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듬어지지 않은 순박한 도시 트빌리시
단 사흘간의 방문으로 한 나라의 수도에 대해 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역사와 전통, 국민성 그리고 그들의 문화와 삶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짧은 시간이나마 도시에 머물며 그들과 부딪혀보고 문화를 체험하면서 알아가는 과정과 노력, 그리고 이를 통해 채워지는 만족감, 이 또한 우리가 여행을 하면서 얻을 수 있는 소중한 보물이다.
비록 '그 도시에 대해 알 수 있었다.'라고 확신은 못하지만 그래서 더 많은 미련이 남지만....
그럴수록 기억에 오래 남아 여행을 좋아한다.
오늘은 트빌리시가 무엇으로 우리의 마음을 끌어 당길지 호기심을 가지고 숙소를 출발했다.
'메테히 성당(Metekhi church)'을 방문하기 전에 우리는 성당 근처에 있는 'Rike park'에서 잠시 산책을 하기로 했다.
산책하기에 더할 나위없는 초봄의 상쾌한 아침의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다행히도 사람이 적어 한적하한 공원을 들러 볼 수 있었다.
사실 나는 어디서든 걷는 시간이 참 좋다.
생각없이 멍한 상태로 걸어도 좋고 무언가에 골몰하면서 걷는 것도 좋다. 걷고 나면 정신이 맑아져서 여행 중에도 틈이 날 때마다 걷는 걸 즐긴다.
이 공원은 나리칼라 요새 정상까지 쉽게 올라갈 수 있는 케이블카를 타는 장소이기도 하며 현대미술의 독창적인 작품들과 함께 큰 콘서트 홀 등이 있어 바로 옆 올드타운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다.
걷다보니 쿠라강 다리 위에 설치된 재밌는 형태의 예술 조각품들이 단조로운 걸음걸이에 재미까지 더해준다.
한 시간 정도 걸었을까? 우리는 메테히 성당(Metekhi church)에 도착했다.
쿠라강변 기슭에 위치한 메테히 성당은 조지아의 아픈 역사를 품고있는 쿠라강('므츠바리강')을 고고하게 내려보고 있다.
'므츠바리강(Mtkvari 강)'이라고도 부르는 쿠라강은 과거 이슬람 정복자들이 이슬람교로 개종하지 않는 사람들을 강으로 던져버렸고 그 수가 너무 많아 강물의 색이 붉게 물들 정도였다는 슬픈 전설을 갖고 있는 강이다.
그래서였을까? 도시를 보호하려는 듯 메테히 성당 옆 언덕에는 '골가사리왕의 동상'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왕이 바라보고 있는 눈길을 따라가보니 트빌리시의 구시가지 전경이 눈에 들어온다.
성당의 이름, '메테히Metekhi'라는 말은 '궁정 주변 지역'을 의미하는 단어로 이 성당 또한 가슴아픈 구구(久久)한 역사를 지닌 채 지금 이 자리에 서있다.
몽골의 침략으로 흔적을 모두 잃기도 했고 그 후 다시 복원되었지만 성당이 아닌 요새로 사용 되었다. 이후 19세기 러시아가 조지아를 통치할 때에는 교회의 기능이 완전히 상실된 막사로 사용했고 심지어는 감옥으로도 사용했다가 1938년에 폐쇄되었다고 하니 순탄치 못한 역사이다. 하지만 감옥이 폐쇄되었다고 바로 교회의 기능이 복원된 것은 아니고 극장의 용도로 사용하던 중 조지아의 애국자들과 시민들의 저항에 못이겨 비로소 1988년 교회의 기능을 하게 되었다는 탈이 많은 사연을 가진 메테히 성당이다.
특이한 형태인 돔 모양을 하고 있는메테히 성당은 어제 방문했던 시오니 성당에 비해 매우 소박했지만 동쪽 창을 통해 들어오는 아침 햇살은 성당 내부를 더 성스러운 분위기로 만들어준다.
성당 외부에도 아담한 정원이 있을 뿐 넓지 않다. 다만 높은 곳에 위치한 성당이다보니 어디 막힌 곳 없이 트빌리시 시내와 쿠라강을 내려다 볼 수 있어서 가슴이 확 트인다. 이 곳이 요새로 사용된 이유를 알것 같다.
성당에서 내려와 점심식사를 할 계획이었으나 남편은 어제 했던 온천욕을 또 하고 싶단다. 대신 나는 올드타운을 산책하기로 하고 우린 1시간 후 만나기로 했다.
혼자서 천천히 올드타운을 둘러보니 여유가 생기고 한적한 느낌마저 든다.
어제 가이드와 함께 다녔던 walking tour에서 가보지 않았던 새로운 길을 찾아 걸으니 이름난 유적지가 없는 구역이라 그런지 사람들의 발길도 뜸하다.
한 낮에 걷는 올드시티 골목길은 고요 그 자체다.
좁은 골목길을 걷다보니 낡은 오래된 집들과 고르지 못한 울퉁불퉁한 도로들이 여기저기 남아있다. 오래 전 트빌리시 마을의 분위기가 어렴풋하게나마 그려진다.
올드 트빌리시의 옛 분위기와 정취를 느끼기엔 오히려 지금의 산책이 더 나을 듯도 하다. 이름난 성당이나 유적지는 없지만 트빌리시 뒷골목 좁은 길에는 아직은 남아있는 과거의 흔적들로 인해 오래전의 트빌리시를 더 실감나게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올드 타운(올드 트빌리시)은 중요한 건축물뿐 아니라 도시적 가치를 보존하기 위해 세 차례(1998, 2000, 2002년) "세계 기념비 감시World Monuments Watch"에 등재되기도 했었다. 하지만 2010년부터 트빌리시의 시장은 이 곳을 관광객들에게 매력적으로 보이게 하기 위해 낡은 집들과 자갈이 깔린 거리를 새롭게 포장했다고 한다.
가치와 매력은 단지 편리하고 보기 좋다고 느껴지는게 아닌데.... 많이 안타깝다.
남편을 만나서 함께 점심식사를 하러 가는 길에 벼룩시장 (Dry bridge market)에 잠시 들렀다.
가정에서 사용하던 그릇과 도자기들, 직접 만든 아기자기한 장식품과 소품들, 카메라, 연장, 심지어는 뱃지와 훈장 등을 펼쳐놓은 사람도 있다.
그런데 뱃지와 훈장은 누가 살까?
한쪽 그늘에서는 오래된 책들과 LP판을 펼쳐놓은 채 의자에 앉아 책을 읽으며 손님을 기다리는 할아버지도 보인다. 근데 손님을 기다리는 건지, 책을 읽을 목적으로 나온건지 잘 모르겠다.
넓은 광장에선 그림도 팔고 있다. 트빌리시에서는 화가들이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는데 독특하고 멋진 그림들이 많다.
하지만 벼룩시장은 북적거리거나 번잡한 분위기는 전혀 아니고 오히려 시골 주민들이 서로 안부를 물으러 만난 분위기마냥 소박하고 정겹다.
대부분의 물건들이 내가 보기엔 살 물건도 팔 물건도 아닌 것 같다. ㅎㅎ
점심식사는 David Aghmashenebeli 거리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먹기로 했는데 ' David Aghmashenebeli'는 조지아를 침략했던 이슬람 세력과 용감히 싸운 조지아의 왕이다.
이 거리는 19세기 트빌리시의 고전적인 건축물이 남아있는 거리로 유명하며 유럽식 레스토랑이 많고 터키음식점과 퓨전스타일의 레스토랑이 모여있는 곳이다. 방금 전까지 머물렀던 올드타운과는 정반대의 분위기를 풍기는 세련되고 화려한 거리이다.
어제 아침 바케공원 가는시내버스를 타고 가며 프랑스의 거리 같다고 생각한 곳이 바로 이 거리였던 것이다.
이 곳은 음식값도 다른 곳에 비해 다소 비싸다. 하지만 여행 중 한 두끼 쯤은 이런 호사를 누려도 되지 않을까?
다행히 우리가 선택한 레스토랑에서의 점심식사는 맛나고 서비스도 아주 훌륭했다.
식사 후 우리는 소비에트시절 직물공장으로 운영되던 곳을 개조하여 예술공방(지하), 카페와 레스토랑, 편집샵(1층), 그리고 게스트하우스(2층)로 리모델링하여 운영되고 있는 곳을 방문했다.
보통" Fabrika"로 부르는 곳인데 예전에 직물공장이었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여진 듯 하다.
이 건물이 재탄생하게 된 이유는 조지아의 젊고 자유로운 예술가들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어 공유하고 실행할 수 있는 플랫폼이 되길 바라는 목적으로 변형된 것이라고 한다. 그러고보니 건물 전체가 젊은 아티스트들의 흔적이 보인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벽을 뒤덮고 있는 graffiti들이었다.
자신들의 존재와 흔적을 남기고 싶은 마음에 표현한 걸까? 아님, 그림으로 그들의 갈망을 표현하는 걸까?
설마 무단으로 그려놓은 건 아니겠지?
조금은 화려하기도 하고 의미를 찾기 어려운 난해한 그림들에 불편한 마음도 있었지만 자신의 생각과 신념을 개성있는 예술로 표현하고 주장하려는 그들의 시도에 박수를 보내고도 싶다.
이 장소는 한마디로 젊은이들이 모여 활동하고 즐기는 핫한 장소이다.
개성있는 옷차림을 하고 이상야릇한 색으로 염색을 한 야한(단지 나의 주관)차림의 젊은 이들도 눈에 띈다. 둘러보니 우리 부부만 동떨어진 옷 차림 행색을 하고 다니는 이방인이 된 느낌이다.
지금까지 둘러본 장소와는 다른 낯선 장소를 방문하게 되니 러시아의 연방국에서 독립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이 나라에도 서구의 물결이 많이 스며들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곳을 떠나면서 혼잣말로 "나는 이런 곳이 조금은 부답스럽네."라는 내 말에 남편은 "우리가 그들을 이해 못하는 걸꺼야. 우리는 틀을 벗어나는 걸 두려워하는 사람들이고 요즘 젊은 예술가들은 틀을 깨려고 하니까"라며 그들을 대변하듯 말한다.
듣고보니 그런 것도 같다.
Fabrika를 나와 마트에서 저녁거리를 사고 숙소에서 간단히 만들어 먹은 후 '사메바 성당The Trinity (sameba) cathedral'에 가기로 했다.
사메바 성당까지는 시내버스로 이동했다. 성당에 도착했을 땐 이미 깜깜한 밤이었다.
깜깜한 어둠에서 화려한 빛을 발하는 사메바 성당을 보는 순간 걸음이 멈추어졌고 내 눈에서는 나도 모를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왜? 무슨 이유로?
난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서도 눈물의 이유를 생각해 보려 했지만 이유를 찾을 필요가 없는 눈물이었다. 예술과 종교 그리고 humanity... 모두가 합쳐진, 그렇지만 설명할 수 없는...
그래서 더 의미있는 눈물이었다.
한편으론 다행이다. 남편이 내 눈물을 보지못해서..
사메바 성당은 세계에서 세 번째로 높은 동방 정교회 성당이며 총 면적으로 볼 때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종교 건물 중 하나라고 한다. 조지아의 전통적인 교회양식과 함께 비잔틴 양식도 섞여있는 성스럽고도 고결하면서 아름답기까지 하다.
1989년 조지아 정교회에서는 '홀리 트리니티(holy trinuty) 대성당 프로젝트'를 위한 국제 대회를 개최했고 그 결과 건축가인 'Archil Mindiashvill'의 디자인이 선택되었다. 하지만 그 후 조지아에서 시민 소요로 인해 성당 건설 계획이 6년동안 연기되었고, 1995년에 이르러서야 계획을 수립하여 2004년에 완공된 성당이다.
나의 주목을 끌었던 건 이 성당은 대부분 시민들의 익명의 기부로 후원되어 완공되었다는 것이다.
트빌리시 시민들에게 이 사메바 성당이 어떤 의미로 다가올지 이해가 된다.
나는 대부분의 조지아 사람들이 성당을 지나갈때마다 성호를 긋고 지나가는 걸 쉽게 볼 수 있었다. 하물며 자신들의 기부로 지어진 성당을 볼때마다 드는 뿌듯함과 자부심 그리고 종교에 대한 절대감은 어떠할까?
가이드의 설명처럼 조지아 인들은 세계에서 두번째로 종교적인 민족이라고 했던 말이 이해가 간다.
그런데 제일 종교적인 민족은 누구라고 했지? 기억이 가물거린다.
늦은 시각에도 예배를 보러 오는 시민들이 있다. 가족끼리, 그리고 혼자서 조용히 예배를 드리고 간다.
무엇을 신에게 빌었을까?
나도 조용히 신에게 빌어본다.
내가 오늘 경험한 트빌리시는 화려하지도 않은, 세련되지도 않은 순수하고 꾸밈이 없는 도시였다.
빼어나게 잘 다듬어진 관광장소도 없었다.
그저 도시 이곳 저곳에서 소중한 보물들이 하나 둘씩 수줍게 나타나 치장하지 않은 맨 얼굴로 보여주는 정감이 가는 순박한 도시였다.
조금씩 트빌리시를 알아가는 것 같다.
아니, 조금씩 내가 트빌리시에게 빠져드는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