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소녀에서 프로야구단 프런트까지
야구, 좋아하세요?
저는 좋아해요 그것도 엄청 많이.
20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통성명을 마치고 난 후 나의 인사말은 항상 야구 좋아하세요? 였다.
야구란 무엇인가.
공놀이.누군가에게는 레저스포츠라 폄하되기도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그라운드를 가득 채우는 라이트들 보다도 빛나는 대상이고 누군가에게는 꿈이자,누군가에게는 가장 행복한 순간으로 기억되기도 하는 것이다.
물론 레저스포츠라는 말을 제외한 그 모든 것이 내 삶에 있어 야구의 의미이다.
기억도 나지 않는 순간부터 나는 아빠와 야구를 봤다. 6시 30분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야구는 식탁에 둘러앉아 하루를 마무리하는 우리 집의 루틴이자. 아빠와 나 사이의 끈끈한 유대이기도 하다.
아무튼 야구는 그랬다. 아빠랑 내가 함께 울고 웃는 순간. 그리고 머지않아 동생이 야구를 시작하게 되면서 엄마까지 함께 울고 웃게 하는 그 유일무의 한 존재.
야구가 언제부터 좋았냐고요?
내가 기억하는 최초의 야구장은 먼 옛날 마산구장이 롯데의 제2 구장이었을 때다. 일 년에 몇 번 없는 마산 경기가 있는 날이면 아빠는 언제나 칼같이 퇴근하고 나와 엄마를 태우고 마산으로 향했다. 경남 출신이지만 두산베어스의 팬이었던 아빠에게 마산구장에서 하는 두산과의 게임이 얼마나 소중했을까.
어쨌든 나는 아빠랑 손을 잡고 가는 야구장이 그렇게 좋았다. 아빠의 손을 잡고 가득한 인파를 뚫고 내 자리를 찾으며 아빠에게 저 선수는 누구냐고 물었고 아빠는 언제나 막힘 없이 내 물음에 대답했었다. 해지는 저녁 엄마아빠의 손을 잡고 들어갔던 야구장, 울려퍼지는 함성과 즐거운 아빠의 웃음소리.
어린 시절의 내 야구.
내 최초의 야구 사랑은 아빠였던 것도 같다.
사랑은 움직인다 했던가. 6살 터울의 남동생이 야구를 시작하자 야구는 더 이상 나에게 스포츠가 아니었다.
나는 내 동생이 하는 야구를 사랑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는 모르겠지만 내 고향은 야구의 불모지였다. 아니 아마 지금도. 야구를 아는 사람보다 야구를 모르는 사람이 많고 야구의 룰도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다. 야구단에서 일한 사람은 이 도시가 만들어진 후 지금까지 내가 유일무이할 지도.
아빠의 야구사랑은 아들과 하는 캐치볼로 뻗어갔고 아마 내 동생도 아빠와 함께하는 야구가 좋았겠지. 그래서 내 동생은 우리 지역에 처음으로 생긴 리틀야구의 창단 멤버가 되었다. 딸인 내가 할 수 없는 방식으로 아빠와의 야구를 사랑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내 동생이 야구를 시작한 해 동생은 10살이었고, 나는 중학교 3학년이었다. 그리고 아빠와 함께 학교를 빼먹고 가는 직관의 마지막 해이자,
내가 야구를 온전히 좋아한 마지막 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