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판 프리즌 브레이크
치매환자 중에는 배회 증상이 심해져서 실종되거나, 길에서 교통사고를 당하거나, 계단 에서 굴러떨어지는 등의 사고를 겪는 분들이 있습니다.
단순 부상으로 끝나면 다행이지만 요양원과 같은 시설 내에서는 나가기 위해 창문을 열고 뛰어 내려 사망에 이르는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실제로 이 배회로 인한 사망 사고가 1년에 100건에 달할 정도로 치매환자의 배회 증상은 매우 위험한 문제행동 중 하나입니다.
치매 환자의 위험한 '배회'… 한해 100명 넘게 숨진다 | 한국일보
그래서 요양원이나 주간보호시설에서는 치매 어르신들의 배회증상으로 인한 사고를 막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합니다.
출입문의 도어락을 안쪽에도 설치하고, 창문에 쇠창살을 설치하는 등 여러 가지 노력을 하지만 사람이 하는 일이다보니 종종 어르신의 탈출을 놓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센터를 운영하며 유난이라고 할 정도로 여러 안전장치들을 해놓았지만 프리즌 브레이크의 석호필 뺨치는 실력의 어르신들은 작은 실수를 놓치지 않고 유유히 센터를 빠져 나가곤 했습니다.
다행히도 대부분의 경우는 직원들이 상황을 빠르게 파악하고 조치를 취해서 탈출 도중 발각이 되거나 센터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찾을 수 있었지만 크게 사고가 날 뻔한 일이 한번 있었습니다.
점심식사 이후 요양보호가 밖에 쓰레기를 버리고 들어오면서 출입문을 제대로 닫지 않아 살짝 열려 있는 상태가 되었는데 호시탐탐 탈출을 노리던 한 어르신이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누구도 눈치를 채지 못하게 탈출을 했습니다.
점심시간이다보니 다소 느슨해져 있었던 터라, 어르신이 사라진 것을 알게 된 건 약 1시간이 지나서인 오후 프로그램 준비를 위한 인원점검을 할 때 였습니다.
급히 센터 내 이곳저곳을 살펴보았지만, 어르신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고 등에서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센터 운영에 필요한 최소한의 인원을 제외하고 전 직원이 어르신을 찾기 위해 출동했습니다.
혹여라도 큰 사고라도 당할까봐 센터 주변을 샅샅히 뒤졌지만 어르신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제발..어른신..자동차 사고나 낙상 사고만은 안됩니다..'
기도 아닌 기도를 하며 직원들에게 주변 수색을 부탁한뒤 저도 동네 외곽까지 미친 듯이 뛰어다니며 어르신을 찾았습니다.
괜히 제 탓인 것 같아서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애타는 저희의 마음과 다르게 어르신을 발견할 수 없었고 땀범벅이된 요양보호사가 조심스럽게 말했습니다.
"대표님.. 실종 신고 하시죠.."
어르신을 제대로 챙겨드리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안고 결국 경찰에 실종 신고를 했고 초조하게 연락을 기다렸습니다. 일부 직원들에게 부탁해 인근 동네 수색도 진행했습니다.
앉아 있지도 못하고 사무실을 서성거리며 어디에서든 어르신을 찾았다는 연락이 오기만을 기다렸습니다.
오후 시간이 지나고 늦은 저녁이 되어서 경찰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전화기를 든 손이 사시나무처럼 떨렸습니다.
"경찰관님..어르신...찾으신거죠...?"
"네 다행히 찾았습니다. 그런데.. 좀 멀리까지 오셨네요"
경찰의 연락에 부랴부랴 어르신을 모시러 갔는데 어르신이 발견된 곳은 센터에서 직선거리로 무려 20km가 넘는 거리였습니다. 어르신이 20km가 넘는 길을 정처없이 걸으셨던 것입니다.
다친 모습 없이 얌전한 어르신의 모습을 보자 다시 코 끝이 찡해졌습니다.
그 날은 제가 센터를 운영하기 시작한 이래 가장 감정적으로 힘든 하루였습니다.
이런 큰일을 한번 겪고 난 후 더이상 배회로 인한 실종이 생기지 않게 더욱 관리를 강화했습니다.
하지만 어르신의 배회증상은 더 심해져 문고리를 잡고 열어달라고 소리를 지르며 흔드는가 하면 정말로 창문으로 뛰어내리려고 하는 등 위험한 상황들이 발생했고 저의 고민은 더욱 깊어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센터 근처에 예쁜 공원이 생겨 점심 식사를 마치고 어르신들과 공원을 산책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다들 공원 안의 꽃 등을 구경하며 산책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그 문제의 어르신이 대열에서 이탈하여 다른 곳으로 빠르게 걸어가시는 것이었습니다.
또 배회 증상인가 싶어서 재빨리 따라갔는데, 어르신이 걸음을 멈춘 곳은 바로 공원 내에 비치된 운동기구들 앞이었습니다.
어르신은 진지한 표정으로 운동기구들을 하나씩 찬찬히 살피시더니, 이내 열심히 운동을 시작하셨습니다.
어찌나 운동에 열중하셨는지, 산책이 끝나고 돌아갈 시간이 되었음에도 계속해서 운동하고 계셨습니다.
결국 직원 한명이 남아 어르신이 운동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같이 들어오기로 했는데 다른 모든 사람이 복귀하고도 30분이나 더 지나서 센터에 돌아왔습니다.
어르신은 땀을 많이 흘리고 계셨지만, 어느 때보다 밝은 표정이었고 신기하게도 그날은 배회 증상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거다 싶어 그날 이후 직원 한명을 동행시켜 공원에서 운동을 하시도록 했더니 배회 증상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습니다.
어쩌면 어르신께 필요한 건 ‘단속’이 아닌 ‘이해’였는지도 모릅니다.
센터 안에 머무르기보다 햇볕을 쬐고 바람을 느끼며,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작은 자유 하나.
그 작은 변화가 어르신의 하루를 지켜주었습니다.
돌봄이란 어쩌면, 그렇게 아주 작은 마음을 살피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팁 하나. 치매환자는 인근 경찰서나 치매안심센터로 가서 지문사전등록을 반드시 해주세요. 배회증상이 심하신 분은 치매안심센터에서 받을 수 있는 인식표나 복지용구업체에서 판매하는 배회감지기를 이용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