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는 것은 그곳에도 야구가 있다는 것 단 하나뿐
그때의 나는 어렸고 안일했다.
그래서였을까 내 눈으로 마주한 차가운 현실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어쩌지.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지를 반복하다 정신을 차린 순간 내 손에는 캐리어가 들려있었다.
대만으로 떠나는 편도 비행기 티켓과 함께.
왜 떠났냐면
여기서는 무언가의 답을 찾을 수 없을 것만 같아서. 내 세상의 전부는 야구였고 나는 제일 잘 아는 게 야구라 생각했는데 생각해 보지 못한 문제가 나를 찾아오는 것만 같아서.
그게 왜 대만이었냐면.
속상한 말이지만. 정말 현실적으로 야구는 비주류의 스포츠다. 한국을 비롯한 몇몇의 나라에서만 예외가 되는. 미국 일본 한국 대만 호주. 그래도 다행인 것은 한 손가락에 꼽을 수 있는 나라들에서만 인기 종목으로 여겨지는 나의 스포츠이기에 내게 주어진 고민의 시간은 그다지 길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항상 운명의 갈림길에서 나는 고민보다는 충동이기에.
그 무렵 대만의 투수 왕웨이중이 NC 다이노스로 왔다. 그래서 갔었다 나는. 마산 야구장 앞에 중국어를 쓰는 낯선 사람들이 내 눈을 사로잡아서. 아. 야구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게 아니지. 하는 당연한 생각이 내 머리에 떠 올라서. 저 사람들의 야구에는 20년 뒤가 더 먼 미래가 보일까. 하는 마음으로.야구가 있는 다른 세상에서 나는 무언가의 답을 찾을 수 있을 것만 같아서
나는 그렇게 교환학생으로 대만행 비행기를 탔다.
중국어를 할 수 있었냐고요?
아니요
무모했다.
전공언어로 교환학생을 가도 부족할 외국어 과에서 난데없이 배워보지 않은 중국어를 쓰는 나라로 가다니.
장학금을 위해 필사적으로 지켰던 높은 학점이 아니었다면 교환학생을 갈 수도 없었을 것이다.아무런 준비도 없이. 그냥 거기에도 야구가 있다는 그 하나만을 위해서
대책도 없었다.
스포츠를 업으로 삼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많고 우리가 나눠먹을 파이는 항상 부족하다.그 작은 파이 속에서 내 몫의 것을 가지려면 나도 남들이 하는 일들을 해야 했다. 대외활동과 동아리, 공모전과 같은 그런 일련의 과정들. 하지 않는다면 후회할 것을 알았지만 ‘어차피 나는 지방에 살아서 그런 걸 하기 힘들 거야.’라는 스스로의 핑계를 근거 삼아 후회는 미래의 나에게 미뤘다.
대만으로 향했던 내가 할 수 있는 중국어는 我喜歡棒球 오직 “저는 야구를 좋아해요” 뿐이었다.일이삼사도 중국어로 말 할 수 없는 한국 여자애가 말도 통하지 않는 나라에 와서 하염없이 가는 야구장.
그 시절 내 언어는 야구였다.
야구를 좋아한다는 이유를 친구를 사귀고 그 나라의 모습들을 보았다.야구 좋아하세요?라는 질문으로 친구가 되는 그런 만화 같은 일들이 내 인생에 일어나던 때였다.야구가 좋아서 같이 야구를 보러 가는 친구들을 만나고 그 나라의 언어로 야구를 이야기하고.
아직 많은 나이는 아니지만 나는 단언할 수 있다.
내 인생 중 내가 한 가장 좋은 선택이자 다시없을 낭만의 시기일 나의 대만.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떠나고, 배우고, 경험했다
야구장을 따라 그 나라를 누볐다. 수많은 사람들이 찾는 어린아이들의 야구경기와 내가 다녔던 대학교 야구팀이 하는 우승의 순간. 그리고 더 많은 친구들과 함께 야구이야기가 하고 싶어 만들었던 동아리들과 서툰 실력으로 만들어 냈던 글들과 사진.
좋아하는 것들을 해야 한다. 새벽 4시에 일어나 부족한 외국어 공부를 하기 위해 향했던 도서관도 먼 야구장도 다시 돌아와 잠들기 전까지 했던 과제들도. 힘든지도 몰랐다.
눈을 반짝이며 서툰 중국어로 야구를 좋아한다고 말했던 그때의 나는 야구를 참 좋아했더라.
다른 세상의 야구가 궁금해서 갔더니.
야구는 내 세상을 넓혀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