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9시, 트빌리시 공항에서 자동차 렌트를 하기로 했는데 우리가 렌트하려는 업체의 문이 아직 닫혀있다.
문이 열릴 때까지 기다리는 동안 공항의 information 센터에 있는 직원에게 우리가 오늘 방문하려는 장소에 대해 물어보자 그 지역의 수도원은 갈 수 없다고 한다. 무슨 말인지!
우리는 수도원의 위치가 표시되어 있는 구글 지도를 내어 보여주니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다행히 그 수도원은 방문이 가능할 거라고 한다. 그러면서 지도를 꺼내더니 길을 안내한다.
그런데 우리가 이용하려 했던 구글 지도와는 다른 길로 안내를 하는 게 아닌가!
그 이유는 방문하려는 그 근처가 아제르바이잔 국경과 접해있는 지역인데 현재 조지아와 아제르바이잔 국경 근처 분쟁이 자주 일어나서 통제하고 있다며 다른 길로 돌아가라고 한다.
오늘 트빌리시를 떠나 우리가 가려고 하는 수도원은 6세기 수도사 Davit에 의해 세워졌으며 조지아 남동쪽 이오리 고원에 있는 암벽 수도원 '가레지 수도원(Davit Gareji Monastry)'이다. 'Gareji'는 '박해'를 의미한다고 한다.
이곳은 트빌리시에서 약 70여 km 떨어져 있는 곳(방문 장소까지 약 2시간 30분 정도 걸린다.)으로 아제르바이잔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고 가는 길 또한 잘 정비된 길이 아닌 비포장도로가 대부분이었다.
하물며 그 지역이 분쟁지역으로 위험한 지역이다 보니 방문하는 게 옳은지 잠시 망설여지기도 했지만 결국 우리는 안내원이 지도에 그려준 길(한참 돌아가야는 길)로 선택하여 방문하기로 했다.
다비드 가레지 동굴수도원
무엇보다 조지아 인들이 가장 신성시하는 수도원 중의 하나로 이곳을 세 번 방문하면 예루살렘 성지순례를 한 것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고 믿는 수도원이다. 허허벌판에 있는 이 수도원을 지키기 위해 조지아 인들이 오랜 투쟁을 통해 지켜낸 수도원이라는 점, 특히 제대로 된 건물이 아닌, 먹을 것도 마실물도 없는 척박한 땅 끝에 바위 동굴을 파고 기거하면서 수도생활을 한 곳으로 유명하니 이런 이유만으로도 충분히 방문해 볼 가치 있는 수도원이라고 생각했다.
이 수도원 외에 몇 개의 수도원이 더 있는데 이 중 몇 곳은 아제르바이잔 영토에 속해있는 수도원이기 때문에 아제르바이잔과 조지아 사이의 영토 분쟁이 자주 일어난다고 했다. 더구나 조지아는 기독교 국가이지만 아제르바이잔은 철저한 이슬람 국교이기 때문에 종교 때문이라도 더 예민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조지아는 이 수도원 단지의 영토를 온전히 영유하기 위해 아제르바이잔에게 다른 땅과 교환을 요구했지만 아제르바이잔은 수도원 단지의 전략적 중요성 때문에 거절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마침내 귀국할 때까지 우리가 운전하며 타고 다닐 자동차를 빌렸다.
사실 우린 조지아를 여행하기 위해 몇 개월 전부터 이 지역에 대해 공부를 했고 숙소를 정하고 렌트할 차를 미리 계약했다. 그 덕분에 숙소는 물론 조지아에서 우리가 타고 다닐 차도 아주 저렴한 가격으로 빌릴 수 있었다. 자동차 렌트비가 하루 만원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ㅎㅎ
낯설고 도로 상황이 썩 좋지 않은 조지아의 여러 도시를 우리와 밤낮으로 함께 다녀야 하는 이 녀석(렌터카)에게 사랑을 듬뿍 주어야겠다.
오랜 기다림과 갈등 끝에 우리는 다비드 가레지 수도원으로 출발했다.
트빌리시가 수도라 그런지 도로를 다니는 차들이 많긴 많다. 하지만 놀랍게도 대부분 노후된 차들이다. 범퍼가 없는 차들은 물론 녹이 슬어 거의 폐차할 지경이 된 차, 한쪽이 부서진 채 다니는 차들도 많다. 심지어는 자동차 내부의 부속품이 보일 정도의 심하게 파손된 차량도 트빌리시 시내 한복판을 달리고 있다. 자동차란 그저 이동수단일 뿐이라는 생각이 전부인 것처럼....
그런데 문제는 지켜야 할 신호등과 차선을 무시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고 과격하게 운전하는 사람들도 만나다 보니 운전경력 30년이 다 되어가는 나 조차도 운전하기가 무서워진다.
서둘러 트빌리시를 빠져나가는 수밖에.....
트빌리시를 벗어나니 그 많은 차들이 어디로 갔나 싶을 정도로 한적하다.
카헤티 지역에 들어서니 가도 가도 끝이 없이 길 양쪽 모두가 포도 농장이다. 광활한 포도농장 풍경이 지루해질 때가 되면 도로를 건너가는 양 떼가 이따금씩 나타나 가끔씩 운전을 멈추게 한다.
양들이 모두 지나갈 때까지 기다렸다가 가는 것도 괜찮은 일이다.
영뗴를 몰고 가는 목동
가레지 수도원까지 가는 길에는 지나다니는 차를 거의 볼 수 없었다. 하지만 대부분 도로가 비포장 도로였고 며칠 전 비가 왔던 탓인지 물 웅덩이가 여기저기 깊게 파여 있어 운전이 위험한 순간이 많았고 그때마다 우리 차가 잘 버텨줄지 불안하기도 했다.
과거엔 이 지형이 바다였다고 하는 가레지 수도원 가는 길은 그 자체가 한 폭의 그림이었다. 고요함과 쓸쓸함이 포함된 그림 같은 풍경!
끝없이 펼쳐져 있는 평원이 사막처럼 보이기도 하고 초원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토록 드넓은 평원을 본 적이 언제였던가..
가슴이 뻥 뚫린다. 머리가 상쾌해진다.
가레지 수도원 가는길에 있는 소금호수
점차 평원의 풍경이 산악지형으로 바뀌기 시작하면서 이오리 고원 지대에 들어선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고원의 모습은 지형을 통해 추측할 수 있었다. 하지만 주위엔 바람과 황량함 뿐이다.
광활함..... 그리고 쓸쓸함과 함께 슬며시 '숭고'라는 단어가 떠오르는 건 무슨 이유일까?
싸늘하고 윙윙거리는 바람소리에 스산함마저 느껴진다.
다비드 가레지 수도원 가는 길
3시간 가까이 운전해서 드디어 다비드 가레지 수도원(Davit Gareji Monastry)에 도착했다.
수도원을 마주하는 순간 나에게 여러 생각이 떠올랐다.
'왜 척박한 이런 곳까지 와서 수도 생활을 해야 했을까?
황량하고 광활한 자연 속에서 인간의 나약함을 느끼고, 겸손을 배우고, 내가 아닌 타인을 우선하는 그런 절실함이 생길 때만이 절대자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이었을까?'
다비드 가레자 수도원을 지키는 망루
다비드 가레지 수도원 동굴과 내부
다비드 가레지 수도원은 몽골 침입에 의해, 그리고 이슬람교도들에 의해 수백 명의 수도사들이 죽음을 당한 후 결국 파손되었다. 그 후에 복원되었지만 러시아의 볼셰비키 정권 때에는 수도원을 다시 폐쇄했다. 이후 소련이 아프가니스탄과 전쟁 당시 이곳을 군대 훈련장으로 사용하자 대중들의 분노가 일어났고 이에 소련은 훈련장을 폐쇄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조지아가 소련으로부터 독립한 후에도 조지아의 국방부는 이 지역에서 군사훈련을 재개하여 민중들의 강렬한 항의는 물론 조지아 NGO단체가 군사 작전을 차단하는 등 지속적인 투쟁과 방어를 하자 결국 조지아 정부는 대중의 요구를 받아들여 군사훈련을 폐지하고 다시 수도원으로 복원시켜 주었다.
조지아 인들이 이렇게 외진 곳에 있는 동굴 수도원을 그토록 지키려 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거칠고 메마른 환경 속에서 수도생활에 정진하고 신실한 기독교 신앙을 지켜낸 수도사들이 위대할 뿐이다.
아울러 자신들의 종교를 지키려 노력한 조지아 인들의 강한 의지, 그들의 종교에 대한 절대적 믿음과 그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종교의 힘을 다시 한번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곳을 방문한 사람들 중엔 수도원 주변의 고원을 트레킹 하는 사람도 있다. 우리에게 트레킹을 권하지만 자신이 없다. 좀 더 젊었을 때 방문할 걸~~ㅠㅠ
점심식사 시간을 훨씬 넘어서야 우리는 수도원을 출발했다.
황량한 이 고원에 식당이 있을 리 없고 하는 수 없이 이동을 하다가 처음 눈에 띄는 마을에 들러 레스토랑을 찾아보기로 했다.
마을에 들어가니 다행히 레스토랑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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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작은 마을에 유일한 레스토랑인지 점심시간이 한참 지난 후인데도 꽤 사람이 많다.
식사 후 우리는 오늘 우리가 머물 시그나기(Sighnaghi)로 향했다.
시그나기는 카헤티주에 속하는 마을로 운전을 하고 오면서 가장 많이 눈에 띈 표지판은 여기저기 걸려있는 '와인 갤러리'였다. 그래서 그런지 길 양쪽엔 가정에서 직접 만든 츄르츠헬라와 포도주 그리고 갓 딴 딸기를 팔고 있다. 잠시 들러 싱싱하고 저렴한 딸기를 샀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가격이 저렴한 것은 아니었다.ㅎㅎ
도로 양쪽에 있는 포도 농장과 가게
약 3시간 남짓 운전했을까?
드디어 눈 아래 저 멀리 언덕 자락에 위치한 아름다운 시그나기(Sighnaghi)마을이 보인다. 마을이 보이는 순간 저절로 차를 멈추고 내려 사진을 찍게 된다. 어쩌면 저리도 아담하고 예쁠까?
마치 요정이라도 살고 있는 듯 파란 하늘 아래 붉은 지붕이 오밀조밀 모여있는 작은 마을..
해발 800m 위의 가파른 언덕에 위치한 시그나기는 광활한 알라자니 계곡을 내려다보고 있으며, 코카서스 산맥이 멀리서 보인다. 정말 한 폭의 수채화처럼 아름답다.
시그나기는 조지아의 가장 동쪽에 있는 마을이며 조지아에서 가장 작은 도시 중 하나이다. 또한 와인 재배 지역의 중심이며, 마을 전체가 그림 같은 풍경, 파스텔 색으로 칠해진 집들, 자갈길로 된 좁은 골목들이 많아 아름다운 관광지로 꼽히는 마을이다. 물론 마을 전체가 유네스코로 지정된 마을이다.
'시그나기'라는 말은 피난처(shelter 또는 asylum)를 의미하는 syghynak의 오래된투르크어단어에서유래했다. 한때 시그나기는소련의농업중심지가 되어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기도 했으나 지금은 적은 수의 주민들이 모여 살면서 관광업으로 유지를 하고 있다.
우리가 이 도시를 방문한 이유는 붉은 지붕과 파스텔톤의 집들이 언덕 위에 자리 잡아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을 선사하기 때문이며, 조지아 정교회 신앙의 중심이 된 니노의 무덤이 안치된 보드베 수도원을 방문하기 위해서다.
또 한 가지는 우리나라 가수가 불러 유명해진 "백만 송이의 장미" 노래와 관련된 화가 "니코 피로스마니(Nico Pirosmani)"가 시그나기 인근 마을에서 살았으며 그의 작품들에 있던 인물들이 동상으로 만들어져 이 마을에 설치되어 있다는 흥미로운 이유에서였다.
화가 '니코피로스마니'는1918년5월5일죽는 날까지 도 지하실에서 머물다 기아와 질병으로 사망한 비운의 화가이며 그의 무덤이 어디 있는지도 모른다고 한다.
근데 니코 피로스마니가 조지아 지폐 1라리에 있는 사람이란 걸 나중에서야 알았다.
시그나기 마을에 있는 니코 피로스마니의 작품에 나오는 동상들
우리는 시그나기 마을로 들어서기 전 약 2km 정도 떨어져 있는 보드베 수도원으로 먼저 향했다.
성 니노(S. Nino)는 조지아에 기독교 전파를 위해 헌신한 성녀이다. 그녀는 조지아 인들이기독교로개종하는것을 보고 난 후보드베의 계곡으로 들어가 그곳에서 생을 마감하는데그녀의죽음직후, 미리안왕은 이곳 보드베에수도원을짓기시작했다. 그래서 지어진 것이 보드베 수도원이다.
이 수도원은 성녀 니노의 유적과 성골함이 안치되어 있는 곳으로 유명하며 조지아의 주요 기독교 성지 가운데 하나이다. 결과적으로 성 니노는 조지아 정교회에서 가장 존경받는 성인 중 한 명이 되었고 그녀의 포도나무 십자가는 조지아 기독교의 상징이 되고 있다.
보드베 수도원
보드베 수도원 뒷 정원 과 알라자니 평원
보드베 수도원 뒤쪽으로 나있는 계단을 내려가 약 20여분 정도 숲 속을 걸어 샘터에 도착했다.
'니노의 샘물'이라는 곳으로 이곳의 샘물을 마시면 치유의 효과가 있다고 해서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는 곳이다. 하지만 도착해서 보니 아무도 없고 쓸쓸히 샘물만 졸졸 흐르고 있었다.
우리는 샘물을 마시며 치유를 기대하고 아울러 기도도 했다.
여행을 끝까지 무사히 마칠 수 있도록.......
보드베 수도원 샘터 가는 길 과 샘터
어느덧 아름다운 이곳에도 어둠이 내려온다.
시그나기에서 머물던 숙소
서둘로 시그나기로 향했지만 마을 입구부터 계속 오르막길이 이어지는 걸 보니 마을이 한참이나 높은 곳에 위치해있다.
그런데 더 큰 어려움은 지도를 보고 숙소를 찾아가는 일이었다. 좁은 골목들이 많아 차가 마음대로 오고 가기가 쉽지 않았고 특히 골목끼리 연결된 길들이 지도와 다른 길이었기 때문에 몇 차례 노력했지만 도저히 찾아갈 수가 없었다.
결국 숙소에 전화를 해서 도움을 받아야 했다. 친절하게도 숙소 주인의 아들이 나와주었고 우리는 그가 운전하는 차를 따라가야 했다.
그런데 알고보니 우리가 묵을 숙소는 구글 지도에 표시될 수 없는 위치에 있는 숙소였다.
우리는 짐을 풀고 잠시 쉬었다가 시그나기의 멋진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레스토랑"The Terrace restaurant"이 있다고 해서 그곳을 찾아가기로 했다.
지도를 보며 가지만 걸어 찾아가는 길이 쉽지 않았다.
한참을 걸어 올라가니 외진 곳에 레스토랑이 있다. 저녁식사와 함께 와인도 마시고 싶어 차를 두고 온 건데 차를 가져왔더라면 또 길을 헤맸을 것 같았다.
레스토랑에서 본 시그나기 밤 전경
오후에 본 시그나기도 아름다웠지만 눈앞에 펼쳐진 밤에 보는 시그나기도 꽤 낭만적이다.
마음을 홀리는 불빛으로 어둠 속에서 드러내고 있는 시그나기가 꽤 매력적이다.
휴가철이 아니라 그런지 레스토랑엔 우리가 유일한 손님이다.
송어요리를 추천하는 주인의 말에 송어요리와 스테이크를 주문했고 와인 그리고 시그나기의 밤 분위기와 함께 멋진 저녁식사를 했다. 유달리 오늘은 더욱 와인에 취하는 기분이다. 분위기 탓인가?
하지만 행복한 시간은 거기까지였다.
식사를 마칠 때쯤 숙소로 돌아올 일이 걱정이었다. 레스토랑 근처에는 민가는 물론 상가도 전혀 없는 외딴 길에 동떨어진 이 레스토랑 하나뿐이었고 길에는 가로등도 전혀 없는 칠흑같이 어두운 밤이었기 때문이다.
저녁식사를 하러 올 때는 지도를 보며 힘들게 찾긴 했지만 깜깜한 밤이 되니 걸어 숙소까지 돌아갈 자신이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웨이터에게 사정을 얘기하고 택시를 불러달라고 부탁을 하자 이곳까지 이 시간에 택시는 올 수없다고 한다. 헐~~
잠시 후 식당 주인의 아들이 우리에게 오더니 걱정 말라며 선뜻 숙소까지 차로 데려다주겠다는 것이다.
아~~!
구세주가 바로 우리 눈앞에 있었다. 성 니노께서 우리를 지켜주시려는 건가!!
우리는 식당 주인의 아들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숙소까지 가는 중 잠시 얘기를 나눌 수 있었는데 그는 부모님을 돕기 위해 잠시 시그나기에 와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많은 나라를 여행하고 있다고 했는데 한국도 꼭 가보고 싶은 나라라고 했다.
숙소 근처까지 안전하게 내려준 그에게 감사의 표시를 하려 했으나 극구 사양을 한다. 말로만 고마움을 표현할 수밖에 없어서 많이 미안하고 고마웠다. 참 친절한 사람들이 많다. 기분이 좋다.
밤공기가 상쾌했다. 숙소로 들어가기 전 밤거리를 잠시 걷기로 했다.
가로등만이 길을 밝히고 있는 쓸쓸하고 조용한 골목과 아무도 없는 메인 거리 중앙 광장에는 화려한 분수만이 활기차게 물을 뿜어댄다.
화려하지만 쓸쓸하다.
오늘은 여섯 시간 넘게 운전을 하며 먼 곳까지 다녀왔다. 낯선 장소에서의 운전은 쉽지 않았지만 조지아 인들의 종교에 대한 진실된 마음과 따뜻한 인간미를 느낀 하루였다.
내가 느끼기엔 조지아 인들에게 있어 종교는 부분이 아닌 삶의 전체였으며, 그들은 거짓없이 진심으로 친절을 베푸는 사람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