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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숙 May 18. 2024

그런 걸 시절인연이라고 하더라


소설공부를 하는 모임에서 어느 날 홍은 부동산 중개사 시험을 봐야겠다고 했다.

화통하고 털털한 그녀는 친구도 많고 하고 싶은 일도 많은 것처럼 보였다.

그의 글을 통해서 짐작되기로 그의 가족들의 모든 결정이나 제안은 늘 그녀를 통해서 진행되는 느낌으로 홍은 가족중 매우 중요한 사람인가보다 했었다.

코로나로 소설수업 10년차를 9개월 앞두고 모임이 해체되었고 다섯 명 멤버중 유일하게 그녀와 두어번 통화를 한 이후 4년이 지났다.

마지막 통화에서 홍은 태안 바닷가에서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며 한껏 들떠 있었다.



그녀에게서 전화가 왔다.

안 그래도 최근에 연락처 목록을 쭉 내려 보다가 대부분 통화를 한지 까마득한 사람들의 번호를 지웠었다. 그러다 소설멤버 목록에서 멈췄다.

강사가 ‘이렇게 안 친해지는 사람들 처음봤다.’던 처음이나 지금이나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덟명으로 시작했다가 각자 사정으로 한 명씩 그만 두고 다섯 명이 남았을 때 이제는 여기서 한 명이라도 그만 두면 그 때는 해체를 하자고 했었다. 

딱 그만큼의 거리를 두고 어김없이 한 달에 한 번을 만나던 멤버들은 해체 시점에 대해 가끔 얘기하고는 했다.

다섯 명 모두 등단을 한 다음이라고 했다가, 그건 거의 불가능하니 한 명이라도 하면 그 때로 하자고 설왕설래할 때 강사가 깔끔하게 결론을 냈다.

딱 십 년 되는 날 등단과 상관없이 각자의 길을 가자고.

그 쯤 되면 혼자 써도 된다며.

사실상 십 년 써도 안 되면 더 써도 안 된다는 말처럼 들리기도 했고

십 년을 쓰면 뭐가 되도 될 거라는 긍정적인 의미로 느껴지기도 했다.

정작 해체는 등단도 십년도 아닌 코로나가 계기가 된 것이 황당하기도 하고 아쉬움은 말로 다 할 수 없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등단한 멤버가 생기기는 했다.

모두 모여 축하를 해줬어야 했는데 그럴 겨를도 없이 허무하게 끝나고 말았다. 




홍이 그 때 수원에 살고 있었으니 지금도 거기에 살겠지 싶으면서도 지금은 어디 사느냐고 먼저 물었다. 

수원에 살지 않을 뿐 아니라 3개월 쯤 전부터 당진에 살게 되었는데 그 곳에 오기까지 옮겨다닌 이력이 참으로 버라이어티한 것이 그녀답다 싶었다. 

밥 먹으면서 한 시간, 차 마시면서 세 시간 수다를 떨고도 남은 얘기는 지금 사는 당진에 놀러와서 마저 하자고 했다. 

십 년 가깝게 매 달 만났으니 많이 안다고 생각했는데 네 시간동안 나는 새로운 사람을 만난 것 같은 느낌에 자꾸 놀랐다. 


“그랬어요? 몰랐어요.”


이 말을 꽤 여러번 되풀이 했던 것 같다.


“그 때 글을 쓰지 않았더라면 어쩌면 나는 살 수 없었을지도 몰라요.”

“저도 그래요. 지금 그 때 쓴 글을 보면 창피하고 민망해서 손가락이 오그라들지만 그렇게 나도 몰랐던 나를 퍼내면서 나 자신을 제대로 인식하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생각해보면 어떻게 단편소설을 한 달에 한 편씩 써 낼 수 있었을까 싶기는 하다.

강사도 그랬다. 대단한 거라고, 전문 작가들도 한 달은커녕 일 년에 한 편 쓰기도 힘들어하는 경우가 많다고. 

인생의 한 부분을 늘 함께 했던 사람들이었다. 

누군가, 우리 너무 자주 만나는 거 아니냐며 가족보다 더 자주 보는 것 같다고 했을 때 

그 무렵 엄마를 만난지 일 년이 되어가는 내게는 그 말이 심장을 깊숙이 찌르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참 냉정한 사람들 같아요. 해체이후 누구도 문자 한줄 전화 한 번 하는 사람이 없더라구요. 물론 나도 마찬가지지만.”


내가 서운함을 담아 희미하게 웃어보이자 홍이 말했다.


“그런걸 시절인연이라고 하더라구요. 그 시절에 소중했던 사람들은 그 시절에 남아있는 거라고.”


신기하게도 그 말 한 마디에 모든 상황이 한꺼번에 이해되는 기분이었다.

여행 후 일방적으로 연락을 끊은 동네친구들이나, 한 때 핏줄보다 귀한 인연이라 여기며 의지했던 언니같은 친구나 모두 그 시절에서는 여전히 다정하고 애틋하다.

인연이 거기까지 였던 거지. 어떻게 모든 이별에 이유가 있을 수 있겠어. 


아직 홍이 사는 집에 가보지는 못했다. 

꽃이 한창 피었을 때, 동네가 꽃잔치라며 당장 시외버스타고 내려오라고 했었다.

실제로 화사한 꽃나무 아래서 찍은 사진을 카톡으로 보내기까지 했는데 식기세척기 설치하러 온다고 해서 가지 못했다.

지금 생각하니 그렇다.

식기세척기가 뭐라고, 다른날 오라고 하면 되지. 

홍과 이 시절에 인연으로 남을 시간들이 얼마나 남았을지도 모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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