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톺아보기'는 "샅샅이 톺아 나가면서 살피다"는 뜻이다. 면접관 경험이 많고 어설픈 글줄깨나 쓴다는 이유로 자기소개서를 첨삭해달라는 부탁을 주변에서 종종 받곤 한다.
운 좋게도 지금까지 필자가 첨삭을 도와준 이들이 모두 합격해서 과분한 감사의 인사를 받았다. 그 어려운 취업의 문을 여는 데 필자가 작은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에 얼마나 기쁘고 보람을 느끼는지 모른다.
그래서 첨삭 과정을 독자들과 공유한다.다만 한 사람이 아니라 필자가 지금껏 첨삭한 여러 취업준비생들의 자기소개서를 조합해서 만든 사례다.
합격하는 자기소개서는 도대체 뭐가 다른 걸까? 자기소개서에는 자신에 대한, 그리고 지원하는 회사와 직무에 대한 지원자의 관심과 열정, 그리고 그를 뒷받침하는 구체적인 경험이 오롯이 녹아 있어야 한다.
취업에 성공한 이가 실제 제출한 자기소개서가 나오기까지의 과정 속에서 ‘합격의 노하우’를 찾아보자.
Q: 수많은 직장 중에서 은행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기술하여 주십시오.
원문(Before): “저희 아버지께서 은행에 근무하셔서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지점에 찾아가곤 했습니다. 은행에 가면 직원들은 항상 밝게 웃으며 인사했습니다. 그러한 친절한 모습이 저를 즐겁게 만들어 주었고 그래서 은행이라는 곳이 항상 가깝고 편하게 느껴졌습니다. 은행은 사람들을 만나기 좋아하고 도전하는 것을 좋아하는 저에게 꿈이었습니다”
원문(Before)에서 세상의 수만 가지 직업 중에 하필 은행(원)을 선택한 이유가 그리 설득력 있게 다가오지 않는다.
은행원이었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은행에 자주 갔고, 항상 상냥하고 친절하게 맞아준 직원들 덕분에 은행이 가깝고 편한 장소로 느껴진다는 것이 은행에 지원한 혹은 은행원의 꿈을 갖게 된 이유의 전부다.
읽는 사람이 공감할만한 주장이 되기에는 근거가 너무 빈약한 느낌이다. 하지만 설득의 힘은 구체적인 근거에서 나온다. 주장만 있고 그것을 착실히 뒷받침하는 근거가 없는 글은 읽는 사람을 설득하기 어렵다.
다시 말하지만 지원동기야말로 기업이 가장 눈여겨보는 자기소개서의 핵심이자 결론이다. 그래서 은행원으로서 아버지의 투철한 직업관이나 지원자에게 미친 영향 등의 디테일을 더해서 주장의 근거를 보강했다.
수정문(After)에서는 특히 오랫동안 입사를 꿈꾸고 준비해온 지원자라는 점을 자연스레 부각하고 있다. 이렇게 지원동기에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구체적인 근거와 디테일한 표현을 통해 진정성 있는 지원자로 ‘나’를 어필하는 것이다.
수정문(After): “은행에 근무하시는 아버지를 보면서 어릴 때부터 ‘은행원’의 꿈을 키웠습니다. 은행원을 천직으로 여기시는 아버지는 당신의 일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신 분입니다. “은행은 그저 돈이 오가는 곳이 아니라 사람들의 꿈과 희망을 키워주는 곳”이라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십니다.
그러기에 항상 친절과 미소로 고객들을 대하시고 고객의 입장에서 배려를 아끼지 않으십니다. 고객의 경조사를 집안일처럼 챙기시는 모습에 “고객은 가족이다”는 아버지의 생각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그런 아버지를 닮아서인지 저도 ‘5초 OOO’이라는 별명(누구든지 만나서 5초면 친해진다는 의미입니다)이 붙을 정도로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합니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누군가 꿈을 물으면 자연스레 은행원이라고 답을 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가 은행에서 일하실 때 셔터가 내려진 영업점에서 항상 밤늦게까지 일하시는 모습을 보아왔기에 은행원에 대한 막연한 환상은 없습니다. 오히려 아버지께서 실적에 대한 압박이나 민원고객 등으로 고민하시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덕분에 은행원의 보이지 않는 고충이나 어려움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만큼 은행에 더 잘 적응할 자신이 있습니다. 은행에서 일하다 보면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언젠가 지치고 힘든 순간을 맞이할 것입니다. 그때마다 지금의 각오를 떠올리면서 한발 더 내딛고 노력해서 OO은행 최고의 고객관리 전문가로 성장하겠습니다”
Q: 특히 은행 중에서 OO은행을 지원한 동기에 대해 기술하여 주십시오.
원문(Before): “한국경제의 또 다른 힘인 중소기업을 뒷받침해주는 OO은행은 중소기업이 거래하고 싶은 1위 은행입니다. 최근 정부는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강한 중소기업을 육성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을 추진 중입니다. 이에 국내은행들도 정부 정책에 적극 발을 맞추고 있습니다.
특히 OO은행은 시장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히든 챔피언 육성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중국 등 활발한 해외진출을 통해 글로벌 영토를 확장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의적절 한 전략에 힘입어 OO은행은 국내 최고의 은행, 나아가 글로벌 은행으로 도약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세계로 뻗어갈 OO은행에서 저의 역량과 가능성을 발휘하고 싶습니다”
지원자의 답변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마치 회사 홈페이지 내용을 그대로 퍼온 느낌이다. 칭찬 일색이지만 정작 지원하는 OO은행에 대한 관심이나 열정은 눈에 띄지 않는다.
가장 큰 아쉬움은 입사의 절실함과 진정성을 보여주기에는 구체성이 너무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래서는 설득의 힘이 발휘되기 어렵다.
또 단순한 나열식 전개로 한눈에 내용이 들어오지 않는 것도 문제다. 이렇게 이야기를 ‘사이다’처럼 막힘없이 시원하게 풀어가지 못하고 빙빙 돌려 말하듯이 늘어지게 이어가면 읽는 사람의 눈길을 끌기도 공감을 얻기도 힘들다.
그래서 수정문(After)은 소제목을 활용해서 가독성을 높이고 내용에서도 디테일을 가미했다. 특히 해외 네트워크의 강점 등 OO은행에 대한 관심과 사전 지식을 최대한 드러내는데 초점을 맞추었다. 이렇게 지원한 회사나 직무에 대해 많이 안다는 것은 자기소개서에서 티가 많이 날수록 좋다.
수정문(After): Why OO은행? OO은행은 ‘가족’이다
“주변에 OO은행에 다니는 선배들이 있습니다. 언제나 직장 이야기가 나올 때면 하나같이 약속한 듯이 ‘가족’이라는 말을 꺼내고는 합니다. 다른 은행에서는 찾기 힘든 가족 같은 분위기를 자랑합니다.
물론 은행생활을 장밋빛으로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은행원들이 실적이나 고객응대에 대한 부담이 얼마나 큰지를 선배들을 통해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어려운 상황도 가족같이 응원과 격려를 보내는 직장 동료들이 있다면 함께 헤쳐나갈 자신이 있습니다. 직장은 가정과 더불어 가장 소중한 삶의 터전이라고 생각합니다. 즐겁고 보람찬 일터, OO은행에서 일하고 싶습니다”
OO은행에는 ‘미래’가 있다!
“OO은행은 규모는 작을지 몰라도 “작은 고추가 맵다”는 말처럼 생산성이나 수익성 면에서는 명실상부한 국내 최고의 은행입니다.
특히 현재 포화상태에 있는 국내 금융시장에서의 성장은 한계에 부닥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해외 네트워크에 강점을 가진 OO은행은 현재보다는 미래가 더욱 기대되는 은행입니다. 이에 OO은행에서 저의 역량과 가능성을 발휘하고 싶습니다”
Q: 입사 후 귀하가 설정한 Career Path에 대해 기술해 주십시오.
원문(Before): “입사 후에는 밝고 명랑한 성격으로 지점 내에서 활력소 역할을 하면서 OO은행의 가족 같은 분위기에 더 큰 활기와 생동감을 불어넣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고객의 만족과 행복을 위해 신속한 업무처리는 필수입니다.
신입행원으로서 새로운 업무를 습득하는 데 전력을 다할 것이며, 능숙한 업무수행을 위해 적극적으로 직무교육을 받고 관련 자격증을 취득할 것입니다. 주어진 업무에 대한 책임감과 열정으로 제가 맡은 분야에서는 일인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중국 지점에 근무를 희망하고 있기 때문에 해외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중국어와 영어공부도 꾸준히 할 것입니다. 한국의 많은 은행들이 국내 시장의 한계를 극복하고 해외시장 개척을 위해 노력 중입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중국으로의 진출로 영업기반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저의 갈고닦은 중국어 실력과 업무수행 능력을 OO은행의 중국 네트워크에서 발휘하고 싶습니다. 글로벌 리딩뱅크로의 도약을 꿈꾸는 OO은행에서 패기 있고 열정 가득한 모습으로 기여하고 싶습니다”
읽는 사람의 시선을 붙잡기에는 군더더기 많고 산만한 구성이 아쉽게 느껴진다. 특히 도입 부분이 지나치게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주어진 질문에 대해 지원자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핵심은 “나는 우수한 인재로 성장하겠다”일 것이다.
그런데 입사 후 포부를 관통하는 핵심이 이야기의 거의 끝부분에 가서야 등장한다. 이래서는 “첫눈에 반하는” 자기소개서가 될 수 없다. 그래서 첫 줄만 읽어도 전달하려는 핵심이 바로 드러날 수 있도록 두괄식 구성으로 바꾸었다.
아울러 소제목을 활용하여 입사 후 시간의 흐름에 따른 단계별 경력목표를 기술한 다음 내용을 부연 설명하는 구조로 바꾸었다.
특히 내용 중에 OO은행을 대표하는 학습 프로그램 중 하나인 ‘스터디그룹’과 요즘 금융상품 판매를 위해 은행원들에게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금융상품 판매 필수 자격증>을 언급하고 적극적인 참가·취득 의지를 표현했다. 지원한 OO은행에 대한 사전 지식과 함께 자기 계발에 대한 구체적인 실천의지를 어필하기 위해서다.
또 마무리는 입사에 대한 의지를 강조하는 것으로 끝이 난다. 그런데 마무리가 너무 뜨뜻미지근하다. 마지막 다짐 부분을 시간에 쫓긴 사람처럼 성급하게 정리한 느낌이다.
모든 글은 시작만큼 마무리가 중요하다. ‘용두사미(龍頭蛇尾)’라는 말처럼 아무리 알찬 내용을 담았어도 끝맺음이 흐지부지하면 글의 임팩트가 떨어진다.
특히 마지막 문장의 몫은 진한 감동으로 여운과 울림을 주는 것이다. 그래서 글의 시작부터 이어져온 “오랫동안 입사를 꿈꿔온 지원자”라는 흐름이나 메시지를 끝까지 일관성 있게 연결시키고, 입사에 대한 절실함을 강조하고자 여운을 남기는 멘트를 덧붙여서 처음과 끝이 같은 일종의 ‘수미상관(首尾相關)’식 구성으로 마무리했다.
수정문(After):“밝고 명랑한 성격으로 길러진 서비스 마인드, 대학시절 2년간의 해외연수 경험을 통해 길러진 글로벌 감각, 언제나 새로운 것을 배우려고 노력하는 열정을 쏟아부어서 OO은행의 핵심인재로 성장하겠습니다. 언제나 공부하는 자세, 스스로 도전하는 자세를 지닌 제가 핵심인재로 성장하기 위한 여정, 구체적인 Career Path를 말씀드리겠습니다”
1년 후 ‘미소 전문가’로 성장하겠습니다!
배치된 영업점에서 진심 어린 미소로 고객님들을 맞이할 것입니다. 최소한 선배님들보다는 30분 일찍 출근해서 미리 고객을 맞이할 준비를 하겠습니다.
내부고객님들도 더없이 소중합니다. 영업점의 막내로서 가족 같은 분위기에 더 큰 활기와 생동감을 불어넣는 활력소가 되겠습니다.
5년 후 똑 소리 나는 ‘업무 전문가’로 성장하겠습니다!
고객에게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일단 직원이 많이 알아야 합니다. 특히 무형(無形)의 금융상품을 판매하는 은행원에게는 지속적인 자기 계발이 중요합니다. 아직 배워야 할 게 많은 신입행원에게는 더더욱 두말할 나위 없습니다.
입행 후에는 각 분야의 현장 전문가들이 자신의 업무지식 및 노하우를 동료직원들에게 전수해주는 ‘스터디그룹’ 등 직무연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파생상품 투자권유 자문인력’ 등 영업점 직원에게 꼭 필요한 <금융상품판매필수자격증>을 첫해에 모두 취득할 것입니다.
또한 5년 내에 CFP 자격증을 취득하여 자산관리 분야에서 고객의 인정과 신뢰감을 얻을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겠습니다. ‘일터 학습(Workplace Learning)’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배움에 최고의 기회는 업무이고, 최고의 교실은 현장이라는 의미입니다.
직장인은 일하면서 배우고 배우면서 일합니다. 열심히 배우고 다양한 업무를 경험하면서 자신의 일에 가치를 느끼고 실력으로 성과를 창출하는 최고의 전문가, 진정한 프로로 성장할 것입니다.
10년 후 ‘해외전문가’로 자리 잡겠습니다!
중국 현지법인이나 지점에서 근무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해외에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현지 사회와 문화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현지인 수준의 어학실력이 필수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HSK 6급을 목표로 부단히 노력하겠습니다. 이미 지난달부터 중국어 학원에 등록했고 입사 후에 휴가도 중국·홍콩 등 앞으로 제가 근무하고 싶은 지역을 중심으로 다녀올 계획입니다.
무엇보다 10년이란 세월이 지났으니 은행 내에서 ‘깨소금’ 같은 선배로 성장해 있을 것입니다. ‘깨소금’이란 후배들에게 업무를 할 때 깨달음을 줄 수 있고, 부하직원들과 원활하게 소통하면서, 후배들에게 ‘금과옥조’처럼 새길 수 있는 삶의 철학도 전수해 줄 수 있는 선배를 말합니다.
초등학생 때부터 은행원을 꿈꿔온 소녀가 과연 꿈을 이루고 중국 대륙을 누빌 수 있을지 궁금하시지 않습니까? 결과를 확인하기 위하여 저를 한번 만나주시지 않겠습니까? 면접에서 뵙게 되기를 간절히 고대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