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서의 첫인상, 신기하다
수달이 처음 공무원 생활을 시작하고 가장 신기했던 건 보고서 형식이었다. '전함을 구축'한다는 공상과학 만화에서만 접했던 '구축'이라는 단어나, 로켓 발사에나 쓸 법한 '추진'이란 단어나, 그 추진하는 내용을 전달하기 위해 항상 '추진 배경'을 쓴다거나 말이다.
첫 만남 이후, 보고서와 티격태격
그 신기한 문서를 주야장천 만드는 당사자가 되고 나니 제삼자의 입장에서 느꼈던 첫인상은 오래가지 못했다. (너란 보고서...) 처음 수달은 표준적인 보고서 목차를 모든 보고서 형태에 적용해야 만 하는 공식처럼 여기며 따랐다. 마치 '하늘 천~ 땅 지~' 외듯 '추진배경~ 문제점~' 하며 생각 없이 보고서를 썼던 것. 그러다 보니 어떤 사안을 검토해야 하는 보고서 배경을 작성할 때 '검토 배경'이 아니라 '추진 배경'이라고 쓰는 식이었다. 검토를 추진하는 배경이란 소린가? 어불성설이었다. 왜 그런 목차를 써야 하는지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너란 보고서 이제 좀 이해할 것 같아..
수달은 보고 목적에 따라 보고서 목차나 형태도 달라야 한다는 걸 깨닫는 데 오래 걸렸다. 으레 일반적인 4개의 목차(추진배경-현황,문제점-개선방안-향후 일정)로만 보고서를 쓰다 보니 보고할 내용과 성격에 맞지 않는 목차의 내용을 꾸역꾸역 끼어넣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결론적으로 목적이 무엇인지에 따라 해당 목차의 틀을 반드시 따를 필요가 없다. 동향을 보고하는데 '추진배경'이란 목차를 쓸 필요가 있을까? 동향 파악이 필요한 이슈에 대해 '00(동향을 보고할 이슈나 사업의 이름) 개요' 정도의 목차로 간단히(보고의 목적이 동향이므로 개요에 너무 많은 분량을 할애하는 것도 지양하는 게 좋음) 소개해 준 뒤, '주요 동향'이라는 목차로 관련 동향을 작성하면 충분하다. 또 동향보고에 '문제점-개선방안'이라는 목차를 쓰는 것도 어색하다. '주요 동향'을 소개하고, '향후 대응' 정도로 목차를 짜는 게 더 적절하다.
마찬가지로 행사를 기획하려고 할 때, 기획된 행사를 개최하려 할 때, 사업을 검토하려고 할 때, 관련 이슈를 분석할 때 보고서 목차도 달라야 한다. 당연히 같은 목차를 쓰더라도 보고 목적에 따라 분량도 달라진다. 분석 보고서를 쓰면서 이슈나 현황을 지나치게 장황하게 작성하면 좋은 보고서가 되기 어렵다. 같은 목차가 들어가더라도 목적에 따라 목차에 할애하는 양과 질도 달라져야 한다.
보고서 작성, 평타만 치고 싶다...
보고서 형식과 작성기법이 천차만별이겠지만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틀을 장착해 놓으면 응용하기 좋다. 수달 경험에 비추어 소개해 본다. '추진배경- 현황 및 필요성- 주요 내용-향후 계획'이라는 목차를 주로 사용한다.
1. 추진배경
추진배경에는 보고서를 '왜' 쓰게 되었는지를 작성한다. 보고서를 작성하는 전 과정을 관통하는 질문이 바로 '왜(why)'다. 흐름상 추진배경에 담지 않더라도 '왜 이 보고서를 써야 하는지'를 작성자 스스로 확실하게 정립하고 작성해야 보고서가 우왕좌왕하지 않는다.
너무 거창한 추진배경을 쓰는 것을 삼가야 한다. 초짜 시절 수달은 대단한 걸 추진하는 것마냥 거창한 워딩들을 썼다. 이 경우 거시적인 표현을 쓰게 될 수밖에 없는데 독이 될 수 있다. 보고받는 사람으로 하여금 핵심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못하다는 인상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첫 인상을 좌우하는 추진배경에는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하게 밝히는데 중점을 둔다. 표현이 조금 거칠거나 직접적이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예컨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선도할 수 있는 일하는 방식 혁신이 필요'라는 거창한 문구보다는 '자유로운 의견 개진이 가능하도록 업무 프로세스의 변경이 필요'라는 식으로 왜 이 보고서를 쓰게 되었는지의 구체적인 이유를 시원하게 드러내는 게 좋다.
2. 현황 및 문제점
현황과 문제점을 별도 목차로 구분지어야 하는지 애매하다. 특히나 1장짜리 핵심보고서를 쓰는 경우는 더욱 그렇다. 현황이 곧 문제점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인구감소에 대한 대응방안 보고서를 쓸 때 인구감소 현황은 그 자체가 문제점이 될 수 있다. 물론 현황으로 인구감소 추이를 보여주고, 그 대안으로 실시됐던 정책의 문제점을 적시해주는 방향으로 현황과 문제점이 서로 다른 초점을 맞추는 경우에는 구분해서 작성해야 한다.
구분되도록 작성한다는 전제하에 현황은 정확한 '통계'를 전달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적절한 현황이 제시될수록 보고서 신뢰도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관련 통계나 데이터를 잘 찾아 담는 게 좋다. 다만 너무 방대한 현황 자료는 보고서의 집중력을 낮춘다. 현황 부분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정보를 많이 담을수록 보고서가 '어려워진다'.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현황을 담고 나머지 정보는 별도의 자료(붙임자료, 참고자료)로 만드는 게 좋다.
문제점을 작성할 때는 센스 있는 눈치가 중요하다. '00문제가 있으니 개선방안에 대한 보고서 작성해봐'라고 지시했을 땐 이미 보고서 작성 배경인 문제점에 대해 관련된 사람들이 이해하고 공유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문제점은 요약식으로 정리하거나 추진배경에 녹여 써내는 것도 좋고, 개선방안에 분량을 많이 할애하는 게 좋다. '어떤 문제가 있는지 분석하고 개선방안을 찾아봐'라는 식의 지시로 작성한다면 오히려 문제점을 논리적으로 빈틈없이 채우는 게 좋다. 문제점을 논리적으로 잘 설정해 놓으면 개선방안의 타당성이 높아진다.
3. 주요 내용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분량면에서도 절반 이상은 할애해야 하는 목차다. 보통 현황과 문제점에 대해서만 길게 적힌 보고서들이 많은데 보고서에 대한 인상을 나쁘게 만드는 요인중 하나이므로 최대한 빨리 주요 내용을 넘어가는 게 좋다. 보여줄 현황이 많으면 별도자료(붙임자료, 참고자료)로 돌리는 게 좋다.
주요 내용은 입체적으로 서술하는 게 좋다. 내용은 대응방안일 수 있고 새로운 아이디어 일수도 있다. 성격이 어떻든 나열된 형태로 서술은 지양하는 게 좋다. 전달해야 될 내용이 정리됐다면 정리된 내용을 가지고 한 발자국 더 내디뎌 보는 게 좋다. 총 5개의 전달 내용이 있다면 이 다섯 개를 그대로 열거하지 말고 두 개나 세 개의 더 상위 범주로 엮을 순 없는지 고민해 보는 것이다. 내부-외부, 하드웨어-소프트웨어, 현재-미래 등 범주로 묶어 내용을 구성하면 더 입체적인 보고서를 만들 수 있다. 범주화에 대한 글을 다른 챕터에서 다뤘다.
중요한 건 'so what'과 'so how'에 대한 대답이 될 수 있는 내용들을 담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뭐, 그래서 어떻게라는 질문에 답이 될만한 내용을 담고 있어야 좋은 보고서라고 할 수 있다. 상사가 이런이런 트렌드에 대해서 조사해보라고 시켰을 때 해당 현황만 왕창 조사하는 것보다 그 트렌드 현황을 바탕으로 상사가 무엇을 어떻게 판단하려는지의 의도를 읽고, 그 고민을 덜어줄 수 있는 내용들을 담는 게 좋다. 왜 현황 파악을 하라는지의 맥락도 모른채 자료만 왕창 찾아 이쁘게 정리한들 좋은 피드백을 받을 수 없다.
개선방안이 중요한 보고 목적일 경우에는 '~게 하는 게 좋음' 식으로 방향성만 제시하거나 '여러 가지 방안을 잘 연계(또는 융합)하여야 함' 같은 교과서 스타일의 결론 작성은 지양해야 한다. 재미있는 이야기가 고조되다가 맥이 풀리는 느낌이다. 모든 것을 다 담으려고 하면 오히려 아무것도 담을 수 없는 보고서가 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고, 1-2안 정도로 구체적인 action을 담아야 한다. 무엇이 더 타당한지의 고민은 상사의 몫이다. 보고서를 작성자 입장에서는 여러 가지 구체적인 안을 던져준다는 식의 마인드로 접근하는 게 좋다. 설사 그 action들이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완벽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그런 경우 1안과 2안을 작성하고, 1안의 장단점과 2안의 장단점을 구체적으로 기술해 결정권자가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해주면 좋다.
4. 향후 계획
문제점에 대한 해결방안들이 담긴 보고서였다면, 향후 계획에는 이 해결방안들을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과 순서로 진행할지에 대한 실행계획들이 담겨야 한다. 간혹 다른 부서로부터 협조를 구할 사항들이 이 목차에 담기기도 한다. 타 부서의 협조사항이 중요한 경우 별도로 '협조사항'이라고 목차를 분리하는 것도 좋다.
실무적인 관점에서는 향후계획이 주요내용보다 더 중요할 때가 많다. 보고서 작성은 해당 업무와 관련된 다양한 담당자와 관계자들과 의견을 공유하고, 자료를 협조받아야 하는 경우가 대다수다.(70~80%?) 그러다보니 완성된 보고서가 나올 때쯤엔 현황이나 주요내용에 대한 공감대는 이미 형성(이라 쓰고, 치열한 업무 쳐내기, 이건 빼라, 이건 이렇게 바꿔라 등의 과정의 반복을 거치며 겨우 합의)되어 있고, 어떤 일정으로 누가 얼마나 협조(혹은 involed) 할 것인지를 명시화 하는 목차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관계부서 또는 관계자의 일정이나 협조사항이 매우 정확하게 명시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