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회를 핑계로 혼자 제주도를 가기로 했다!
시원시원한 아내의 아량에 힘을 얻었고, 못내 아쉬워하는 아들을 눈 한번 딱 감고 안아줬다. 그리고 떠나기로 했다.
그렇게 유부남이면서, 6살 아들의 아빠인 나는 토요일에 1박 2일 동안, 학회라 쓰고 여행이라 읽는 여정을 시작했다.
토요일 오전 진료를 후다닥 끝내고, 지하철을 타고 김포공항으로 향했다. 막상 공항을 향하는 나의 발걸음이 망설여졌다. 주말에도 일하고 난 후에 피곤하기도 하고.. 괜히 간다고 그랬나.. 혼자서 뭐 하는 짓인가 싶기도 하고.. 하지만 10만 원쯤 하는 내 비행기 좌석은 이미 마련되어 있다! 가지 않을 수가 없다!
가는 길에 시끌벅적한 아들과 아내가 없으니 고요하다. 읽고 싶었던 소설책을 읽으며 공항으로 향했다. 병원과 집 만을 차로 왔다 갔다 하는 일상의 틀에 어느새 콕 박혀 있었던 건지, 오랜만인 지하철 인파 속의 공기가 약간은 어색한 느낌이 들었다.
공항에 도착했고, 비행기를 타는 경험은 여전히 나에게 신선했다. 번거로우면서도 묘한 설렘을 주는 비행기의 여정이 아니었다면, 혼자만의 여행을 절대 결정하지 않았을 것이다. 구름 위의 여정에 설레이는 마음은 초등학교 시절, 공항에서 설레던 어린 나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그 모습은 비행기 창문 밖 구름을 뚫어져라 보던 나의 6살 아들의 모습과 꼭 닮아있었다.
제주도에 도착해 숙소로 가는 길.
공항에서 나와서 느낀 제주도의 공기는 그저 좋았다. 혼자 있는 시간은 천천히 갔다. 나의 가족, 혹은 일행을 보던 시선은 주위를 바라보게 됐다. 제주도의 낮고 검은 돌담은 참 예뻤다. 새로운 자극들이 느껴질수록, 기억에 남는 경험이 많아지고, 그 기억들은 하루의 시간을 길게 느끼게 했다.
거꾸로 생각할 때,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빨리 간다고 느끼는 건, 기억에 남는 경험들의 줄어듦, 그리고 일상의 무뎌짐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숙소에 도착한 나는, 학회라고 쓴 이번 여정에 최소한의 예의만큼의 수업에 참여했다. 그리고 저녁이 되었고 가장 가까운 해변을 검색하여 버스를 타고 이호테우 해변으로 향했다. 버스 차창 밖으로 보이는 야자수 정원이 있는 주공 아파트는 서울의 삐까뻔쩍한 신축아파트보다 멋져 보였다.
해변에 도착해 노을과 파도 소리를 느꼈다.
섬의 파도는 반도의 파도와는 뭔가 다른 템포라고 느껴졌다. 확실히 다른 건 섬을 둘러싼 아주 큰 부피감을 갖는 구름이었다. 그 광경은 대학생 시절, 내가 배낭여행으로 갔었던 프랑스의 해변으로 기억을 데리고 갔다. 그다음엔 이곳에 아내와 아들과 같이 왔었던 3년 전의 그 시절로 나를 데려갔다.
공간의 이동, 시간의 이동을 멋대로 시키는 건, 제주도의 시원한 바람과 추억이었다.
혼자만의 시간을 갖으며 생각했다.
젊은 시절에 나를 목표에 도달케 하고, 성장하게 했던 것은 대부분 혼자 있는 시간이었다.
학창 시절 유일한 목표였던 대학입시에 도달케 한 것은 혼자 있던 시간의 총합이었다.
좋아하는 책을 읽고, 사색하며 글을 쓰게 한 것도 혼자만의 시간이었다.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좋아하는 악기를 연습하며 이제 한 곡 정도는 온전히 연주하며 즐길 수 있게 된 것도 혼자만의 연습시간이었다.
어릴 때는 그리도 혼자 있는 걸 견디지 못해 시간이 나면 그렇게 친구들과 만나려 하고, SNS도 했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이제 혼자만의 시간을 한 번씩 애써 갖으려 한다. 그것은 홀로 설 수 있을 만큼 자아가 성숙했음이기도 하지만, 인생의 반환점인 40대를 통과하며 인간관계를 포함한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길 원치 않는 마음, 구태의 마음이기도 할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인간관계는 좁아진다. 새롭게 맺게 되는 인간관계는 환자와의 관계 외에는 거의 없다.
나의 업은 의업이지만, 나의 직은 개인사업자이다.
이런 소상공인이 되는 것은 어떻게 보면 자발적 고립을 택하는 길이다.
혼자 있음은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며, 정신없는 일상의 쉼표이다. 그러면서 또한 외로움으로의 침잠이기도 하다. 타인은 지옥이면서도, 계속 혼자 있다 보면 외로움에 사무치는, 한없이 연약한 게 사람의 모순된 운명이란 생각이 들었다.
조금씩 이호테우 해변의 파도 앞에서 글을 쓰며 침잠해 가는 순간, 너무 진지해져만가는 나에게 아내가
이제 철학책 좀 그만 읽으란 말이 불현듯 떠올랐다.
그래.. 너무 생각에 빠져들고, 하루 종일 혼자 있으니 입에 거미줄이 생길 듯. 말을 정말 안 했다..!
그렇다. 정신의학적으로 우울증은 나에 대한 관심이 너무 과할 때 생겨난다고 한다. 그래서 우울증 환자에게 나보다는 남이나 외부의 환경으로 관심을 돌리게 한다. 그렇게 외부의 것에 집중하다 보면, 우울한 마음이 훨씬 가벼워진다.
세기의 예술가들도 자신으로의 침잠 때문에 생긴 괴로움을 작품으로 승화시켰지만, 그건 다음 세기 사람들의 축복과 감상일 뿐, 예술가 자신은 불행한 삶이었음을.
혼자만의 시간에 대해 고민과 사색에 빠져 있던 중, 나는 해변에서 이상적인 장면을 보았다. 모래사장에서 책을 읽는 엄마와 그 옆에서 모래놀이를 하는 아들의 모습.
따로 또 같이, 엄마의 시간이면서 모자의 시간, 사색의 시간과 수다의 시간의 빠른 태세전환이라고 할까.
그 이상적인 모습은 다름 아닌 우리 가족의 모습이기도 했다. 아들과 놀다가, 아들이 혼자 놀기 시작하면 각자 평화로운 시간을 갖는 보통의 평범한 가정의 모습.
내가 가족을 부양한다 생각했지만, 실은 내가 가족의 보호를 받고 있었다.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는 가족, 살아갈 이유를 애써 찾지 않아도, 살아야만 하는 이유가 되는 존재들.
나는 고요가 좋다. 가족과 한바탕 시끄럽게 하루를 보내고 난 후의 고요가 좋다.
혼자가 좋다. 가족과 살갗을 맞대고, 하루 종일 웃음과 짜증이 섞인 하루를 보낸 후에 혼자 있는 시간이 좋다.
혼자 하는 여행도 좋다. 하지만 아내와 아들과 웃고 떠들고 주변을 감상하기 어려워도, 정신없는 너희와의 여행이 더 많이.. 좋다.
다음날 일찍 비행기를 타고 김포공항에 돌아왔다.
한층 빨라진 템포의 걸음들과 매캐한 공기를 느꼈다. 그리고 나의 뇌와 마음엔 바쁜 일상의 모드가 바로 켜졌다. 하지만 괜찮았다. 내가 돌아갈 곳이 있어서.
나를 기다리는 이들이 있어서.
공항에서 산 감귤 초콜릿을 선물할 아내와 아들이 있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