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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강남 가면

by 문과체질 내과의사

나에겐 서로 많이 닮은 의사 동료가 있다.

나와 같이 내과 수련을 마치고, 비슷한 시기에 동네병원을 개원하고, 같은 동네에 사는 친구이다.

그와 가끔 만나서 맥주 한잔 하며, 우리만 아는 이 일의 고충을 나눴다. 환자에 관한, 간호사에 관한, 직원에 관련된..... 욕을 그렇게 했다.!


그리고 직업 특성상 거의 앉아서 일하기에, 생존을 위한 운동도 가끔 같이 했다. 동네의 공원을 같이 조깅하는 것이 좋았다. 특히 걸어서 만날 수 있는 동네 친구라는 점이 참 소중했다. 나이가 들수록 행동반경이 좁아지며, '몸이 멀어지면 마음이 멀어진다'는 말은 친구 사이에도 적용됐다.


그는 일을 엄청 열심히 하는 친구였다.

동네병원 의사임에도 최신 의학지식의 습득에 열정을 보였다. 한 달에 한 번씩은 일요일에도 진료를 보았다. 그만큼 성공에 대한 야망도 있었다. 그에 비해 나는 '소확행'을 추구하는 편이었다. 물론 이것은 자본주의에 잘 적응된 내가 추구하는 '이상향'일뿐이었다. 친구가 대놓고 부를 쫓는다면, 나는 좀 돌려서 쫓는다고나 할까..?

그래서 우리 둘 사이에서, 친구는 일과 욕심에 솔직한 사람이었고, 나는 취미와 감정에 솔직한 사람이었다.


" 야, 좀 쉬엄쉬엄 해~ 일만 하다 죽는 게 제일 불쌍한 거야~ "

라고 내가 말하면, 친구는


" 힘닿을 때 최대한 열심히 해서 빨리 은퇴해야지~"

라고 했다.


서로 바빠서 연락이 뜸하다 문득 생각나면, 그때가 만날 타이밍이었다.

오랜만에 친구에게 문자를 보냈다.


" 별일 없이 잘 지내지~? 이제 날도 선선해지고, 공원에서 조깅 한번 해야지!"


한참 후 답문이 왔다.

" 그래~ 잘 지내지? 근데 나 강남으로 이사 갔어~ㅋ"


그날 친구의 문자를 받고, 평소대로 아무 생각 없이 답문을 바로 보낼 수가 없었다.

뭔가 묘한 감정이 들었고, 나의 대답의 단어를 가려서 보내야 할 것만 같았다. 그렇게 가려야 할 대상은 친구의 성공에 대해 느끼는 나의 감정 때문인 것 같았다.


친구는 자신의 성공의 목표를 강남으로 이사 가는 것으로 자주 얘기했었다. 그리고 그는 그만큼의 노력을 충분히 하고 있었다. 환자의 치료에도, 병원의 경영에도 내가 혀를 내두를 만큼 열심이었다. 그래서 친구가 목표를 이룬 건 그 노력에 대한 값진 결과였다.


나는 조금 지나 답장을 보냈다.

" 드디어 목표를 이뤘구나! 축하한다! 근데 동네 친구를 잃은 건 좀 아쉽다 ㅎ"


그렇게 오랜만의 조깅 번개 모임은 불발되었다.


그리고 나는 일상으로 돌아와 평소처럼 진료를 하며 일과를 보냈다. 그런데 왜인지 의욕도 약간 떨어지는 것 같고, 좀 무기력한 것 같기도 했다. 매일 반복되는 집, 병원의 하루가 권태로운 것 같기도 했다.


그렇다... 아무리 부인하려고 해도, 돌려서 말하려 해도 안 되는 것이었다... 나는 친구가 강남 가서 배가 아팠던 것이었다..!

이 사회에서 인기 좋다는 직업을 갖은 나도 남의 떡은 여지없이 커 보이는 것이었다. 치졸한 마음은 친구도 그렇게 남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 아프다는 말이 있듯, 한국인의 종특 이라고 위안을 해봤다.

아니, 그걸로는 부족해서 외국 속담도 찾아봤다. 다행히 "I feel green with envy" 라는 질투의 표현이 있었다. 다행이다.

나는 이상하게 속 좁은 놈은 아니고, 인류의 보편적 감정을 느낀 것 뿐이었다....!


친구와 나는 의사로서의 출발선이 같았다. 먹고사는 기술도 아주 똑같았다. 그래서인지 아무리 비교를 안 하려고 해 봐도 우린 데칼코마니의 양면같이 보였다.

그런데 그중 한 면은 멋진 작품이 되어 액자에 걸리게 되고, 다른 한 면은 그대로 도화지에 남겨져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난 친구의 성공을 바라지 않거나, 그의 성공을 깎아내릴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렇다면 난 왜 배가 아픈 듯 묘한 감정을 느꼈을까.


좀 더 생각해 보니 그건 남겨진 한 페이지의 데칼코마니에 있었다. 남겨져 있던 도화지도 충분히 나에게 넓고 멋있는 곳이라 생각했는데, 액자에 걸린 다른 면과 비교해 보니 갑자기 초라해 보이는 것이었다. 나는 액자 속은 답답해서 싫다고 말해왔는데, 그를 보니 갑자기 나도 액자에 걸리고 싶어지는 것이었다.


친구의 성공에 내가 느낀 묘한 감정은 상대적으로 작아져 보이는 나에 대한 연민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작아지는 나에 대한 방어기제 였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남을 보는 시선은 나에게로 돌아와야 했다.

나는 사실 작아지지 않았었다. 지금도 충분히 노력하며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살아나가고 있었다. 고민의 순간마다 나름의 최선의 선택을 하고 있었다. 글을 쓰는 지금도 최선의 단어를 고민하듯이.

그리고 내 도화지에 찍혀있는 무늬 외에 새로운 무늬를 그려보면 어떨까 하며, 아직도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찾아보고 있었다. 몸집이 커버린 피터팬이었지만 가슴 떨리는 일을 찾고 싶었다.


그렇게 나를 다독이며, 어김없이 병원에 오는 출근길.

병원에 도착할 때쯤, 심부전증으로 나에게 다니던 할아버지의 보호자 아들을 우연히 만났다. 할아버지는 최근 증세가 악화되었었고, 요양병원에 입원하신다고 하여 의뢰서를 써드렸었다.

아들이 말했다.


"선생님, 안 그래도 한번 찾아뵈려고 했었는데.. 저희 아버지 돌아가셨어요.. 어제 49제를 치렀어요. 그동안 아버지 잘 챙겨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꼭 얘기드리고 싶었어요."


나는 순간 멍해졌다.

그분의 인생을 마감하는 데에 내가 감사를 받을 자격이 있을까. 욕심에 차고, 남의 기준에 휘둘리고, 지극히 평범하고 세속적인 나인데. 나의 진료 일상에도 세속의 마음이 조금씩 담겨 있었을 텐데.


나는 아들에게 말했다.

".... 아버님, 좋은 데로 가셔서 편히 쉬시길 빌겠습니다."

그와 인사하며, 서로 애썼다는 미소를 지으며 병원 건물로 들어갔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매달 오시던 그 할아버지의 얼굴이 떠올라 울컥했다. 나의 일에는 경제적 가치로는 환산할 수 없는 다른 의미가 있었다. 왠지 모르게 그날은 환자들에게 더 친절하게 대할 수 있었다.

떠난 지 49일이 된 할아버지가 나에게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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