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와 같은 고교 야구는 없다. 이게 우리의 현실이다.
고교야구.
나에게는 청춘의 상징이자 환상의 끝인 단어이다.
단어에서 어떠한 냄새가 난다면 고교야구는 아마 나에게 여름 푸르게 시야를 채운 초록의 푸르른 향이다.
어릴 적 봤던 일본의 야구만화 H2에는 여름은 청춘으로 그려졌다.청춘들이 그라운드에서 그들만의 젊음의 역사를 써 내리는. 여름은 고교야구의 계절이며
내게 고교야구는 청춘과 동의어다.
비록 그 현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지금도.
동생의 고등학교 입학은 내가 그토록 바라왔던 이상을 만나는 순간이자 이상은 허상임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물론 로망과 같은 낭만적인 단어가 아닌 내가 동생을 따라다니는 것을 그만해도 되겠다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었고. 한국의 학생 야구가 얼마나 열악한지는 이미 잘 알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정말 그래도. 고교야구는 다를 줄 알았다. 내가 아는 사람이 아닌 다른 타인이 봐주는 야구. 나와 우리만 기억하는 게 아닌 누군가의 기억에 남을 수 있는 순간이 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런 꿈과 희망이 가득한 세상이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현실의 벽은 차갑고 무섭다. 고교야구는 시작되었고 내가 있는 야구장은 바뀌었지만 나를 둘러싼 다른 것들은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학부모들만 앉아있는 텅 빈 관중석과 경기를 기다리는 더그아웃의 수많은 아이들.
이게 우리의 현실이다.
누군가에게는 이 사실이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로 느껴질 수도 있다. 아이들은 아마추어고 돈을 주고 내 시간을 소비하고 싶은 프로리그와는 다르다.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이 당연한. 하지만 나에게는 조금, 아니 많이 다른 감정을 주는 사실이었다.
망할 수도 있다. 나도 내 동생도 그리고 어쩌면 야구도.
내 동생이 야구를 마음껏 하기도 전에 야구라는 산업이 망해버리면 어쩌지.
매진행렬의 기사가 쏟아지는 프로야구 속에서 무슨 쓸데없는 걱정이냐고 들 하겠지만 텅 빈 관중석은 나에게 공포 그 자체였다. 스포츠라는 것이 처음부터 프로에서 시작되었을까. 스포츠에 대한 관심과 수요가 생기고 직접 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면서 조직화된 아마추어 그리고 그 종착점이 프로리그일 텐데. 그 바로 아래 가장 큰 아마추어리그인 고교야구는 이렇게 텅 비어있다. 무관심은 결국 끝을 가져올 것만 같았다.
어른들에게 듣는 옛날이야기는 내가 본 고교야구의 모습과는 달라서 그리고 옆 나라들이 보여주는 모습과도 달라서. 그 옛날에는 버스를 타고 학교를 응원했다는 오래된 이야기는 옆으로 눈을 조금만 돌려도 여전한데. 왜 우리는?
내가 있는 이 야구장에 대한 물음표들이 얼렁뚱땅 시작된 내 꿈을 구체적으로 만들어버렸다.
그러니깐 내 야구의 목표는 야구가 망하지 않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