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밥 한번 데웠다가 수억 원 날릴 수 있습니다

by young

장기요양기관으로서 가장 피하고 싶고 가장 치명적인 일을 꼽으라면 단연 '환수'입니다.


장기요양기관이 부정수급으로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청구한 사실이 적발되면 장기요양급여를 환수해 가는데 적게는 몇천 원부터 크게는 수십억에 이를 수도 있습니다.


환수 금액도 문제이지만 보통 영업정지와 같은 행정처분도 같이 따라오다 보니 큰 금액의 환수는 장기요양기관에 있어 사실상 사형선고나 다름없습니다.


공단은 최근 환수를 전담하는 FDS팀을 만들어 5년 전의 자료까지 확인하고 조사하며 환수를 진행하고 있고, 기관의 부정수급을 신고한 자, 특히 내부고발자에게 고액의 포상금을 지급하면서 작년 한 해에만 무려 500억을 넘는 금액을 환수했습니다.


대표적인 부정수급사례로는 실제로 이용자가 기관을 이용한 날이 아닌데 이용한 것처럼 청구를 한다거나 사회복지사나 요양보호사를 의무인원보다 더 배치할 경우 주는 가산금을 노리고 실제 근무하지도 않는 직원을 근무한 것처럼 속여 청구를 하는 것 등이 있습니다.


물론 이런 부정수급 이득을 취해온 기관을 적발했다면 환수를 하고 처벌을 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문제는 탁상공론에 가까운 규정과 공단의 자의적인 법해석으로 인해 장기요양기관 입장에서는 다소 어이없는 이유로 환수 조치가 내려지는 경우도 많다는 것입니다.


식사를 제공하는 주간보호센터나 요양원에서는 요양보호사가 조리행위를 할 수가 없고 반드시 조리원이 있어야 하고, 이용자가 50명이 넘으면 영양사도 배치해야 합니다.

다만 식사를 조리사와 영양사가 존재하는 급식위탁업체에 맡기면 기관에 조리원과 영양사가 없어도 인정을 해줍니다.


급식위탁업체에 맡기면 한 끼에 한 사람당 대략 5천 원 정도면 해결을 할 수가 있기 때문에, 조리원과 영양사를 채용해 월급과 식재료비를 부담하는 것보다는 훨씬 저렴하여 많은 수의 기관들은 급식위탁업체에 식사를 맡기고 있습니다.


그렇게 위탁한 식사는 보통 식사 1시간 전쯤 기관에 도착하다 보니 밥이나 국, 반찬 등이 식는 경우들이 많이 있습니다.

여기서 어르신들께 식은 음식을 드릴 수는 없으니, 요양보호사가 데워서 드리면 어떻게 될까요?


2023년에 한 요양원에서 어르신께 요양보호사가 식은 밥을 데워서 드렸다가 공단에서 조리 행위를 했다고 판단해 수억 원을 환수 조치 하였습니다.


[단독] 요양보호사가 밥 데웠다고 수억 원 환수한 건보공단 < 복지건강 < 기사본문 - 여성경제신문


요양보호사는 전기밥솥의 취사버튼을 누르는 것도 안되고, 과일을 깎아드리는 것도 안되고, 심지어 전자레인지를 사용해서도 안됩니다.


다른 사례도 있습니다.


요양원에는 이용자가 30명 이상이 되면 청소와 빨래를 전담하는 위생원을 둬야 합니다. 그게 아니라면 외부 세탁업체에 세탁물 전량을 맡겨야 합니다.

대부분의 요양원은 조리사와 마찬가지로 외부세탁업체에 맡기는 것이 훨씬 저렴하다 보니 외부세탁업체에 맡깁니다.


요양원은 배설물이 뭍은 속옷이나 음식물이 뭍은 옷 등의 세탁물이 자주 나옵니다.


그런 것들은 오래 쌓아두면 냄새가 심하기도 하고 피 같은 일부 오염물 등은 빨리 세탁하지 않으면 지워지지 않는 것들도 있습니다.


이런 일부 세탁물을 요양보호사가 세탁했다고 공단에서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심지어 요양보호사 말고도 사회복지사나 간호조무사 등 다른 직책들 중에서 세탁을 한 번이라도 한 적이 있는 경우에 그것까지 환수를 해 20여억원을 환수조치한 사례도 있습니다.


[요양보호사의 늪] ⑤ 인분 묻은 수건 요양사가 빨았다고 23억 환수? < 경제금융 < 기사본문 - 여성경제신문


어르신들과 함께하는 현장에서는 어떤 돌발상황이 발생할지 아무도 모릅니다.


어르신이 간식을 가져와 데워달라고 할 수도 있고, 보호자가 사과 같은 과일을 가져와 어르신들께 간식으로 드려달라고 할 수도 있겠죠.

세탁도 그때그때 현장에서 처리해야 하는 상황들이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주업무가 아닌 일시적 혹은 보조적 업무의 경우에는 예외사항을 두고 법을 현장에 맞게 유연하게 적용해야 하는데, 환수에만 초점이 맞춰지다 보니 어르신들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만든 조항들이 오히려 역효과를 내고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그럼 조리원, 영양사, 위생원을 외부에 맡기지 말고 채용하면 되지 않느냐고.

하지만 저번 편에서도 이야기했다시피 낮은 수가로 인해 대부분의 기관은 영세합니다.

최저임금 정도도 가져가지 못하는 대표도 수두룩합니다. 저만 해도 최저임금정도로 벌기까지 1년가량 걸렸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채용에 따른 리스크도 있습니다.


아래는 세탁만 해야 하는 위생원에게 청소를 시켰다고 7억 원의 환수처분을 한 사례입니다.


https://www.munhwa.com/article/11413375


결국 3년간 법정싸움 끝에 요양원의 일부승소로 끝이 났습니다.


최근 센터장들이 모이면 우스갯소리로 장기요양기관 환수금으로 국민건강보험 적자 메꾸고 있는 거 아니냐는 말도 합니다.


식은 밥을 그대로 드려야 하는 현실.

냄새나는 세탁물과 함께 생활해야 하는 현실.


법은 지켜야죠.

하지만 ‘사람’을 위한 법이라면, '사람 냄새'도 좀 났으면 좋겠습니다.


keyword
이전 07화일회용 기저귀지만 빨아서 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