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RN Feb 06. 2022

상차 아르바이트를 할까, 바 아르바이트를 할까

생애 처음 모은 800만 원 시드머니

 내가 가진 가장 허름한 옷과 신발을 골라 입고 아르바이트를 하러 갔다. 트럭에 물건을 싣는 일이라 다른 사람과 마주칠 일이 없었다. 생각보다 먼지가 많은 환경이었고, 여기저기 움직이는 일이라서 깨끗하고 단정한 복장보다는 더러워져도 마음 편한 옷이 제격이었다.

 5개월간 잔업과 주말 특근까지 하면서 800만 원의 시드머니를 모았다. 생전 처음 모은 사유재산이었다. 이를 지키기 위해 나의 생각과 행동이 달라졌다. 나에게 800만 원은 지난 5개월의 노동으로 환산되어 각인되었다. 이후에는 고생을 피하기 위해 더 쉽게 돈을 많이 버는 일들을 찾기 시작했다.



 나는 9월 말 전역을 한 탓에 1학기 휴학을 했다. 전역 시기가 비슷한 친구와 연락이 닿아 아르바이트를 찾고 있었다. 하나는 상차 아르바이트였고, 다른 하나는 바 아르바이트였다. 바 아르바이트는 술값 계산을 하지 않고 도망가는 손님을 감시하는 일이라고 했다. 일이 쉬워 보였지만 밤늦게 출근하고 새벽에 퇴근하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힘들긴 하겠지만, 전역 후 넘치는 열정을 레버리지 해서 상차 아르바이트를 선택했다.


 상차 아르바이트는 하루에도 몇 명씩 도망을 가는 아르바이트였다. 팀장님은 첫 만남에도 지쳐 보였고, 퉁명스러웠다. 아마도 나와 내 친구도 도망을 갈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오전에 첫 출근한 사람은 4명이었다. 오후가 돼서 밥을 먹으려고 봤더니 나와 친구밖에 없었다. 벌써 2명이나 도망간 것이었다. 사실 나 역시 친구가 없었다면 포기했을 수도 있었다. 노예근성이었는지 쉬는 시간에 눈이 마주치면 친구와 낄낄 웃으면서 견딜 수 있었던 것 같다.


 하루 일과는 1인당 할당받은 2.5톤 트럭 4대 분량을 채우면 끝이다. 물건이 순차적으로 나오기 때문에 차 1대당 30~40분 정도의 제한시간이 있다. 그 기한 내에 종이에 적힌 품목을 체크하며 트럭 앞쪽부터 물건을 채워간다. 배송지가 여러 곳이기 때문에 각 지점마다 테이프로 경계를 표시했다. 정신없이 옮기다 보면 1대 분량이 끝나게 된다. 오전 2대, 오후 2대를 끝으로, 첫날은 긴장해서 그런지 시간이 빨리 갔다. 위기는 둘째 날이었다. 손가락과 팔꿈치 인대가 너무 아팠다.  


 함께 일하는 형들은 5명이었다. (나와 친구를 포함하면 총 7명이었다.) 경력자의 놀라움은 여기서도 존재했다. 분명 느리고 힘도 없어 보이는데, 나보다 훨씬 빠르게 일을 마치고 힘든 기색도 없었다. 나와 친구는 체력이 부족한 건가 싶어서 쉬는 시간에 줄넘기까지 했었다. 그래도 그들을 따라잡을 수는 없었다. 나중에 깨달은 바이지만 우리에게 부족한 건 힘이 아니었다. 일할 때 필요 이상으로 힘을 쓰면 안 된다는 사실이었다.


 힘은 무거운 물건을 옮길 때만 쓰면 된다. 가벼운 박스를 옮길 때 팔에 힘을 최대한 빼고 옮기기 시작했다. 박스를 쌓을 때도 차곡차곡 예쁘게 정돈하는 것도 포기했다. 어차피 상차 업무의 목적은 물건을 필요한 곳에 옮기는 것이다. 목적에 맞게 지점별 물건을 파손 없이 상차하고 표기만 잘해주면 된다. 업무의 목적에 집중하다 보니 나의 힘은 남기 시작했고, 업무 속도도 빨라졌다. 드디어, 대기실에서 자판기 커피를 마시는 여유까지 생기게 됐다. 이제야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노동의 고단함을 잊게 해 주던 형들의 과거 이야기와 조언들이 그때는 웃으며 지나갔지만, 그 이후 내게는 무언가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독함으로 전환된 것 같다. 집 앞 외출에도 2시간씩 치장했던 과거보다 더 당당하고 자신감 있는 내가 되어감을 느끼고 있었다. 남의 시선을 덜 두려워하게 됐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겠다. 나는 잘 살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것이고, 그 일을 창피해할 필요가 없다는 마인드셋이 만들어졌다. 약간의 가능성이 보이면 창피해도 막 도전하는 추진력이 생긴 듯하다.


 우리 가족이 말하길, 군 입대 전까지 진짜 허송세월의 극을 보여주던 내가 이렇게 열심히 살 거라고 생각도 못했다고 한다. 아마도 그때 끈기 있게 했던 5개월의 상차 아르바이트 시점이 변곡점이었다고 추측하고 있다. 그 부분에 있어서 내 생각도 그렇다.



 만약에 내가 상차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았더라면 이런 마인드셋을 가질 수 있었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화학과 갈까, 화공과 갈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