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대통령 선거가 시작되었습니다.
선거철이 다가오면 저희 같은 요양 현장은 괜히 마음이 분주해집니다.
평소 창밖을 통해 조용히 바라보는것으로 바깥 세상 구경을 대신하던 어르신들도 이맘때가 되면 씩씩해집니다.
“나 투표하러 가야 돼”
“1번 후보 복지 정책 공약이 참 괜찮은거 같고 2번 후보 경제 정책 공약도 현실성 있단 말이지"
그 목소리는 작고 느리지만 그 안에는 국민으로서 의무를 다하겠다는 굳은 결심이 있습니다.
나이가 들어도 한 표는 결코 가벼워지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지요.
문제는 그 한 표를 행사하러 가는 길이 매우 험난하다는 것입니다.
다른 것도 아닌 선거법 때문에요.
작년 봄 한 복지센터 대표님이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을 사전투표소까지 차량으로 모셔다드렸다가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벌금형을 선고받았습니다.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7893525
대표님은 이렇게 항변했습니다.
“그저 도와드린 것뿐입니다. 꼭 투표하고 싶다는 어르신들이 다리가 아파서 못 가겠다다는데 복지센터 대표가 어떻게 모른 척을 합니까”
하지만 법원은 그렇게 보지 않았습니다.
“선거관리위원회나 공식 기관을 통해 지원받을 수 있었는데, 이를 무시하고 자체적으로 차량을 제공한 것은 불법입니다”
소식을 듣고 답답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기표소 설치를 신청할 수 있는 요양원을 제외한 나머지 장기요양기관들은 이용자들이 직접 투표소로 가야합니다.
그나마 방문요양의 경우 요양보호사 선생님이 어르신을 모시고 투표를 할 수 있지만 어르신 7명당 요양보호사 1명이 담당하는 주간보호의 경우는 차량을 이용하지 않는다면 개인적으로 가지 않는 이상 방법이 없습니다.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이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어쩌면 먼 길일 수 있는 그 길을 지팡이에 의지해 걸어갈 수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가족이 모시고 가는 수밖에 없는데 안타깝게도 세상 모든 어르신들에게 투표날 곁을 지켜줄 가족이 있는건 아닙니다.
또한 법원이 인용한 지원이라는 것이 장애인 우선인데다 콜택시 형태인 두리발이 대부분이라 많은 수의 어르신이 탈 수도 없고 차량 대수도 한계가 있다보니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어르신들은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결국 어르신들은 평소 교류하고 요양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저희에게 도움을 요청합니다. 저희는 흔쾌의 도움을 손길을 내밀 수 있고요.
그런데 그 손을 법은 왜 막아야만 하는 걸까요?
노인복지시설 생활노인 권리선언과 세계적 인권동향에 따른 노인 인권의 영역을 보면 노인은 투표권을 행사하고 비밀투표의 원칙을 보장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어르신들의 한 표는 단순히 투표함에 용지를 넣는 행위가 아닙니다.
평생을 살아온 어르신들이 마지막까지 세상에 외치는 작은 목소리입니다.
그 소중한 마음을 지키는 길이 왜 이렇게 어려워야만 하는 걸까요.
법이 정의를 지키려 애쓰다 결국 현실의 작은 선의를 꺾고 있지는 않은지 이제는 우리 모두가 함께 고민해봐야 할 때가 아닐까요.
어르신들과 함께 손 잡고 투표소까지 가는 그 길이 왜 죄가 되어야 하는 걸까요.
언젠가 어르신 한 분이 제게 하신 말씀이 떠오릅니다.
“나는 이제 다리가 불편하고 눈도 잘 안 보이지만, 투표만큼은 꼭 하고 싶어. 그게 나도 아직 사회의 일원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주거든”
세상을 향한 어르신의 작은 목소리가 부디 누구에게도 막히지 않기를 바라봅니다.