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이 끝을 말하는 순간 내 야구는 시작되었다.
드라마를 보면 사고의 순간 세상이 멈추던데.
내 세상은 왜 길을 걷다, 그것도 동생과 이야기를 하다 멈춰버린 걸까.
야구, 그것도 프로야구 선수가 된다는 것은 어려운 일다. 오죽하면 운동장에서는 서울대 가기보다 아니 고시에 합격하는 것보다 프로에 간 아이들이 더 대단하다는 말이 있을 정도니. 신인 드래프트를 통해 프로야구 선수가 되는 아이는 열명 중 한 명. 십 분의 일이라면 그다지 나쁘지 않은 비율인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내가 취업했을 때만 해도 50:1은 가뿐히 넘는 경쟁률을 뚫었으니. 하지만 그 드래프트에 나가는 십 년의 경력을 가진 아마추어 선수가 되는 게 정말 힘든 일이더라. 초등학교 야구부가 있는 동네는 양반이고 리틀야구만 있는 동네에서는 중학교부터 야구 유학을 떠나 온 집이 매달린다. 운 좋게 부상 없이 중학교 3년을 보내면 고등학교 입시가 찾아온다. 이미 여기까지 오기 전에 반은 야구장을 떠나 교실로 돌아간다. 소위 말하는 명문 야구부에 들어가기 위해 경쟁하고 고등학교에 오면 이제 진짜 부상과의 전쟁이다. 전국 대회의 순위? 그런 건 두 번째 세 번째의 말이다. 다치지 않고 3년, 혹은 4년의 고등학교를 잘 끝내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아무튼 이런 긴 시간을 보내야 드래프트에 이름을 올리고 이 중에서도 10분의 1. 지나온 무수한 확률에서 성공해야만 보이는 숫자이다. 아무튼, 야구를 시작하면서 그만이라는 말은 우리와 언제든지 함께한다.
나는 이 그만에 대한 준비를 꽤나 철저히 해왔다고 생각했음에도 불구하고 도무지가 면역이 생기지 않는다.
나와 닮은 내 동생은, 나와는 다르다. 잘 참고 잘 견디고, 잘 버틴다. 스스로 선택한 것들에 대해 온전히 책임을 질 줄 아는 아이다. 나와는 다르게. 지금도 야구를 하고 있는 내 동생은 10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그만이라는 단어를 딱 두 번 내뱉었는데 그 참고 참았을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내 삶은 송두리째 흔들린다.
오랜만에 일찍 학교를 마치고 시외버스를 타고 온 동생을 마중 나갔다 동생과 돌아오는 길에 동생은 야구를 그만하고 싶다고 말했다. 누나 나 야구 그만하고 싶어. 이럴 때는 뭐라 답 해야하는 걸까.
어떤것이 정답인지는 한참이 지난 지금의 나도 여전히 모르겠다.내가 아닌 타인의 삶에 어떤 조언과 방향을 제시해주어야 하는 건지. 무한한 애정으로 어떤 선택이든 응원해야하는지. 아니면 그냥 나만의 생각으로 재단하고 답을 주어야 하는 건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는 확실하다 그때 내가 했던 답은 틀렸다.
누나랑 같이 야구하자. 누나가 야구장에서 너 혼자 울게 하지는 않을게.
나는 그 날 내뱉었던 답을 두고두고 후회했다. 저 당시는 아니고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내 동생과 내가 크면 클수록. 자기만의 행복으로 결정해야 하는 진로와 꿈에, 누나라는 짐을 더해버린건 아닐까.하는 동생에 대한 걱정이 들때도 다른 사람보다 약하고 또 연약한 내 꿈이 흔들릴 때마다 내 꿈을 고민할 때도. 나는 항상 그때 했던 그 말을 후회했다. 그리고 어쩌면 앞으로도 저 말을 후회할 날이 또 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끝을 말하는 동생은 여전히 야구를 좋아했고. 끝을 생각하기에는 너무 좋아했다.
그래서 그냥 그렇게 말했다. 그 말을 지키기 위해 우리 둘 다 얼마나 열심히 살아야 하는지 그때 알았다면 그런 말을 하지는 않았을 텐데.
하지만 무지는 약이고, 남매는 용감했다.
그날의 약속은 우리 둘만의 비밀이자, 얼떨결에 시작된 내 꿈의 시작이었다.
야구를 하겠다고 마음은 먹었지만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몰라 나는 무작정 야구장에 있었다. 긴 시간을 계속. 같은 날씨와 같은 경기를 보면서 같이 아프고 기뻤다. 나 때문인지 아니면 원체 열심히 하는 동생이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동생을 스쳤던 작은 슬럼프는 무사히 지나갔다.
중학교를 졸업한 동생은 그 지역에서 가장 좋은 야구부에 진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