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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소 Dec 31. 2022

독립기념일을 축제로 즐기는 나라, 불가리아

벨리코 터르노보에서 독립기념일 축제를 만나다.

아침에 일어나 제일 먼저 창문을 열어본다.

어제만 하더라도 궂은 날씨 때문에 오늘 있을 독립 기념일 축제가 잘 치러질지 걱정했는데 지금 다행히 비는 멈추었고 구름도 파란 하늘에 밀리는 듯하다.


아침 식사가 다 되었다고 방 문을 두드리며 우리를 부르시는 아주머니 소리에 바로 주방으로 갔다.

주인아주머니께서 직접 만들어주신 바니짜를 비롯해 과일과 비스킷 그리고 커피와 tea 등 정성이 담긴 아침식사를 준비해 주셨다.

바니짜의 맛이 레스토랑에서 만든 것보다 식감이 좋고 맛도 좋아 이걸 직접 만드셨냐고 여쭤보니 웃으시며 집에서 만든 거라고 하신다.

아이란과 바니짜는 아주 잘 어울리는 궁합이다.

식사를 마칠 즈음에는 디저트로 직접 만든 달콤한 케이크와 비스킷을 먹어보라며 우리에게 권하신다. 맛나다.

아침식사를 배불리 먹으니 오늘 하루 벨리코 터르노보에서 보낼 생각에 벌써 힘이 난다.




오늘은 이 도시 벨리코 터르노보(Veliko Tarnovo)에서 불가리아인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독립 기념일(independence day) 행사와 축제가 거리에서 펼쳐질 예정이다.

독립 기념일 행사가 거행되는 차레베츠 요새


약 5세기에 걸친 오스만 제국의 불가리아 지배(1396~1878) 이후 러시아 연합군과 오스만제국이 벌인 러시아-튀르크 전쟁에서 러시아 연합군이 승리함으로써 연합군에 속해있던 불가리아가 자치 국가로 부상하게 된다. 이에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불가리아의 정당한 독립을 선언하기 위해 이곳 Holy Forty Martyrs Church에서 선포되었는데 그날이 바로 오늘이다.

그야말로 오늘이 불가리아의 완전한 독립인 셈이다.

Holy Forty Martyrs Church와 불가리아 독립 선언서(출처 : Wikipedia)

이 날의 행사와 축제를 위해 지역 각지에서 온 많은 사람들이 함께 축제에 참여하고 불가리아 대통령도 이 날을 함께 기념하기 위해 해마다 방문한다고 한다.




서둘러 숙소를 나섰다.

벨리코 터르노보의 유명한 유적지인 '차레베츠 요새(Tsarevets Fortress)'를 방문하기 위해서다.

기념식 행사는 오전 10시 30분, 차레베츠 요새 정상에서 시작을 한다고 하니 많은 사람이 방문하기 전에 요새를 미리 둘러볼 계획이다.

그런데 구도심의 대로에 차가 다니질 않는다. 

숙소에서 요새까지 걷기로 한 건 잘한 일이었다.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다.

잠시 후에 펼쳐질 퍼레이드(parade)로 인해 오가는 모든 차를 통제하고 있었던 것인데 시민들의 적극적인 협조에 모두가 축제를 향한 한마음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조용한 거리를 약 40분 정도 걸으니 요새 입구가 보인다.

내가 생각하기로는 요새는 높은 곳에 있어 오르기가 힘들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차레베츠 요새는 전혀 힘이 들지 않는다.

벨리코 터르노보 도시 자체가 높은 곳에 위치한 까닭인가 보다.

요새를 오르며 잠깐잠깐씩 뒤돌아 보는 마을 경치도 감탄사의 연발이다.

서서히 구름이 걷히고 햇살을 받으며 깨어나는 마을의 풍경.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을 보며 오르는 길을 어찌 힘들다 할 수 있을까?

요새는 오랜 역사뿐 아니라 이 도시와 어울려 멋진 장관을 우리에게 선물해 주고 있었다.

차레베츠 요새와 벨리코 터르노보 그중 어느 하나도 아름다움의 서열이 있을 수 없다.

함께 존재함으로써 그 아름다움이 완성되기 때문이다.

더욱이 주변의 울창한 나무들 사이에 자리한 요새 정상에는 아름다운 교회까지 있으니 요새가 이 교회로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요새를 오르며 뒤돌아 본 마을 풍경
요새 입구 전경
요새 입구로 들어가는 길



오늘 새벽 불빛에 비친 요새가 고혹적이었다면 지금 눈앞에 보이는 요새는 무척이나 웅장하고 고풍스럽다.

요새 안으로 걸어 들어가는 이 길이 마치 하늘에 떠 있는 다리를 걸어 구름 속 천공의 성 라푸타로 들어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입장료를 내려했으나 오늘은 독립기념일!  

'Free'라고 외치며 환한 미소로 우리를 환영하는 경비원이 왜 그리 멋지게 보이는지...

오늘 하루 기분이 좋을 것만 같다.




차레베츠 요새는 5세기~8세기에 지어졌는데 언덕 전체가 불가리아 왕조 궁전인 이유로 13세기에는 불가리아 왕국의 궁전을 방어하기 위한 역할을 했다고 한다.

요새 아래 흐르는 얀트라 강과 두터운 성벽 때문에 요새를 공격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 같다.

하지만 불가리아 제2 제국 기간 동안 가장 화려하고 강했던 요새도 결국엔 14세기 오스만 튀르크의 침입으로 많은 부분이 파괴되고 말았다.

요새를 돌아다니다 보니 끝없는 성곽과 넓은 터가 많은데 지금도 발굴작업이 계속되고 있다 하니 발굴이 계속되다 보면 이 요새의 규모가 어마어마할 것 같다.


갑자기 뎅그렁! 하는 소리에 순간 놀랬다.

독립기념일을 축하하는 종소리일까?

거대한 크기의 종탑에서 나는 이 소리는 몇 분간 계속 울려댄다.

종탑에 가까이까지 가서 들어보니 그 소리가 더 어마어마하다.

종소리는 멀리서 들어야 은은하게 들리는데 곁에서 들으니 은은함은 사라지고 쇠의 육중함이 느껴지는 투박한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종 탑 가까이에서 들리는 종소리
멀리서 들려오는 종소리

오늘은 기쁜 날!

오래도록 울리는 은은한 종소리가 마을 전체에 퍼져 사람들에게 축하를 보내고 있다.




11세기에 지어진 성모 마리아 승천 대주교 교회(ascension patriarch cathedral church)는 벨리코 터르노보의 유적 중에서 가장 완벽한 형태로 남아 있는 유적이라고 하는데 사실 이 교회는 1985년에 대대적인 보수를 했다고 한다.


성모 마리아 승천 대주교 교회 외관과 교회 내부 입구

교회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내부에 잔잔하게 퍼지는 우울한 배경 음악과 어둡고 무거운 내용의 벽화들이 나를 당황하게 만든다.

화려한 제단과 성화, 성상들이 있을 줄 알았는데 그건 나의 큰 잘못된 예상이었다.

마치 이곳은 갤러리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 들었고 벽화의 대부분이 음울하고 암울한 내용이었기 때문이었다.

더욱 나를 힘들게 하는 건 내부를 잔잔히 울리는 음악과 벽화들을 마주하는 순간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솟아오르는 그 무언가였다.

억압당하고 고문을 당하는 그림, 손발이 묶인 그림 등 모든 그림들의 내용과 색채가 어둡고 화법의 자체가 나의 마음을 매우 어지럽게 했다.

알고 보니 그림들 내용의 대부분은 오스만 제국에 점령되었던 500여 년 동안 그들이 받은 억압과 고통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었다.

얼마나 한이 맺혔으면 교회 안에 그림으로 표현을 해두었을까?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경각심에서 일까?

사실 화려했던 불가리아 왕조의 왕궁터였던 이 성이 불가리아 제국의 시절과 함께 사라짐과 동시에 오스만 민족에게 성을 강탈당했던 성이니 이들에게 얼마나 가슴 아픈 장소가 되었을까 싶다.

이 요새의 절벽은 오스만에 대항한 사람들이 아래 흐르는 얀트라 강으로 떠밀려 죽음을 맞이한 곳이다.

애통한 역사와 한이 많은 성이니 불가리아인들은 이 도시와 차레베츠 요새에 대해 각별한 의미를 갖고 있을 것이다.


요새 동쪽에 위치한 '볼드윈 타워(Baldwin Tower)'에 올라가 보았다.

이 타워는 얀트라(Yantra) 강의 입구와 급수 시설을 지키는 역할을 했는데 불가리아 차르(Tsar) 칼로얀( Kaloyan)에게 붙잡힌 콘스탄티노플의 황제 라틴 볼드윈 1세(Latin Boldwin 1)가 1205년 처형될 때까지 이 탑에 수감되어 있었던 이유로 그의 이름을 따서 '볼드윈 타워'라고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탑의 내부에는 방어에 사용된 무기들이 남아 있어 치열한 전투를 했을 그 당시의 참혹함이 떠오르기도 했지만 타워에서 내다보는 바깥 풍경은 과거의 아픔과는 아랑곳없이 여전히 아름답기만 하다.

볼드윈 타워
타워 안에서 바라본 벨리코 터르노보 전경
타워 내부


아직 이른 시간인데도 요새 이곳저곳에서는 기념식을 위해 연주할 군악대와 의장대가 벌써 도착해 연습을 하고 있다.

TV중계를 하려는지 방송국 사람들도 요새 안으로 속속 들어서고 있고 뒤를 이어 각계 고위 인사(?)들도 도착하고 있다.


드디어 팡파르 소리와 함께 옛 왕궁터 유적지에서 기념식이 시작되었다.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관악기가 연주하는 웅장한 음악에 맞추어 불가리아 국가를 큰소리로 부르는데 우리는 알아듣지 못하는 내용과 가사였지만 듣고 있으려니 가슴이 뭉클해진다. 이어서 순국 용사를 위한 묵념 음악에 맞추어 잠시 묵념도 이어진다.


드디어 기념식 개최가 선포되자 동시에 아이들은 손에 쥐고 있던 풍선들을 하늘로 올려 보낸다.

하양, 초록, 빨강의 순서로 하늘로 올라가는 삼색 풍선들의 모습은 불가리아 국기를 상징하고 있었다.

삼색 풍선들로 수놓아진 하늘이 참 예쁘다.


기념행사에는 대주교도 참석하고 저명한 인사들이 함께 올라와 자리를 빛내고 있다.

불가리아 대통령은 참석을 하지 않은 듯싶다.


약 30분 정도 진행된 기념식이 끝나고 이제 모든 사람들은 요새 밖으로 나가 함께 거리행진을 하게 된다.

이미 요새 광장에는 사람들이 어마어마하게 모여있다.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들, 중고생 청소년들, 대학생 젊은이들과 마을 사람들 대부분이 이 광장에 모여있는 것 같다.

드레스로 한껏 차려입은 여인들, 색이 고운 드레스를 입은 어린아이들, 멋진 제복과 화려한 턱시도를 입은 남성들...

서서히 거리 행진을 위해 준비를 하고 있다.

차레베츠 요새 앞 광장에 모여있는 시민들


드디어 퍼레이드가 시작되었다.

우리는 인도에서 지나가는 퍼레이드 행렬을 지켜보기로 했다.

엄숙하지만 모두들 미소를 띤 행복한 표정이다.

대주교와 고위층 인사들을 선두로 불가리아의 전통 의상을 입은 남녀들이 뒤를 따르고 연주를 하며 행진하는 군악대, 멋진 제복을 입고 연주를 하는 나이 지긋하신 마을 할아버지들의 관악 밴드, 아름답게 멋지게 치장한 젊은이들 그리고 축제에 중요한 의미를 둔 마을 사람 등 모두가 한 마음으로 구시가지의 광장까지 약 1시간 정도를 함께 걷고 있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긴 행렬이다.



조용하고 한적했던 구시가지의 거리는 화려한 퍼포먼스와 사람들의 미소 그리고 행복한 웃음들로 채워졌고  아름답고 조용한 중세마을 벨리코 타르노보는 활기 있고 생동감 넘치는 마을로 변해버렸다.    


마을 사람들은 오늘 이 축제에 참여함으로써 함께 행동하고 기뻐하고 그들의 독립 기념일을 축하하면서 심리적으로 결속감을 느꼈을 것이다.

축제가 기쁨과 축하로 마무리되는 그 이상을 넘어 벨리코 터르노보의 공동체를 결속시키는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었다.  

이게 바로 축제의 중요한 역할이지 않을까?



불가리아의 독립기념일은 대한민국과 비교하자면 광복절과 의미가 비슷한 날이다.

우리나라가 일본으로부터 광복된 것을 기념하고,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수립을 경축하는 날이 바로 '광복절'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의 '광복절'은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는지 갑자기 궁금해진다.

광복의 가슴 벅참은 사라지고 심지어는 갖고 있는 애국심마저 어디로 갔는지 광복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여겨질 때도 있는 게 사실이다.

광복절 행사라고 하지만 지역 소규모 축제보다도 성의 없고 형식만으로 치러지는 느낌이 들 때도 있어 때론  이런 행사가 무슨 의미가 있나 싶기도 하다.

왜 이렇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하물며 우리처럼 일본의 지배하에서 기지개 한번 못 핀 채 숨죽이고 살았던 걸 생각하면 '광복'이라는 이 날은 그 어느 나라보다도 더 축하와 기쁨을 함께 나눠야 할 상황인데 이 날은 우리에게 기쁨이라고 받아들여지기보다는 왠지 장엄하고 엄숙하게 느껴진다.

여전히 일본이라는 나라와 어색하고 껄끄러운(?) 관계에 있어서 그런 걸까? 아님 독립을 위해 희생하신 선조들에 떳떳하지 못하는 마음에서 일까?

마음이 착잡해진다.



그런데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아침부터 오래 걷고 돌아다니다 보니 배가 고프다.

먹을거리를 찾기 위해 둘러보지만 전혀 보이질 않는다.

한국에서는 축제가 있는 곳이면 음식과 food court들이 항상 함께 있었는데 이곳은 거리를 둘러봐도 음식을 팔고 있는 가게가 전혀 없다.

오히려 거리의 가게들은 축제를 할 동안 문을 닫고 이 축제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배도 고프고 착잡해진 마음을 달래기 위해 음식점을 찾아 헤매다 골목 모퉁이 케밥 집이 눈에 띄어 들어갔다. 아주 조그만 가게지만 케밥을 전문으로 하는 가게라 무척 맛나다.

배가 고파 신경이 예민해졌던 걸까?

배가 부르니 조금은 생각도 여유롭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어른이 된 지금에도 여전히 난 배고픔엔 약하다.


화려한 축제와 행복한 사람들과 어울려 시간을 보내니 나도 행복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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