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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제

by 문과체질 내과의사

"오메가 쓰리 먹어도 되나요~?"
"쏘팔메토 먹어도 되나요~?"
"폴리코사놀 먹었는데 왜 콜레스테롤이 높죠?"

내가 진료실에서 자주 듣는 질문 탑5 안에 드는 질문이다.

정말로 영양제 전성시대이다. 사람들은 영양제의 관심이 정말 높다. 나도 뭐 하나 안 먹으면 건강을 유지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영양제 경쟁시대이다.
일요일 아침, 티비를 틀면 공중파, 종편채널 가리지 않고 모두 영양제에 관한 내용이다. 아마도 아침잠이 없고 건강에 관심이 많은 중장년층을 대상으로 한 타겟 마케팅임이 확실하다.
각각 프로그램들은 장수의 비법! 동안의 비법!등의 솔깃한 제목으로 관심을 끈다. 그 프로그램에는 어김없이 의사들이 등장한다. 의사들은 이러저러한 관리를 하면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교과서 한 구절을 말하다가, 마지막엔 무엇, 무엇이 들어있는 식품 혹은 제품이 좋다는 결론을 낸다. 그 순간 두서너 채널을 위아래로 돌리면 의사가 좋다는 바로 그! 성분이 들어간 영양제를 홈쇼핑에서 판매하고 있다. 처음 본 그 불순한 의사와 홈쇼핑의 연결고리를 보았을때 같은 직업을 갖은 자로써 충격이고, 부끄러워 그렇게 욕을, 욕을 했었다.

레지던트 수련이 끝나고 전문의가 된후 강남의 모 병원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그 병원은 홍보를 위해 각종 방송을 섭외하는 역할을 하는 직원도 있었다. 방송출연 제안이 나에게도 들어왔다. 의사가 출연하는 방송 포맷이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나에게 제안이 온 방송은 내가 욕을 하던 바로 그런! 방송 이었다. 그렇게 욕을 했던 방송이 나에게 제안이 들어오자, 그 비판은 내 의사생활의 좋은 기회로, 나에게 보내는 신뢰와 자부심으로 둔갑하였다. 나는 PD 에게 얘기했다. "이렇게 이렇게 멘트를 준비하면 될까요~?" 와우. 내로남불은 본능이란 말인가..

첫 방송출연을 PD가 괜찮게 봤는지, 그 후로도 몇번 제의가 들어와 방송을 더하고, 자랑스런 방송출연 사진의 액자는 진료실에 전리품으로 쌓여갔다. 멘트는 대부분 영양제 판매회사와 PD가 준비해주었다. 그것을 자연스럽게 나의 멘트로 녹아내는 것만이 나의 할일 이었다. 방송이 나가는 동시간대 홈쇼핑은 어김없이 나의 흰가운으로 영양제를 그럴싸하게 포장하여 시청자를 현혹하고 있었다. 나의 출연료는 화폐도 아닌 방송 출연 동영상 자료였다. 인터뷰 몇마디를 그럴싸하게 읽어주는 대가로는 괜찮았다. 그로써 나를 찾는 환자들이 많아질 수 있다면..

몇번 방송을 하고 나니, 전리품이 이제 더이상 매력적이지 않았는지, 배가 불러서 인지,대가가 충분치 않았는지 출연요청이 와도 하지 않았다. 쇼닥터의 자기고백을 위한 양심이 나를 부여 잡았다고 믿고 싶다.

그 당시 방송 관계자는 영양제 시장의 규모가 수조원대로 어마어마하다고 했다. 우리는 이렇게 서로를 현혹 시키고, 현혹되어 약을 산다. 우리의 일상언어에도 이런 말이 있듯이. "어디서 약을 팔어..!?"
이와 같이 약을 파는 행위는 속칭 사기치는 행위로 비유될 정도로 우리에게 불신의 행위로 각인되어 있다. 그런데 왜 그렇게 영양제를 속아서 사주는 걸까?

나에게 지방간과 고지혈증이 처음으로 진단된 환자가 있었다. 그의 병의 원인은 활동부족, 과체중, 과한 영양상태였다. 그는 나에게 물어봤다. "선생님 그러면 무슨 영양제나 뭐를 먹어야 하나요?"
나는 대답했다. "뭘 안먹어야 됩니다..!"

이렇게 우리가 약을 좋아하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을 것이다. 운동같이 꾸준히 해야하는 힘든 과정을 거치지 않고 건강해지고 싶은 마음, 이걸 먹으면 오늘 하루는 활력이 넘칠 것 같아지는 인류 최고의 명약 플라시보.
이 명약은 나 자신도 보지못하는 우리의 몸, 위, 대장, 혈관을 구석구석 관찰하고 한바퀴 돌아, 약 2시간 후에 샛노랑, 빨강의 총천연색 가장 비싼 오줌이 되어 변기로 들어간다.

이렇게 영양제에 부정적인 견해를 갖는 나 이지만 환자들이 영양제를 먹어도 되냐는 질문에, 정말 해가 되지 않는 약이라면 대부분 예스 로 대답한다.
대부분 어떤 약을 특정해서 이걸 먹어도 되냐고 묻는 사람은 이미 그 약을 샀거나, 먹고 싶거나, 먹으면 효과가 있으리라는 플라시보 효과가 이미 시작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의 대답은 보통 이렇다.
"좋은 약인거 같고, 이미 사셨다면 챙겨드시면서 효과가 있나 잘 봐보세요. 만약 안사셨고, 비싸서 부담되는 약이면 안 드셔도 되요~"

한편 영양제엔 또 다른 의미가 있다.
시장 앞에 위치한 나의 병원에 들어오는 할머니 환자들은 허리춤에 맨 가방에서 주섬주섬 영양제 몇통을 꺼내놓는다.
"우리 딸이 해외 나갔다오면서 눈에 좋은거라고 루테인 사왔는데 먹어도 되남? 비싼거라는데~?"

"동사무소 직원이 나 혼자 산다고, 잘 지내는지 본다고 찾아와서 이 비타민 주고 갔는데 먹어도 되나?"

그 영양제엔 자식들의 부모사랑이, 우리사회의 공공선이, 받는 사람이 건강해지길 바라는 따뜻한 마음이 담겨있다. 그래서 나는 한번도 본 적 없는 그 할머니의 딸과 쿵짝을 맞추며 오늘도 얘기한다.
" 어휴 어르신, 딸이 좋은 약 사다줬네요~ 건강해지실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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