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를 해야 하는 이유가 생겼다.
내 동생은 야구를 꽤나 잘했다. 우리의 작은 우물에서.
매일 오후 아빠와 캐치볼을 하던 동생은 공설운동장에서 하염없이 뛰었고 아빠는 부족한 코치님들을 대신해 공을 던져주러 운동장에 갔었다.우리의 오랜 취미인 야구는 삶이 되었다. 다행히, 아빠를 닮아 좋은 체격으로 동생은 야구 유학을 떠나 중학교에 진학했다.
나는 그 무렵 날고 기었던 나를 너무 믿었는지 입시에 실패했고 집에서 가까운 국립대에 진학했다. 여전히 우리 집은 내가 기대에 못 미치는 결과에 집에서 편하게 다니는 학교를 선택했다고 알고 있지만, 운동하는 가족을 둔 형제에게 숙명처럼 주어지는 가계 경제에 대한 부담이 나를 국립대 다니는 효녀로 만들기도 했다. 억울하거나 서운하지는 않았다.나는 사랑받는 첫째 딸로 소위 말해 하고 싶은 것들은 다 해왔기에. 학생회장도, 배우고 싶은 것도.그러니 내 동생도 하고 싶은 운동을 원 없이 해봐야 하지 않을까.
아이러니하게도 꿈을 향해간다는 대학에 입학하면서 학창 시절 내내 꿈꿔왔던 내 꿈은 사라졌다.
난 꿈이 없었던 적이 없었는데.
크게 남는 점수로 무난하게 장학금을 받아 학비 걱정은 없었고. 재빠르게 움직인 덕에 내가 원하는 시간만큼 어린아이들을 가르치면 내 용돈벌이를 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나에게 주어진 것은 시간과 체력이었고.
그래서 원 없이 했다.
내 동생의 덕질을.
학교가 끝나면 동생이 있는 다른 도시로 가기 위해 터미널로 뛰었다. 수업과 경기가 겹치는 날에는 늦을까 불안해하면 손톱을 물어뜯는 나날들이 있었고 시험기간이면 새벽까지 밤을 새우고 아침에는 동생의 학교로, 운동장으로 향했다. 대학생이 학교는 어쩌고 여길 오냐, 대학생이면 청춘을 만끽하라는 야구장 어른들의 걱정 어린 훈수들이 싫어 더 열심히 살았다.
당신들이 걱정할 필요 없이 나는 잘하고 있음을 증명하고 싶어서.
주말이면 아들들을 보는 학부모들 사이에서 동생을 보고 또 봤다. 동생을 보기 위해 매일을 뛰었고 동생이 다니는 학교 밑에 있는 오래된 분식집에서 엄마와 라면을 먹으며 대학생이 된 나는 동생과 함께 중학교를 다녔다. 여름의 뜨거움과 겨울을 시린 바람을 견디고 나니. 내 삶의 공간은 학교가 아닌 운동장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동이라는 건, 참 지겨운 일이다. 이미 삶이라 생각했던 야구는 생각보다 더 지겨운 일이었다. 긴 시간을 뛰고 견디고 버틴다. 동생을 보는 것만으로도 재미있어하는 나에게도 끊임없는 운동을 지켜보는 것을 참 고역이었다. 동생의 처음을 지켜보는 것과 좋은 날들에 기쁨을 같이 해주는 즐거움이 없었더라면 하지 못했을 일들이었다.
그렇게 나는 수많은 학부모들 사이의 유일한 누나가 되었다. 극성스럽다고 표현되는 운동하는 아이들의 학부모 중에서 나는 매일 야구장에 오는 가장 극성스러운 누나였다.
나는 동생이 너무 좋아서. 그래서 내가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이제와 보니 보인다. 힘이 되었던 것은 동생에게 내가 아닌 나에게 동생이었음을.
그 시절 내 동생은 길 잃은 나에게 도피처였다.
내가 키운다 생각했던 동생은 그렇게 나를 키웠다.
작은 보람들이 쌓이고 즐거운 순간들이 쌓였다.
그렇게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보고 있다 보면 불현듯 무언가 내 삶에 새로운 꿈이 찾아 올것이라 생각했다.
그때의 나는 몰랐다. 이십 대 후반의 내가 여전히 야구장에 있다는 것을, 동생의 공간이 내 미래가 된다는 건.
야구를 사랑하지 않은 순간은 단 한 번도 없지만, 그 새로움 꿈이 야구가 될 것이라는 것은. 내 진로가 될 것이라는 생각은 해본 적 없었다.
하지만 운명은 교통사고 같은 거라고 했던가. 야구를 해야 하는 이유가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