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반추
최근에 김영하 작가의 [단 한 번의 삶]이라는 책을 듣게(?) 되었다. 정말 들었다. 오디오북 서비스로 말이다. 잠이 오지 않는 밤 미디어 시청은 눈 아프고 그마저 피곤했다. 눈감고 다른 것에 집중하면 잠이 오겠다 싶어서 전자책 앱을 살피다가 박정민배우 낭독이라는 게 보여서 그의 목소리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바로 듣기 시작했다.
눈 감고 조용히 목소리에 집중하며 듣기 시작했다. 듣다가 이대로 잠들면 좋겠다 하는 심정으로. 하지만 점점 내용들이 생각을 던져 주었다. 나의 엄마에 대해서 나의 아빠에 대해서 나는 어떻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나의 삶은 어디로 가고 있나. 내 삶은 무엇이라 설명하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내가 다녀왔던 여행지들에서 이야기들, 내가 만난 사람들. 나에게 가장 영향을 준 사람은 누군가. 나도 김영하작가처럼 내 한 번의 삶을 남겨봐야겠다. 오랜만에 글쓰기 욕구가 올라왔다.
잠을 자야 하는데 눈은 감고 몸은 이완되어 있는데 정신은 더 또렷해졌다. 결국 새벽까지 다 듣고야 말았다. 그 느낌 그대로 책을 소장해야겠다. 욕심도 내어본다.
잘 되는 일만 남았다 생각했는데 요즘 뭔가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 이럴 때는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더 절망적이다. 잘 안되어도 이렇게 저렇게 움직이고 하면 괜찮아지는데 이건 사방에 벽이다. 고문장치 중에 벽에 서있는 관 형태가 있는 거 아는가? 벽관이라 한다. 관크기의 공간에 꼼짝 못 하고 서 있는 형태이다. 주도적이고 독립적인 내가 꼼짝 못 하는 상황이 되니 감정만 더 민감해지고 감정에만 계속 매몰되는 것 같다. 움직여야 감정도 흘러가는데 계속 꼼짝없이 서있으니 온몸이 감정덩어리가 된 거 같다. 건드리면 터진다.
돌아보면 이런 날이 이런 때가 처음은 아니다. 그리고 언젠가 해결되고 지나가게 된다. 그러면 반복되는 시간 속에 이렇게 부딪치는 벽을 만나면 나이가 들수록 성숙하게 유연하게 대처가 되어야 할 것 같은데 오히려 안 된다. 왜지? 대체? 그것마저 짜증 나고 감정에 혹이 더 붙는다. 이 붙은 혹을 언제 또 어떻게 땔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지금 내 몸에 가득 퍼져 있는 감정덩어리가 옅어지고 작아지고 사라지기까지 아무것도 못하고 더 답답하게 지내야 할지도 모르겠다. 벽관이 열리는 게 먼저인지 감정이 사라지는 게 먼저인지 모르겠다.
이 끝 모를 시간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지만 그래도 다짐을 해보는 것은 ‘버티자’이다. 벽관이나 어두운 독방에 갇혀 죽게 되는 사람들은 결국 삶을 포기한 사람들이지 않을까 생각해 보게 된다. 버티면 나오게 된다. 뭔가 해서가 아니라 그냥 버티는 거다...
그래 삶을 포기하지만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