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수많은 바퀴벌레 속에서 요양보호사는 묵묵히 버텨내었다

낮에는 몰랐던 이야기

by young

우리 센터의 이용자 중 60대의 남자어르신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 어르신은 뇌경색으로 인한 편마비로 일상생활이 어려워 방문요양서비스를 받고 계시는데 성격이 워낙 깐깐하고 잔소리를 많이 하는데다가 집 안에서 담배도 피고 심지어 강아지까지 있다보니 선뜻 나서는 요양보호사를 찾는 것이 매우 힘들었습니다.


겨우겨우 하겠다는 요양보호사를 찾아 서비스를 진행해도 길게는 2~3일, 짧게는 한시간만에 못하겠다며 손사래를 치는 바람에 센터 창립 이래 구인에 가장 애를 먹은 케이스입니다.


다행스럽게도 어르신과 잘 맞는 요양보호사를 구해 1년 넘게 서비스를 진행 중이었는데 하루는 요양보호사가 저에게 바퀴벌레약을 좀 구해다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어르신 집에 바퀴벌레가 있냐고 물었더니 요양보호사는 주저하다 어렵게 말을 꺼냈습니다.


"한두마리가 아니고..많이요.. 어르신 돌보기가 힘들 정도로 많이요.."


방문요양은 요양보호사와 어르신만 연결하면 끝이 아니고 매달 어르신댁을 방문하여 케어는 잘하고 계시는지 불편한건 없는지 모니터링을 진행해야 합니다.


이 어르신 또한 제가 직접 매달 방문을 해서 이야기를 나누곤 했지만 지금껏 바퀴벌레를 본적은 단 한번도 없었습니다.


요양보호사가 유난을 떠는 것이라고 생각을 했지만 그래도 정말 케어하기 힘든 어르신을 1년 넘게 돌봐주고 계시니 일단 부탁대로 바퀴벌레약을 주기적으로 사다 드렸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밤에 어르신이 혼자 화장실을 가다 넘어지는 바람에 머리를 다친 것입니다.

자다가 연락을 받고 급히 응급실로 향했고 충격으로 인해 뇌출혈 진단을 받고 며칠동안 입원을 해야한다는 의사 소견을 받았습니다.


사고 전 편마비로 몸은 불편해도 정신은 멀쩡하던 어르신은 퇴원 후 급격하게 인지가 떨어졌습니다.

사람 얼굴을 못 알아보는 건 물론이고 밤에 길거리를 배회하다가 그대로 누워 잠을 자거나 넘어지기 일쑤였습니다. 그러다보니 어르신의 얼굴과 손에는 온갖 상처가 하나 둘씩 늘어났습니다.


이런 상황이 잦아지면서 구급대원도 저에게 안전을 위해서라도 어르신을 요양병원에 잠시 입원 시키는게 나을 거 같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하루는 또 어르신이 쓰러져 구급차를 타고 대학병원에 갔지만 다른 증상이 보이지 않아 입원을 할 수 없다고 이야기를 했고 어쩔 수 없이 어르신의 동의 하에 요양병원에 연락하여 입원을 해보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늦은 저녁이라 요양병원에서도 의사들이 다 퇴근을 해 당장 입원이 불가능하여 우선 집으로 모셔갔다가 내일 아침 일찍 입원을 하는 것으로 결정했습니다.


어르신댁으로 돌아와 현관문을 여는순간 지금껏 들어본적 없었던, 스스스..하는 매우 불길한 소리들이 사방에서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설마 아니겠지 하며 불을 켜자 어마어마한 숫자의 바퀴벌레 무리들이 벽과 바닥, 주방 곳곳에서 기어다니고 있었습니다.


원체 벌레를 싫어하고 무서워하는 편이라 소름이 쫙 돋았지만 그렇다고 어르신을 현관에 버려두고 도망칠 수는 없는 노릇이라 떨리는 마음을 부여잡고 최대한 실눈을 뜬채 어르신을 침대에 눕혀드리고 내일 오전에 다시 오겠노라 이야기를 했습니다.


재빨리 이 지옥같은 곳에서 나가려던 찰나에 어르신이 낮에 쓰러지시면서 넣지 못했던 세면도구들을 화장실에 넣어달라고 부탁을 하였습니다.


한시라도 빨리 나가고 싶었지만 어르신의 부탁에 떨리는 손으로 화장실 문을 열자 어김없이 다수의 바퀴벌레들이 또다시 여기저기를 기어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재빨리 세면도구를 던져놓고 도망치듯이 밖을 나와 미친듯이 온 몸을 털기 시작했습니다.


차안에서도 몸의 떨림은 진정 되지 않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다음 날도 요양병원 입원 절차를 위해 어르신댁을 방문해야하는데, 요양보호사는 오전에 다른 어르신댁에 가야해서 제가 반드시 가야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 날 밤 저는 커다란 바퀴벌레로부터 도망치는 악몽을 꾸며 잠을 설쳤습니다.


다음 날 아침 바퀴벌레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 요양병원 직원을 앞세워 어르신댁을 방문했지만 다행히 어제 밤에 보았던 무수한 바퀴벌레들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제서야 제가 지금껏 어른신댁을 여러번 방문하고도 바퀴벌레들을 보지 못했던 이유는 그들이 낮에는 숨어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어르신을 요양병원에 보내고 이제는 자유의 몸이 된 요양보호사와 함께 집을 정리하고 청소했습니다. 이왕 청소를 하는김에 사비를 들여 방역업체도 불렀습니다.


문득 저라면 하루도 못버티고 도망갔을 이런 곳에서 1년 넘게 묵묵히 버텨주신 요양보호사가 너무도 고마웠습니다.


그동안의 감사했던 마음을 담아 소정의 수고비를 드리고 다음에 일자리가 나오면 꼭 소개시켜드리겠다고하고 헤어졌습니다.


현재 요양보호사의 처우는 매우 열악합니다.

매년 개선하겠다고 하지만 정작 요양보호사들이 체감할만한 처우개선은 없습니다.

여전히 최저시급을 받고 일을 하며, 연차도 사용할 수 없습니다.

힘들었던 하루를 하소연 할 곳도 없습니다.


언젠가 요양보호사 선생님이 저에게 하소연을 하며 이야기를 했습니다.


"대표님말고는 하소연 할 데도 없어요. 남편한테 이야기해도 돌아오는 대답은 그럼 그만두라고 그래요. 일을 하기 싫은게 아니라 그저 그 힘듦을 알아주고 위로해주길 바라는건데 말이에요."


오늘도 타인의 하루를 위해 자신의 하루를 기꺼이 내어주고 있는 요양보호사분들을 응원합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keyword
이전 03화풀악셀 밟던 나는 어떻게 운전의 달인이 되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