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센터를 차리고 막 운영을 시작했을 때 일입니다.
이용자 한 분 없이 월세만 계속 나가는 사무실을 지키며 '괜찮을까, 잘 해낼 수 있을까' 매일같이 마음을 졸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침내 첫 상담 전화가 걸려왔고, 설레는 마음으로 어르신 댁을 방문했습니다.
첫 인연이니만큼 더 잘해드리겠다는 마음이 컸습니다.
안타깝게도 어르신댁에 방문한 순간 저의 부푼 마음은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외모부터 깐깐함을 한껏 풍기던 어르신은 말투도 퉁명스러웠고 욕설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시종일관 마치 '네가 나한테 맞는 요양보호사를 찾을 수나 있겠냐?' 하는 느낌을 온몸으로 발산했습니다.
1시간동안 폭언에 가까운 이야기를 듣고 괜찮은 요양보호사를 찾으면 연락드리겠다고 말하고는 비틀거리며 어르신 댁을 나오는데 옆집 아주머니가 조용히 다가와 속삭이듯 말씀하셨습니다.
"방문요양 상담하러 온 거죠?"
"네 어떻게 아셨어요?"
"처음 보는 얼굴이 저 집 들어가면 대부분 그런 표정으로 나오더라고요. 저 어르신, 성질 참 고약해요. 딴 데서 온 요양보호사들도 며칠 못 버티고 다 나갔어요."
괜한 고생 하지 말라는 아주머니의 말을 뒤로 한채 저는 사무실로 향했습니다.
갑자기 오기가 생겼습니다. 대하기 쉬운 어르신만 손쉽게 서비스를 제공한다면 제가 하는 일에 사명감이나 보람은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게다가 첫 이용자가 될 수 있는 분을 그저 깐깐하다고 그냥 포기하기 싫었습니다.
어떻게든 요양보호사를 찾아드려야겠다는 생각에 알고 있던 최고의 요양보호사들에게 연락해 어르신 돌봄을 부탁드렸습니다.
"센터장님, 죄송한데.. 반찬이 맛없다고 던지는 어르신은 처음 봤어요. 그만할게요"
"돌봄 때문에 물건이라도 만지면 도둑년 취급을 하는데 너무 힘들어요. 못하겠어요"
"처음부터 끝까지 화만 내는데 제가 정신병 걸릴 것 같아요. 오늘까지만 하겠습니다"
어렵게 요양보호사들을 구했지만 하나같이 일주일이 지나기도 전에 포기를 선언했습니다. 살다 살다 이런 어르신은 처음 본다며 다들 혀를 내둘렀습니다.
결국 어르신께 맞는 요양보호사를 구하지 못해 전전긍긍하던 중, 예전에 함께 일했던 요양보호사 한분이 우연히 근처를 지나가다 저희 사무실을 들렀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저도 모르게 그 어르신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사뭇 진지하게 제 이야기를 듣고 있던 요양보호사가 말했습니다.
"제가 한번 해보겠습니다. 제 아버지도 성격이 비슷하셨어요. 이상하게 자꾸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나네요"
그렇게 1호이자 요주의 인물인 어르신과 요양보호사의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식사를 준비해 드리면 입맛에 안 맞는다고 몇 번이나 다시 만들어 오라고 하고 청소라도 할라치면 왜 남의 물건을 함부로 치우냐고 화를 냈습니다.
놀랍게도 요양보호사는 어르신의 폭언에도 불평 한마디 없이 음식을 다시 해오고, 청소도 욕을 먹어가며 꿋꿋이 했습니다.
오히려 제가 먼저 요양보호사 선생님께 도저히 안될거 같으니 포기하자고 권유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요양보호사는 깐깐한 어르신을 케어하며 묵묵히 하루하루를 쌓아갔습니다.
그렇게 한두 달 시간이 흐르자 어르신의 말투가 조금씩 누그러지더니, 태도도 달라졌습니다.
처음에는 불청객 대하듯이 왜 왔냐며 호통치던 어르신은 이제 요양보호사가 조금만 늦어도 안절부절못하고 문 앞에서 기다렸습니다.
어르신이 조금씩 요양보호사에게 마음을 열고 있던 건지도 모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르신이 요양보호사에게 물었습니다.
"너는 학교 좀 다녔니?"
요양보호사를 의아하게 만들었던 그 질문의 끝에는 오랫동안 가슴에 묻어두셨던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한글 좀 배워보고 싶은데 좀 가르쳐줄 수 있을까?"
어르신은 평생 글을 모르고 살아오신 분이었습니다.
요양보호사는 차라리 복지관이나 노인대학에서 배워보시라고 권유를 드렸지만 남들한테 한글 모르는 걸 들키고 싶지 않다고 완강히 거부하셨습니다.
요양보호사는 그날 바로 큰 공책을 하나 사 와서 'ㄱ'부터 하나씩 적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렇게 어르신의 늦깎이 한글 공부가 시작되었습니다.
매번 어르신은 떨리는 손으로 꾹꾹 눌러 글자를 따라 썼고 더듬거리며 읽어보았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어르신은 자신의 이름을 또박또박 쓸 수 있었습니다.
"이게 내 이름 맞지?"
어르신은 물끄러미 본인의 이름을 보더니 중얼거렸습니다.
"참 글자가 이쁘게 생겼구먼"
요양보호사가 일주일에 한 권씩 사가는 공책에는 어르신의 이름, 먼저 돌아가신 할머니의 이름, 자식들의 이름, 좋아하는 음식과 TV 프로그램 등 단어가 빼곡했고 어느덧 꽤 긴 문장도 서툴게나마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매일 한 글자씩 마음을 써 내려가시던 어르신은 어느 날부터 급격히 건강이 급격히 나빠지기 시작했습니다.
췌장암으로 통원치료를 받고 계셨는데 간으로 전이되었던 것입니다.
결국 병원에 입원을 하셨고 얼마 후에 보호자를 통해 세상을 떠나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무거운 마음으로 찾아간 장례식장에서 처음으로 환하게 웃고 있는 어르신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며칠 뒤 보호자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사무실로 좀 찾아가도 될까요?"
순가 긴장이 되었습니다.
옆 센터에서 보호자가 어르신이 돌아가신 책임을 센터에 물어 법정 소송 중이라고 했던 이야기가 뇌리를 스쳤습니다.
저는 초조한 마음으로 보호자를 사무실에서 만났습니다.
잠시 말없이 앉아 있던 보호자는 가방 속에서 조심스레 작은 상자를 하나 내밀었습니다.
이게 뭔가 하는 저를 보고 보호자는 열어보라는 손짓을 했습니다.
상자 안에는 어르신과 요양보호사가 딱 한번 함께 찍은 사진 한 장과 봉투 하나가 들어 있었습니다.
그것들을 바라보던 저에게 보호자가 조용히 말했습니다.
"유품 정리하다가 나왔어요. 아무래도... 요양보호사분께 편지를 쓰려고 하셨던 것 같아요"
봉투를 열어보니 삐뚤빼뚤한 글씨의 편지가 나왔습니다.
한 글자 한 글자 눌러쓰신 흔적이 그대로 느껴졌습니다.
"나 안 버리고 계속 같이 있어줘서 고맙습니다. 화내서 미안합니다. 다 나으면 같이 놀러 갑시다."
편지를 읽으며 글자 중간중간 수없이 지워진 자국에 눈길이 멈췄습니다.
그렇게 여러 번 썼다 지우기를 반복하며 어르신은 요양보호사에게 차마 하지 못했던 마지막 인사를 남겼습니다.
편지를 건네받은 요양보호사도 눈을 꾹꾹 누르며 어르신과의 이별을 아쉬워했습니다. 그렇게 저희 센터의 첫 이용자의 서비스는 끝났습니다.
3년이 지난 지금, 어르신의 서류는 캐비닛 안에서 낡아가고 있지만 길지 않았던 어르신과의 추억과 그날의 감정은 조금도 낡지 않았습니다.
요양이라는 일은 어쩌면 이별을 준비하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이별을 따뜻하게 기억하게 해주는 사람들 덕분에, 오늘도 저는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