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에서 삼십 대에 처음으로 스케이트보드를 탈 수 있는 행운을 잡았다.
몇 년 전, 나는 한 여성분이 예쁜 스커트를 입고 우아하게 스텝을 밟으며 롱보드를 타는 영상을 보았다.
그때 '아 나도 저렇게 보드 타고 싶다'라고 생각한 적이 있는데 그 당시 우리 동네에는 스케이트 보드를 타는 사람이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혼자 시도해 볼 용기가 나지 않았고 구실 또한 없었다. 한강에 가면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사람들을 몇 명 보았지만 어린 친구들이 대다수였다. 나는 도무지 그 속에 섞여서 탈 자신이 없었다. 한날, 세상에 이런 **의 프로그램에 4인 가족이 스케이트보드 타는 장면을 보았다 세상에 이런 **에 나올 정도면 스케이트 보드를 타는 것이 한국에서는 그 정도로 특별한 건가? 싶었다. 캐나다에서 누구든지 타고 있는 걸 본 지금의 나로서는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어쨌든, 결국 그때는 그렇게 눈치만 보다가 시도하지 못한 채 나는 서랍 속 작은 다이어리를 꺼내 적었다. 그리고 ’ 버킷리스트 33번은 스케이트보드 타기‘로 적었다. 그렇게 몇 년 동안 내 버킷리스트는 잊고 살았다.
그런데 웬걸 캐나다에 와서 보니 정말 많은 사람들이 지하철에서 공원에서 길거리에서 스케이트 보드를 타는걸 심심치 않게 보게 되었다. 그리고 보드를 즐기는 연령층도 매우 다양했다. 이 나라는 왜 이렇게 매력적인 건가? 아무도 남의 시선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그 누구도 타인의 눈치 따위는 신경도 안 쓰는 것 같았다.
하루는 스탠리파크에서 옷을 정말 힙하게 차려입은 할아버지가 선글라스를 머리에 얹고 롤러 브레이드를 타며 그 나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의 체력을 뽐내며 매우 힘차게 지나갔다. 그때 느꼈다. 아 한국에선 시도하기 어려웠는데 이곳이라면 서른이 훅 넘어버린 내 나이 따위는 아무런 상관도 없겠구나 하고 말이다.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냥 시작해도 될 것 같았다. 그냥 탈까? 할아버지도 저렇게 멋지게 롤러브레이드를 타는데 나라고 못할까? 싶은 용기가 생겼다. 그리고 나는 정말 타인을 시선을 많이 신경 쓰면서 살았구나 싶었다. 왜 이렇게 불편하게 살았을까?
그러던 어느 날 정말 운이 좋게 함께 홈스테이에 거주하는 이십 대 친구가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싶어서 보드를 사러 갈 거라고 했다. 나는 이때 다 싶어서 스케이트 보드 타보고 싶다고 같이 가도 되냐고 말했다. 호탕한 그 친구는 개스타운에 스케이트보드샵이 있다고 하며 내 제안에 흔쾌히 응해주었다. 참 고마웠다. 바로 다음날 오후, 우리는 보드샵에서 만났다. 그렇게 나는 생애 처음으로 그것도 한국이 아닌 캐나다에서 스케이트 보드를 구매하는 역사적인 순간을 누렸다. 그렇게 그날 나는 버킷리스트 중 하나를 이루었다. 서른이 훌쩍 넘은 나이에 캐나다에서 스케이트보드를 사서 타리라고는 나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이 보드를 탈 생각에 나는 정말 가슴이 두근거렸다. 비가 많이 와서 일명 레인쿠버라고 불리는 밴쿠버. 우리는 비가 오지 않으면 바로 하교 후 함께 보드를 타보기로 했다. 이 친구도 보드를 처음 타고 나도 처음인데 너튜브를 미리 보고 어깨너머로 나에게 알려주었다. 너튜브만 보고 바로 따라 하다니... 쟤는 뭐지?...
운동신경이 진짜 좋구나 싶었다. 나는 똑바로 서있기도 벅찬데 말이다. 스케이트 보드가 옆사람이 타는 걸 보면 참 쉬워 보이는데 정작 내가 앞으로 나아가려고 하면 왜 그렇게 다리가 후들후들거리고 똑바로 가지 못하는지...
캐나다에 스케이트 보드 문화는 어디서 왔을까? 스케이트보드는 1950년대에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시작되었는데 당시 서퍼들이 파도가 없는 날에도 보드를 타기 위해 서핑보드에 롤러바퀴를 달게 되면서 스케이트보드가 탄생했는데 결과적으로 서핑을 통해 보드가 인기를 끌게 된 모양이다. 캐나다가 지리적으로 미국과 가까워서 그런지 보드 문화가 캐나다까지 자리 잡은 것 같다. 물론 캐나다가 워낙 넓어서 주마다 분위기는 다르겠지만 내가 본 밴쿠버는 많은 사람이 나이 성별 상관없이 스케이트보드를 즐기고 있다. 그리고 잘 타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 멋있다.
캐나다에 청소년기, 특히 남자애들은 친구들과 어울려 놀려면 무조건 스케이트 보드가 필수적인 아이템처럼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여기는 우리나라처럼 놀거리가 풍부하지가 않다. Rec room이라고 오락실이 있긴 하지만 신분증도 제시해야 하며 19세부터 입장가능하다. 또한 가격대도 저렴하지 않고 거리도 멀다. 다운타운이나 중심지가 아닌 이상, 십 대들 이 다 함께 어울려서 놀 수 있는 공간이 마땅치가 않다 보니 생활패턴이 매우 건강해 보였다. 그러나 치안이 우리나라만큼 안전하지는 않다. 밤에는 길거리에 사람이 거의 없으며 웬만한 상점이나 대형마트도 한국보다 일찍 문을 닫는다. 그래서 해가 지면 귀가해서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문화가 자연스럽게 생겨난 것 같다. 물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놀거리가 풍부하지 않은 대신에 크고 작은 공원들이 곳곳에 정말 많다. 이점 또한 스케이트보드가 문화로 자리 잡는데 기여하지 않았을까 싶다. 보드뿐만 아니라 러닝을 하거나 자전거 타는 사람도 많다. 한날 나는 집 근처 공원에서 혼자 타고 보드를 타고 있었는데 지나가는 행인이 '너 보드 좋아 보인다'라며 다가와서 '나도 예전에 탔었는데 한번 타봐도 돼?'라고 묻는 사람이 있었다. 순간 나는 내 보드 타고 도망가면 어쩌지? 하는 마음도 살짝 들었으나 흔쾌히 부탁에 응했고 그 캐네디언은 10분 동안 스케이트 보드를 어떻게 타야 하는지 코칭을 해주더니 쿨하게 가버렸다. 이렇게 스스럼없이 다가와서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잠깐 어울렸다 빠지는 그들의 문화가 나는 너무 마음에 든다. 한국에서는 경험해 본 적이 없으니 말이다. 그들의 '스몰톡' 문화도 좋다. 그리고 이런저런 경험을 하고 보니 생각보다 많은 캐네디언들이 살면서 한 번씩은 스케이트 보드를 건드려 본 것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