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중반 남자 4명의 남미 배낭여행기
마추픽추로 가는 길, 잉카레일
짧은 새 정들었던 유적을 뒤로, 아구아 깔리안떼로 가기 위해 기차역으로 향했다. 기차역으로 가는 길을 잘 알리가 없었다. 초행길을 걷는 나그네처럼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물으며 길을 찾았다. 특이하게도 이곳에는 인력거가 있었다. 햇살도 강하고, 배낭도 있겠다, 길을 모르는 우리는 냅다 인력거를 타보기로 했다. 2명씩 나누어 탔는데, 성인 남성 두 명에다가 무거운 배낭을 두 개씩 끄시는 기사분이 고생하였다. 가격은 생각보다 저렴했다. 물론, 짧은 거리였지만 덕분에 편하게 기차역까지 잘 올 수 있었다. 가는 길의 풍경은 마치 시골 같았다. 관광지를 제외하면, 기차역까지는 일반 시골길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렇게 잉카 레일 기차역에 도착했다.
기차역에는 마추픽추로 향하는 한국인들이 보였다. 한국인은 언제나 한국인을 알아볼 수 있는 것 같다. 기차표를 끊고 근처 카페에서 생과일주스를 마시며 휴식을 취했다. 기차역은 생각보다 작아서, 탑승 지역을 제외하면 딱히 대합실이 없는 것 같았다. 여권을 보여주며, 패키지를 통해 미리 예약해 둔 표를 얻은 후 앉을 곳을 찾다 보니 카페로 향하게 되었다. 여기는 커피값보다 생과일주스가 더 저렴하다. 심지어 과일도 신선하고, 가득가득 담아주니 안 마시고는 배길 수가 없었다. 커피를 잘 안 마시는 내겐 천국이었다. 주스 한잔씩들 마시면서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샌가 탑승 시간이 되었다.
탑승 플랫폼은 한국의 것과 많이 달랐다. 기차가 다니는 곳과 사람이 있는 곳이 구분되지 않았다. 안내원들이 푯말을 들고 통제하며 인명사고가 나는 걸 방지하고 있었다. 기차가 도착하고 나서는 탑승을 안내하며 도와주는 역할을 하였다. 확실히 알아서 탑승하고 내리는 한국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기차는 여느 철마와 다르지 않은 그런 모습이었다.
우리가 탄 곳은 특실 같은 곳이었다. 이때만 해도 패키지를 참 잘 골랐다는 생각을 했다. 이때만 해도... 어쨌든 생각보다 시설은 좋았고, 편리한 의자와 테이블까지 있어서 한껏 기대에 부풀어 올랐다. 사람들이 많이 타지 않아서 자리는 넉넉했다. 푹신한 의자에 앉아 고개를 들면, 하늘이 보였다. 천장의 일부는 유리였다. 숲 지역을 지날 때는 잎사귀 가득한 천장이 되어주었다. 기차에 탔으면 간식을 빼먹을 순 없지! 간식을 들고 있는 승무원이 오길래 우리의 매점 카트 것인가 했는데 무료로 제공되었다. 세상에, 특실이라 그런 건가. 간단한 과자와 무냐 차가 제공되었다. 오늘 성스러운 계곡 투어에서 처음 알게 된 바로 그 무냐차였다. 처음 접하는 차, 우선 향부터 맡았다. 처음 맡아보는 향이었지만, 향긋한 것이 마음에 들었다. 진하진 않고, 음, 비슷한 것이 뭐가 있을까 생각해봤지만 무냐차는 무냐차다. 거부감이 드는 향이 아닌 데다가 평소 허브차를 좋아하는 나였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같이 제공해준 옥수수 과자가 정말 맛있었는데, 옛날에 먹던 불량식품 맛이다. 좋다는 뜻이다.
훌륭한 기차 여행이다. 창밖으로 보이는 페루의 자연환경도 좋고, 의자는 편안하다. 좋은데, 분명 다 좋은데 승객들이 문제다. 그렇게 많지 않은 승객 중에 하필이면 시끄럽게 떠드는 관광객들과 한 객실에 타고 말았다. 세상 어딘가에 존재하는 균형의 수호자가 손을 쓴 거는 아닐까? 중국어를 쓰고 있었는데, 아주머니 네 분이서 시끄럽게 떠드는 바람에 스르륵 잠에 들려다가도 깨고 말았다. 기차는 소음에 아랑곳 않고 달렸고, 해가 저물 때 즈음에는 도착했다. 도착한 것도 기뻤지만, 소음에서 해방되어 더 좋았다.
호객행위가 가득한 곳, 관광도시 아구아 깔리안떼
드디어 마추픽추 전초기지 아구아 깔리안떼에 도착했다. 이곳에서는 마추픽추에 오르기 전에 숙식을 해결하는 곳이다. 이름의 유래는 따뜻한 물, 즉 온천이 있는 지역이다. 하지만 콜카캐년 투어에서 한번 온천에 실망한 우리였기에 굳이 시간 내서 가 볼 생각은 안 했다. 어쨌든 기차에서 내렸는데 호텔 안내원이 없어서 당황했다. 분명, 패키지에는 기차에서 내리면 안내해준다고 했는데... 사기를 당한 것인가. 급하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로밍을 하길 천만다행이었다. 안 받으면 어쩌지 했는데, 다행히 받았다. 그래서 사정을 얘기했더니 자기가 알아보겠다 하고 다시 연락 주겠다고 했다. 기차역 안에서 기다리는 그 시간이 억겁처럼 길었다. 다시 전화가 왔고 안내원이 오는 중이라 했다. 다행이었다. 그 말을 믿고 우리는 기다렸고, 안내원이 우릴 맞이해주었다. 따지고 싶었지만, 그럴 기력도 없었고 그냥 따라갔다.
숙소는 조금 걸어야 했는데, 덕분에 조용하고 좋았다. 호텔로 올라가는 길에는 수많은 삐끼들이 식당 홍보를 하고 있었다. 개중에는 중국어로 인사를 건네는 사람도 있었다. 모조리 무시하며 제 갈길을 갔다. 도시 자체가 작은 편이라 금방 도착했다. 짐을 풀고 휴식을 취했다. 시설은 여느 호텔과 같았고, 하루 종일 투어하고 기차를 오래 탄 우리는 일단 침대에 널브러졌다. 조금 있다가 마추픽추 가이드가 와서 다음날 일정을 소개해주었다. 직접 방까지 오다니, 고마웠다. 투어는 당연하게도 내일 새벽에 간다고 한다. 그렇지.. 모든 투어들이 다 그랬다. 이놈의 투어들은 정말 부지런한 자만이 갈 수 있다.
저녁식사는 리뷰가 가장 좋은 곳으로 갔다. 가는 길에 마추픽추행 버스 티켓을 구매했다. 가이드가 말하길, 버스를 타고 가야 편하게 갈 수 있고 또 입장시간을 준수할 수 있다고 했다. 티켓 판매소에 가서 약간의 줄을 선 뒤에 티켓을 구매했는데, 무조건 미화 달러만 받았다. 특이했다. 늦게 가면 티켓이 없을 수도 있다는 가이드 말을 듣고 빨리 왔는데, 다행히 4장 잘 구매했다. 구매를 마치고 간 식당은 '모레나'라는 곳이었다. 리뷰가 좋은 식당 여러 개가 있었지만, 강가에 위치하기도 했고 느낌이 끌려 가보았다.
처음 가는 식당에서 사실 가장 중요한 건 느낌 아니겠는가. 느낌이 맞았는지, 웨이터가 굉장히 싹싹하고 친절한 곳이었다. 메뉴를 골똘히 보다가 웨이터에게 추천 메뉴를 물었고, 알파카 꼬치와 페루식 디저트를 추천해주었다. 우리는 여기에 알파카 햄으로 만든 피자와 치킨 볶음밥을 같이 시켰다. 알파카 꼬치는 정말 환상적이었다. 누린내는 하나도 나지 않았고, 육즙은 가득했으며 육질이 매우 부드러웠다. 과장 좀 보태자면 씹는 순간 녹아내렸다. 입안에 넣자마자 부드럽게 씹히는 육질이 혀를 감쌌다. 수제 맥주도 주문해서 함께 맛있게 식사했다. 이게 여행의 맛이다. 남미 와서 몇 안되게 먹은 맛있는 식사였다. 식후 디저트는 페루식 디저트. 처음 보는 것이었는데 밥알을 이용해서 만든 디저트였다. 하나는 계피를 넣었는지 수정과 맛이 났다. 하나는 달지 않는 베리 종류를 넣은 것인지 과일향이 나는 새콤한 맛이었다. 하나는 그냥 달달한 밥알을 먹는 느낌이었다.
내일 있을 마추픽추 투어를 위해, 일찍 잠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