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문요양과 결혼정보업체의 공통점?
예전에 여자 후배가 남자를 소개시켜달라고 부탁을 한 적이 있습니다.
제가 이상형을 묻자, 후배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많이 바라지 않아요. 일단 키는 175cm이상만 되면 되고, 얼굴은 그냥 훈남정도면 돼요. 연봉은 한 5천정도? 자기관리 어느정도 하는 사람이면 좋을 거 같아서 술,담배 안하는 사람이면 좋겠구요. 여름에 데이트 하려면 덥고 멀리 놀러도 가고 하면 좋으니까 차도 있으면 좋겠구요..."
그 이후로도 후배의 말은 계속 되었지만 저는 딴생각을 하며 버텼습니다.
후배는 저 조건들 중 몇개가 아닌 모든 것이 충족되는 남자를 찾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연히 제 주변에는 그런 남자는 없었습니다.
저는 후배에게 당당히 말하고 빠르게 자리를 떠났습니다.
"소개 받지 않아도 그런 남자 얼마든지 만날 수 있어. 드라마 보면 돼"
노인장기요양사업 중 하나인 방문요양사업을 하면서 후배와 나누었던 대화가 자주 떠오릅니다.
방문요양은 어르신댁에 요양보호사가 방문하여 가사,신체,개인활동 등을 도와드리는 서비스입니다.
언뜻 보면 요양보호사가 어르신의 일상생활을 돕는 단순한 업무이지만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일이다보니 서로 조건을 따지기 시작합니다. 마치 연애 상대나 결혼 상대를 찾듯이요.
사업 초기 만난 어르신이 좋은 요양보호사가 배정되면 좋겠다고 말씀하시기에 원하시는 조건이 어떻게 되냐고 여쭤보았습니다.
"내가 키가 작잖아. 집에서 뭐 꺼내려고 하면 힘들어. 그래서 요양보호사 키가 165cm 이상은 꼭 되어야해. 또 뚱뚱하면 행동이 느려서 답답하고 그렇다고 너무 날씬하면 나 부축을 할 수 없잖아. 그런것도 고려해줘"
"네 잘 찾아서 소개드리겠습니다"
"아니 말 끊지마. 요리도 잘해야 되고 청소도 꼼꼼하게 할 줄 알아야 해. 말동무도 해야하니까 성격도 서글서글하면 좋겠어. 그리고.."
예전 후배에게 하듯 드라마에서 열심히 찾아보시라고 말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습니다.
문제는 어르신들만 깐깐한 기준이 있다는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요양보호사들도 그들만의 까다로운 조건을 내세웠습니다.
제가 가르치는 요양보호사교육원에서 수강생들이 요양보호사자격증을 취득하고나면 저에게 일자리를 구해달라고 부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표님. 저 바로 일하고 싶은데 모실만한 어르신들 없을까요?"
"어르신들은 많죠. 바로 찾아서 말씀드릴게요"
"잠깐! 치매는 없으신 분으로 부탁드려요! 그리고 여자 어르신만요!"
"아..네 찾아볼게요"
"그리고 보호자가 있으면 간섭이 심할거 같으니 독거 어르신이면 좋겠어요. 또 교통비 안 들게 저희 집 근처 어르신이면 더 좋고요. 그리고 저는 기저귀케어는 좀 힘들 것 같아요"
"...네"
양 쪽에서 이렇게 내거는 조건이 많으니 매칭을 해야하는 제 입장에서는 미칠 노릇입니다.
이 모든 조건에 부합하는, 유니콘 같은 어르신이나 요양보호사가 아주 간혹 존재하기는 합니다.
하지만 대다수인 평범한 어르신들과 요양보호사는 서로의 조건을 맞추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겨우 설득해서 서비스를 시작하면 끝일까요?
요양보호사가 기침 한번 했다고 내쫓는 어르신.
음식 간이 세다고 쫓아내는 어르신.
집에서 이상한 냄새가 난다고 도망치는 요양보호사.
어르신이 무거워서 손목이 아프다며 못하겠다는 요양보호사.
매칭되어서 무사히 잘 지내는 케이스보다 서로 안 맞는다며 다시 구해달라는 경우가 몇배 더 많습니다.
어느날 이 문제로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 유명 결혼정보업체 매니저인 친구와 술 한잔을 했습니다.
"....이래서 내가 돌아버리겠다니까"
진지하고 서글픈 저의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친구는 박장대소를 했습니다.
눈물까지 흘리며 웃는 친구에게 내 힘듦이 그렇게 재밌냐고 핀잔을 주니 친구가 말했습니다.
"진짜 태어나서 들은 남이 한 말 중에 가장 내가 하고 싶은 말이었거든"
의아해하는 제 표정을 보던 친구가 답답한듯 말했습니다.
"우리도 똑같다고 인마. 결혼 하겠다고 찾아와놓고 양쪽에서 얼마나 조건 따지는 줄 아냐. 내가 그거 때문에 미친다 미쳐. 진지하고 신성한 근무시간에 '고객님, 살은 빼면 되잖아요', '고객님. 머리카락은 심으면 됩니다' 하면서 매칭하겠다고 흥정하고 있는 내 모습 보면 현타와서 미치겠다"
그제야 이해한 저는 술잔을 부딪히며 말했습니다.
"진짜 한 쌍 만들어주는게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것 같아. 너희 슬로건이 뭐더라"
"결혼해듀오"
"우리 좀 갖다쓰자.. 우리는 음.. 케어해듀오 어때?"
"마음대로 하던가"
요즘도 일이 힘들때면 심호흡을 하며 생각합니다.
"대한민국 모든 어르신들과 요양보호사들이 행복할 수 있도록. 케어해듀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