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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이 잘 안 쉬어질 때

by 문과체질 내과의사

만성 폐쇄성 폐질환이란 병이 있다.

말 그대로 서서히 오랜 기간 동안, 기관지가 좁아져서 숨이 차게 되는 병이다. 이 병은 완치될 수 없고, 서서히 폐기능이 떨어지는 경과를 거치게 된다.


나에게 다니는 70대 후반 할아버지는 이 병을 가지고 있었다. 최근 할아버지의 호흡은 더 가빠졌다. 오늘은 굳이 청진기를 대지 않아도 그의 좁아진 기도를 알 수 있을 만큼 쌕쌕거리는 소리를 내며 진료실에 들어왔다. 항상 같이 오는 할머니와 함께였다.


" 아휴 나... 숨 좀.. 안 차게 해 줘.."


써볼 수 있는 약들도 여러 가지를 써 봤고, 대학병원에서도 치료를 하고 있는 상황이라 치료에 남은 선택지가 별로 없었다. 나는 말했다.


" 어르신, 힘드실 텐데 새로 써볼 수 있는 약은 별로 없구요. 집에서 쓸 수 있는 가정용 산소 호흡기도 같이 써보는 게 그나마 어르신한테 도움이 될 거 같아요~"


"응..? 뭐라고..? 아휴.. 숨차"


청각이 많이 안 좋아진 할아버지는 나의 말을 잘 듣지 못했고, 할머니가 할아버지에게 내 말을 전달했다.


"집에서! 산소호흡기도! 해보자! 고!"


왜소한 할머니는 자신의 몸도 챙기기 힘들어 보였고, 할아버지의 난청과 폐질환의 간병까지는 버거워 보였다. 그래서 그런지 할아버지에게 건네는 목청도 지쳐있었다. 그 목소리엔 어느 정도의 한숨과 짜증이 섞여있었다. 할아버지는 익숙한 할머니의 입모양을 매개로 전달된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할아버지는 여러 번의 호흡곤란의 고비가 있었다. 최근 그 간격이 짧아지는 상태였다. 그래서 할머니에게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해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할아버지는 잘 못 듣는다는 전제하에.


"어르신의 병은 완치가 되기 어려워요. 그리고 요새 상태가 점점 안 좋아지고 있어요.. 연세가 들수록 조금씩 폐기능은 떨어지기 마련이고.. 냉정하게 얘기하면 아버님은 오래 사시지는 못하실 거예요. 그리고 제가 경험한 이병을 가진 환자들을 봤을 때, 점점 숨쉬기가 어려워진다는 건 할아버지에게 상당한 불안과 공포이실 거예요. 제가 아버님 편하실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최대한 해봐 드릴게요."


할머니의 눈가는 불그스름해졌다.

하지만 할머니도 할아버지와 같이 할 시간이 많지 않다는 걸 지레 느끼고 있었을 것이기에.

새삼스런 눈물 같은 건 어울리지 않았다.

잠시의 침묵과 울컥함 정도가 있었을 뿐.


내가 목소리의 톤을 낮추고 말한 터라 할아버지는 내가 말한 내용을 전혀 듣지 못했다. 그리고 할머니를 가리키며 나에게 말했다.


" 나야 뭐 늘 숨찬 건데.... 요새... 이 사람이 기운이 하나도 없네... 후.. 오늘 이 사람.. 영양제 좀 맞춰줘.. 휴우... 가격 상관 말고... 제일 좋은 걸로... 후..."


가쁜 숨을 몰아쉬며,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챙겼다. 할아버지의 남은 여생을 생각하던 차에 그 얘기를 들으니, 그 문장은 나에게 이렇게 다가왔다.

'내가 가더라도 이 사람의 건강을 잘 부탁한다고.'


사람은 나이를 먹으며, 사회생활도 끝나고, 자식도 독립하고, 결국엔 배우자와 서로를 의지하며 삶을 살아 나간다. 그 과정을 거치는 건 자의도, 타의도 아닌 한 인간의 삶의 흐름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겐 작고하신 큰 이모부가 계셨다. 사회적 지위도 얻고, 부도 이루고, 은퇴 후 글도 투고하며 지내셨던 많은 걸 갖은 분이셨다. 이모부가 지병으로 작고하시기 얼마 전 유언과 같은 문장들을 남기셨다. 나와 가까운 사람의 유언을 접한 건 처음이기에, 나에겐 그 어느 문장보다 진실하게 느껴졌다. 죽음을 앞둔 인간만큼 진실된 것은 없기에.


그분은 죽음 앞에 스스로에게 3가지 질문을 던졌다.

나는 정말 가치 있는 삶을 살았다 말할 수 있는가?

자녀들에게 사랑하고, 존경한다는 말을 들을 수 있는가?

아내로부터 사랑하는 반려자가 되어 행복했다는 말을 들을 수 있는가?


그러면서 어느 것 하나 자신 있게 그렇다라고 말할 수 없는 게 죽음 앞에 서글프다고 하셨다. 그분이 갖었던 명예와 소유한 것들에 대해선 일언반구도 남기지 않은 채.


숨이 찬 할아버지 환자와 나의 이모부는 수십 년의 각기 다른 삶을 사셨을 것이다. 그리고는 인생의 황혼기를 맞으며, 중요하지 않은 모든 것을 서서히 정리했을 것이다. 그리고 나를 지켜주고, 내가 지킬 가족의 품으로 단순하게 돌아왔을 것이다. 그리고 생의 마감 앞에 그 외의 것들은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이 인생의 순리라는 듯이, 각자 다른 삶이 하나로 수렴하듯.


노인 부부 중에 배우자가 생을 마감하면, 다른 배우자도 얼마 안 되어 돌아가시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나의 조부모의 경우도 그러셨다. 결혼한 지 10년이 넘어가니 이제 그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여지없이 나약한 인간인 나에게도 배우자란 점점 유일한 의지가 되어간다. 사이가 좋을 때도, 나쁠 때도. 나에게 친절할 때도, 짜증 낼 때도.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나의 인생도 단순하게 수렴해갈 때 마지막에 있어줄 사람, 그 한 가지 사실이 가장 소중하기에.

나도 아내에게 그렇게 있어줄 것이기에.


숨이 찬 할아버지가 부탁하신 것처럼, 나는 아주 좋은 수액을 할머니에게 놔드렸다. 아미노산, 비타민B, C, 감초주사, 마늘주사, 마그네슘. 등등.

하지만 좋은 걸 다 넣은, 그 고농도의 수액도 할아버지의 거친 숨을 뚫고 나온 할머니에 대한 마음만큼 진할 수는 없었다.


부부란 관계는 처음에 찬란히 불타 올랐다가 잠잠해지지만 그럼에도 그 불꽃을 이어간다. 제각각의 방식이겠지만, 그 심지가 인생의 끝자락까지 이어가는 관계라면 그것은 인연이라기보단, 차라리 운명이라 함이 맞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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