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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악셀 밟던 나는 어떻게 운전의 달인이 되었나

by young

사회복지현장에서는 물품수령 및 나눔, 이용자픽업, 상담 등등 많은 분야에서 차량을 사용하다보니 사회복지사의 운전은 선택이 아닌 필수입니다.


운전이 무슨 대수냐 할 수 있지만 스타렉스 같은 봉고나 트럭 등의 큰 차량을 몰아야 하는 상황도 있고 복지 현장으로 가는 길이 아주 험하거나 고난이도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운전을 할 수 있다'를 넘어 '운전을 잘하는' 수준이어야 합니다.


저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운전면허 필기시험을 여유롭게 통과하고 실기와 도로주행을 위해 운전학원에 등록을 했습니다.


드디어 첫 운전의 시간, 사실 운전이랄 것도 없고 트럭 운전석에 앉아 학원 내에서 전진과 후진만 해보는 것이었는데 그래도 처음으로 운전대를 잡아보는 것이라 매우 떨렸습니다.


긴장되기만 했지 저의 첫 운전이 바로 첫 사고가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무사히 전진이 끝나고 후진을 위해 기어를 바꾸고 천천히 가자 강사님이 잘한다며 칭찬을 해주었고이제 멈추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자연스레 브레이크를 밟았는데 이상하게도 트럭이 속력을 내며 뒤로 돌진했습니다.

초심자의 큰 실수인 브레이크가 아닌 엑셀을 밟은 것이지요.


옆에 앉은 강사님은 얼굴이 새파래지며 더욱 크게 브레이크를 외쳤고 저는 브레이크로 착각한 엑셀을 본능에 따라 더욱 세게 밟았습니다.

결국 액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빠르게 후진을 한 트럭은 담장에 부딪히고 말았습니다.


첫 운전에서 차량의 충돌 소리와 담장이 우수수 무너지는 소리를 들은 저는 운전대에서 꼼짝도 할 수 없었습니다.


다행히 다친 사람은 없었고 학원 측에서는 담장과 트럭이 보험으로 처리가 된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손을 벌벌 떨고 있는 제가 안쓰러웠는지 원장님은 강사가 브레이크를 잡아줘야 하는데 안잡아준거라 학생 잘못은 없고 종종 일어나는 일이라며 다독여 주었습니다.


원장님의 따스한 말씀에 감동했지만, 다음 날 제가 운전학원에 가자 원장님이 강사들을 모아놓고 저를 슬쩍 가리키며 무어라 이야기를 했고 강사들은 결의에 찬 얼굴로 저를 바라보는 것을 보며 요주의 인물이 되었음을 감지했습니다.


이정도로도 충분했지만 저의 수난은 끝이 아니었습니다.


도로주행시험 중 유턴을 하는 구간이 있었는데 연습 때 매번 정지신호에 맞춰 안정적으로 대기하다가 우아하게 유턴을 해서 강사님에게 칭찬을 듣던 구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연습 때와 달리 시험 때에는 하필 달리던 도중 유턴 신호를 받았습니다. 늘 정지해있다가 유턴만 해오던 저에게는 처음 있는 상황이었지요.

방법을 몰랐던 저는 5단으로 달리던 속도 그대로 핸들을 힘차게 꺾었습니다.


차 한쪽이 뜨는 느낌을 받으며 뭔가 크게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고 감독관의 경악에 찬 표정과 양손으로 손잡이를 필사적으로 부여잡는 모습이 슬로우모션처럼 보였습니다.

도로주행시험 특성상 매우 빠르게 달리고 있었던 것은 아니어서 무사히 유턴에 성공을 했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다시 출발하려던 그때 감독관의 한마디가 들렸습니다.


"저기 옆에 차 대세요."


결국 저는 끝까지 완주해보지도 못하고 그 즉시 운전대를 넘기게 되었습니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간신히 운전면허를 손에 넣었고 다행히 바로 취업에도 성공을 했습니다.


당시에 취업한 곳은 아직까지도 연탄아궁이를 쓰는 가정 집에 연탄을 나눠드리는 비영리단체였는데 처음으로 지시 받은 임무가 바로 트럭에 연탄 400장을 실은 채 오르막길로 악명이 자자한 부산의 감천문화마을 꼭대기를 올라가는 것이었습니다.


보통, 신입 직원에게 이런 것을 맡기진 않지만 취업에 성공하기 위해 면접 때 운전을 잘하냐는 질문에 슈마허도 내 운전실력에 감격해 눈물을 흘렸다는 등 너무 오버한 나머지 믿고 맡겨버린거였습니다.


처음 하는 실전 운전에 체감 70도의 오르막길을 바라보니 막막했지만 이걸 못하면 어르신들이 추위에 떤다는 사실 하나만 떠올리며 무려 양발운전을 해가며 겨우겨우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어려운 임무를 완수했다는 기쁨도 잠시, 다음 날 운전 코스는 구불구불 꺾어져있는 골목을 누비는 것이었습니다. 들어갈 때야 조심히 들어간다지만 나올 때는 차를 돌릴 공간이 없어 오직 후진으로 그 미로같은 골목을 빠져나와야 했습니다.


하루이틀의 특별한 이벤트가 아니라 보통 연탄을 쓸 정도로 형편이 어려우신 분들은 아주 좁은 골목이나 산꼭대기에 거주를 하시다보니 매번 연탄을 드릴 때마다 곡예와 같은 운전을 해야만 했습니다.


좁은 골목길에서 차를 긁기도 하고 오르막길을 올라가다 연탄을 떨어뜨려 부숴먹기도 했지만 처음부터 스파르타식으로 운전을 배우다보니 1년정도 지나자 그 운전이 어렵다는 부산에서도 눈 감고 운전이 가능할 정도로 운전의 달인이 되었습니다.


그 회사를 퇴사한 지 10년이 훌쩍 지났지만, 그때 배운 운전은 아직도 내 손과 발에 남아 있습니다.

바쁜 도로 위에서도 저는 여전히 그 시절처럼 조심히, 그리고 단단하게 운전대를 잡습니다.


저희 직원 중에 아직 운전면허가 없어 현재 열심히 학원을 다니시는 분이 있습니다.


어제 마침 기능시험을 보셨는데, 안전벨트를 조수석에 꽂고 출발해서 출발하자마자 안전벨트 미착용으로 불합격하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박장대소를 했습니다.


직원은 볼멘소리로 맞받아쳤습니다.


"대표님도 예전에 담벼락 들이받았다면서요"


머쓱한 웃음을 지으며 저는 운전면허시험에 합격하면 초단기에 운전의 달인이 될 수 있는 노하우를 전수해주겠다고 공언했고 직원은 반색하며 얼른 합격하고 올테니 빨리 알려달라고 성화였습니다.


오늘부터 트럭과 연탄 400장을 구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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