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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달 Feb 14. 2022

보고서 입체적으로 쓰기

누구나 거창한 계획이 있다. 지시받기 전까지는

시험만 보면 항상 시간이 부족하다. 분명 집에서는 여유롭게 기출문제를 풀었는데 말이다. 보고서 작성도 마찬가지다. 실전은 상상과 다르다. 여유롭게 커피한잔 하면서 논리도 좀 다듬고, 표현도 더 자연스럽게 할 수 없을지 고민하면 좋겠지만 대부분의 보고서는 '가능한 빨리'라는 지시가 따라붙다보니 허겁지겁 작성할 때가 많다. 이상과 현실 간극을 어떻게 줄일 수 있을까


범주화는 언제나 옳다

단시간에 그럴싸한 논리를 갖춘 것처럼 보이는 방법은 없을까. 그럴듯하게 만들다 보니 정말 그렇게 되는 좋은 쉽고 간단한 방법은 없을까. 범주화를 한번 활용해보자. 범주화는 사안을 빠른 시간 안에 상당히 높은 수준의 논리성을 갖출 수 있도록 해주는 방법 중 하나인데 꽤나 간단해서 써먹기 좋다.


수달은 수험중 스스로 깨달았다 착각하고, 논술과외 하면서도 나름 킬링콘텐츠로 여기며 '덩어리'라는 표현으로 학생들에게 설명했었다. 입직 후 보고서 작성 강좌를 접하니 완전히 동일한 접근법을 더 있어보이는 'MECE'라는 용어로 설명하고 있었다. (McKinsey & Company라는 컨설팅 회사가 이 용어를 최초로 사용했다고 알려져 있다, 위키백과) 


그런고로 아쉬움을 뒤로하고 덩어리라는 표현 보다 MECE로 설명하겠다. MECE란 Mutually Exclusive, Collective Exhaustive의 두문 글자로 '상호 배타적이면서 총합으로는 전체를 이루는 요소의 집합' 이란 뜻이다. 어떤 것이 상호 중복이 없고 누락이 없다는 뜻인데 말이 어려우므로 예를 들어보자.


대중음악을 분석하는 글을 쓰려고 한다. 재즈, 팝, 락, 힙합 장르를 단순히 나열하는 것보다는 나열될 내용을 묶을 덩어리를 먼저 만들고 글을 써나가는 게 좋다.(역시 덩어리라는 표현이 잘 와닿아 ㅠㅠ) 가령 90년 이전과 이후로 분류하던가, 한국음악과 외국 음악을 나눈다던가 말이다. 여기서 중요 한 건 그렇게 나눈 덩어리들의 모음(틀(frame)이라고 하겠다)이 음악이란 주제를 모두 포괄(cover)할 수 있어야 한다.(핵심임!) 만약 90년 이전 음악과 2000년 이후 음악으로 틀을 짜면 90년~2000년 사이의 음악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게 될 수 밖에 없으므로 글의 설득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 다시 말해 덩어리를 만들 때 서로 겹치지도 않고, 빈틈이 생기지도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중음악을 시간 순서로 늘어놨을 때 90년 이전과 90년 이후라는 목차에는 빈틈이 없다. 하지만 90년 이전과 2000년 이후라는 틀에는 90년~2000년이라는 빈틈이 생긴다. 


이제 업무적으로 접근해보자. 지역주민을 대상으로 취미 강연을 준비하고 있다. 그런데 상반기 주민 참여율이 굉장히 저조했다. 그래서 하반기에는 개선방안을 찾으려 하려 한다. 문제점을 꼽아보니 대강 다음과 같았다.

  1. 오후 2시부터 강좌가 시작돼 직장인 대부분은 참여하기 힘듦

  2. 온라인 신청이 불가하여 참여 접근성이 떨어짐

  3. 강좌가 진행되는 장소인 주민센터가 도시 외곽에 위치해 교통이 불편

  4. 몇 년째 커리큘럼의 변화 없이 같은 강좌를 실시 중

  5. 악기, 테니스 강좌 등 고가의 도구를 활용해야 하는 강좌 비중이 높음

  6. 수준에 상관없이 단일강좌로 개설

문제점 별로 개선방안을 하나하나 제시할 수도 있지만 서로 연결된 문제점을 덩어리로 묶는 작업을 하면 더 효율적으로 개선방안을 도출할 수 있다. 일단 '강좌 자체의 문제'와 '강좌 외부의 문제'라는 틀이 생각난다. 덩어리로 각각의 문제를 분류해보면 다음과 같다.      

      

강좌 외부 문제

1. 오후 2시부터 강좌가 시작됨에 따라 직장인 대부분은 참여하기 힘듦
2. 온라인 신청이 불가하여 참여의 접근성이 떨어짐
3. 강좌가 진행되는 장소인 주민센터가 도시 외곽에 위치해 교통편이 불편


강좌 자체 문제

4. 몇 년째 커리큘럼의 변화 없이 같은 강좌를 실시 중
5. 악기, 테니스 강좌 등 고가의 도구를 활용해야 하는 강좌 비중이 높음
6. 수준에 상관없이 단일강좌로 개설


강좌라는 분석대상의 내부-외부에서 문제를 찾는 MECE적 틀을 제시함으로써 단순히 문제점을 나열하는 것보다 한 층위 더 깊게 분석하는 효과를 준다. 보고서가 입체적이 되는 것이다.             

대강 보고서의 목차를 그려보면 다음과 같다.


나열식으로 작성할 경우,

     1. 검토 배경 

     2. 문제점 1)  2)  3) ...

     3. 개선방안 1) 2) 3) ...


범주화해보는 경우,

1. 검토 배경

2. 문제점
    1) 강좌 자체의 문제 (1)(2)(3)
    2) 강좌 외부의 문제 (1)(2)(3)
3. 개선방안
    1) 강좌 콘텐츠 개선
    2) 강좌 제공 방식 개선


어떤가. 담기는 내용은 동일한데도 보고서가 입체적으로 보인다.


아이디어 화수분, 범주화

이런 식으로 보고서를 작성하면 좋은 점이 또 하나 있다. 원인을 분석하거나 대안을 생각(이라 쓰고 '쥐어짤 때'라고 읽습니다ㅠ)하는 속도를 높이거나 사고의 범위를 넓히기 좋다. 앞선 예시는 이미 도출된 문제점을 묶는 용도로 범주화를 활용했다.  


이런 경우는 이상적인 접근법일뿐 현실적으로는 한두 개의 중요한 문제점을 시발점으로 보고서를 작성하는 경우가 더 많다. 소위 구색을 맞추기 위해서라도 문제점을 좀 더 구상해 내야 할때 아주 유용하다. 강좌 내부-외부라는 틀을 먼저 짜고 시작하면 추가적으로 문제점이나 대안을 떠올릴 수 있다. 큰 시야를 먼저 현출 시키면 뇌가 더 많은 나무를 볼 수 있게 되는 식이다. 


단순 열거만 되어 있을 때는 보이지 않던 새로운 문제들과 해결방법들을 찾아낼 수도 있다. 맥도널드는 2006년 맥모닝 출시했다. 맥도널드는 맥모닝 출시 전까지는 그들의 고객을 점심이나 저녁 대용으로 햄버거를 먹는 것으로만 여겨왔다. 하지만 우리가 아침/점심/저녁으로 분류해 밥을 먹는 것에 착안하여 시장의 분류를 아침/점심/저녁으로 분류해 새로운 아이템을 모색해 보았고, 아침 시장의 새로운 고객을 잡기 위해 맥모닝을 출시하게 됐다고 한다. 


범주화로 질러 놓고 생각해...

마지막으로 어떤 글을 써야 하는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를 때 범주화로 시작하면 큰 도움이 될 때가 많다. 개선방안을 마련해야 하는데 도무지 가닥이 잡히지 않을 때 그 상위 범주를 일단 설정하는 것이다. 아무 개선방안이 없는데도 말이다. 전체 틀이 가시화되면 막연함이 없어진다. 어떤 부분에 집중해야 하는지 잘 드러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취미강좌 문제점 도출 및 개선방안'이 그저 막막하다면 덩어리를 먼저 지어보는 것이다. 이번에는 공급자와 수요자라는 틀을 써보자.  문제점이 생각 안나니까 문제점을 생각할 수 있는 틀 먼저 현출해보는 것이다. 공급자 차원에서는 온라인으로만 수강신청을 받도록 해놓았다는 것, 강좌가 이뤄지는 장소를 접근성이 좋지 않은 주민센터로 해놨다는 것을 떠올릴 수 있고, 수요자 차원에서는 강좌를 신청하는 사람들의 수준에 관계없이 단일한 강좌로만 구성했다는 점 등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큰 틀을 먼저 제시해 구체적인 생각을 이끌어 내는 것이다. 양적인 측면과 질적인 측면이라는 틀도 나쁘지 않다. 양적인 측면에서는 제공되는 강좌의 수가 너무 적다는 것, 질적인 측면에서는 매년 동일한 강좌가 개설되어 한번 수강한 주민은 다시 수강할 유인이 없다는 것 정도의 문제점을 도출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외에도 많이 쓰이는 범주화 틀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과거/현재/미래,  질/양, 밖/안, 객관/주관, 단기/중기/장기, 개인/집단, 거시/미시 등 동전의 앞과 뒤처럼 제3의 영역이 없는, 사안을 빈틈없이 파악하게 해 준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보고서 강좌에서 메모해 놓은 범주화 틀 만들어 내는 방법도 함께 소개한다.


첫째, 누군가가 이미 만들어 놓은 틀을 이용한다. 학문적 이론이 대표적이다. 정책 결정을 효율성-형평성 관점에서 검토하는 것, 신규사업을 고객-경쟁사-회사로 분석하는 것 등이다. 둘째, 상호 반대되는 개념을 활용한다. 내부-외부, 남자-여자, 질적 측면-양적 측면, 장점-단점, 거시적 관점-미시적 관점, 하드웨어-소프트웨어 등이다. 가장 일반적으로 쓸 수 있는 방법이다.셋째, 시간이나 순서를 덩어리 지어본다. 과거-현재-미래, 계획-실행-평가(plan-do-see) 등이다.


읽는 사람도 편-안

범주화로 글이나 보고서를 입체화 하면 쓰는 사람뿐만 아니라 해당 글을 읽는 사람에게도 좋다. 글이 체계성도 높일 뿐 아니라 가독성도 높아지기 때문이다. 어떤 구조화도 없이 나열된 글을 읽는 느낌은 지도 없이 길을 찾아다니는 것처럼 느껴진다. 우리는 이런 틀을 '목차'라는 이름으로 많이 접해 왔다. 상대방이 내 논리를 이해하기 쉽도록 큰 덩어리를 어떻게 구성하게 됐는지부터 차근차근 써내려 가는 수요자 중심의 접근이 쓰는 사람도, 읽는 사람에게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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