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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숙 Jul 17. 2024

어머니, A형이었어요?


작년에 고관절을 다치기 전까지 시어머니가 몸을 뉘고 쉬는 장면을 본 적이 없다.

전에 살던 집은 백 평 택지에 스무평 남짓 건물을 올린 나머지 공간은 모두 밭으로 일구었는데 사실상 어지간한 주말농장 수준밖에 안 되는 양이었다.

그럼에도 어머니는 잠시도 앉아있지 않고 계속 몸을 움직이셨다.

밭일이 없는 겨울철에도 마찬가지였다. 

주방에 계시는가 싶으면 장독대에서 장을 퍼오시고 거실에서 TV를 보시는가 싶으면 어느새 도토리묵을 쑤거나 김치를 담그셨다.

첫 아이를 낳느라 병원에서 진통 중이었을 때 어머니가 말했다.


“아직 멀었다, 하늘이 노오랗게 돼야 나오는 거야. 옛날에는 밭매다가 애도 낳고 그랬어.”


늘 분주하게 움직이는 어머니를 볼 때마다 정말로 어머니는 밭에서 일하다 애를 낳으셨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임감이 강하고, 어떤 일이 닥치기 전까지는 열심이지만 막상 끝나고 나서는 뒤도 안 돌아보는 성향하며, 무엇보다 공감 능력이 다소, 아니 조금 많이 떨어지는 점 등으로 미루어 볼 때

어머니는 분명 K와 같은 AB형일거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K는 사남매중 둘 째인데 형과 K는 AB형이고 여동생 둘은 모두 A형이라고 했다.

평소에는 어머니가 하는 잔소리를 그냥 듣기만 하다가 소주를 한 잔 하신 후에야 용기가 생기는지 아내의 말에 조목조목 반박을 하시는 아버님은 빼박 소심한 A형임이 분명했다. 



작년에 고관절 골절이후 어머니는 더 이상 밭일을 할 수 없게 됐다.

오전 열 시쯤 집에서 출발, 점심을 준비하거나 사 가지고 시댁에 가면 열한 시 반에서 열두 시 쯤 되고 식사를 하고났을 때 전 같으면 금세 새로운 일거리를 찾아 분주했을 어머니와 요즘은 식탁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이런 저런 얘기를 하는 것이 수순이 됐다. 

드라마보다 실감나는 어머니의 전쟁 피난 이야기는 내가 주로 묻는다.

자식들 어렸을 때 이야기, 먼저 떠난 막내딸 이야기 등 대부분은 이미 여러번 들었던 얘기들이지만 어머니의 기억에 남아있는 이야기들을 될수록 많이 꺼내고 싶어 마음이 급해지기도 했다. 

가끔은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 조카가 같이 있을 때도 있었다.

공감 능력에 대해 이야기 하다가 T성향 중에는 AB형이 많을거 같다고 말하고는 할머니도 AB형 아니냐고 조카에게 물었다. 


“아니요, 할머니 A형인데.”

“잉? 어머니 A형이었어요?”


내 목소리가 좀 컸는지 조카가 웃었다.


“지난 번 다치셨을 때 병원에서 그랬어요. A형이라고.”

“그, 그럼 할아버지는?”


그 때까지도 아버님이 A형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기 때문에 어머니 혈액형이 바뀌면 이거 자칫 출생의 비밀이 밝혀지는 건가 싶어 긴장이 됐다. 


“할아버지는 B형이에요.”

“헐.. 진짜? 할아버지가 B형 남자라고?”


어머니가 A형인 것보다 수줍음 많고 소심한 아버님이 B형이라는 게 더 놀라웠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어머니의 A형다움을 생각해봤다.

어머니가 분주했던 이유는 며느리 아들과 마주 앉아서 마땅히 할 말이 없는 것이 어색해서 자꾸 일을 만드셨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어머니의 말실수로 내가 상처를 받았을 때 집에 가려고 올라탄 차 문을 굳이 닫아 주시면서 무슨 말인가 들리지도 않는 말을 어색하게 하시던 모습은 자존심 강한 어머니방식의 사과가 아니었을까 새삼 그 때 일이 떠올랐다. 

그런가 하면 B형남자인 아버님은 가족과의 피난 행렬에 끼지 못하고 혼자 내려와서는 

여러 가지 일을 하며 지내다가 어머니를 만났다고 했다.

작은 키에 그리 곱상한 외모는 아니었던 아버지가 어떻게 어머니와 결혼하게 됐는지가 처음부터 몹시 궁금하기는 했다. 

어머니의 젊은 시절 사진을 보면 예쁘다기보다 한 마디로 멋진 여성이었다.

빈약한 어휘로 굳이 갖다 붙이자면 그 무렵 신여성이 그런 모습이 아니었을까 싶다.

곰곰 생각해보면 외모를 빼고는 청년시절 아버님은 꽤나 재주가 많은 남자였던 것 같다.

단순한 문장 몇가지겠지만 가족들이 모이면 ‘아버지는 무려 4개 국어를 하신다.’ 고 말하고는 했다. 

손재주가 남달라서 배운것도 아닌데 가죽으로 가방을, 나무 판자로 식탁을, 의자를 만드는 일쯤 그리 어렵지 않게 하셨다.

딱 한 번 가족이 같이 갔던 노래방에서 아버님이 부르던 ‘고향의 강’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결국 어머니는 아버지의 외모를 뺀 그 나머지 매력에 반하셨다는 결론이 된다. 


꽤 많은 편견과 선입견을 삼십육 년동안 가지고 있었던 거다. 

어디 그 뿐일까.

가족에 대해서 친구에 대해서 나 자신에 대해서

내가 제대로 알고 있는 부분이 있기는 한가?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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