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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숙 May 22. 2024

내 무덤은 나를 위한 게 아니야


밤이면 열 시를 넘기기 힘든 나는 저녁상을 치우고 눈이 반쯤 감겨 졸고 있었다.

어머니가, 들어가 자지 왜 졸고있냐고 했다.

망설임 없이 예 어머니! 하고는 방으로 들어와 자리에 누웠다.

방금전까지 그리 무겁던 눈꺼풀이 자리에 누우니 신기하게도 말똥말똥해진다.

시댁에서 잘 때면 배정받았던 1층방 돌침대는 여전히 적응이 안 된다.

다시 거실로 나가기도 그렇고 해서 그냥 누워있었다.

그러다 설핏 잠이 들었다.

소란한 소리에 눈이 떠졌다. 형님네가 도착한 모양이었다.

열 두시가 돼 가고 있었다.

나가야하나 하다가 그냥 자려고 돌아 누웠다.


“큰집 형님이랑 얘기했는데 할머니 산소를 가족 납골당으로 만든다고요.”


시댁가족들은 전쟁통에 팔남매중 사남매가 할머니와 함께 피난을 내려왔다고 했다.

할머니는 공원묘지에 모셨는데 두 분 큰아버지와 첫째 큰어머니 모두 다른 묘소와 납골당에 뿔뿔이 흩어져 있었다. 

공원묘지 관리소에서 매장형 묘를 화장해서 납골당 형태로 바꾼다는 연락이 왔다고 했다.

기존에 확보된 공간이 있으니 가족 납골당으로도 가능하다고.

이참에 흩어져 있는 가족을 한 곳에 모시는 것까지는 납득이 됐다.

그런데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부모님 세대는 물론이고 K의 형제 세대, 거기에 아이들 자리까지 미리 정해놓는다는 얘기에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앉았다.

조금 더 들어보기로 했다.

어머니 목소리는 들리지 않고 시누이가 조분조분 반박을 했다.

그런걸 왜 우리가 결정하냐고, 애들도 그러고 싶다고 하냐고, 그냥 부모님 세대까지만 하는게 낫지 않겠냐는 시누이 말에 나도 모르게 ‘그렇지 그렇지’ 하며 고개를 격하게 끄덕이고 있었다.

하여 삼 년간 사촌형제 네 집에서 돈을 모았으나 코로나로 공사를 시작조차 할 수 없었고 끝나고 나니 공사비가 천문학적으로 뛰어 결국 돈을 돌려주고 없던 일이 되었다.




그리 심각하게 한 얘기는 아니었다.

제주도에 오고 싶어 제주 앓이를 했었다는 말 끝에

이 다음에 나 죽으면 화장해서 몰래 제주도 바다에 뿌려달라고 할 거라는 말에 B가 정색을 하고 말했다.


“내 무덤은 나를 위한 게 아니야.”


‘뭐시라? 죽어서도 내 자리를 내 맘대로 못한다고라?’

차마 말로는 못하고 마음속에서 울컥 반항심이 솟구쳤다.


“살다가 부모님이 보고싶을 때 찾아갈 곳은 있어야 하잖아.”


듣고보니 맞는 말이었다.

나 역시 마음이 답답해서 풀어 놓을 곳이 필요할 때

38선 너머 북한에 맞닿아있는 아버지 산소에 가서 소리내서 울고 나면 한동안 편한 것이 사실이니.

아버지와의 기억이 그리워하기에 여섯살은 너무 어렸고 그렇다고 조상묘소를 돌보는 개념도 아니었다.

이상하게도 그 곳에 가면 저절로 눈물이 나왔고 애처럼 소리내서 울고나면 마음이 개운해졌다.

언니는 그런 얘기를 하고 있는 거였다.

여기서 또 몹쓸 걱정이 슬그머니 발을 한 짝 들여 놓는다.

‘공원묘지에 가면 잘 정돈된 묘지도 있지만 그 옆에 아무도 찾지 않는 것처럼 깎이고 패이고 잡풀이 무성한 묘지도 있던데, 그건 슬프잖아.’

하지만 그 것 역시 내가 걱정할 일은 아닌거다.

재작년에 세상을 떠난 사촌언니는 수목장으로 해 줄 것을 유언처럼 말했지만 

언니의 아들인 조카는 돈이 없어 그러지 못했다고 이다음에 돈 벌면 꼭 수목장으로 해줄거라고 하며 울먹였다.

엄마가 수원에 살 때 연천에 있는 아버지 산소에 다녀오는 길에


“나는 가까운 데로 하면 좋겠어. 애들이 다니기 힘들어서 어떡해.”


라고 혼잣소리처럼 말했다.

대답은 하지 않았지만 마음 속으로는 지금 언니가 하는 말을 했던 떠올렸던 것 같다.


‘그건 자식들이 결정할 일이지 엄마가 걱정할 일은 아닌 것 같은데.’



여행 마지막 날, 자구리 공원에 갔었다.

처음 서귀포에 왔을 때 아침 산책길에 그 곳을 지나가고 있었다.

아침 햇살을 함빡 받으며 요가 수련을 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 모습이 무척 평화로워보였다.

그 후에도 이 곳에 올 때마다 그 곳으로 산책을 나갔는데

그대로인 것 같으면서도 뭔가 생기거나 공사중 띠에 가로막혀 있었다.

이번에는 공원 끝, 서귀포항 근처에 엄청 큰 기중기가 서 있었다.

잔잔하고 평화로운 느낌을 되찾아보려고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제주바다에 뿌리는거, 취소해야겠다.

죽은 후에 내가 갈 곳은 내 영역이 아니다.

제사상에 망고를 올려달라던 말도 없던 일로 해야겠다.

어차피 죽으면 나는 아무것도 모를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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