 희생자가 발생해 인구가 크게 줄었다고 한다.
어떤 도시라도 흥망성쇠의 곡선은 반드시 있기 마련인가 보다.
로베치에 도착했다.
그런데 여느 도시답지 않게 도로에 차들도 많고 사람들도 많이 보인다.
무슨 일인지 궁금했는데 알고 보니 오늘은 로베치에서 장(場)이 서는 날이었다.
마을의 재래시장을 방문하는 걸 즐겨하는 우리 부부는 차를 세우고 시장 안으로 들어갔다.
역시 재래시장의 분위기는 매우 활기찼다.
거리에 펼쳐놓은 많은 품목들은 주로 집에서 직접 가지고 나온 채소와 과일들이 대부분이었다.
겨울 옷들과 가방, 꿀 그리고 어디에 쓰일지 모를 낯선 농기구들, 여성들의 눈길을 끄는 예쁜 장신구들까지 펼쳐놓고 팔고 있다.
재래시장 안에는 사람들도 많아 몸을 옆으로 틀고 다녀야 할 정도로 분주하다.
장이 서는 오늘은 멀리 떨어져 살고 있던 주민들이 서로 만나 안부를 주고받는 날이기도 한가 보다. 악수를 하며 반가운 인사를 하는 사람들, 서로 모여 웃으며 이야기를 주고받는 주민들이 많다.
모처럼 번잡하고 북적거리는 장소에 와보니 덩달아 내 마음이 들뜨게 된다.
과거 우리네 장터도 이러한 모습이었을 것 같다. 내가 생각하고 원하는 장(場)이다.
단순히 물건의 거래만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도 주고받을 수 있는 장(場) 말이다.
내가 살고 있는 곳에도 장이 자주 선다.
다양한 종류의 많은 물품들을 내놓고 팔고 있고 많은 사람들이 북적거리며 다니긴 하지만 오래전 우리의 장터나 오늘 보는 로베치 마을의 장처럼 서로 안부를 묻고 이야기를 주고받는 사람냄새 풍기는 장면은 볼 수 없다. 필요한 물건만 바로 구입하고는 서둘러 가버리는, 그야말로 목적과 필요에 의해 오가는 그런 장소가 되어버린 것 같아 마음 한쪽이 왠지 서늘하다.
사고파는 물건들은 풍부하지만 풍부한 인심과 정(情)은 찾아보기 힘들어진 게 요즘 한국에서의 장터 분위기라는 생각이다.
우리는 시장 구경을 하다가 옥수수를 직접 삶아 파는 가게에 들러 옥수수를 샀다.
알갱이를 씹지 않고 삼켜도 될 정도로 무척 부드럽고 달다. 마치 우리나라의 초당옥수수처럼...
한국의 쫄깃한 찰옥수수와는 많이 다르다.
나는 부드럽게 씹히는 옥수수를 좋아하는데 남편은 쫄깃한 옥수수가 아니라며 시큰둥한다.
장터를 구경하며 옥수수 한 두 개를 먹고나니 배가 찬다.
낯선 나라의 시장에서 함께 어울려 다니며 분위기를 느끼고 맛난 음식도 먹는 경험.. 이런 게 바로 여행 중 뜻밖에 만나는 소확행이다. ㅎㅎ
이제 로베치에서 유명한 'Covered Bridge'(오삼교(Osam bridge))에 가보기로 했다.
사실 나는 Covered Bridge에 대해 막연한 낭만을 갖고 있다.
오래전 미국에 거주할 당시 시골 마을을 여행하며 Covered Bridge를 몇 번 본 적이 있다.
대부분 내가 본 Covered Bridge는 사람의 왕래도 없고 거의 쓰러져 내릴 정도의 허름한 나무다리였지만 나에겐 무척 낭만적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그때마다 눈앞에 스쳐 지나가는 건 영화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The Bridges of Madison County)'였다. 아마도 이 영화에서 보았던
'Roseman Covered bridge'의 이미지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로베치 마을 중심가 유료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Covered Bridge와 Lovech Fortress(로베치 요새)를 함께 둘러볼 계획이다.
로베치 마을의 Covered Bridge는 구시가지(Varosha)와 신시가지를 잇는 다리이며 발칸반도에서 유일하다고 한다.
다리의 길이는 106m이며 내부에는 14개의 상점이 들어서있다.
1872년 당시 마을의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다리가 홍수로 거의 완전히 파괴되어 버리자 1874년에 유명한 불가리아 건축업자 Kolyu Ficheto가 나무를 재료로 사용해 다리를 건설했다.
하지만 1925년 화재로 거의 모든 다리가 파괴되었고 1926년에 재건을 했지만 이번에는 철과 돌로 만든 지붕이 있는 다리로 건설되어 주민들이 원래의 목재다리로 다시 건설해달라고 요구를 해서 지금의 목조다리가 완성되었다고 한다.
당시 로베치의 많은 시민들은 다리의 재건 과정에 기여했는데 부유층 사람들은 돈을 기부해 일을 하는 주민들에게 급여로 지급되었다고 하니 마을 사람들의 정성과 마음이 담긴 다리였음이 분명하다.
지붕으로 덮인 나무다리가 로베치 마을의 양쪽 도시를 연결해주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다.
다리 아래에는 오삼강(Ossăm river)이 흐르고 길지 않은 다리의 내부 양쪽에는 소규모의 가게들이 들어서 있다.
물론 영화에서 보았던 Roseman Covered bridge처럼 달달 쌉싸름한 낭만은 느껴지지 않지만 나름대로 주변의 멋진 풍경에 어울려지는 아름다운 다리이다.
이 다리 하나로 로베치 마을이 무척 낭만적인 마을로 기억될 것도 같다.
내부에 들어가니 무척 아늑하다.
그림들을 걸어놓고 파는 조그마한 화랑과 기념품과 소품들을 파는 가게, 그리고 작은 카페 등이 있는 조용하고 편안한 느낌의 장소다.
다리 내부의 창을 통해 바깥 풍경을 보니 강과 마을이 그림처럼 아름답다.
다리를 통과해서 로베치 요새(Lovech Fortress)로 가는 길은 로베치의 구도시(varosha)를 지나가게 되어있다.
구도시 varosha는 Osam강과 Hisaraya 언덕 사이의 경사면에 위치해 있었는데 그 길은 매우 아름답고 고풍스러운 돌길이지만 좁고 구불구불하며 때때로 걷다가 예기치 않게 벽이나 정문이 눈앞에 나타나 놀랄 때도 있었다.
1850~1870년에 지어진 이 지역의 주택들은 대부분 작고 2층으로 지어졌으며 높고 단단한 돌담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돌지붕이 있는 전통 가옥이 오늘날까지 보존되어 있어 로베치 마을을 더 인상깊게 했다.
집 대문 앞에는 마치 이 집을 지키는 경비라도 된 듯 귀여운 고양이들이 버티고 앉아있고 아늑한 터널처럼 높은 19세기 주택으로 둘러싸인 돌길은 여전히 옛 로베치의 정신을 간직하고 있었다.
Varosha에서 로베치 요새까지 가려니 조금은 경사진 힘든 길이었다.
10여분 힘들여 올랐을까?
요새의 입구에는 1964년에 개관한 넓은 광장이 있는데 14m 높이의 불가리아 국민 영웅 바실 레프스키(Vasil Levski)의 거대한 동상이 먼저 우리를 맞고 있다.
이렇게 높은 곳에도 넓은 광장이 있다는 게 놀라운 일이었는데 바실 레프스키(Vasil Levski)가 로베치 마을을 지키고 있는 그 위상은 가히 압도적이었다.
그는 터키와의 투쟁당시 혁명가로 불가리아에서 가장 사랑받는 국가 영웅 중 한 사람이라고 한다.
입장료를 내고 요새에 들어섰다.
돌길과 돌벽들에 둘러싸여 펼쳐진 길이 가히 장관이다.
길고 높게 세워진 돌벽에 박힌 돌 하나하나에는 과거의 영광과 고통이 그대로 스며있겠지...
거대한 로베치 요새는 Osam강의 오른쪽 강둑에 있는 Hisaraya Hill에서 그저 묵묵히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9~10세기 경에 세워진 로베치 요새(Lovech Fortress)는 오스만 제국에 의해 1446년에 정복된 마지막 요새 중 하나였다.
이 요새는 그 당시 수도 Tarnovo와 불가리아 북부와 남부 사이의 최단 도로인 Troyan Pass로의 접근을 막기 위해 설계되었다고 한다.
요새의 벽은 사람들이 돌을 채우며 단단히 쌓은 성벽인데 높고 가파른 언덕 경사면에 위치한 지리적 이점과 석회암과 몰타르를 섞어 만든 단단한 돌담이 이 도시의 방패역할을 충분히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당당한 위풍과 굳건함을 지녔음에도 지금은 인적 없는 썰렁한 요새로 남아 불어오는 바람만이 요새를 서성이고 있다.
요새 안에는 옛 거주지로 보이는 터와 커다란 회의장 혹은 몇 개 구역으로 나뉜 커다란 건물의 터도 남아있어 과거의 시간들이 많이 궁금해진다.
요새의 가장 높은 곳에 올라가 보니 가슴이 뻥 뚫릴 정도의 멋진 파노라마가 내 눈앞에 선물처럼 등장한다.
하지만 정상에서 보는 멋진 전망도 끝내주지만 오래된 돌벽 사이를 걸으며 과거의 역사를 떠올리는 이 순간이 난 더 좋다.
요새를 둘러보던 중 성 안에 관람객들이 앉아 공연을 관람할 수 있는 벤치가 눈에 띄었는데 무대에서 연극이나 음악 행사를 열어 즐길 수 있도록 하고 있었다.
여름밤 이런 야외무대에서 공연을 보는 것도 무척이나 낭만적일 것 같다.
이렇게 아름답고 거대한 요새가 오스만튀르크에 의해 정복당했을 당시 불가리아인들은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 싶다.
하지만 이제는 불가리아의 요새라고, 다시는 빼앗기지 않겠다고 다짐이라도 하는 듯 높고 파란 하늘 아래 깃발이 힘차게 펄럭이고 있다.
오늘 잠시 머물다가는 아늑한 마을 Lovech는 역사와 문화가 하나로 어우러져 잘 보존되고 있는 매력적인 마을로 기억에 남을것 같았다.
그래서 우린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떠날 수 있었다.
로베치 마을을 떠난 우리는 약 20km 정도 떨어진 동굴에 가보기로 했다.
이 동굴(Devetashka Cave)은 약 70,000년 전 구석기시대부터 인간이 거주한 곳이라고 한다. 또한 이 유적지에서 신석기 유물이 가장 풍부하게 출토되었다고 한다.
이곳에서 오랜 기간 동안 다양한 동물들도 은식처 역할을 했는데 현재까지도 약 30,000마리의 박쥐가 서식하고 있는 박쥐동굴이었다.
이 동굴은 1950년대 중반까지 불가리아 군대가 연료를 저장하기 위해 군사기지로 사용했고 2011년에는 영화 'The Expendables 2'를 이 동굴에서 촬영했는데 불가리아 법정은 이 행위를 자연을 훼손하는 행위라며 환경 위반에 대한 벌금을 물렸다고 한다.
실제로 시끄러운 소음들, 밝은 조명, 오가는 많은 사람들로 인해 많은 수의 박쥐가 이 동굴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고 한다. 하지만 다행히도 2012년에는 대부분의 박쥐가 동굴로 돌아왔다고 하니 정말 다행이다.
주차장에서 입구까지는 멀지 않다.
입구까지 들어가는 길 한쪽에서는 동굴과 관련된 기념품을 팔고 있었는데 대부분 박쥐모양의 장난감과 소품들이다.
조금은 몸이 움츠러들고 기분도 으스스해진다.
거대한 동굴 내부는 어떤 모습일지...
혹시 박쥐가 날아다니는 건 아닐까?
'하지만 박쥐는 낮 시간에는 주로 잠을 자고 있으니 날아다니는 건 아닐 거야...' 스스로 위안을 삼으며 들어갔다.
드디어 음침하고 어두운 거대한 동굴이 내 앞에 있다.
동굴은 길이가 2km가 조금 넘고 높이가 100m가 넘는 동굴이라고 한다.
동굴 내부로 들어가니 외부보다 낮은 온도로 서늘하기까지 한데 어둡고 습한 분위기에 으스스한 내 몸이 더 움츠러든다.
고개를 들어 올려보니 우뚝 솟은 아치 그리고 빛이 들어올 수 있도록 천장에 여러 개의 큰 구멍을 낸 자연의 놀라운 솜씨에 입이 벌어진다.
자연이 어떻게 이런 경이로움을 만들어 낼 수 있는지 놀랍다.
천장에 있는 여러 개의 큰 구멍은 '눈'이라고 부르는데 이 눈을 통해 햇빛이 동굴로 들어와 동굴 내부를 환하게 해주고 있었다.
이 빛이 한 밤중에는 달빛이 되어 "눈"을 통해 동굴로 흘러올 때 달빛이 흐르는 동굴은 상상만 해도 장관일 것만 같다.
하늘을 향해 뚫려있는 동굴의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다.
조금 걸어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니 넓은 공간이 나오는데 사람이 살았던 그 당시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어 경이롭다.
기둥을 세웠던 단(壇)들이 있었고 원형 광장과 넓은 터도 보인다.
한때는 이 동굴이 적들로부터 피신을 했던 장소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동굴 내부에서 계속 들리는 이상야릇한 소리는 박쥐가 내는 소리일까?
잠에서 깬 박쥐들이 내는 소리일까?
동굴 안쪽으로 더 들어가 보고 싶은 마음이 생겨 조금 더 안쪽으로 걸어가 보니 아니나 다를까 더 이상 갈 수 없다는 안내판이 서있다. 하는 수 없이 돌아와야 했지만 그 컴컴한 동굴 안에는 분명히 박쥐들이 많을 것 같다.
태어나 처음 방문한 으스스한 박쥐 동굴이지만 멋지고 경이로운 동굴 탐험시간이었다.
이제 Krushuna 마을로 향한다.
'Krushuna Falls'가 있기 때문이다.
사실 Krushuna국립공원에 속해 있는 이 폭포 공원(Krushuna Falls)은 찾아가기 쉽지 않은 외진 마을 깊은 곳에 있는 곳으로 관광객들이 자주 방문하는 곳이 아니다.
하지만 이 지역의 물은 관절염과 피부병에 대한 약효가 있다고 알려져 성 조지의 날(saint George's day)에 이 마을 주민들은 폭포의 치유력을 경험하기 위해 폭포에서 의식을 거행하기도 한단다.
사실 우리는 신비한 폭포를 맞으러 들어갈 의사는 없었지만 빽빽한 초목들과 어우러진 그림 같은 풍경을 찍을 수 있다는 정보를 얻은 우리는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이곳을 잠시 들렀다 가기로 했다.
몇 개의 마을들을 지나 마침내 공원에 도착했는데 공원이 썰렁하다.
오후 시간이라 그럴까?
입구 안내원에게 지도를 받고 폭포로 향했다.
폭포로 향하는 길은 한국의 국립공원의 입구와 비슷해 좁지 않은 편안한 길이 이어진다.
그런데 폭포를 보려면 얼마나 더 걸어야 하는지... 지도에서 보기엔 가까운 것 같았는데 그렇지 않다.
한참 걸어가니 두 개의 갈림길이 나타나 수월해 보이는 길을 선택했는데 걷는 길이 무척이나 아름답다.
마치 초록이 짙게 우거진 나무들이 우리에게 따라오라며 폭포로 안내하는 오솔길이다.
가지않은 다른 길은 어땠을까?
영국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 자꾸 떠오른다.
싯귀처럼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한 게 아닌 우리는 수월해 보이는 길을 선택한 우리지만...ㅎㅎ
드디어 폭포가 보인다.
그런데 콸콸 힘 있게 쏟아지는 폭포가 아닌 조용히 아주 수줍게 내려오는 물줄기이다.
우거진 나무들 틈에서 폭포 계단을 만들어 얌전히 내려오고 있는 물줄기...
이런 폭포를 기대한 것이 아니었는데...
우렁찬 소리가 들리는 웅장한 폭포를 기대했는데 지금 내가 보고 있폭포에 어이없는 웃음이 나온다.
요즘 불가리아에 심한 가뭄이 왔다더니 정말 그런지 폭포의 물줄기가 너무 빈약하다.
이 공원에 사람이 없던 이유를 이제야 할 것도 같았다.
어쩌랴...
가는 곳 모두 우리의 기대에 부응하라는 법은 없으니까..
하지만 어렵게 찾아온 공원인데 마음속 기대와 차이가 있어 너무 허무했다.
'허망'이라는 단어를 이럴 때 사용하는 걸까?
약 2시간 정도 조용하고 아름다운 숲길을 산책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허무.. 허망.. 그리고 허기...
갑자기 배가 촐촐해 공원 근처에 있는 식당으로 향했다.
마음이 허할 땐 맛난 걸 먹으면 좀 기분이 나아진다는 걸 난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맛난 식사 후 우리가 열흘 전 떠나온 곳 Sofia로 향했고 튀르키예행 비행기를 탔다.
불가리아여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