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과 예술 자연이 완벽하게 일치되는 순간
오랜 시간 방문하고 싶었던 공간, 뮤지엄 산.
건축과 자연 그리고 예술이 인간의 영혼과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는 곳이 있다면,
그곳이 뮤지엄 산이 아닐까 싶다. San은 산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Space Art Nature의 줄임말이다.
왜 그렇게 뮤지엄 산을 방문하고 싶었을까. 보통 미술관을 선택할 때는 어떤 작가의 작품을 경험하고 싶은지 고민을 먼저 하게 되지만, 이곳을 찾을 때는 안도 타다오의 건축물을 온몸으로 느껴보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빛의 건축가로 불리는 안도 타다오는 세계적인 건축가이기도 하지만 한국에서도 매우 유명하고, 한국에도 그의 건축물이 6개가 있다. 아마 그의 건축물 중 가장 잘 알려진 건축물은 빛의 교회일 것이다. 교회의 벽면에 난 십자가 모양의 창으로 빛은 교회 안으로 신비롭게 들어온다.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상징인 빛과 십자가가 하나 되도록 만든 안도의 상상력과 창의력은 나의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지금은 드물지 않은 노출 콘크리트의 사용도 그의 건축에서 큰 특징을 차지한다. 과거 노출 콘크리트는 건축에서 낯설기만 할 뿐 아니라, 콘크리트는 가려져할 대상이었다. 하지만 안도 타다오는 그것을 건축의 전면으로 이끌어 내었고, 끊임없는 노력으로 매끄럽고 부드러운 질감의 그의 콘크리트를 만들어냈다.
"인간의 삶이란 건축의 품에서 안심하며 아름다운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본래 집이라는 곳은 육체가 사는 곳이자, 영혼이 사는 곳입니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인간이 자연을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나는 건축에 대한, 그리고 자연에 대한 그의 시선이 좋다. 그의 건축에는 자연, 그리고 영혼이 함께한다. 자연을 건축 안으로 섬세하고 비밀스럽게 끌어들이는 능력은 그의 가장 큰 힘이다. 그는 놀랍게도 건축에 대한 공식적인 교육을 받지 못했다. 가정이 어려웠고, 교육은 커녕 먹고사는 것을 해결하는 것이 그에게는 가장 중요했다. 잘 알려져 있듯이 그는 가능성이 있다고 믿었던 복싱 선수로 일을 시작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이 큰 선수로 성장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고, 건축 작업장에서 인부로 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접어 두었던 건축가의 꿈을 다시 키우기 시작했다. 정규 교육의 4년 과정을 1년 동안 독학으로 끝내겠다는 일념으로 8시간씩 독학으로 건축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책 값도 부담이 되어 고서점에 가서 자신이 존경하는 르 코르뷔제의 책이 팔리지 않게 깊이 숨겨두고 책을 사기 위해 온갖 일을 하며 돈을 벌었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이다. 세계 여행을 하며 거장들의 작품을 보며 배우고 스스로 그 건축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을 하며 건축의 본질을 찾아갔던 안도 타다오. 고통스럽기까지 했던 그 시간이 놀랍도록 창조적이고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그의 건축을 만들어냈던 것일까.
“나는 대학에도 가지 않았고, 선배 건축가 밑에 제자로 들어간 적도 없이 내 설계사무소를 차렸다. 소위 말하는 ‘스승’은 없었다. 그래서 독학으로 자신이 나아가야 할 길을 개척해 모더니즘 건축의 초석을 놓은 르 코르뷔지에에게 끌렸던 것 같다. 건축가로서 삶을 가르쳐줬다는 의미에서 르 코르뷔지에는 나의 스승이다. 또 내게 여행은 곧 학교였다. 하지만 단지 건물을 보고 (주변을) 걷는 것만으로는 배울 수 없었다. 그것이 왜 아름다운지, 무엇이 나를 끌었는지를 계속해서 생각했다. 정답 없는 자문자답의 시간이 고통스럽기도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독학의 시간이 건축가로서 자아 확립으로 이어졌다고 본다.”
뮤지엄 산 또한 다르지 않았다. 주차장부터 시작되는 그의 건축은 안도 타다오가 보여주려는 공간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파주 석으로 불리는 자연 석벽으로 원을 그리듯 설계되었다. 마치 하나의 이야기를 들려주려는 듯이 마음을 빼앗는 음악과 함께했다. 보여줄 듯 말 듯, 이어져있지만 마치 하나의 독립된 공간에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넓게 펼쳐진 강원도의 산맥이 둘러싼 정원의 조각을 만난 후 걸어 들어가면 그가 사랑하는 물의 정원이 나온다. 뮤지엄 본관에 들어가기 전 마주치게 되는 잔잔한 물의 정원은 주변의 나무와 뮤지엄 본관을 마치 거울처럼 비춘다. 뮤지엄 본관이 물 위에 떠 있는 것처럼 느껴지게 하고 우리가 뮤지엄에 들어가기 전 이미 이 공간이 마음을 차분히 정리해준다.
그리고 그의 건축과 예술을 본격적으로 만날 수 있는 뮤지엄 본관이 드디어 나타난다. 그는 보통 노출 콘크리트를 건축의 전면에 사용하는 것으로 유명하지만 놀랍게도 이 건물은 파주 석으로 둘러싸여 원주의 산과 물과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그 색감만 느끼면 마치 시골의 초가집과 돌담이 주는 따뜻하고 아늑한 느낌이 든다. 그리고 지붕을 건물과 떨어뜨려 마치 지붕이 떠있는 듯한 인상을 주며 그것은 건물 안으로 들어섰을 때 자연의 빛이 건물로 자연스럽게 들어올 수 있도록 만든다. 본관 안에서 만나게 되는 창에서는 하늘과 산과 다시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이제 그가 선물하는 건축의 아름다움을 그저 누리면 되는 것이다. 곳곳을 다니며 마치 새로운 세상을 만나는 듯이 눈이 반짝이고, 가슴이 설렜다. 어떻게 이렇게 놀라운 공간을 안도 타다오는 만들어 낼 수 있었을까. 그 안을 돌아보는 것이 내게는 안도 타다오의 영혼과 맞닿는 순간이었다.
뮤지엄 본관에서 준비된 작품들과 만난 후 나오면 스톤 가든을 맞이하게 된다. 스톤 가든은 신라고분을 모티브로 한 것이며 9개의 부드러운 곡선의 스톤 마운드로 계획했다고 한다. 이 산책길을 따라 공간에 준비된 음악을 들으며 걸으면 마치 걷는 것이 자연과 만나는 명상의 순간이 되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된다. 그곳에서 자연의 평온과 돌, 바람, 햇빛을 만끽하라고 안도 타다오는 우리를 안내한다.
이후 명상관에 도착하면 안도 타다오가 가장 잘하는 것, 자연과 영혼이 맞닿게 하는 명상관을 만나게 된다. 돔 형태의 돌무더기처럼 생긴 명상관은 가운데의 긴 줄 모양의 창이 나있다. 그 창은 명상관의 유일한 빛이 된다. 자연광으로만 만나게 되는 명상관에서는 아로마 오일과 함께 준비된 명상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다. 안내자의 편안한 안내에 따라 나의 영혼과 조용히 만나게 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오직 명상만을 위해 준비된 공간, 안도 타다오가 우리를 위해 준비한 공간이었다. 공간이 사람과 깊이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온몸으로 느껴진 순간이었다. 그곳에서 만나게 되는 빛은 시시 각각 그 모습을 달리하며 명상하는 이들의 영혼을 이끌어준다.
마지막 장소는 빛과 공간의 예술과 제임스 터렐관이다. 제임스 터렐의 작품은 이전에도 만난 적이 있었는데 빛으로 이야기를 한다는 점이 인상 깊었었다. 하지만 공간의 제약에 아쉬움이 있었는데, 이 제임스 터렐관은 오직 그의 작품만을 위해 준비된 공간이었다. 공간과 예술의 작품이 완벽하게 일치될 때 관람자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된다. 먼저 들어간 곳은 스카이 스페이스였다. 돔의 형태의 공간에 가운데가 동그랗게 뚫려 있어 마치 로마 판테온 신전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며 하늘의 순간과 만나게 된다. 열린 하늘을 바라보며 그 모습이 시시 각각 마치 작품처럼 변화할 때 우리는 가슴 설레는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그리고 공간을 걸으면 마치 하늘이 나를 따라오는 듯이 바닥에 비추어진 하늘은 나의 걸음에 따라 위치를 달리한다.
호라이즌 룸에서는 계단 끝에 있는 하늘의 창을 만나게 된다. 마치 제단의 모습처럼 점점 그 길이가 짧아지는 계단이 설치되어 있는데 그 끝에는 하늘을 향해 열려있는 창이 있다. 천천히 그 계단을 올라가다 보면 마치 천국의 계단을 밟는 것처럼 하늘과 만나는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언젠가는 이런 경험을 실제로 하게 될까?
웨지 워크를 따라가려면 빛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어두운 통로를 따라가야 한다. 마치 암흑과 같기에 빛이 사라진 공간에서 두려움이 느껴지기도 한다. 손잡이를 의지하며 따라가다 보면 어두운 통로를 지나 사각형 액자 같이 생긴 공간에서 비추는 빛을 만나게 된다. 처음에는 평면으로 보였지만 안내자를 통해 그것이 공간임을 알게 되고 빛은 안개가 낀 환영처럼 보여 저것이 안개인지 빛인지 구분할 수 없는 모호한 상태가 된다.
마지막 간츠 펠트를 볼 수 있는 공간이다. 간츠 펠트는 독일어로 '완전한 영역'이라는 사전적 의미이자 심리학에서 사용되는 용어라고 한다. 스크린은 시시각각 그 색깔이 변하게 되는데, 색과 곡선으로 이루어진 공간에 있으면 마치 이 공간이 무한히 확장되는 것처럼 느끼게 된다. 걸어가다 보면 마주치게 되는 끝은 평면이 아니라 낭떠러지로 설계가 되어있었다. 공간을 가득 채우는 빛은 웨지 워크의 빛처럼 안개가 가득 찬 것처럼 빛이 아니라 어떤 만질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물질처럼 느껴진다.
제임스 터렐은 자신의 작품에는 대상도 이미지도 물질성도 없어 무엇엔가 집중해야 할 포인트가 없으며 오직 감상자는 자신에게 집중해 경험을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 공간과 만나게 되면 작품을 감상하고 나온 것이 아닌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고 나온 느낌을 받게 된다. 그것은 하늘이라는 자연물과의 만남 일 수도 있고 빛이 선사하는 공간 속에서 진실이 무엇인지 묻게 되는 질문과의 만남일 수도 있다.
뮤지엄 산을 온전히 경험을 하려면 4시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 곳에 존재했던 모든 시간들이 나의 영혼에는 신비롭고 새로우며 호화로운 시간이었다. 안도 타다오의 건축 속에서 존재하며 나는 자연과 만났고 예술과 만났고 다시 나 자신과 만나게 되었다. 건축과 공간이라는 것이 그저 '살아가는 곳'이 아니라 '살아나게 하는 곳'이 될 수 있음을 경험했다. 나의 감각이 다시 살아날 수 있는 공간이었고 그 공간을 선물해준 안도 타다오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나의 행복을 위해 긴 시간 함께해준 내 사랑에게도.
자료 출처 : 뮤지엄 산 공식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