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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숙 Aug 18. 2024

그 사람들과 다시 여행을 하게 된다면


어렸을 때는 차멀미를 심하게 했었다.

성인이 되어서도 나아지지 않았던 멀미에 대한 가장 고통스러웠던 기억은 친구와 설악산에 가는 버스를 탔을 때였다. 

터널이 생기기 한참 전이었으니 설악산에 가려면 고개를 넘어야 했는데 

그 때 넘었던 고개가 한계령이었다.

가을이었고 한계령 단풍은 숨이 멎을 듯 아름다웠겠지만 오장은 뒤틀리고 입에는 계속 침이 고이면서 금방이라도 토할 것 같아 빨리 버스에서 내리고 싶다는 생각말고는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차멀미에 있어서는 친구도 뒤지지 않아 일부러 맨 앞자리에 앉았는데도 그랬다.

얼굴이 허얘져서 버스에서 내린 후 그 여행에서 뭘 했었는지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나마 앞좌석이 멀미를 덜 할거라는 말에 버스를 탈 때면 될수록 앞자리에 앉는다.

그것도 자주 하다보니 나중에는 선호하는 좌석이 생겼다.

맨 앞줄은 때로 까다로운 기사님을 만났을 경우 눈치가 보일 때가 있다.

두 번째 줄은 대부분 버스 바퀴자리라 발을 놓기가 불편하다.

세 번째가 좋기는 한데 그 자리는 창문 프레임이 시야를 가린다.

하여 최종 낙찰된 곳이 네 번째 좌석이다.

좌석 예약을 할 수 있는 고속이나 시외버스의 경우에는 네 번째 좌석에 앉는다. 

생각지도 못했던 문제는 여행동호회에서 버스로 답사를 갈 때 불거졌다.

세상에 차멀미를 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 줄 처음 알았다.

출발 시간보다 삼십 분 일찍 도착해 버스에 올랐는데 앞 좌석부터 버스의 중간 좌석까지 가방이며 옷가지등이 한 줄에 한 칸씩 이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모두 멀미가 심해서 앞 좌석에 앉아야 한다는 이유였다.

답사를 하면서 한두 번 만난적이 있는 사람들이니 아예 모르는 사람도 아니고

그렇다고 안다고 말하기도 모호한 사람들이라 불평을 할 수도 없으니 

원하는 좌석은커녕 맨 뒷줄 5인 석이 아닌 것을 다행으로 여길 수밖에 없었다. 

그 사람들과 외국 여행을 갔을 때는 처음부터 앞 쪽도 아니고 맨 뒤도 아닌 중간쯤 버스 뒷문앞에 자리를 잡고는 매일아침 집합시간보다 일찍 내려가 그 자리를 고수했었다.

그 자리가 엄청 좋아서라기 보다는 매번 이리저리 자리를 옮겨다니는 유목민같은 모양이 싫어서 한 곳을 정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여행 오 일차쯤 됐을까? 

평소였으면 출발 시간까지 차 밖에 모여 이야기꽃을 피웠을 멤버들이 어쩐일로 차에 타고 있었다.

자리에 앉으려고 보니 멤버중 한 사람이 우리가 앉던 자리에 앉아있다.

그러고보니 예전에 처음 버스에 올랐을 때 가방이며 옷가지들을 놓아 자리를 맡았던 것처럼

이번에는 사람들이 그렇게 띄엄띄엄 앉아 자리를 맡아 놓은 모양이었다.

그 중 한 사람이 말했다.


“으이구~ 여행하면서는 좀 떨어져 앉아보라고. 여러사람들하고 여행할 때는 다른 사람들하고 섞여 보기도 하는 거야. 부부라고 꼭 같이 앉으라는 법있어?”


하자 버스 안의 사람들이 다 같이 깔깔 웃었다.

그 동호회와 함께하는 여행은 그 것이 마지막이 되었다.

펜데믹 덕분이었다.



시내에 나갔다가 K와 집으로 가는 버스에 탔다.

K가 먼저 올라 뒤쪽에 자리를 잡았는데 바퀴자리인데다 저상버스라 다른 버스보다 더 높았다.

내가 그 옆이 아닌 통로 반대편 뒷 줄에 앉으니 그가 금세 따라와 앉았다.


“왜 굳이 그 자리에 앉았어?”

“그 자리가 좋아서.”

“엥? 바퀴자리라 불편하잖아.”

“으응~ 난 다리가 짧아서 그렇게 올라온 자리가 편하더라고.”

“헐... 그런 이유도 있었네?”

“당신은 다리가 길어서 불편하겠지만 봐봐, 내 다리는 바닥에 안 닿잖아.”


그래봐야 피클오이 키재기지만 K는 한사코 자기보다 내 다리가 길다고 말한다.

다리 긴(?) 나에게 맞춰 옆자리에 앉느라 발이 바닥에 닿지 않는 불편을 감수한다는 얘기다.

K의 발이 공중에 뜨든말든 나는 바퀴자리에는 앉지 않는다.

부부가 꼭 나란히 앉아야 하는 건 아니지만

여러사람들과 하는 여행이라고 해서 부부가 꼭 여러 사람들 속에 섞여 앉아야 하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 일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만약에 다시 그 멤버들과 여행을 하게 된다면

굳건하게 내가 좋아하는 자리에 K와 앉을 것이며 

사람들의 말과 눈총에 신경쓰느라 어딜 갔는지 뭘 봤는지 뭘 먹었는지 하나도 기억에 남지 않는 허무한 여행을 되풀이하지는 않을 거다.

만약, 만약에 그 사람들과 다시 여행을 하게 된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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