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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숙 Sep 04. 2024

입맛이 시어머니를 닮았나봐



결혼하기 전, 우리집에서 만두는 일년에 딱 한 번 설날에만 먹던 음식이었다.

평안도와 강원도 이북이 고향인 시댁에서는 명절 외에도 생일 등 식구들이 모이는 날이면 만두를 먹는다고 했다.

예비 작은 며느리 자격으로 처음 인사를 하러 갔을 때에도 어머니는 만두를 하셨다.

만두 송이가 커서 국그릇에 세 송이를 넣으면 꽉찼는데 두 개를 먹고나니 더 먹으려냐며 대답도 듣지 않고 만두를 채워주셨다. 만두그릇이 화수분 같았다. 

소심해서 거절을 못하기도 했지만 사실 맛있기도 하고 설날이 아닌 날에도 만둣국을 먹을 수 있다는 게 신기해서 주시는 대로 다 먹었다.

물론 그날 밤에 소화가 안 돼서 밤새 잠을 설쳤던 것은 예정된 수순이었다. 

결혼을 한 후, 때마다 만두를 빚는 일은 내 일이 되었다.

그렇게 시도 때도 없이 만두를 빚다보니 그 속도나 모양이 TV에 나오는 달인 수준에는 좀 못 미치지만 나름 그럴듯해졌다.


어머니는 점심을 고구마로 때울 때가 있다.

나도 그렇다.

강원도에서는 옥수수를 강냉이라고 한다는데 어머니는 여름이 되면 자주 강냉이를 삻아먹고 점심은 건너 뛴다고 했다.

어느 날엔가 어머니와 앉아서 옥수수를 먹었는데 내가, 앉은자리에서 세 자루를 먹었더니

옆에서 보던 K가 말했다.


“시어머니랑 며느리가 구황작물을 좋아하시네.”


그러고보니 그랬다.

겨울을 나고 쌀이 떨어져갈 무렵 추수까지는 아직 멀었을 때 밥 대신 먹었다는 감자 고구마 옥수수를 좋아하고 자주 먹었다.


언제부터인가는 불현듯 단호박에 꽂혔다.

어렸을 때 둘째 고모집에 갔을 때 큰 솥에 고구마와 함께 쪄낸 단호박의 맛이 아직도 기억난다.

광탄 큰이모네 집 뒤뜰 나무에 새까맣게 다닥다닥 열렸던 자두를 먹었을 때의 감동 이후로 다시 그런 자두맛을 만날 수 없던 것처럼 그 은은한 단맛과 구수한 맛의 단호박을 맛 볼 수는 없었다. 

잊을 수 없는 것이 단호박이나 자두의 맛이 아니라 그 시절인지는 알 수 없지만

요즘 식당에서 먹는 단호박요리는 지나치게 달고 자두는 너무 시거나 밍밍하다.

최근에 아파트 단지 옆 새로 생긴 건물에 샌드위치 가게가 들어왔다.

써브웨이는 아니지만 샌드위치 전문이라 나름 기대가 됐다.

메뉴에 ‘단호박듬뿍 샌드위치’가 있었다.

신선한 양상추를 두텁게 넣고 단호박도 메뉴이름처럼 뜸뿍 들어있었다.

한동안 매일 먹었다.

때로 K가 저녁 약속이 있는 날이면 저녁으로 먹으라며 단호박샌드위치를 사다놓고 나갈정도였다.

그러다 K가 시장에서 단호박을 사다가 죽을 만들어주었다.

이거다 싶었다.

단호박 자체의 은은한 단맛과 특유의 고소함이 좋았다.

들인 노력에 비해 내 반응이 너무 좋아서 오히려 민망했는지 K가 머쓱하게 웃었다.


“되게 쉬워. 난 그냥 껍질까서 익히다가 찹쌀만 넣었을 뿐인데.”


소금 설탕 등 간을 맞추기 위한 조미를 하지 않았을 뿐

호박의 단단한 껍질을 벗기고 썰고 찹쌀을 불려서 끓이면서 분쇄기로 가는 동안 죽이 

튈 수도 있고, 그 과정이 결코 간단한 건 아니라는 걸 안다.

고객(?)의 반응이 좋자 K선생은 판로를 점점 넓혔다.

아들집, 딸집에 각각 한 통씩 어머니에게 한 통 장모님집에도 또 한 통을 해서 가져갔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내 입맛에는 딱 좋았지만 다른 가족들도 그랬는지 아니면 그저 인사치레였는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몇 주 전, 그 날의 주인공은 호박죽이 아닌 콩국이었다.

반신반의 하면서 구입했던 콩국제조기가 의외로 만족스러워 자주 이용하고 있었다.

아마도 이 정도면 시부모님도 좋아하실 것 같아서 전날 6인분을 만들어 냉장고에 보관했다.

연일 푹푹 찌는 날씨라 문제는 이동중 상하지 않게 포장을 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냉동실에 미리 넣어둔 냉동팩 세 개를 넣고도 안심이 되지 않아 

얼려두었던 단호박죽 통을 함께 넣었다.

혼자 다녀온 후 K의 리뷰는 이랬다.


“아버지는 콩국수를 다 드시고도 국물까지 싹 비우셨어.”

“어머니는?”

“엄마는 호박죽을 다 드셨어.”

“엥? 콩국수는 싫다고 하셔?”

“아니, 호박죽이 먹고 싶다고 그거 달라고 하시더라고.”


어머니도 나처럼 단호박죽에 꽂히셨나보다.

아무래도 내 입맛이 시어머니를 닮았나보다.

어머니도 망고를 좋아하실까?

반미는? 브리토는? 아보카도는?

어머니가 건강하실 때 어머니랑 동남아 여행 한 번 했으면 좋을뻔 했다.

어쩌면


"야! 이런걸 뭐 돈을 주고 먹냐?"


라고 하실지도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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