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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나쁜 치매는 없다

by young

노인주간보호센터를 운영하면서 겪었던 일입니다.


(노인주간보호센터는 혼자 일상생활이 어려운 어르신을 낮 시간 동안 보호하고 돌보는 시설로 일명 노인유치원 등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당시 센터에는 비교적 젊은 나이인 50대에 치매가 와서 저희 센터에 입소하신 분이 계셨습니다.


고령도 아니고 과거에 헬스를 전문적으로 하셨던 분이다 보니 다른 어르신들에 비해 몸은 건강하셔서 부축 등 손이 가는 일은 많이 없었지만 치매가 심하다 보니 여러 문제 상황들이 발생했습니다.


특히 점심시간은 직원들에게 지옥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이 어르신은 분명히 식사를 끝내놓고는 5분 정도 지나면 모두 잊어버리고 이렇게 소리쳤습니다.


"이놈의 센터는 밥도 안 주고 사람을 굶긴다니까. 아주 못돼 먹은 센터야"


그럴 때마다 직원들은 조금 전에 식사하셨다고 말씀을 드렸지만 오히려 거짓말을 한다고 더 화를 냈습니다.


앞서 밝혔듯이 헬스를 전문적으로 하신 분이라 힘도 어마어마하게 세다 보니 한번 난동을 부리기 시작하면 말리기가 상당히 어려웠습니다.


하루는 이 어르신이 유독 매우 난폭해지셔서 직원들이 말리다가 휘두르는 팔에 맞는 등 소동이 있었고 점심시간이 지난 후 담당 직원이 저에게 와서 하소연을 했습니다.


"대표님, 저 어르신이 매일 점심시간만 되면 저러니까 말리기가 너무 힘들어요. 오늘은 어르신이 휘두르는 팔에 맞기까지 했어요."


직원이 케어하다가 어르신께 맞기까지 했다는데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저렇게 공격성이 강하신 분들은 조심해서 케어를 하셔야 됩니다. 제가 이런 분들은 어떻게 케어를 해야 하는지 확실하게 보여드릴 테니 잘 보시고 따라 하시면 됩니다."


직원들에게 모범적인 케어의 예시를 보여주기 위해 저는 자신만만하게 다음날 점심시간, 문제의 그 어르신 담당을 자처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어르신은 또 배가 고프다며 난동을 부리고 있었고 저는 직원들에게 잘 보라는 눈짓을 하고 그분에게 다가갔습니다.


"어르신. 이렇게 하신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요. 일단 진정하.."


애석하게도 준비한 첫 멘트가 끝나기도 전에 저는 그분이 휘두르는 팔에 눈두덩이를 정통으로 맞고 오후 내내 얼음 마사지를 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고민하던 저에게 마침 한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다음 날 저는 점심도 거른 채 그 어르신 주위를 서성거렸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식사를 시작하는 순간 재빨리 핸드폰으로 그 식사 장면을 찍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식사를 마친 뒤 잠시의 시간이 지나자 어르신은 여지없이 화를 내셨습니다.


"여기는 사람 굶기려고 작정을 한 센터야? 밥도 안 주면서 돌봄은 무슨 돌봄이야!"


질린 표정의 직원들이 저를 쳐다봤고 저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핸드폰을 들이밀었습니다.


"어르신 이거 보세요. 제가 아까 어르신 식사하실 때 찍었던 사진이랑 동영상입니다. 어르신이 방금 이렇게 맛있게 식사를 하셨어요."


왜 인생은 늘 예상과 반대인지.

잠시 조용하던 그분은 더 크게 소란을 피우기 시작했습니다.


"이 인간이 왜 나야? 나 닮은 사람이잖아!"


"어르신. 옷도 보면 똑같잖아요. 불과 10분 전에 드신 모습이에요"


"말도 안 돼! 여기 센터는 밥 주기 싫어서 사람을 속이려고 하네!"


그렇게 다시 한번 실패를 맛본 저는 오랜만에 치매 관련교재와 케어 관련 서적들을 뒤적이며

이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을 하였습니다.


그때 문득 입소 시 그 분과 나눴던 대화가 생각났습니다.


"어르신, 헬스 말고는 어떤 운동 좋아하세요?"


"내가 왕년에 탁구도 많이 쳤지. 탁구를 잘 쳐서 탁구선수도 할 뻔했거든"


이번에는 이 탁구라는 기억의 조각을 끄집어 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침 위층 교회에 탁구대가 있었고 저는 양해를 구하고 점심시간 20분에 한해 이용이 가능하도록 허락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점심 식사 후에 어르신은 늘 하듯이 소리를 지르며 소란을 피웠고 말리려는 직원들을 제지하고 저는 재빨리 말했습니다.


"어르신, 예전에 탁구 좋아하신다고 하셨죠. 마침 위층에 탁구대가 있더라고요. 밥 준비할 테니 준비하는 동안 저랑 같이 탁구 한 번 치시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 어르신이 순간 멈칫하더니 저를 돌아보셨습니다.


"탁구?"


"네! 그냥 하면 재미없으니까 진 사람이 커피 쏘기 어때요?"


어르신도 과거의 승부욕이 떠오르셨는지 지금 바로 올라가자고 하셨습니다.


20분가량을 치고 나서 제가 커피를 사야 했지만 신기하게도 어르신은 힐링이라도 된 듯 오후 내내 조용했습니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점심 식사 후에 잠시나마 탁구를 치는 루틴을 만들자, 소란을 피우던 어르신의 모습은 아예 사라졌습니다.


어르신의 문제행동들을 수정하려고 하기보다는 그 어르신의 주장과 감정은 그대로 수용하고 주의전환과 지속적인 관심만 있으면 된다는 것을 그제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오늘도 한 어르신의 호통이 센터를 뒤흔듭니다.


"이 놈아! 내가 빵 먹고 싶다고 몇 번을 이야기했어!" (한 번도 말한 적 없음)


"어르신! 빵 가져올 테니까 이 두유 먼저 드시고 계셔요!"


"아 그래에?"


두유를 받아 들며 어린아이처럼 웃는 어르신의 모습을 보며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는 그런 하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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