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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면내시경에 대한 환상

by 문과체질 내과의사

"자~ 이제 수면내시경 시작합니다. 한숨 푹 주무시고 일어나면 끝나있을 거예요~~"

이제 수면진정제가 당신의 몸을 타고 들어가고, 당신이 모르는 몇 분간의 또 다른 세상이 시작된다.
그 세상은 사실 당신이 한숨 푹 자면 끝나있는 것이 아니다. 당신이 잔 오후의 낮잠처럼 고요하고 평화로운 것이 아니다.
의사와 간호사의 숙련된 손길에도 불구하고, 떨칠 수 없는 긴장 속에서 이루어지는 몸속으로의 탐험이다. 연예인들이 티비에 나와 수면내시경이 시작되면 코 한번 골고 옛 연인 이름을 부르다가, 내가 그랬다고? 하며 깨어나는, 그런 한번 웃고 나면 끝나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수면진정제가 들어가고 2분 정도 지나면 당신의 호흡이 파도를 한번 친다. 그때 당신의 꿈나라가 시작된다. 그 꿈나라가 이 세상에 가까우면 당신의 손에 끼운 산소포화도의 숫자는 90으로 시작할 것이고, 그 꿈나라가 저세상과 가까우면 숫자는 80이나 70으로 시작할 것이다.

그래도 여차저차 의료진은 산소를 당신의 코에 걸든, 해독제로 당신을 깨우든, 결국 내시경은 당신의 입 속으로 들어갈 것이다. 우리의 몸은 하수구 내시경과 똑같이 생긴 검은색 호스를 그냥 목구멍에 넘겨줄 만큼, 인자하거나 연약하지 않다. 당신의 구역질이 시작되고, 당신의 얼굴에 있는 모든 구멍에서 액체의 배설이 시작된다.
그렇게 당신은 '침, 콧물, 눈물'을 흘리는 동안 의료진은 '피, 땀, 눈물'로 살얼음판의 당신 몸속 힘든 탐험을 끝내게 된다.

이 상황을 알 리 없는 환자는 간혹 수면이 안되었다며 날카로운 불평을 할 때도 있다. 수면내시경은 편한 것이라는 잘못된 인식은 매스컴의 문제일 수도, 그 매스컴에 비판 없이 따라가는 의사들의 문제일 수도 있다. 어쨌든 수면내시경은 그렇게 고요하고 평온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좀 무섭게 말하면 죽음과 생명 사이의 밧줄 타기이다. 그 사이에서 고통 없이 온전하게 몸속 탐험을 끝내는 것은 일종의 예술이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이어서 하는 얘기가 아니란 말이다...!!

그래서 나는 수면내시경에 대해 이렇게 새롭게 정의한다. 서로 다른 상황 속에 있는 의사와 환자가 내시경 호스를 통해 서로 소통하는 과정이라고.
그것은 마치 ET와 소년 엘리엇이 손가락을 닿으며 소통하는 것과 같다. 둘은 그렇게 소통을 하지만 인간과 외계인은 다른 세계에 있어 서로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 깨어있는 의사와 꿈나라에 있는 환자도 내시경으로 이어져 있지만 서로 이해할 수 없듯.
그러니 의사는 꿈나라에 간 환자가 협조를 안 한다고 짜증 내지 말 것. 환자는 수면이 충분치 않았더라도 의사의 고충을 생각하며 너무 불평하지 말 것.

그 소통은 다음 건강검진을 하기 전인, 2년간의 건강을 담보하기 위한 과정이며, 그 과정엔 고통이 따를 수밖에 없다. 수면안정제는 그 고통을 잠에서 깨어난 환자의 기억에서 지워놓은 것일 뿐. 내시경 후 정말 아무것도 모르겠다면 당신은 이 세상과 저 세상의 경계에 잠깐 한 발을 담갔다 빼고 돌아온 것일지도..!

그렇게 수면내시경이 끝난 후, 대부분의 환자들은 이것을 색다른 경험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중독이 될 만한 쾌락 같은 건 느끼지 못한다. 그렇게 아무것도 아닐법한 수면진정제를 맞기 위해 하루에 몇 번씩 내시경을 하는 약물 중독환자도 가끔 만나게 된다.
내시경을 하고는 설명도 듣지 않고 간다던지, 약물 조회를 해보면 이미 몇 번의 내시경을 하고 또 온 걸 알게 되는 경우가 있다.
내가 수많은 환자와 경험한 수면진정의 과정은 쾌락은 없는 그저 잠시 세상에서의 일시정지일뿐이다. 그렇다면 약물중독인 사람은 그렇게만이라도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은 건지도 모른다.
그래서 프로포폴 중독인 사람은 범죄의 여부를 차치하고, 그야말로 불쌍한 영혼이다. 그가 대한민국을 좌지우지하는 재벌이든, 이 세상 유수의 권력자이든, 아님 그의 부인이든.

한편 내시경은 그야말로 속 보이는 행위이다.
나의 다년간 경험의 뇌피셜에 따르면, 성격이 안 좋은 사람은 위 건강도 안 좋다. 평소 진료실에서 까다롭게 굴고 예민한 환자를 내시경 해보면, 역시나 위염도 있고, 위가 벌겋다.
의사도 수많은 사람을 만나는 서비스직이라 모든 사람을 좋아할 수 없다. 그리고 착한 환자, 진상 환자로 나름의 분류를 할 것이다. 당신의 동네의사도 내시경으로 당신의 위를 들여다보며 이렇게 생각할지 모른다.
"성격이 까다롭더니, 위도 내 이럴 줄 알았지!"
잠에서 깬 당신에게 아주 친절히 설명을 하면서..

내시경을 하며 깨닫는 또 한 가지. 슬픈 인간의 노화는 피부의 주름뿐이 아니다. 아무도 볼 수 없는 당신의 위, 대장에도 노화는 여실하게 나타난다. 노화된 대장은 말 그대로 흐물흐물하다. 탄력 있는 젊고 건강한 대장에 비해 내시경 검사 과정이 몇 배는 힘들다. 이렇게 노화된 대장을 보다 보면, 나이 들어서 변비가 생기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이다.
그래서 나는 또 제언한다. 외모지상주의의 현대인은 외모만 가꾸지 말고 내면을 더 가꿀 것. 그 내면은 성숙한 마음도 포함되지만 당신의 위, 대장도 포함된다.
당신이 변비 없는, 쾌변의 노년을 원한다면 탄력 있는 대장으로 가꿀 것!
그러려면 피부과, 성형외과만 가지 말고 내과도 다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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