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담소 Jul 19. 2021

기억하고 싶은 도시, 트빌리시!

 이틀 연속 이른 아침부터 밤늦은 시간까지 쉬지 않고 돌아다닌 탓에 내 몸이 충전을 필요로 하는지 몸이 무겁다. 

순리에 따르기로 했다. 몸이 망가지면 이제 시작인 여행에 큰 차질이 생기기 때문이다.

숙소에서 여유 있게 브런치까지 한 후 숙소를 나섰다.

오늘 스케줄은 수목원(Tbilisi Botanical Garden)과 나리칼라 요새(Narikala Fortress)를 방문하고  마지막으로 트빌리시의 야경을 보기로 했다.


우리는 나리칼라 요새와 연결되어 있는 수목원(Botanical Garden)으로 향했다.


유황온천 마을 근처의 폭포

수목원이 온천마을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기 때문인지 가는 길 내내 유황의 특이한 냄새가 따라왔다.

10여분 걸었을까? 

과거의 유적지가 발굴되어 거리 한쪽에 전시된 장소가 보였고 크지 않은 폭포(sulfur bath fall)도 만나게 되는데 도시 한가운데 이런 폭포가 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하지만 흥미로움도 잠시, 무너져가는 듯 보이는 절벽 위에 놓여 있는 건물들이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것 만 같아 아슬아슬하다. 

안전불감증이라도 걸린 걸까? 

보는 이들에게 조차 불안감을 느끼게 하는 상황이 안타깝다.




보태니컬 가든 가는 길과 유적지



수목원의 입구는 나리칼라 요새의 기슭에 위치하고 있었다. 

이곳은 1700년 경에 처음 만들어지기 시작했으며 "fortress garden"과 "Seidabad garden" 등으로 불리기도 했다. 하지만 페르시아 침략으로 그 기능을 못하다가 19세기 초에 부활하여  1845년에 식물원( Tiflis Botanical Garden)으로 공식적으로 설립되었다고 한다.

면적이  160헥타르(약 48만 평)나 되는 넓은 가든인데도 정원을 정성 들여 가꾼 흔적이 보인다. 

이름을 모르는 다양한 나무들과 꽃들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고 곳곳을 산책하기에 주변이 말끔하게 정비되어 있는 덕에 걷고 있는 동안 내내 상쾌했다. 하지만 눈앞에 늘어서있는 나무들과 꽃들에 대해 이름도 특징도 전혀 모르는 채 아름답다라고만 중얼거리는 내가 오늘처럼 바보로 생각될 줄이야... 아는 식물은 단 몇 개뿐 모르는 식물이 태반이니 속상하고 답답했다.  

사실, 그때 당시 알았다 해도 다시 볼 땐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게 요즘 나의 뇌 상태다. 

나이 탓으로 돌리는 것도 한두 번이지... ㅠㅠ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없는 나무들을 만나니 신기하고 새롭다. 특히 하늘을 향해 높게 자라나는 나무(내 생각엔 사이프러스cypress인 듯)들이 많은 걸 보니 이 정원엔 침엽수가 많은 가 보다. 


Botanical garden


수목원을 걷다가 외국의 정원들이 한 구역에 전시되어 있는 곳을 발견했다. 각 나라들 정원의 특징을 알 수 있게 조성해 놓았다. 

아시아 국가 중에서는 나무와 바위, 연못들로 아담하게 구성된 일본의 정원이 꾸며져 있었는데,  '한국의 정원도 함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과 함께 한국의 정원은 어떤 특징을 살려 꾸며놓을까? 하는 궁금증도 생긴다.




정원에서 나와 나리칼라 요새(Narikala fortress)로 올라갔다. 많은 관광객들이 나리칼라 요새를 케이블카로 올라가지만 요새 기슭에 보태니컬 입구와 연결되어 있는 길로 갈 수도 있다. 

비록 가는 길은 험난했지만 그래도 걸어갈 정도는 된다.

 "접근 불가능한 요새'라는 의미를 지닌 나리칼라 요새는 4세기에 지어졌다. 깎아지른 듯 한 절벽 위의 성곽은 과거에 이곳이 요충지였음을 짐작하게 했다.

현존하는 요새의 대부분은 16세기와 17세기에 지어진 것이며, 1800년대 초에 있었던 지진으로 요새의 일부가 손상되어 없어진 것도 있다고 한다. 

걷다 보니 난간이 없어 위험한 곳도 많고 성벽의 일부가 심하게 파손되어 있는 곳도 눈에 많이 띈다. 보수를 안 하는 건지, 못하고 있는 건지...

무너지고 파손된 곳의 둘레를 막아 안전에 신경을 써야 할 듯한데 내 생각엔 이런 것까지 세세하게 신경을 쓰지 않는 듯한 아쉬운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나리칼라 요새에 오르면 트빌리시의 아름다운 전경과 쿠라강을 내려다볼 수 있는데 그 경관이 압권이다. 어떤 지리학자들은 쿠라강을 기준으로 유럽과 아시아로 나눌 수 있다고도 하던데... 그래서 그런가? 

트빌리시란 도시가 나에겐 여전히 아리송하다.


나리칼라요새에서 내려다본 트빌리시와 쿠라강

나리칼라 요새 정상에는 20m 높이의 '조지아의 어머니상'으로 불리는 카틀리스 데다(Kartlis Deda)의 기념물이 서 있다. 한 손에는 와인을 담는 그릇을, 다른 손에는 긴 칼을 들고 있는 그녀는 조지아의 풍요를 기원하고 전쟁에서는 승리를 지키려는 강한 의지를 품고 트빌리시 도시 전체를 굽어 내려다보고 있었다. 

트빌리시 시민들은 수호신처럼 느껴지는 이 상을 바라보고만 있어도 안심이 될 것 같다. 


조지아의 어머니상(Kartlis Deda)

이 기념상을 보고 있노라니 문득 조지아의 여성의 역할에 대해 호기심이 생긴다. 

기념상을 보고 있을땐 여성은 보호되는 대상이 아닌 남성 못지않게 강인한 여성을 의미한다는 생각이 들지만 한편으로는 교회 내부를 들어갈 땐 모든 여성이 여전히 스카프를 반드시 두르고 입장을 해야 했으며 심지어는 치마를 입는 걸 요구할 때도 있었던 걸 생각하면 여성에 대한 조지아 인들의 생각이 궁금하다. 

나라와 종교를 분리해서 생각하는 걸까? 




인형극장(Gabriadze Theater)의 시계탑

서서히 어둠이 내려와 요새를 떠나야 할 시간이 되었고 저녁식사도 할 겸 올드타운에서 유명한 동화에서나 볼 것 같은 독특한 모양의 시계탑을 찾아갔다. 이곳은 인형극장(Gabriadze Theater)으로 최초로 조지아의 인형극장이 된 곳이었다. 

이 극장의 시계탑은 매일 정오와 오후 7시에 인형들이 시간을 알리며 짧은 공연을 하는 귀여운 시계탑이다.  

춤을 추는 마리오네트를 구경하러 온 사람들인지 극장 근처의 레스토랑엔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늦게 도착한 탓에 인형극을 볼 수 없어 아쉬움이 컸다.





식사를 마치고 숙소로 가는 길,  트빌리시의 야경이 그윽하다.

어두운 밤, 조명에 비친 나리칼라 요새가 더 고혹적이다. 

오늘 오후에 방문했을 때의 나리칼라 요새는 나라를 지키는 방어시설로 그 역할을 다했다고 생각했지만 밤이 되어 다시 보니 삭막한 요새가 아닌 신비하고 아름다운 성채처럼 보인다. 

한쪽에 외롭게 서있는 조지아의 어머니상도 더한층 위세와 엄숙함이 풍겨져 나온다. 

그 아래에선 LED조명을 받은 평화의 다리가 쿠라강과 함께 어우러져 빛을 발하고 있다.

 쿠라강은 화려함을 뒤로 한채 그저 유유히 흐르고 있다.

모든 걸 포용하듯이... 모든 걸 감내하듯이...


트빌리시의 야경은 지금까지 보아왔던 어떤 도시의 야경보다도 화려하지 않았지만 이 도시가 겪어야 했던 과거의 흔적과 이를 딛고 일어난 그대로를 보여주듯 처연한 느낌마저 든다. 

트빌리시의 야경




숙소로 오는 길엔 트빌리시에서의 마지막 밤을 와인과 함께 하고 싶은 마음에 조지아 와인을 샀다. 

밤공기도 좋고 숙소와도 가까운 거리라서 우리는 산책하듯 걷기로 했다. 

낯선 도시의 밤거리를 여행자들이 걷기에 위험할 수 있지만 내가 경험한 트빌리시는 안전한 도시였다. 

낯선 여행자들을 스스럼없이 받아들이는 데엔  아직은 다소 무뚝뚝하고 세련되지 못하며 가끔은 서툴다고 생각될 때도 있었지만 그런 이유로 나는 오히려 이들이 순수하고, 꾸밈과 가식 없는 선한 사람들로 생각되었다.  

비록 아직까지는 여행자들을 위한 완벽한 도시는 아닐 지라도 이들이 가지고 있는 아름다운 자연과 전통, 역사, 그리고 그들이 지켜낸 종교의 가치 만으로도 트빌리시는 분명히 많은 사람들이 오고싶어하는 도시가 될 거라고 믿는다.

밤 10시가 넘은 밤 골목인데도 여성들이 많이 걸어 다니고, 가로등 켜진 환한 모퉁이에서는 어린아이들이 공놀이를 하며 놀고 있는 걸 보니 마음이 편해지고 기분도 좋아진다. 




숙소에 도착해  와인을 마시며 남편에게 물었다.

" 첫날 우연히 만난 한국인 부부가 했던  '떠날 때쯤이면 이곳이 좋아질 거라던 말..... '

맞는 말 같아요? "

그러자

 "응" ,

 "나도.."  

 ^*^

이렇게 트빌리시에서의 마지막 밤이 지나가고 있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