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요양기관을 운영하다 보면 어르신이나 보호자로부터 무리한 요구를 받는 경우들이 종종 있습니다.
어느날 센터를 이용하고자 한다며 보호자 한분이 연락을 주셨습니다.
"저희 아버지가 천 기저귀를 꼭 하셔야 하는데.. 혹시 일회용 기저귀 말고 천 기저귀를 빨아서 써주실 수 있나요? 그런게 가능한 요양보호사도 있겠죠?"
대소변 케어가 필요한 어르신의 경우 그냥 일회용 기저귀를 사용을 한다고 해도 기저귀 교체 때문에 요양보호사들이 기피하는 대상자 중 하나인데 천기저귀를 매번 빨고 삶아서 입혀드릴 만한 요양보호사를 구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습니다.
솔직하게 말씀을 드렸음에도 보호자가 강하게 요구를 해서 우선 구인 공고를 올렸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일주일이 지나도록 전화 한통 오지 않았고 보호자 역시 다른 센터에도 같은 요구사항으로 요양보호사를 알아보았지만 문의조차 없었다고 했습니다.
결국 보호자는 내키지 않는 태도로 일회용 기저귀를 사용하기로 결정을 했지만 또다른 요구를 했습니다.
"그럼 혹시 일회용 기저귀를 한번 정도만이라도 빨아서 재사용할 수는 없을까요?"
순간 일회용과 재사용이 공존하는 문장에 정신이 아득해졌습니다.
"일회용 기저귀는 말그대로 일회용이기 때문에 세탁을 한다한들 그 흡수 기능이 무용지물이 됩니다. 어떤 이유가 있으신가요?"
"이런 말이 창피하지만..형편이 어려워서 일회용 기저귀 구매가 부담스럽습니다.."
보호자의 기죽은 목소리가 안타까웠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요구였기에 저도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그 때 갑자기 좋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사정은 안타깝지만 어르신의 위생문제도 있어서 일회용 기저귀 재사용은 어렵습니다. 근데 비용이 부담되시는거면 인근의 치매안심센터에 가보세요. 치매진단을 받은 어르신이면 치매안심센터에서 분기별로 기저귀 지원해 주는 사업이 있습니다."
보호자는 깜짝 놀란 목소리로 그런게 있냐며 당장 알아보겠다고 했습니다.
그 길로 치매안심센터에 달려갔는지 그 다음달부터 기저귀를 분기별로 지원받을 수 있었고 일회용 기저귀 세탁 요구는 해프닝으로 끝났습니다.
이렇게 잘 마무리가 되는 요구도 있지만 센터 분위기 자체를 망치게 되는 요구도 받을 때가 있습니다.
주간보호센터에 어머니 입소를 의뢰한 보호자가 저에게 심각한 표정으로 말씀했습니다.
"어머님이 식사 때마다 계란후라이가 없으면 밥을 아예 안드세요. 혹시 계란후라이를 점심시간마다 해주실 수 있을까요? 계란은 제가 주기적으로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당시에는 계란 후라이가 그렇게 어려운 요리도 아니고 해볼만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네! 한번 해보겠습니다"
그때 저의 당당한 대답을 아직도 후회합니다.
그날부터 조리사 선생님께 부탁하여 어르신께 보호자분이 가져오신 계란으로 후라이를 해서 드렸습니다.
근데 문제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터졌습니다.
옆 자리에서 식사하시던 어르신이 본인과 해당 어르신의 식판을 번갈아보시더니 벌컥 화를 내셨습니다.
"아니, 사람차별하는거야! 이 여편네만 계란후라이를 주고. 내 입은 주둥이야 뭐야!"
그러자 주변의 다른 어르신들도 그 어르신의 식판에 올려진 계란 후라이를 보고 불만을 터뜨리기 시작하셨습니다.
저는 얼른 어르신들께 달려가, 이 어르신은 계란후라이가 없으면 식사를 못하신다고 하셔서 보호자님이 개인적으로 계란을 사가지고 오신거라고 말씀을 드렸지만 어르신들의 분노는 가라 앉지 않았습니다.
"나도 계란후라이 없으면 밥 못먹어! 계란후라이 가져와!"
어쩔 수 없이 급히 계란후라이를 어르신들의 수만큼 만들어 내드려서 소란을 멈췄지만 임시방편일 뿐이었습니다.
매일 모든 어르신들의 계란후라이를 만드려면 시간과 비용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한가지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다음 날 조리사에게 가서 계란후라이를 밥 위에 얹지 말고 밥 아래에 넣어 다른 어르신들께 보이지 않게 해달라고 부탁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점심시간 직전에 어르신께 가서 귀에 대고 속삭였습니다.
"다른 어르신들이 보면 또 어제처럼 그렇게 난리가 날 수 있어서, 오늘은 계란후라이를 밥 밑에다가 숨겨놨어요. 다른 어르신들께 안들키도록 몰래 드세요"
어르신은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고, 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진 점심시간.
비밀 임무처럼 계란후라이가 숨겨진 밥이 은밀히 어르신께 갔고, 조리사 선생님이 계란후라이를 잘 숨기셨는지 제 육안으로도 계란후라이는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어르신이 밥을 휙 뒤집으며 계란후라이를 노출되었습니다.
결국 또 한바탕 난리가 났습니다.
저는 어르신이 실수하신거라고 생각하여 내일부터는 조심히 드셔달라고 이야기를 했지만 다음날도 다다음날도, 어르신은 계속해서 계란후라이를 주변어르신들이 볼 수있게 꺼내셨습니다.
그제서야 어르신이 숨길 마음이 없고, 오히려 너희들은 없는 계란후라이가 나에게 있다. 아들이 이렇게 나에게 잘해준다. 이런 식의 자랑을 하고 싶으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이가 들면 아이가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몸은 어른이어도 마음은 점점 투명해지고, 감정은 솔직해지고, 표현은 점점 아이처럼 단순해진다는 것입니다.
어르신은 어쩌면 계란후라이 하나에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을 얻고 싶으셨는지도 모릅니다.
"나는 이만큼 소중한 사람이다"
그걸 밥 위에 올려진 계란 한 알로 말하고 싶으셨던 거겠지요.
결국 보호자께 '어르신만 특식으로 드릴 수 없다.'고 안내를 드렸고, 결국 그 분은 요구를 들어준 다른 센터로 어르신을 입소를 시켰습니다.
장기요양기관을 운영하다 보면 정말 많은 요구를 받습니다.
그중엔 고개를 끄덕이며 "해볼게요!" 할 수 있는 것도 있지만, 가끔은 이렇듯 ‘계란 후라이 하나’가 전쟁의 시작이 되기도 합니다.
오늘은 또 어떤 분이 어떤 요구를 할지, 달걀 껍질 위를 걷듯 눈치를 보며 하루를 보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