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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숙 May 28. 2024

난 그냥 불편한 수동이 좋아


나는 도시에 있더라도 마당이 있는 집에 살고 싶다고 했고 

K는 시골에 있더라도 반드시 아파트에 살아야 한다는 것은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다.

내가 마당있는 집에 살고 싶은 이유는 많지만

K의 이유는 단 하나, 집의 크고 작은 관리를 하기 싫어서라고 했다. 

아닌 게 아니라 일흔살에 시골에 집 짓고 내려가신 시어머니는 

어느 날, 뽑으라는 풀은 안뽑고 밭두렁을 서성거리는 아버님을 내다보며 

내 귀에 대고 소곤거리듯 말씀하셨다.


“나이들어서는 시골 내려가는 거 아냐. 더구나 남자가 일하기 싫어하면 시골생활 못해.”


그 말이 가슴 깊이 새겨져 이후로 ‘마당있는 집’ 마음속에 꼭꼭 접어두기로 했었다.

그런데 K가 뭘 잘못 알아도 한참 잘못 알았던 것 같다.

우리가 이사 올 때 신축 4년 차였던 이 아파트가 올해로 8년차에 들어간다.

전에 살던 아파트들은 30년 혹은 40년 된 곳이었는데도 잔고장이 있었던 기억은 없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이 아파트는 이사를 들어오고 나서도 정전, 단수에 이따금 한 번씩 인터넷이 불통이 되는가 하면 작년 올해 들어서는 콘센트 화장실 변기 등 여기저기서 이상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 중 최근에는 K가 가장 유용하게 사용하던 주방 수도 패들이 고장났다.

싱크대 배수구 탈수기는 이사왔을 때부터 고장이 나 있어서 관리사무소에 물었더니 자기들이 해 줄 건 없고 대신 업체 전화번호를 적어줬다.

전화를 했더니 고치는 비용이 팔만원이라고 했던가?(내 기억은 나도 믿을 수 없음.)

이번에도 관리소에서 나와 보더니 또 업체 번호를 적어주고 간다.

이럴 거면 단독주택이나 다를 거 하나도 없네, 라고 K에게 말하고 싶은 걸 참았다.

K에게 탈수장치보다 급수패들은 영 아쉬웠던 모양이다.

혼잣소리처럼 (실은 나 들으라고) 


“그건 참 잘 썼는데...”


하는 소리를 듣고도 못들은 체 했다.




오빠 가족이 작년 7월에 새 아파트에 입주했다.

지난 겨울, 오빠부부에게 일이 있어 엄마를 돌보기 위해 그 집에서 하루 자게 됐었다.

거실에서 TV를 보다가 자려고 엄마 방으로 들어가서 리모컨을 눌렀는데 TV가 켜지지 않는다. 문갑위에 놓인 디지털 시계도 꺼져있었다.

그럼 그냥 자자며 엄마는 침대위에 나는 그 아래 이불을 깔고 누웠다.

새벽녘에 어쩐지 쌀쌀하다 싶어 일어났는데 엄마도 잠에서 깬 듯 어둠속에서 움직임이 느껴졌다.


“추워서 한 숨도 못잤어.”

“으잉? 아니 왜?”


나는 맨 바닥이었으니 난방을 약하게 켜놨나 했지만 엄마의 침대는 돌침대라 온돌처럼 따뜻할 터였다.

불을 켜고 보니 엄마가 누운 자리에 솜방석에 담요를 끌어다 쌓아 놓은 것이 보였다.

조정기를 보니 전원이 들어와있지 않았다.

일정한 온도로 데워졌을 때 돌침대는 아랫목처럼 따뜻하지만 

전원이 켜지지 않은 그 것은 그냥 차가운 돌덩어리에 불과할 뿐이었다.

엄마는, 


“이게 왜 이러지? 내가 뭘 잘 못 만졌나?”


라며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안절부절 못했다.

나 역시 도무지 뭐가 잘못 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관리소에 연락을 해보려고 해도 시간이 이제 여섯시를 넘어서고 있어 기다려야 했다.

다행히 아직 입주중인 아파트라서인지 관리소 연결이 바로 됐고 오 분도 지나지 않아 직원이 왔다.

상황설명을 시작하자마자 그런일 자주 있다는 듯 엄마방 전등스위치를 가리키며 보라고 한다.


“이것이 전원조절기인데요, 일정시간 전원을 켜지 않으면 자동으로 차단이 되게 돼있어요.”

‘아 뭐래니, 그럼 자동시스템 때문에 밤새 오돌오돌 떨었다는 말이냐?’

“이제 수동으로 바꿔 놓았으니까 괜찮을 거예요.”

‘젠장!’


관리소 직원이 돌아간 후 허탈해서 웃었다.


“엄마가 뭘 잘못 만진 게 아니고, 이 망할놈의 아파트가 그렇게 만들어진거래.”



목공 선생님은 세상은 의류건조기가 나오기 전과 후로 나뉜다며 건조기를 찬양했었다.

전에 살던 아파트가 일층에 동향이라 햇볕이 들지 않아 빨래가 마르지 않던 터에 그 말이 계기가 되어 건조기를 구입했었다.

처음에는 나도 세상 참 좋아졌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건조기속에서만 나오면 조거팬츠가 점점 쪼꼬미가 되어갔다.

양말도 작아지는 것 같고 티셔츠도 짧아지고 심지어 K의 면 러닝셔츠도 작아졌다.

그러던 중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누군가 하는 말이 들렸다.


“건조기에는 수건이나 말려야해.”


맙소사, 미용실도 아니고 겨우 수건 몇 개 말리자고 그 돈을 들였다니.

요즘은 좁은 베란다 건조대가 점점 복닥거리기 시작한다.

바람이 부는 날 햇볕까지 잔뜩 머금은 빨래를 걷을 때면 마음이 개운하다.

만약 누군가, 새 아파트는 뭐든 첨단 자동 시스템이라 좋지 않느냐고 묻는다면


“자동? 됐고, 난 그냥 불편한 수동이 좋아.”


라는 말이 툭 튀어나올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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